BGM : Be Still My Heart
(찾아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슴돠^ㅇ^)
[인피니트/현성] 자존심 : 02
W. jh23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김성규를 향해 다시 들끓고 있는 연애세포는 어떡하나.
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엔 김성규보다 내 마음을 우선순위에 두는. 반대로 돌이켜보면 김성규는 언제나 나를 우선순위에 두곤 했다. 그랬다. 김성규의 틱틱거림에 가려져있었을 뿐, 김성규는 작은 것 하나에 나를 챙기려 들곤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김성규의 얼굴과 축축했던 목소리가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자 만나고 와ㅡ하는 말은 진심일까? 내 경솔한 추측이 맞다면 분명 100% 거짓일 것이었다. 내가 다른 여자와 살을 맞대고 있을 그 시간에 멍하니 TV를 보며 돌아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던 김성규는 감정에 솔직하진 않을 뿐이다. 딱, 그 정도. 몇 개월 동안 마음도 몸도 편하지 않았을 김성규를 떠올리니 다시 내 숨이 옥죄이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깨워서 대화를 해야하는걸까, 아니면 편히 쉴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걸까. 그러다가 나는 한 켠에 두었던 김성규의 일기장을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남의 물건 ㅡ남은 아니지만ㅡ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예의도 까맣게 잊은 채였다. '열어보면 쥬거!' 이렇게나 귀엽고 깔깔했던 김성규를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에 몸서리치다가, 한 장 한 장 꼼꼼히 넘겨보았다. 아……김성규의 일기장에서 나는 이 세상에 다신 없을 것만 같은 최고의 애인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이렇게 김성규에게 상처만 잔뜩 준 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로하려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느꼈던지, 나는 김성규에게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었다. 비 오는 수요일에 사다주었던 장미꽃잎을 양면테이프로 붙여놓은 것도 있었다. 꽃 사는 게 제일 돈낭비라며 툴툴거려도, 그 꽃 한 송이에 감동 받아 이렇게 보관해놓은 김성규. 빛 바랜 장미가 시들해져 사부작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 했다. 또, 다음 장은 내가 김성규에게 써주었던 작은 포스트잇. '나는 평생 김성규랑 연애할래' 그 한 문장을 버리지 못해 꼼꼼히 붙여놓은 김성규는, 내가 없는 그 동안에 일기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평생 김성규랑 연애할래.' 뱉은 말 하나를 지키지 못하는 애인에게 매달려 한 번 울지를 못하는 김성규는. 나는 끊임없이 마른 세수를 해야했다. 일기장을 보면 볼수록 미안함과 애통함이 번져가 끝내 다 읽지는 못했으나, 고작 몇 장의 추억만으로 나는 충분히 아플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너는…….
김성규가 보고싶다. 뽀뽀하지 말라고 칭얼대던 김성규가 보고싶다. 술에 취해 볼을 부비면 내 등을 때려주던 김성규가 보고싶다. 날씨가 덥다며 날씨를 혼내달라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던 김성규가 보고싶다. ……그냥, 과거의 김성규, 아니, 지금의 김성규가 너무 보고싶다.
그래서 나는 벌컥 방문을 열었다. 침대는 미동 하나 없었다. 언제나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자던 그 버릇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다가도, 혹시나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 나쁜 생각을 했을까봐 급하게 이불을 걷어올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성규는 떨고 있었다. 김성규가 살아있음에 안도하는 나였지만 너무나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 모습에 놀라 김성규를 황급히 일으켰다. 김성규는 끝까지 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변해버린 자신처럼 갑자기 변해버린 나에게 놀란걸까. 김성규는 자꾸만 내 뒤에 숨은 이불을 끌어안으려고 발버둥쳤다. 놓아달란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나와 말도 하기 싫다는 뜻일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김성규를 안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부스락거리던 장미꽃잎의 아련한 소리가 떠올라 더욱 힘을 주어 안았다. 여전히, 추운 사람처럼 김성규는 떨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할까. 내가 아프면 김성규는 왜 아프냐며 툴툴대면서도 죽을 끓였고, 약을 사왔고,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내 곁을 지키곤 했다. 내가 바보 같이 웃으면 웃음이 나오냐며 눈을 흘겼고, 그렇게……. 나는, 김성규가 아플 때 곁을 지켜주지도 못했다. 여자를 안으면서, 김성규가 나에게 전화를 걸까말까 고민하는 그 와중에 립스틱을 묻히면서,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미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김성규의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을 주었다. 미약하게 아ㅡ하는 소리를 낸 김성규가 몸을 조금 비틀었다. 그래도 놓치기가 싫었다. 여기서 놓치면 정말 영영 멀어질 것 같아서. 나는 김성규와 다시 연애초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까다로운 성격도 좋고 애교를 부리지 않는 것도 좋으니까 부디. 내가 과거를 추억할때면 시계의 시침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마도 천벌을 받는 것이겠지.
"김성규. 성규야."
"……"
"나한테 화 좀 내면 안 돼? 나 밉다고, 꺼지라고, 여자 만난 것도 다 짜증난다고. 너 예전처럼 나한테 화 좀 내줘."
"……"
"제발. 나 지금 너 목소리 너무 듣고 싶어. 그 목소리."
김성규는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내 품이 불편했는지 ㅡ예전에도 그랬을까ㅡ 비틀어 나오면서 그저 힘 없는 손으로 이불을 덮을 뿐. 허탈했다. 안고 있던 것이 사라지니까 허전했다. 김성규는, 6개월 동안 나를 보지 못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감히 내가 추측하기도 미안한 그런 기분. 딱 그랬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척, 나에게 완전히 멀어진 김성규의 마음을 돌려야만 했다. 나는 1분 1초가 너무나 아깝다고 느껴졌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회가 없다. 그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기회, 기회는 사실 많았다. 그 6개월 동안, 김성규가 집에서 혼자 외롭게 빵쪼가리나 뜯던 그 6개월 동안, 사랑한다고, 내가 미안했다고, 한 마디만 했다면 괜찮았을 것이었다. 애인을 방치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도 모른 채로 외도했던 나에게 그만큼 상응하는 벌이라면……달게 받으려고 해도, 눈 앞에 있는 김성규가 너무 좋아서, 아니, 미안해서, 아니, 사랑해서……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거지?
이 이기적인 애인을 두고도 떠나지 못하면서, 얼굴이라도 보고싶다며 집에나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썼던 그 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적어도 거짓이 아니라면, 김성규는 내 옆에 있어야만 했다. 성규야. 내 나즈막한 목소리에도 묵묵부답. 김성규……. 무너질 것 같은 그 이름. 그제서야 나를 향하는 얼굴에 원망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입술을 꼭 깨무는 버릇은 여전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김성규가 나에게 욕을 하고, 뺨이라도 한 대 갈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해빠진 김성규는 나에게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툴툴대면서 그냥 헤어지자고, 차라리, 힘들어서 연애 못해먹겠다고 말이라도 해주길. 그러나, 김성규는,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착했다.
"네 목소리 듣고싶어. 이건 진심이야."
"……"
"나한테 틱틱거려도 좋으니까, 아니, 제발 틱틱거려줘. 예전 그 모습이 너무 보고싶어서 그래."
"……"
김성규가 입술을 더 세게 깨무는 것을 보고 그 곳을 살살 쓰다듬자 내 손을 쳐낸다. 더 슬펐던 것은 예전의 그 매몰차던 손길이 아니었다는 것. 본인이 내 손을 내쳐놓고서도 놀랐는지 내 눈을 한 번 보는 그 행동에 슬픔이 밀려든다. 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도 내가 이별을 고할까 무서워하는 저 여린 짐승을. 너무나 여려서 강한 척 해왔던 나의 애인을 몰라보았던 내가, 너는 원망스럽겠지. 허공에 붕 뜬 내 손을 쳐다보던 김성규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대화 단절. 그래도 나는 나가지 않았다. 김성규의 얼굴 하나하나를 내 눈에 담고 싶어서, 자는 그 모습이라도 좋으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성규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이불은 여전히 꼭 쥔 상태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애인을 곁에 두고서도,
아, 너도 나를 곁에 두고서도 지켜보기만 했었구나.
쓴 웃음이다. 아니, 이것은 울음이다. 김성규도 울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울어버렸다. 김성규의 뒷통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왈칵 터진 눈물에 그냥 소리내서 울어버렸다. 김성규가 늦은 나의 진심을 알아주길. 내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미안해하고 있다고. 그것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면서 실컷 소리내어 울었다. 김성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축축한 목소리가 마지막. '머리가 아파서 좀 쉴게. 여자 만나고 와ㅡ' 등지고 누운 김성규의 허리에 내 얼굴을 갖다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진짜로……"
"……"
"미안해. 이건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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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반응을 너무 좋게 해주셔서 깜짝 놀랐네요ㅠㅠ 댓글 달아주시고 암호닉 신청해주시고 신알신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S2 운좋게 초록글까지 가서 너무너무 기분 좋았어요ㅠㅠㅠㅠ 사랑해요 나의 독자님들~S2 바쁜 탓에 댓글에 답글 다 못달아드리고 있지만 시간 날 때마다 댓글 보고 있습니다. 힘이 되고 감사해요ㅠㅠㅠ 암호닉 신청은 언제나 받을게요, 사...사랑합니다S2 -제 글이 어디가 재밌는지 모르겠는 작가올림.-
그리고 브금은 여유 되시면 꼭 들어주세여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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