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ATC - Thinking Of You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슴당)
[인피니트/현성] 자존심
W. jh23
이성종의 문자에 한참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도 수긍을 할 수 없는 내가 미워서 나는 그저 무작정 다시 뛸 뿐이었다. 점처럼 사라져가는 김성규와 이성종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어서야 비로소, 이미 눈물범벅인 김성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영안실 앞에서도 덤덤했던 얼굴이, 나와 여자의 모습을 보고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내 눈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인 김성규를 힘껏 안았다. 이성종은 표정이 없었다. 안기면서도 반항 없던 김성규를 더욱 세게 안자 이성종이 자리를 떴다. 나는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잊은 채였다.
"진짜 오해야 김성규. 헤어지기로 했어. 내가 말했잖아. 미안하다고. 응?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
"애인은 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말을 끝맺음하지 못했다. 애인이라는 그 두 글자가 서러웠던지 더 끅끅대는 김성규가 느껴져서 그저 등을 토닥여주었다. 평생 볼 수 없었던 김성규의 눈물을 모두 내가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또 한 번 휩싸인다. 김성규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 끝까지 덤덤한 척을 하려던 김성규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슬픔인 부모상을 당하고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며 오히려 나를 달랬던 김성규가, 운다는 것은……. 나는 김성규를 떼어놓고 손등으로 눈물을 문질러주었다. 한참을 그러고있다가 먼저 등을 돌린 것은 김성규였다. 멍하니 서있는 나를 뒤로 하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이성종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축축한 손등을 내 바지에 비벼 닦았다. 허벅지로 스며드는 느낌에 울컥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넋 놓고 서있던 내게 이성종이 턱짓으로 주차장을 가리켰다. 벌써 화장을 하려는 마음을 접지 않았는지, 병원 측에서 준비한 버스에 인부들이 관을 싣고 있었다. 제 어미가 누운 관이 버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성종의 부축을 받아 올라탄 김성규가 내게 끝내 시선을 주지 않았다. 황급히 김성규의 뒤를 쫓으려는 것을 이성종이 저지했다.
"성규 형이랑 저랑 둘이 갔다올게요."
"왜!?"
"성규 형이 그러고 싶대요."
버스 입구에 걸쳐있던 내 발이 스르륵 내려온 것은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김성규는 반대편 창문을 보고 있었다. 애인 부모의 마지막을 지키지도 못하고, 생전에 찾아뵙지도 못하고, 나는 빵점짜리 애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김성규가 보고있는 방향으로 뛰어가 손을 흔들고 나도 데리고 가라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김성규는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나에게 안겨 운 것만으로 조금 풀어졌다고 생각한 나의 오산이었다. 나의 발악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성종이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미련 없이 떠나는 버스를 보고 나는 주저앉으며 결국에는 눈물을 떨궜다. 누군가가 죽고나서야 드는 죄책감을 느끼는 내게, 다시 느끼는 죄책감이었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한 번을 말하지 못했던 김성규에게 드는 죄책감과, 그런 나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던 어머니께 드는 죄책감이었다. 헬쓱해진 김성규에게 무슨 일 있냐고 한 번만 물었으면 좋았을걸……좋았을걸……좋았……. 주저앉아 뚝뚝 눈물을 흘리던 나를 본 병원 관계자가 부축을 해주고 나서야 벤치로 돌아온 나는 더 마음 놓고 울어버렸다. 아픈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쌓였을 김성규가 생각나서. 내가 느끼는 죄책감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일 것이었기 때문에. 그 여린 마음으로 괴로워할 김성규가 떠올라서 눈물이 마구 터졌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는……. 김성규는 예전부터 '어른병'에 걸려있었다. 세상의 무거운 고민과 짐을 모두 떠맡는, 툴툴거리면서도 남의 사정까지 다 신경쓰는 그런 어른병. 나와의 사이가 덤덤해지면서 분명 그 어른병은 김성규의 마음 온구석을 사로잡고 있을 터였다. 우리 엄마 아픈데, 병원 좀 같이 가주면 안돼?ㅡ 그 어려웠을 말. 내게도 암덩이가 퍼지는 느김이었다. 김성규의 눈물이 베어있을 허벅지를 보니까 더 눈물이 난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나라서, 그래서, 눈물이 난다. 화장장으로 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차피,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이잖아.
……
우리 엄마도 그 중 한 사람일 뿐이고……」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던 김성규였다. 어미의 죽음은 이 두 문장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김성규의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없는 내가 한심하고 속상했다. 나와 같이 가고 싶지 않다던 김성규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화장을 하고, 그 유해를 보고, 한 줌의 가루가 들어있는 유골함을 받아들 김성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놓고선. 걱정투성이다. 이성종에게 전화를 걸어 아까처럼 몰래 화장장을 알려달라고 할 용기는 생기지 않는다. 이성종이 그저 김성규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길 바라면서……. 그게 끝이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대충 비벼닦고 나와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아무도 없는 오피스텔의 냉기가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심했다. 김성규는 이 냉기를 매번 느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 내 귀가를 기다리고 잠들었던 김성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매번 이렇게 김성규의 뒤꽁무니만 쫓는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면서 안방을 열었을 때 난장판인 것을 보고 결국 또 눈물이 터졌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운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어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을 김성규가 남긴 흔적. 난잡한 옷가지와 다 열린 서랍. 그 핏기 없는 손으로 무엇을 챙기면서 나를 떠올렸을까. 침대에 누워 눈가를 비비며, 부은 눈이 아프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떠오르는 김성규. 매일밤 울고도 모자라 오늘 또 울 김성규의 눈매가 떠올랐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허한 더듬거림. 김성규가 누웠던 침대를 쓸어보며 뱉은 그 말에 청자는 없었지만 부디 닿기를 기도하며……, 나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이 상황을 잊고 싶어 잠을 청했지만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선명해지는 김성규의 얼굴과 울음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김성규가 그랬던 것처럼 소파에 앉아 김성규를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나 했던 연락은 역시나, 없었다. 결국 새벽이 흐르고 아침이 되서도 김성규는 들어오지 않았다. 날을 꼬박 샜을 김성규가 걱정되어 한참을 거실에서 서성이다가, 참지 못하고 이성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성종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내 끈질김도 만만치 않았다. 화장을 끝내고 무엇을 하는지 묻고 싶고, 일단 김성규의 상태가 궁금했다. 열 번이 넘는 연결음을 듣고 나서야 들은 이성종의 목소리도 좋지 않았다.
"……김성규는."
"그냥 있어요. 그냥."
"어딘데?"
"인천이에요. 오지는 마세요."
"……"
"곧 갈거에요."
길었던 기다림이 무색할 저옫로 짧은 통화였다. 그냥 있다는 김성규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그러나 오지 말라던 이성종의 목소리가 단호한 것은 분명 김성규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다. 끝내 제 어미를 보내는 길에 애인……을 데려가지 않던 김성규의 오기가 미워 괜히 바닥을 툭툭 차대었다. 애인 자격도 없으면서 애인 타령하는 내가 우습다고 느낀 것은 그 직후였다. 애인은 무슨. 애인 자격도 없는 주제에 애인은 무슨…….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현관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마음이 독약을 삼킨 것처럼 썼다. 몸을 돌려 엉망인 안방을 정리하는 내 손길은 무디게도 느렸다. 옷가지 하나하나를 개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이 나와 어울리지 않아 쓴 웃음을 짓다가도, 이런 일을 매번 해온 김성규의 성격도 사실 지고지순한 집안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후회의 연속이다.
***
김성규가 들어온 것은 거의 24시간이 지난 후였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몸은 이미 현관에 있었다. 김성규는 잔뜩 부은 눈을 하고 들어왔다. 내가 현관에 서있자 비키라는 말도 못하고 신발을 신은 채 뻐끔히 서있는다. 나는 무릎을 꿇고 김성규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내 행동이 어색했는지 눈만 껌뻑이고 있다가 몸을 살짝 틀자 그 틈을 비집고 거실에 앉아 담요를 덮는다. 나는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괜찮을리 없겠지만 괜찮냐고, 잘 보내드렸냐고, 아프진 않냐고, 모든 것이 의문점이었지만 담요를 덮고 소파에 바싹 붙은 김성규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 고플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김성규를 흔들었다. 분명 잠을 자지 않고 있을 터였다.
"뭐라도 먹지……. 너 거기서 밥도 안 먹었을거 아냐."
"……"
"너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보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저 동거하는 애인이라는 이유로 주제 넘은 참견을 하는 내가 꼴사나웠겠지만, 그 소리에 김성규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상황에서 김성규는 앞치마를 둘렀다. 무엇을 먹으라고 했던 내 말은 요리를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주려고 했던 내 의도가 무색하게, 김성규는 마치 집안일이 자신의 의무인 듯 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화가 나는 것이었다.
"너 뭐해!?"
물을 끓이던 김성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귀 먹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김성규의 등에 묶인 앞치마를 끌러내자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는데,
"……너 밥 안먹었잖아."
"……"
"설거지가 없는거 보면……"
아, 김성규……진짜 왜 그래……. 이기적으로 굴어도 좋을 때였다. 자신만을 위하고, 힘든 심신을 추스려도 모자랄 판에 내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한 김성규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또 왈칵 눈물이 터졌다. 나는 정말 너무 답답해서, 왜 그러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미를 보낸 와중에도 파렴치한 애인의 식사 따위에 신경 쓰는 김성규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렇게 착한 애인을 두고 방황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팔팔 끓여지는 물이 다 타버릴 때까지 나는 김성규를 안았다. 나는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김성규는 빼지 않았다. 김성규, 너, 진짜, 왜 그래……더듬거리는 내 입술에 자멸감이 든다. 예전의 본인의 '자존심'이었던 내가 더듬거리는 것을 본 김성규가 어깨를 들썩여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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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바보 김성규와 바보 남우현임돠;; 늦어서 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바빠서 정신이 없었슴당;;;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구독료의 가치가 있으시길! 분량도 내용도 똥인게 함정이지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 글의 포인트는 성규가 상을 치루고 와서도 우현이 밥차려주려는 대목인데....ㅁ7ㅁ8 성규 바버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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