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요 좋아해
그렇게 피디님과 나름 알콩달콩 장보기를 마치고 마트를 빠져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갑작스런 고백아닌 고백을 받은 여파로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살짝 마주치는 눈빛에도 마음이 간지러웠고 어쩌다 닿은 피디님의 손에도 움찔 거렸다. 부끄러운 마음에 고갤 숙이고 발끝만 보며 주차장으로 가면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피디님과 같이 일한지도 벌써 어언 두 달째로 접어드네. 시간 참 빠르다. 태형이랑 첫 미팅 하면서 떨린다고 난리쳤던 기억이 벌써 두 달 전이라니.. 피디님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걸 알게 된 지도
금방 친해져 같이 밥도 먹고 오늘은 영화도 보고, 장도 봤다. 꿈만 같았다. 누군갈 좋아했던 기억은 늘 가슴 아픈 추억이었는데 이번엔 왠지 기대가 된다. 자꾸만 욕심이 난다.
내 옆에 있는 피디님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 같은 기분. 이런저런 생각을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약간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뭐야 아주머니 앞에선 그렇게 능글 맞더니.
“기분 나빴던 건 아니죠?”
한참의 정적 끝에 피디님은 핸들을 잡고 앞을 응시하며 나에게 물었다. 다소 진지한 표정에 약간은 긴장되었다. 기분 나빠? 설마요 피디님. 오히려 좋았다고 하면 피디님은 무슨 반응을 보이실까.
쑥스러움을 겨우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아뇨 좋았어요”
좋았다는 나의 대답에 피디님은 진지한 표정을 풀고 특유의 이쁜 눈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이 좋아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피디님은 그제야 내 얼굴을 보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피디님의 손이 큰 탓일까 약간은 거칠면서도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더니 차키를 꽂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도 좋아요 탄소씨 나에겐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에요”
내가 좋다는 말. 날 친구로서 동료로서 좋아하고 있다는 건 피디님이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기에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다. 하지만 좋다는 말 그것도 아까 전과 달리 이제까지 그런 느낌만 갖고 있었지 이렇게 대 놓고 둘만 있는 이 순간 내가 좋다는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말에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말 하나하나에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다니.. 너무도 솔직한 감정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뭐라 대답하면 피디님도 내 마음을 알아줄까
“피디님 말 다 믿어요 그래서 좋아요 나도.. 피디님이..”
고갤 숙이고 아까 피디님의 손길이 스쳐간 머리카락을 부끄러움에 괜시리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이 꿈만 같아서. 거짓말이라고 단정 짓고 있던 감정이 진짜임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피디님은 내 대답을 듣고 깊은 숨을 들이 쉬더니 내 머릴 감싸 안았다. 그 덕분에 얼굴은 피디님의 어깨에 파묻혔고 눈이 감겨왔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은 길을 잃고 차렷자세로 경직 되었고
내 심장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고요한 차 안에서는 오직 내 심장소리와 피디님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내 머릴 감싸고 있는 손이 따뜻했고
내 귓가를 스치는 피디님의 머리카락과 숨소리가 날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피디님의 낮고 작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탄소씨는 모를 거야 내가 지금 얼마나 떨리는지”
“........”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기다린 만큼 간절히 원했던 만큼 잘해줄게요
이래봬도 나 꽤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나도 알아요 피디님 좋은 사람인거”
내 말이 끝나고 내 머릴 안고 있던 손을 살며시 풀곤 내 얼굴을 바라보며 피디님은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마저도 설레였다. 단지 웃었을 뿐인데.
그 미소 나만 보고 싶다고 말하면 너무 오글거리려나? 아무렴 어떤가.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해도 그저 바보같이 좋았다.
“나 걱정했잖아요. 아주머니께 거짓말한 거짓말쟁이 될까봐. 고마워요 나 거짓말쟁이 안 되게 해줘서”
피디님은 시동을 걸며 나에게 말했다. 고맙다는 따스한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고맙죠 뭘..
괜히 쑥스러워 피디님께 장난스럽게 말했다.
“근데 피디님”
“왜요”
“나 배고파요”
“어련 하실까 우리 작가”
졌다는 표정으로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은 피디님의 모습도 눈에 담았다. 이젠 저런 모습 하나하나도 다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피디님과 나는 어느 새 ‘우리’가 되어 있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현관문을 여니 피디님과 나의 훈기가 아직 집 안을 맴돌고 있었다. 내 옆의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찬거리들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피디님을 보니
어느 새 내 앞치마를 매고 아까 조금 남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졌다. 앞치마엔 아기자기한 곰돌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매고 열심히 그릇을 닦는 피디님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피디님의 얼굴을 톡하고 건드렸다.
“어 우리 작가 이제 내 얼굴도 막 건드리네? 이것만 끝나면 가만 안둘거예요”
“빨리 도망가야지”
피디님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설거지를 빠르게 끝내고 내가 앉아 있는 소파 옆자리에 앉아 내 머리에 손을 턱 올려놓더니 리모컨으로 티비를 끄고 내게 물었다.
“저녁 지금 먹을거죠?”
“내가 도와줄까요? 그래도 여기 우리집인데”
“됐네요. 내가 할 테니까 저녁 먹고 설거지나 해줘요”
“고마워요 그럼 난 여기 누워서 기다려야지”
“나 같은 남자 찾을 래야 찾을 수 없는데 우리 작가는 복도 많지”
“그런가?”
피디님을 괜히 약 올리곤 소파에 누워 피디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맞아요 피디님. 피디님 같은 남자 절대 없단 거. 주방에 있던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을 보니 배터리가 없는지 꺼져 있었다.
배터리를 갈고 정국이에게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켜니 전화 5통, 문자 7통이 와있었다. 평소 이렇게까지 연락이 밀린 적이 없었기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확인해보니 정국이 전화 1통을 제외하고는
모두 태형이에게 온 연락들이었다. 이상하네 이 시간에 얘 지금 스케줄 하고 있을 텐데.. 아까 오후에 피디님과 영화를 보러 갈 때 즈음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태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태형이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태형아 왠일이야? 전화를 이렇게 많이 했어 무슨 일 있어?”
“김...김탄소...”
술 먹었구나 태형이. 목소리가 잠겨 있고 주변이 시끄러웠다. 발음도 약간 뭉그러져 있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태형아 어디야? 술 많이 마신 거 아니지?”
“뭐야.. 김탄소 너... 뭐냐고”
“...어? 태형아?”
“왜.. 왜 내 걱정해... 니가 뭔데...”
“안되겠다. 태형아 너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누구랑 같이 있어 지민씨?”
“제발... 제발 좀... 그만해 입 다물어”
“태형아 왜그래.. 태형아 태형아? 김태형!”
그렇게 태형이는 내게 입 다물어 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갑작스런 태형이의 낯선 모습에 놀라 손이 벌벌 떨렸다. 술 많이 마셔서 그런 걸 거야라고 애써 타일러 보지만
한 번도 내게 이런 말,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태형이이기에 걱정이 물밀듯이 날 덮쳐왔다. 내 방 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니 피디님은 세상모르고 열심히 고기를 볶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태형이의 걱정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피디님은 그런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고갤 돌려 날 마주하곤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피디님.. 태형이가..”
“태형씨? 태형씨가 왜요? 말해요 빨리”
“...태형이가 많이 힘든가봐요... 지금.. 술 먹고.. 어딨는지도 모르겠고..”
눈물 때문에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내 얼굴을 속상하다는 듯 보며 피디님은 날 안아주었다. 태형이가 걱정돼 미칠 것 같았지만 그 품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더 많이 울어버렸다.
“태형씨 걱정 말아요 아님 내가 다시 전화해볼까요? 지금 해볼테니까 울지말고”
“...전화 해주세요”
“알았어요 일단 여기 좀 앉아봐요”
피디님은 서둘러 가스의 불을 끄고 나와 같이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태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거니 이번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태형씨? 무슨 일 있어요?”
“민피디님.. 피디님.. 민윤기씨..”
“태형씨 지금 어디에요? 나 지금 탄소씨랑 같이 있는ㄷ...”
“민윤기씨... 잘... 들으세요 두 번 다신.... 말 안합니다”
“....”
태형이의 거친 숨소리와 낮은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눈물을 참는 것 같기도 했고 화를 참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에 긴장감이 흘렀다.
“김탄소.. 내 친구 내 하나뿐인.. 친구 그래 친구죠 평생 친구야 우린..
그것밖에 못해요 난 탄소한테 평생 친구야..“
“근데 난 아니란 말입니다... 김탄소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요
내가 평생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이거 피디님이 자초한 겁니다.. 난 잘못 없어요...“
“내가 많이 좋아해요.. 우리 탄소 많이.. 정말 많이 좋아해요...”
들어버렸다. 그 가슴시린 고백을 결국 들어버렸다. 평생의 믿음이 한순간 무너져 버렸고 태형이의 얼굴이 뚜렷했다 흐려지기 시작했다. 멈춰버린 눈물이 다시 내 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좋아한다는 말. 분명 같은 의미인데 두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분명 같은 말인데 왜 내 머릿속에선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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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사랑 |
〈!--StartFragment--> 김남준 민윤기 봄 현지 늉기 노래 들레 디즈니 짱구 브이 꾸울 윤아얌 하늘 꿀만두 예워아이니 단거 카누 알라 민트 초딩입맛 양념 애기무당 작가님1호팬 꿀귀 모즈 가온 태태야 명언 레몬 눈설 은 뽀로롱 범블비 누텔라 린봄 알비노포비 츄파춥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