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도] 천개의 태양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e/8/5/e85776a2dc3999e8a33e4e89d5090ce2.gif)
*
아침이 되자 백현은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담배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항상 관계가 끝나면 그는 담배를 피웠다. 그런 그의 행동이 의아해서 언젠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랑 하는 게 그렇게 싫어? 나의 물음에 백현은 연기를 후, 뱉고는 담배를 비벼 껐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너는, 좋아? 그러면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럼 나도 좋아. 그의 표정은 늘 웃는 것도 아니고, 무표정도 아닌 그 중간이었다. 나도, 그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오래 된 연인들에게는 흔하고, 익숙한 일이었다. 관계가 변했다고 해서 딱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뭐 어쩌란 말인가. 그의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대화를 시도해볼까? 아니면, 헤어지자고 할까? 분명한 것은 둘 다 싫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백현은 글을 썼다. 그는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고, 그의 글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수많은 공모전에 글을 냈지만 상 하나 타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다음 번에는 잘 될 거라며 그를 다독여줬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던 그였지만, 나중에는 눈을 흘기며 부질없는 소리 말라고 화를 냈다. 그가 초조해서 그런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는 것도. 밤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소파에서 잠을 자면 그는 언제나 다시 내게 다가왔다. 난 항상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자는 척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귀에 속삭였다.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그러고 나면 항상 다음 일은 똑같았다. 내가 먼저 백현에게 입을 맞추고, 그리고 고 투 베드.
담배를 피우고 돌아 온 백현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 글 그만 쓸까?"
"……."
"말 하기 싫어?"
"……응."
"우리 되게 오래 만났지."
"응."
"우리 헤어질까?"
"……."
생각보다 놀라진 않았다. 마음속으로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백현이 이런 말을 할거라는 걸. 내가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젓자 백현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백현이었다. 경수야, 경수야. 그가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속으로 언제 마지막으로 그가 경수야, 하고 불렀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경수야. 생각났다. 몇 주일 전, 공모전에서 또 떨어져 술을 진탕 퍼먹고 그랬었다.
"경수야, 나 죽어."
"……사람은 원래 다 죽어."
백현은 원래 뜬금없는 말을 잘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다 그러나? 어쨌든 백현은 특히 방금 했던, '나 죽어.' 라는 말을 많이 했다. 처음 그가 그렇게 말했던 날,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며 물었다. 왜? 그런 나를 보고 백현은 웃음을 멈추질 못했다. 내 눈물을 닦아주며 사람은 원래 다 죽어, 하고 장난스럽게 말했던 그가 그때는 정말 원망스러웠는데. 나의 시큰둥한 대답에 백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허무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기운이 없어진 그가 좀 안타까워서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왜?"
"암이래."
"알았어."
백현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 가? 그의 물음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편의점, 콜라 먹고 싶어. 현관을 나서는 내게 백현은 소리쳤다. 난 사이다.
*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그렇게 직접적인 병 이름을 말한 적은 없었다. 늘 그가 피우던 담배가 떠올랐다. 집 근처에 있는 성당의 성모 마리아상은 신비롭게 웃고 있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망은 주변 모든 것들로 뻗어 나갔다. 마리아상을 손가락질하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래야만 했느냐고. 지금까지 나쁜 짓도 한 번도 안 하고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어. 난 매일매일을 거짓말로 살았는데……. 걔가 한 게 뭐가 있어? 집 안에서 글 쓴 거밖에 더 있어? 왜? 당신 정말 너무한거 알아……. 조각상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사이다는 사오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는 나에게 백현은 왜 사이다를 안 사왔느냐며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백현아, 백현아. 그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무심했는가? 우리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었다. 저녁이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이미 다 알고 있어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고, 가끔씩은 사랑한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는 그런 연인들이었다.
"백현아, 죽지 마."
"……사람은 결국 죽어."
"그래,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이번에도 역시 내가 먼저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추며,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건 얼마 만이었을까? 길고 긴 영원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백현은 정확히 육 개월 뒤에 죽었다.
*
경수는 항상 같은 기차를 탔고, 항상 같은 역에서 내렸다. 늘 이 역에 도착하면 배가 고팠다. 그는 역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에 물을 붓고, 뜨근한 면을 후루룩 삼키고 나서야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중얼거렸다. 또 와버렸어, 백현아.
백현의 무덤이 있는 곳은 언제나 계절에 상관없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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