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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 한손에는 책 한손에는 수저를 들고 밥을 꾸역 꾸역 넘기다가, 억지로 먹은게 탈인지 사래에 걸려 버렸다. 평소와 같이 기침을 해대며 이승현에게 물 좀 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몇번이나 크게 소리를 질러 이제 들릴 법도 한대, 이승현은 대답도 미동도 없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음료수를 가져다 반을 통채로 마시고, 이승현이 누워서 티비를 시청하고 있을 쇼파로 갔다. 귀 먹었냐고 소리를 지르려던 찰라에 쓸쓸하게 남겨진 리모콘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맞다. 이승현은 없다. 갑자기 밀려드는 공허함에 마시던 음료수를 가지고 와 쇼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평소 이승현이 잘 하던 짓이였다. 뭐 하고 있냐고 물으면 티비를 보고 있다곤 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할 일 없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상자를 보고 있는건지 평소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제 이승현이 없으니 주인이 없어진 리모콘이 처량하게 보여, 감정없이 티비 채녈을 바꿨다. 평소 티비 보기를 좋아하던 이승현이 있었더라면, 뭐가 재밌고 뭐가 재밌다며 쫑알거리면서 설명을 해 줬을 텐데. 아쉽게도 이승현이 있을때 난 이승현의 취미를 맞춰줄 수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한참을 티비 채녈을 바꾸다 난 문득 알아차렸다. 이승현은 티비를 보고 있던게 아니라 바쁘게 일만 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라고. 왜 뒤늦게야 알게됬냐고 묻는다면 난 변명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바쁘게 일만 하고, 이승현을 신경도 쓰지 않았던건 분명 맞았으니깐. 언젠가 서재에 앉아 책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나에게 이승현이 볼맨 소리로 항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형은 나를 사랑하긴 해요?] [갑자기 왠 뚱딴지 같은 소리야. 공부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형은 늘 바쁘니깐…. 나도 아는데, 그래도 주말에는 나랑 놀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말했잖아. 주말에도 바쁠 거라고.] [이해를 못하는게 아니라….] [알겠어. 바쁘니깐 내일 얘기해.] 뒤늦게야 생각난 이승현의 서운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후회한들 어쩌리, 이승현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인정한 꼴이 우스워져 실소를 터트렸다. 얼마 전까지는 이승현의 물건만 봐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허공에 대고 소리를 버럭 버럭 질러댄 주제에.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바로 인정해 버리는 내 꼴이 참 우스웠다. 결국은 지속되지 못할, 그저 어린날의 환상같은 사랑이였을까. 한참을 쇼파에 쭈그려 앉아 뒤늦은 후회를 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친구녀석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이제 진짜 겨울임을 광고하듯 어지럽게 흩날리는 하얀 잔해가 내 어리석음을 소용없이 채찍질 하고 있었다. 멍하니 창문을 두드리는 눈발을 바라만 보다가, 문을 살짝 열자 투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눈을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언젠가 여름날에 이승현이 더위를 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번년도의 첫눈을 같이 보자고 했었는데. 환하게 웃으며 약속하던 지난 날들이 생각이 나,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왜 했니, 승현아. 결국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너는 왜 한건데. 어느새 내 손의 온기에 녹아버린 ― 이제는 그저 액체에 지나치지만 ― 눈을 다시 매만져봤다. 바람에 흩날렸던 눈이라는 사실이 애석하게 완전히 녹아버려 형태를 잃어버렸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결정체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거다. 내가 이승현을 가슴속에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 것 처럼. 멀리에 있는 이승현도 지금쯤 바라보고 있을 아름다운 눈발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난 그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었다. |
감정 기복이 심한 탓이라 어느 날에는 미친듯이 달달을 썻다가, 다시 호구처럼 새드를 쓰는 제 손.
몇백번 우려먹는 비쥐엠이지만 오늘따라 겁나 아련터지네요.
고기를 너무 배터지게 먹어서 그런가? 무튼 다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