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년을 왜 살려줬다고 생각해?" 모든걸 잃었다. TV에 방영되거나 드라마같은 재벌가의 딸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부유했고, 무엇보다 가족간의 사이가 애정이 넘쳤던 우리가족은 연쇄살인범의 만행으로 산산조각났다. 더 웃긴건, 우리집에 불을 질렀던 그 새끼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 거기에 음주까지 겹쳐서 벌금 20만원에서 그쳤다. "존나 괴로워하다 디지라고, 근데 이오빠가 요즘 욕구불만이야" 장례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냥 눈물만 난다. 뭐가 그리당당한지 떳떳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골목길로 끌고가 옷을 벗기는 행동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기분 좋게해준다니까? 그리고 디져버린 니네 애미애비 보게해줄게" 몸을 갈기가기 찢고싶었다. 이 새끼도 찢어죽이고 나도 그렇게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말 잘들으면 안아프게 잘해줄테니까, 어 지금처럼 가만히, 알겠지?" 티셔츠를 칼로 찢어발기더니 이젠 브래지어에 손을 댔다. 먹먹했다. 세상에 나보다 불행하고 불쌍한 년이 있을까. 16년밖에 안살았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비참한 일을 한꺼번에 겪을수 있을까. "여기요, 여기에요 경찰아저씨!" 이윽고 들리는 남자의 외침소리, 속옷을 끌려던 쓰레기는 경찰소리에 당황해 욕을 내뱉고는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얘, 괜찮......." 허공만 응시하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나에게 조심스레 입혀주었다. 시선은 다른곳을 보며 단추를 하나하나 서툴게 잠궈주는 손길이 우스워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새벽의 허름한 골목길. 그게, 아저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ㅡ 집이 홀라당 타버려 집이 어디냐는 아저씨의 질문에 난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자 아저씨는 한숨을 쉬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난 아저씨의 집에서 잠깐, 아주잠깐동안 머물게 되었고 그렇게 난 모든것을 의지할만큼 아저씨를 믿었고, 좋아했다. "야, 오징어. 너 내가 검은옷이랑 흰옷 같이 빨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아 왜요~옷이 거기서 거긴데 옷가지고 차별하면 안되지" "야 흰옷이 회색옷이 됬잖아, 멍청아!" "내 덕에 새옷 장만했네요! 근데 누구보고 멍청이래 이 아저씨가?" 그렇게 난 학교를 자퇴하고 법과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같은 아이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그때 부모님을 죽인 쓰레기를 무죄받게 하는데에 검사가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판결을 내린 나는 꼭 무조건 이기는 검사를 꿈꾸게 됬다. 나를 위해 이것저것 지원해주던 경수 아저씨덕에 그렇게 원했던 자살같은 생각도 싸그리접고 사회에 나가기 위해 몰두했던것 같다. "...정말 가는거야? 괜찮겠어?" "언제까지 아저씨한테 신세만 질순 없잖아요, 괜찮아요"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알겠지?" "됬네요, 자기일정돈 할줄 알아요 저" 큰 손으로 머리를 덮어 포근히 쓰다듬어줬던 아저씨의 손과 애틋하면서도 씁쓸한 아저씨의 표정을 기억에 담았다. "언젠가 꼭 다시만나면, 그땐 제가 어떻게든 은혜 갚을게요" "나 피해다니지나 마라" "...꼭, 다시 만나요" 그렇게, 1년을 조금 넘었던 아저씨와의 동거는 끝이났다. ㅡ "징어씨, 첫 재판 축하해" "감사해요, 저 꼭 피고인 감옥에 처넣을거에요" "살벌한데? 이기면 크게 한턱 쏴야해" 7년후, 난 드디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검사가 됬고 처음으로 재판장에 설 기회가 생겼다. "근데 무슨 사건이래요? 막, 살인 그런 심각한건 아니죠?" "심각할뻔했지, 조금만 넘어갔어도 살인죄였을걸?" "네? 무슨 사건인데요?" "피고인이 친구들과 모임자리에서 관계없는 한 가족의 아버지를 술병으로 내리친후, 깨진 술병으로 목을 여러차례 찔렀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찔러요? 왜요?" "그걸 밝혀내는게 징어씨가 할 일이잖아, 좀 까다로울 수도 있을거야" "아휴, 첫 재판부터 지면 진짜 체면 말이아닐텐데" "재수없는 소리, 말이 씨가된다? 징어씨 책상에 피고인 자료 뒀으니까, 일단 기본신상부터 파악해" 웃으면서 차근차근 말하는 여선배의 말에 네네, 짧은 대답을 하고 내 자리로 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진짜 내가 처음으로 재판장에 서는 구나. 설렘 반 두려움 반에 멍하니 허공만 주시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선배가 두고간 파일을 열었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도경수 : 860602-xxxxxxx. 살인미수 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