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보보 - 늦은 후회
[인피니트/ 현성] 자존심 : 07
W. jh23
어깨가 젖어들었다.
김성규는 한참이나 안겨 울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던 김성규의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멈출 때를 아예 잊은만큼 김성규는, 내 안에서 거의 무너지고 있었다. 물이 다 졸아 냄비 바닥을 다 태울 때까지 한참을 안겨 있던 김성규가 내 허리를 붙잡은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언제나 금방이라도 도망갈 사람처럼 안겨있던 김성규였기에, 나는 놀라 더욱 힘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김성규는 내 셔츠자락을 놓지 않았다. 이마저 놓치면 정말 날아갈 한 마리 나비 같아서, 나도 김성규의 옷자락을 세게 잡았다. 바닥에 떨어진 앞치마가 갈 곳을 잃고 널부러져 있었다.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김성규의 심정을 헤아리기엔 내 마음이 너무 좁았다. 성,규,야. 뚝뚝 떨어지는 말투에 멋이 없다. 나는 김성규에게 아직까지 남아있을 일말의 자존심을 위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 셌던 자존심을 구기고, 내 옆의 여자를 바라보다가, 그런 몰염치한 애인에게 안겨 있는 그 자신이 미워서라도 김성규는 자책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어가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가라앉지 못할 앙금들이 풀리기를. 나에 대한 미움과 서러움이 조금이나마 사라지길. 나는 내 눈물을 닦지 못하고 그저 김성규를 쓰다듬었다. 김성규는 내 허리를 잡았던 손에 힘을 뺐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김성규를 다시 한 번 돌려잡은 것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내가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하는 변명은 사실 핑계에 불과했다. 여섯 달 동안 애인을 무너뜨린 나의 생각은 너무나 뻔뻔할 정도로 파렴치해서 나조차도 내 모습에 역겨움이 들었다. 그 착한 김성규는 대신 내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 밉지."
"……"
"애인인데, 하나도 애인 같지 않아서 밉지."
김성규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어쩌면 나에게 하는 작은 위로였을지도 몰랐다. 이런 시시한 말 따위로 그 동안의 잘못을 덮어버리고 싶은 이기심, 끔찍한 것이었다. 대답이 없을 줄 알았던 김성규는 내 어깨에 묻은 얼굴을 미약하게 흔드는 것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움찔거림에 나도 몰라 헉, 하는 소리를 내뱉자 그제서야 얼굴을 떼어낸 김성규가 바닥에 떨어진 앞치마를 둘렀다. 얼굴을 문지른 손으로 앞치마 끈을 묶고 있는 김성규의 행동을 멍하니 쳐다본 후에는 이미 냄비에 물이 끓여지는 중이었다. 야……. 약간의 투정 어린 말투에 김성규가 내 얼굴을 보았다. 헬쓱해도 이렇게 헬쓱할 수가 없다. 김성규.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하며 분주히 재료를 꺼내는 저 손길에,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가스를 잠근 후 김성규의 손을 잡아 채어 내 허리에 다시 감게 했다. 피골이 상접한 김성규의 얼굴은 초췌하면서도……
"너 예뻐."
"……"
"옛날보다 지금이 더."
당돌하고 치기 어린 말. 김성규는 내 말에 반응을 하지않고, 고개를 숙였다. 누구의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바닥에 흥건한 것을 보고, 제 발바닥으로 문질러 닦는 김성규의 그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다시 솟아오르는 나의 연애 세포. 나는 김성규를 안았다. 너무나 울어 퉁퉁 부은 눈에 입맞춤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동그란 코, 내가 미쳐 살았던 입술과 목덜미……모두 다. 김성규가 입고 있는 앞치마까지. 새삼스레 떠오르는 옛날의 달콤함이 그리워서 목이 막혔다가 김성규의 입술에 천천히 내 입술을 갖다대었다. 경련하는 김성규의 얼굴을 붙잡고,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내 곁에서. 다시는 혼자서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그렇게……사랑스러워서……자존심을 버리고도 날 떠나지 못하는 김성규의 입술은……조금 차가웠다. 그 순간 떨어지는 김성규의 눈물을 부러 못본 체 하고 있다가 슬금슬금 앞으로 밀고 나가며 부엌 벽에 김성규의 뒷통수가 닿도록 했다. 그리고 내 팔에 가둔 후 치고 들어가는 내 혀에 김성규가 눈을 꼭 감았다. 사실, 김성규는 내 혀를 깨물고 뺨이라도 내려쳐야 했다. 그러면서 왜 이제와 그러냐고, 다시 날 설레게 해서 어떻게 구워삶을 예정이냐고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아야 했다. 김성규는 아무래도 바보임이 틀림 없었다. 못난 애인의 키스를 받으면서도 눈을 뜨지 못하고, 그러면서 차마 내 어깨에 손을 두를 생각도 못하는 바보임이 틀림 없다. 나는 혀로 김성규의 치아 하나하나를 옭아매면서도 김성규의 팔을 들어 내 어깨에 걸칠 수 있도록 했다. 근 여섯 달 만에 나눠보는 키스는 짜릿하고 슬펐다. 천천히 고개를 트는 내 페이스에 은근히 맞추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져서 오히려 수월했다. 여자와의 잦은 키스에도 이렇게 느껴본 적 없던 짜릿함이었다. 이 며칠 동안, 김성규의 부재와 애정에 굶주려있던 나의 저돌적인 입맞춤을 끝내지 못했다. 하도 울어 산소가 부족해 헉헉대는 김성규의 숨소리를 듣고도 차마 입술을 떼어내지 못하다가, 어깨에 걸쳐있던 김성규의 손이 나를 살짝 밀어내는 그 타이밍에 멀어질 수 있었다. 타액과 눈물로 흥건한 내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고 바라본 김성규의 얼굴은 정말, 미묘했다.
"……남우현……"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떨림이 가득한 김성규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히자 다시 피어오르는 흥분감. 단순한 성욕이 아니었다. 여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아니었고, 예전 김성규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내가 여태껏 들어온 나의 이름 중에서, 실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여전히 벽에 기댄채로 눈을 감고 있는 김성규가 내 이름을 부른 후 한참 있다가 스르르 주저앉아버렸다. 덩달아 무릎을 숙이고 앉은 나는 김성규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기다려야 했다. 김성규 입에서 나온 그 세 마디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말이었다. 내가 말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았던 김성규가 먼저 나를 부른다는 것은, 그것이 좋은 일이건 싫은 일이건간에 우리 둘 사이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김성규의 입술에 내 엄지손가락을 갖다대자 파르륵하며 잔떨림을 보인다.
"넌, 진짜로……"
"……응. 말해."
"……"
"……"
"세상에서, 제일, 나빠."
"……"
"너무 나쁜데……"
"……"
그런 너한테 아직까지 설레는 내가 싫어. 알아?
투정도, 질투도 아닌 그저 담담한 말이었다. 김성규는 천천히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보았다. 그 길게 찢어진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이 결국 김성규의 바지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키스하고, 또 그 여자 만나려고……. 김성규의 젖은 말이 내 심장을 무섭게 때리고 있었다. 숨 쉬기가 버거운지 색색대는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가……우리 엄마 아픈거……"
"……"
"말하려고 해도……"
"……"
"니 옷에 묻은……"
"……"
"립스틱 보면서……"
한 번 터진 서러운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지, 가파른 숨을 몰아쉬면서도 김성규는 끝까지 말을 이으려고 노력했다. 다 잠긴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하려던 김성규는 끝내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눈가를 마구 비벼댔다. 나는 앞에 앉아 김성규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고개만 들면 그 사랑스러운 김성규가 있는데도, 내가 한 짓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왜 진작에 잘해주지 못했을까. 나의 알량한 마음은 왜 애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아니, 왜 나는 김성규에게 정착하지 못했을까. 순간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잘못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미안해……. 뚝 떨어지는 기분만큼 뚝 떨어진 사과의 말이 김성규를 향했다. 이 모든 잘못이 미안해, 한 마디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김성규를 때렸거나, 혹은, 거짓말을 했다거나, 이랬으면 어쩌면 해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람을 피우면서 온갖 세상의 짐을 다 껴안아야했던 김성규는 이런 내 키스를 받고나서야 서러운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난……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번쩍 쳐들고 김성규의 얼굴을 보니 또 울려고. 아롱아롱 달려있는 김성규의 눈물을 핥아내자 거칠게 도리질을 한다.
"너……진짜 미워……!"
"……"
"난, 진짜……"
"……"
"정말, 진짜로……"
엉엉 우는 김성규의 자존심이 마침내, 완전히 꺾였다.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나를 눕힌 후 내 위에 올라탄 김성규가 급하게 내 입술을 찾았다. 돌발스러운 김성규의 행동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도 잠시, 김성규가 내 위에 올라타기 편하도록 다리를 쭉 뻗은 나는 그의 허리를 잡았다. 김성규는 다 젖은 얼굴을 비벼대며 내 입술을 물었다. 예전, 그리고, 어제까지도 상상도 못했던 행동이었다. 나와 동거를 하면서도 쉽사리 보지 못했던 김성규의 도발이 나를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었다. 아까의 키스보다 훨씬 더 짙은 농도였다. 내 혀를 뽑을 듯이 옭아매며 내 어깨를 붙잡는 김성규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색 잡지에나 나올 자세로 김성규가 나를 안은 것은 처음이었다. 달달한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항상 내가 먼저 달려들곤 했었는데. 김성규의 코가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중간중간에 숨 쉬기가 힘든지 입을 뻐끔대며 공기를 끌어모은 후, 끝없이 내 입술을 탐하는 김성규의 심장소리가 내 심장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슬슬 숨이 모자랄 때가 되서야 김성규는 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바닥에 손을 짚고 한참을 끅끅대던 김성규가 멍하니 누운 나를 보았다.
"……키스 맨날 해줄게……."
"……"
"예전처럼 튕기지도 않고……"
"……"
"그니까, 나랑만 해……."
내가 여자를 만난 이유가 다름 아닌, 스킨십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항상 내가 먼저 하고, 그럴 때마다 튕기던 제 모습을 반성하기로 했던걸까. 그게 아닌데.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김성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아니야, 라고 말했을 때 김성규가 더 고민할 것 같아서 그냥. 김성규의 볼을 매만졌다. 잔뜩 갈라진 피부에 속이 상해 울상을 짓자 슬금슬금 물러나며 또, 그 여자는 피부 좋던데……하는 자기 비하. 나는 울컥해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엄마가 죽어서……"
"……"
"어쩌면 다행이야."
"……?"
"그래서……"
"……"
"우리 엄마가 죽지 않았다면……"
"……"
"너도 죄책감은 없었을 테니까."
심장, 쿵.
| 독자님들, 바쁘시겠지만 꼭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jh23입니다. 먼저 항상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글도 못쓰고 분량도 거지인 주제에 많은 댓글받고 초록글 갔다온것 보면 정말 감사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답글도 못달아드리네요 매번. 그렇지만 틈나는대로 항상 댓글 확인하고 있어요. 암호닉 신청도, 신알신도, 정주행도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구독료를 내실만큼 좋은 글이 아닌데도 기꺼이 구독료 지불해주시고 아깝지 않으시다고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 보면 정말 송구스러울 뿐이에요! 제가 독방에 자주 가질 않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글잡 애기 나오고, 제 팬픽에 대해 이야기 나오는 걸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정말 부끄럽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업데이트도 자주 해야지, 하다가도 바쁜 걸 핑계삼아 미루게 되고 그렇게 되었네요. 많이 죄송해요.
오랜만에 인티 들어오니 복습하시고, 또 정주행 해주시는 분들 되게 많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재밌다고 댓글 달아주셨던 독자님들 정말 모두 감사해요. 이런 똥글 주제에 정말 과분한 독자님들이십니다ㅠㅠ
부디 이번 글도 구독료가 아깝지 않으시길 빌며, 여름감기 조심하시고, 콘서트 다녀오시는 분들 모두 조심히 다녀오세요! '자존심'은 최대한 빨리 업데이트 할게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jh23 올림.
+) 암호닉 신청은 묻지 않고 그냥 해주시면 되요! 답글 달지 않아도 모두 확인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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