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 옆에 앉아 있는데 루한이 들어왔다. 눈이 온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민석아."
"그러게."
편안해 보인다. 루한. 언제나 온화한 얼굴로 나를 조급해하던 얼굴이 아닌. 편안한 얼굴.
그렇다면 더 망설일 것은 없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우리 백현이한테 선물 줘야지.
"..루한."
눈을 살짝 치켜 응답한다. 언제나 굳건히 나를 지키는 미소.
"백현이를 죽여줘."
"....."
"고통없이 한번에."
"......"
"끝내줘."
놀라는 기색없이 나를 바라본다. 내말에 조금이라도 주저함이 섞여있는지 살핀다.
"민석아."
"어차피 저건 살아도 사는게 아니잖아."
"...그럼 넌."
그는 모르지 않다. 다만 모른척 할 뿐이었다.
"내가 왜 가만히 있는것 같아 민석아?"
글쎄. 잘모르겠다.
"니가 죽고싶다고 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침착할까."
너무 어려운걸 묻잖아 너.
"..나는 있잖아..."
곧잘 아이같은 말을 쓴다. 서투르게.
"어떻게 해야 할지...모르겠어.."
너도 모르는게 있구나. 모든걸 다 알고 있는줄 알았는데.
"니가 이러면..나는 정말.."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나를 가둔건 넌데.
"...힘들어..민석아.."
힘들어? 글쎄..나는 이제 힘이 든다는게 어떤건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정말 너를..."
무슨말을 할건지 이제 알아. 나에 대한 너의 마음.
"...사랑해서 그래..."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해..정말 나는...내가.."
"이제 날 편하게 해줘."
"민석아."
"나.."
"오직 널 위한거야. 이세상 전부."
"이제 너무 지쳐."
"난 아무것도 안무서워."
"....."
"니가 가는 곳이 어디라도"
"....."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니까."
나도 너를 사랑하겠지 루한. 사랑이란것이 남들이 말하는 뜨겁고 격정적인 것이라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사랑이란 나를 숨쉬게하는 모든것이다.
백현이를 사랑했고 누나를 사랑했고 크리스 형도 경수도 모두. 내게 있어 사랑이었다.
그리고 너를 말하자면 조금은 다른 사랑이다.
나를 질식할만큼 조여왔지만 그안에서 계속 나를 살게했다. 맹목적인 너의 사랑에 약간은 바랬지만 그래도..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도 널 사랑해."
"....."
"널 사랑하고 있어 루한."
"......"
"그러니까..."
"......."
"..응?"
조금은 달래듯이 너에게 말한다. 이제야 말하는건 너의 사랑에 비해 너무 보잘것이 없으니까..라고 할게.
백현이가 죽었다. 루한이 나는 보지 못하게 했지만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기다렸다. 마음이 편안했다. 집안은 크리스마스라고 하기엔 너무 상막하고 건조했다. 백현이 작년에 트리도 못해줬는데.
그렇지만 모두가 밝은 크리스마스에 이런 고요함도 좋다.
주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 우리 백현이는 천사니까 이런날 하늘로 돌아가는거야. 그렇지?
곧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에게도 선물을 줘야지.
"루한."
"...응..케이크 있는데 촛불 후 할래?"
진지한 얼굴로 촛불 후 라니. 크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촛불 후는 안할래."
"그럼...트리 켤까?"
"트리가 있어?"
"아니 금방 사올 수 있어."
아니야. 루한. 안그래도 되. 오늘은 온전히 우리만으로 여길 밝히자.
"우리 자자."
"...민석아."
"내안으로 들어와."
"....."
"다리를 못쓰는거지 거기까지 구실못하진 않아."
"민석아!"
"그러니까 더 못된말 하기전에 빨리."
"......"
"침대로 가자."
빛으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처럼 너를 품어줄게.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던 동정녀 마리아처럼. 내처지가 다르지 않아. 빛과 같이 큰 너를 내안에 가득 넣고 나는 가벼워지고 싶다.
나를 안아들어 침대에 옮긴 너는 곧 서서히 내옷을 벗긴다. 자유롭지 않은 다리를 감싼 바지. 그리고 손을 다 덮는 너의 큰 가디건. 그안의 하얀티까지.
조금은 춥다 느낄 새도 없이 나를 가득 안은 너로 인해 나는 눈이 내리는 여름을 느낀다.
내가 추울까 품에 넣고 옷을 벗으려니 더디다. 그러게 너부터 벗지 바보야.
그의 품에서 조금 벗어나 내손으로 직접 옷을 벗겨주었다. 나를 따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나 숨막히는.
옷을 모두 벗고도 그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나를 껴안고만 있었다. 잠이 들었나 싶을정도로 아주 오랜시간을.
아까까지만 해도 내리는 눈에 빛이 반사되어 창을 비췄는데 이제는 연한 남색 눈이 내리고 있다. 아주 긴시간이 지난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싶진 않다. 빨리 백현이를 마중가야 하는데. 아이가 어느 길목에서 나를 찾으며 울고 있을 것만 같다.
"..루한"
"..알아."
잠긴 너의 목소리.
"다 알아 민석아."
언제나 뒤돌면 나를 바라보고 있던 너.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나를 바라봐왔을 너.
"열다섯부터 내 인생은 너였어."
열다섯..
"너로 인해 움직이고 너로 인해 여기까지 왔어."
여기가 어디지. 지옥일까.
"모든게 그냥 다 너였어. 내 모든게 다."
전부 다 나...
"너의 뜻을 거스를순 없어 난."
고마워.
"하지만 민석아."
내 머리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이것만은 알아둬."
너의 떨리는 손끝이 차가운 금속으로까지 전해진다.
"니가 없는 곳엔 나도 없어."
백현이가 기다리겠다 루한.
"아주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이제 졸려.
"금방 따라갈테니까."
..조금 늦어도 되. 그곳은 영원만이 있을테니까.
"민석아...정말...미치도록 널..사랑해 그리고,"
응,다시 없을 사랑을 줘서 고마워.
"메리 크리스마스."
잠시만 안녕.
민석이를 들어올려 욕실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핏자국이 뒤를 따랐다. 욕조에 물을 가득 담아 먼저 들어가 내위에 민석이를 앉혔다. 힘없이 미끄러지는
몸을 추슬러 나를 보게했다. 살짝 웃는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나는 슬프지 않다 민석아. 왜냐하면 이게 끝이 아니니까. 죽음따위야 언제나 내곁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너와 날 갈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너에게 영원을 약속한다. 바로 너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단지 하나다. 잠시 네가 머물렀던 이 작은 몸을 소중히 마무리짓고
가야한다. 너의 모습이 담겼던 김민석의 몸. 다시 다른 모습으로 네가 태어난다해도 나는 너를 찾을 것이다. 너의 껍데기만 죽은 것일뿐 내가 사랑한
너의 영혼은 지금쯤 너와 어울리는 하얀 눈을 타고 에덴으로 향하고 있겠지.
남들도 모두 축복하는 흔한 12월의 크리스마스는 필요없다.
너와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내가 다시 만들 너만을 위한 파라다이스에서.
온세상을 너에게 쏟을듯이 찬란하게 빛날 그 어느곳에서. 아마도..머지않아 닿을 그곳에서..
너와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13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자 민석아.
모두가 12월의 마지막을 축하할때..
새로운 13월의 축복을 너에게만 선물할게.
내세상. 내영혼. 내모든것...내사랑.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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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결이네요. 모두 미안해 얘들아...타오의 번외를 궁금해 하실것 같아요...아...닌가요..ㅜㅜ
번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루한의 첫만남 번외는 곧 올려드릴겁니다. 먼저 받아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텍스트본은 언재가 될진 모르겠지만 번외를 넣어 함께 만들것 같습니다.
그리고..너무 무거운 글들만 쓰니까 힘이..들어서...곧 코믹물로 찾아 올 것 같아요...
<아이를 유괴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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