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민석백현종인찬열준면] < 상실의 시대 > 3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72721/4c3ec88a02927b6e627f304c37ee42ca.jpg)
상실의 시대
w.MAYO
3화 「혼돈」
피곤한 낯으로 들어오는 제 주인을 홍 여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홍 여사의 표정변화를 느끼지 못했지만, 홍 여사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종인은 그 표정을 눈치챘다. 물론, 눈치만 챘을 뿐 홍 여사의 걱정이 덜어지도록 연기를 하진 않았다. 애초에, 연기라는 것 자체가 몸에 안 맞는 남자였으니까. 물론 요새 들어 그 안 맞는 옷을 자주 입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종인이 자켓을 벗으며 자연스레 줄의 맨 끝을 바라보았다. 없다. 그녀가. 거실의 끝까지 쭉 눈으로 훑은 종인의 눈썹 앞머리가 신경질적으로 구겨졌다.
"어딨어."
앞뒤를 다 잘라먹었어도 그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찾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어서, 홍 여사가 살짝 눈을 내리깔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에 계십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주인님 서재에서 마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소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제 식구들을 보며 홍 여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홍 여사를 내려다보던 종인이 대답 없이 제 서재가 있는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락의 의미였다. 홍 여사가 종인의 자켓을 직접 받아들곤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었다. 그 눈빛에 남,녀 할 것 없이 목이 더 움츠러들었고, 그런 사람들을 더 예민한 눈빛으로 훑곤 그들의 숙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서재 근처에 다다르니 홍 여사가 먼저 종인을 앞질러 문을 열었다. 낮이든 밤이든 늘 켜져 있는 듯 한 스텐드가 자연스레 방을 밝히고 있었고, 이 서재는 종인의 뜻에 따라 종인이 없을 때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도록 해놓은 곳으로, 이 집 안에서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홍 여사가 열어 준 문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선 종인이 그제야 넥타이를 푸르며 여기저기 서류가 널려있는 정리 안 된 제 책상에 엉덩이를 살짝 걸터앉았다. 그의 표정엔 궁금함과 피곤함, 그리고 귀찮음 등 아주 여러 가지가 공존했다. 홍 여사는 여전히 종인의 자켓을 손에 든 채 종인과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입을 뗐다.
"세 시간 전 쯤, 조금 소란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툭,툭 바닥을 발로 차던 종인의 눈이 예민하게 홍 여사의 얼굴을 훑었다. 이번엔 그는 홍 여사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지 못했다. 홍 여사는 서재에 은은하게 퍼진 노란빛의 조명처럼 차분한 눈빛으로 종인의 발끝 즈음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본가에서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지적 장애 아들을 둔, 김 여사라고. 주방에서 일하던."
"…"
"있었습니다. 본래 차분하고 일에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 제가 이곳에 올 때, 같이 데려왔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피곤하니 짧게 해주겠어."
종인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홍 여사가 입을 뗐다.
"낮에 김 여사가 다쳐 혼자 치료를 하고 있는데, 아가씨께서 보신 모양입니다. 아가씨는 늘 이 박사님께 치료를 받으시니, 당연히 이 박사님이 일하는 모든 사람을 다 치료를 해주시는 줄 아셨는지, 이 박사님에게 같이 가자며 잡아 끄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이곳 규칙상 아가씨와 말을 나누어서는 안 되니, 그런 모습을 저나, 주인님이나, 사람들에게 보일까 봐 아가씨께 강한 거부를 하는 과정에서."
"……"
"아가씨 손을 문 모양입니다."
"뭐?"
비스듬히 기대 서 있던 종인이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며 벌떡 일어섰다. 신경질적으로 한 톤 올라간 그의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물어?'하고 기가 찬 듯 바람이 센 목소리로 읊조리며 '허!'하고 혀를 찬 종인이 다시 책상에 두 손바닥을 짚고 기대어 섰다. 잠시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느리게 눈을 깜빡인 홍 여사가 더욱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갔을 땐 그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저를 보고 놀란 김 여사가 제가 들어오자마자 뛰쳐나가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대충 눈치챘지만, 아가씨께서 집 안의 분위기를 아셨는지 제게 다친 티를 내지 않으셔서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후에, 그때 제가 주방에 남았던 아가씨께 모든 사실을 들었을 거라 생각한 것인지, 김 여사가 먼저 제게 와서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정해놓으신 규칙에 따라 김 여사는 퇴가시켰으나, 그 과정을… 아가씨께서 보신 듯합니다. 그전에도 선의를 거절당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으셨는지 식사도 안 하셨지만, 김 여사의 퇴가 이후 아가씨 담당 경호실장님께 전해 들은 바로는…"
"………"
"한참을… 소리를 지르며 우시다, 잠드셨다고 합니다. 이 박사님 말로는 탈진…"
"잔다고."
"네. 이 박사님이…"
말을 잇는 홍 여사에게 다가가 홍 여사의 손에 들린 제 재킷을 휙 빼내 팔에 건 종인이 홍 여사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깨워."
"………"
"그리고 내 방으로 보내."
종인의 말에 할 말이 있는 듯 벙긋 입을 떼던 홍 여사가 숨을 고르곤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문을 열고 먼저 방을 나서던 종인이 문 중간에 걸터선 채 고개만 돌려 홍 여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무 네 사람처럼 대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지, 그렇게 존칭을 쓰라고 한 적은 없었어."
"……"
"아가씨께서, 뭐 뭐 하셨는지. 뭐 뭐 하셨습니다. 어디에 계십니다."
"네."
"이거 아니라고. 특히 걔 앞에선 그러지 말아줬으면 해."
"네 시정하겠습니다."
허리를 굽히며 이어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는 홍 여사를 잠시 바라보던 종인이 문을 잡은 손가락을 톡,톡 문을 두들기며 아래위로 훑다, 귀찮다는 손짓으로 방 밖에 서 있던 누군가에게 제 재킷을 휙 건넸다. 어둠 속에 서서 아무렇게나 던진 재킷을 쉽게 쥐어챈 남성은 여전히 종인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조용히 종인의 뒤를 따랐다. 정장을 입은 태가 날렵한 것에 비해 차가워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였다.
어두운 복도에 종인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군."
▼
종인이 방 문을 열자, 잘 정리된 종인의 책상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녀였다. 종인의 등장에 움찔 가는 어깨를 떨며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이 헬쑥하다 못해 퍼렇게 핏기가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홍 여사가 빠른 거야, 아님 네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그렇게 말하며 등 뒤로 문을 닫은 종인이 터벅터벅 그녀에게로 다가가다 흠칫 걸음을 뒤로 물렸다. 그리곤 언제 뒤로 물렸냐는 듯 그답지 않게 요란한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았다. 힘없이 손에 있던 것을 빼앗긴 그녀가 허공에 자리 없이 떠돌던 손을 힘없이 떨구곤 종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을 한 번, 그리고 이제는 제 손으로 넘어온 것을 한 번 바라본 종인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누가 남의 물건에 손대래."
"…어렸을 때 사진인가 봐요."
"……"
"옆에 두 명은, 친구?"
그녀의 목소리엔 딱히 어떠한 힘도 실려있지 않았지만, 어쩐지 조금 날이 선 듯 날카로웠다. "네가 알아서 뭐해?" 하고 뱉은 종인의 건방이 잔뜩 묻은 말투에도 그녀는 표정 변화 없이 종인이 탁하고 책상 위에 덮어 내려놓은 액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컸을 때 사진은 없는 거 보니, 지금은 안 친한가 봐요."
"…."
"그렇지, 당신 같은 사람이랑 누가 친구를 하겠어요."
그녀의 말에 종인이 "하, 참."하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한 올, 한 올 다시 제자리로 떨어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아줌마, 죽였어요?"
"무슨 아줌마."
"모르는 척하지 말고요."
그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던 종인이 홍 여사의 말을 떠올렸다. '그 과정을… 아가씨께서 보신 듯합니다'
…젠장.
"집으로 보낸 것뿐이야."
"당신 부하가 쌀자루처럼 그녀를 지고 나갔어요."
"반항을 했나 보지."
"반항한다고 그렇게 기절시켜서 내쫓아요?!"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문밖에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십니까?'하고 물어오는 경호원들의 신호였다. 문밖을 향해 "어, 괜찮아."하고 대답을 하는 종인의 옆 통수에 대고 그녀가 빈정거렸다.
"아주 왕자님 납셨구만."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종인의 표정이 어두웠다. 위협하듯 한발 다가온 종인이 그녀를 책상 가까이 몰며 으르렁대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끼니마다 밥 먹여, 옷 줘, 재워 줘."
"……"
"너, 대체 뭐가 불만이야."
그 낮은 목소리에 잠시 위협을 느낀 그녀가 작게 침을 삼켰다. 하지만 곧 언제 힘이 없었냐는 듯 또렷하게 눈을 뜨며 바로 서서 종인을 바라보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종인의 숨이 아주 옅게 그녀에게 닿았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떨리는 숨도 종인에게 닿고 있었다. 간지러울 만큼 얕게 떨리는 숨이었다.
"내가 묻는 거에, 다 답해줘요."
그녀의 숨결에 자연스레 그녀의 입술로 시선을 옮기던 종인이 그 입에서 터져 나온 당돌한 말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마저도 위협적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종인의 말에 그녀가 종인을 노려보며 등 뒤, 바지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휙 제 목에 가져다 댔다. 움찔 그것을 내려다본 종인의 눈이 더 험악해졌다. 바느질할 때 쓰는 끝이 날카로운 쪽가위였다. 종인의 눈이 빠르게 험악해졌지만, 그런 종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러면 죽어버릴 거니까."
그 말에 종인이 바로 손을 뻗자, 그녀가 빠르게 가위를 제 목 가까이 가져다 대며 "건들지 마요!"하고 소리쳤다. 그녀의 목에 아슬아슬 닿아있는 가위 끝을 보며 종인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곤 책상에 한쪽 손을 기대 비스듬히 서 있던 종인이 아주 느린 몸짓으로 천천히 책상에서 손을 떼고 바로 섰다. 팔짱을 끼고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눈은,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처럼 험악하진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런 종인을 바라보며 더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그녀가 삐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억이나 주고 산 물건, 폐기 처리되면 아깝지, 당신도?"
"궁금한 게 뭔데."
종인의 말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더 또렷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하…"
하나의 대답을 하자기엔 그녀의 질문 너무 범위가 넓자, 답답하다는 듯 종인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런 종인의 표정을 보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그녀가 조급해진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 전부다!!"
"……"
"날 대체 왜 데려온 거고, 집안사람들은 대체 왜 아무도 나랑 말도 안 하고, 왜 나만 밥 따로 먹고 왜, 왜 나만 그렇게 외롭게…"
"………"
"외롭게…"
울기 싫은 듯 그녀가 이를 악물며 눈에 힘을 주었다. "아니 애초에 나를 왜 여기에…"하고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그녀의 눈물은 결국 한데 뭉쳐 굵은 선을 그리며 카펫 위로 떨어졌다. 팔짱을 끼고 그것을 바라보던 종인이 한발 다가서자, 그녀가 움찔 뒤로 물러서며 가위를 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발밑에 있던 스텐드의 전원이 뽑히며 방 안이 금세 어둠에 휩싸인 것은. 움찔 놀란 그녀가 어둠속에서 휙 고개를 내려 발 밑을 바라보는 것이 종인의 눈에 실루엣으로 비춰 보였다. 갑작스런 어둠에 우왕좌왕하는 그녀와 달리 종인은 움찔거림도 없이 곧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밑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문득 드는 두렵다는 생각에 가위를 고쳐잡으며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움직임 없이 제 앞에 서 있는 종인을 바라보았다가, 바닥을 바라보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럼."
발밑을 흘끗거리면서도 두 손에 쥔 가위를 놓지 못하던 그녀는 종인의 낮은 목소리에 휙 고개를 들어 종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변함없는 실루엣이었다.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바로 반박을 하려고 입을 뗐던 그녀가 입술을 살짝 떼다 말았다. 종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빈정거림 없이 낮고 잔잔했기 때문에. 그녀의 빨간 눈이 도르륵 종인의 표정을 살피려 했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유난히 잘 보이는 책상 위 빛에 번쩍이는 흰 종이나, 캄캄한 발밑등을 이리저리 흘끗거리며 "그야…"하고 입을 떼는데, 종인이 그 말을 가로막고 대답했다.
"이게 내 최선이야."
여전히 잔잔했지만, 어쩐지 대화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듯한 단호한 말투였다. '최선?'하고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그녀가 금세 억울한 목소리로 "이건…!"하고 말을 떼며 반 발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때였다. 종인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곤 그 손에 들린 가위를 빼낸 것은. 경계는 하고 있었으나, 워낙 종인이 빠르고 강했던 터라 앗! 소리도 없이 가위를 뺏긴 그녀가 숨을 흡 들이마시며 뒤로 움찔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방문이 열리며 불이 켜졌다. 민석과 같은 배지를 달고 있는 남자 두 명이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언뜻 종인과 자신이 언쟁 중일 때 다시 그들이 방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답이 없으면 들어오는 것인가. 멍하니 잡힌 자신의 팔을 내려다 보고 나서야 그녀가 싫다고 소리 지르며 바둥거렸으나, 단단하게 잡힌 팔이 풀릴 리 없었다.
종인의 말을 기다리는 듯 남자 두 명이 그녀의 팔을 잡은 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좀, 놔요. 놔. 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그리고."하고 운을 떼는 종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넌 못 죽어."
..
"어떻게 몰래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보단,"
..
"어떻게 하면 내가 널 죽여줄까를 고민하는 게 더 빠를 거야."
▼
그 말을 듣고 질질 끌려 방 안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민석씨가 들어올 수 없는 화장실로 도망가 엉엉 울었다. 용기를 내서 간 것치고,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더 많은 절망을 한 집채 끌어안고 온 기분이었다. 그 앞에서 가위를 들고 설치긴 했으나 사실 난 죽을 용기가 없었다. 사실 그가 '찔러봐.'하고 말을 할까 봐 아주 많이 두려워했었는데, 정작 결과는 그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오다니.
이 집에서 내가 도망칠 시도를 딱 한 번 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정말, 단 한 번 더 도망갈 시엔 날 죽일 것만 같아서. 그거야말로 정말 개죽음일 것 같아서.
민석씨는 "아가씨."하며 자꾸만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문고리를 흔들진 않았다. 민석씨는 그들과 달리 내가 '괜찮다.'는 대답이 없어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내 방문이던, 화장실 문이던 모두 바깥쪽에서만 잠글 수 있게 되어있는걸 민석씨도 알 텐데, 그가 문고리를 돌려보지 않은 것은 그냥 나를 위한 배려일 것이 분명했다.
..
어떻게 침대로 와서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깨어나 보니 침대였다. 나는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내렸다. 아침이 되자 역시 민석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빈 꽃병에 눌린 흰 종이가 보였다. 나는 살짝 상체를 들어 올리다가 현기증에 다시 윽 소릴 내며 누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본 적 없는 종이에 깨질듯한 두통을 뒤로하고 얼른 다시 일어나 꽃 병을 치워냈다. 딱 두 번, 칼 같이 접힌 네모난 종이를 펼치자 반듯하게 접힌 종이와 달리 살짝 흘려 쓴듯한 글씨체로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서 멋대로 들어가 침대로 모시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 유난히 더 반듯하게 적으려는 듯한 글씨체로 <경호실장 민석>하고 적혀있었는데, '경호실장'이란 글씨가 '민석'에 비해 조금 더 위로 떨어져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쩌면 그가 <민석>을 썼다가 후에 <경호실장>을 앞에 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별로 볼 것은 없는 그 쪽지를 몇 분간,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똑똑하고 문을 두드렸다. 민석씨인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민석씨는 아침에 늘 바깥쪽에서 경호한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기에 나는 경계하는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바깥쪽의 사람은 똑똑. 하고 한 번 더 노크했다. 일단 홍 여사는 아니었다. 그녀는 노크를 한 번 하고, 대답이 없으면 '들어가겠습니다.'하고 들어왔으니까. 나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문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아주 살짝 문이 열렸다. 손 한 뼘쯤, 좁게 열렸던 문이 멈칫하고는 곧 활짝 열렸다. 나는 모습을 드러낸 이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자리나 복도에서나 몇 번 마주쳤던, 젊은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아주 어색한 얼굴로 꼿꼿이 앉아있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곤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와서 식사하시래요."
"…네?"
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살짝 몸을 앞으로 세우며 되물었다. 나의 행동에 그녀는 딸꾹질하듯 몸을 앞뒤로 두어번 움찔거리더니 녹음한 내용을 되풀이하듯 어색한 말투로 "내려와서…식사하시래요."하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날 대체 왜 데려온 거고, 집안사람들은 대체 왜 아무도 나랑 말도 안 하고, 왜 나만 밥 따로 먹고 왜, 왜 나만 그렇게 외롭게…'
'그럼'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이게 내 최선이야.'
그래서?
내가 후다닥 이불을 들치며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그녀에게 "잠시만요."하고 외쳤지만, 그녀는 분명 들었을 텐데도 문을 닫고 사라졌다. 조용한 복도에 그녀의 발 뒤꿈치가 일으키는 요란한 지진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도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쳤다.
▼▼▼▼
주인공들의 말 하나에, 독백 하나에 아주 많은 떡밥을 던지고 있습니다.
회수 다 하려면 최소 50편은 연재해야 할 듯.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제가 어휘력이 달리네요
심각한 내용에 비해 필력이 개1똥이라 별로 안 심각해 보이겠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은 오 심각한 내용이구나 하고 읽어주세요
그래도 제가 필력이 개1똥인 덕분에 어려운 단어들은 한 개도 없으니 다행이죠?
그래도 이해 못 하신 부분은 댓글로 적어주세요. 스포를 하지 않는 한에 있어 설명해드립니다.
제 달리는 필력 때문에 생긴 일은 제가 어떻게서든 책임지고 이해시켜드리는 쩌는 에프터 서비스.
자, 뜬금없지만 퀴즈.
이번 편에 새로 등장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답을 맞히시면 선물로 저를 드립니다.
반품 안 됨.
암호닉
[메로나]님, [아주]님, [봄]님, [다모]님, [1600]님, [제인]님, [24]님, [.]님, [두비두밥]님,
[김시우민석아결혼하자]님, [궁금이]님, [두비두밥]님, [김까닥]님, [세우니]님, [도장]님, [심쫄이]님,
[깨진계란]님, [새슬]님, [손가락]님, [몽백]님, [뀨]님, [백현이워더]님, [명탐정코코]님, [백야]님,
[♡]님, [소녀]님, [118]님, [0324]님, [콜라]님, [파랑]님, [체블]님, [복동]님, [복숭아]님,
[차차]님, [뚜뚜 복숭]님, [삐약이]님, [은하]님, [보리]님
감사합니다.
근데 숫자로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은 각각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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