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음을 한 다음날은 항상 후회하곤 한다.
다음부터 내가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그 다짐은 번번히 깨지고 말지. 다짐이라고 할 수 도 없다.
집에 무슨 정신으로 들어왔는지 기억도 안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미쳤어. 몇시간을 잔건지
휴대폰을 보니 아랑이한테 부재중이 와있었다.
“야 어제 나 어떻게 들어갔냐”
[ 미친, 어제 우리 둘 다 거기 엎어져서 자다가 호프집 알바가 깨우더라. ]
“뭐야. 니가 나 집까지 데려다 줬어?”
[ 내가 니를 어떻게 드냐. 니 무게를 생각해. 어제 민윤기 왔잖아 ]
민윤기가 왔다니. 그게 무슨소리야. 민윤기는 군대에 있는데.
분명히 윤기는 아직 군인이다. 물론 제대가 얼마 안남았긴 하지만..
[ 야. 미친년아. 넌 민윤기 제대한 것도 몰랐냐? 어제 제대했다잖아. 니가 연락한 거 아니였어? ]
무슨소리야. 민윤기한테 연락한적도 온적도 없었는데.
아랑이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다음에 또 술먹자는 말과 함께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다시 너랑 술을 먹으면 사람이 아냐. 조아랑. 이라고 혼잣말을 하고.
대체 민윤기가 언제 제대를 한것이며, 어제는 어떻게 나를 데리러 호프집에 온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바로 휴대폰을 켜 민윤기한테 전화를 걸자 방금까지 잔건지 잠긴 민윤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남자의 자다 일어난 잠긴 목소리는 섹시하지 않나?
다음번엔 조아랑과 그 주제로 술을 마셔야겠다.
[ 여보세요. ]
“ 야 민윤기!! 니 제대했다며, 왜 말 안했어? 그리고 어제는 어떻게 찾아 온거야? ”
[ 으. 시끄러 - ]
흥분해서 다다닥 내뱉는 나와 상반되게 침착한 민윤기는 고작 시끄럽다는 말을 내뱉고 있다. 망할놈. 민윤기가 날 좋아하긴 무슨. 역시 조아랑의 헛소리였다.
그 기집애는 술 만 먹으면 헛소리를 해대니까 믿을 수 가 있어야지.
[ 어제 제대했어. 니는 어떻게 된게 친구 제대일도 모르냐? 내가 미리 말했었잖아 몇 주전에. ]
“그랬나. 몇 주전에 말하면 내가 어떻게 기억하냐? 몇일 전에 말해도 모지랄 판에 - ”
[ 다이어리에 윤기 제대일 이런거 안적냐? 됬다 됬어, 내가 니한테 뭘 기대하냐 ]
정말 기대도 안했다는 듯한 침착한 민윤기의 목소리에 괜시리 미안해 진다.
“ 미안해. 요즘 좀 정신이 없어서. 그나저나 어제는 어떻게 왔어? 내가 또 취해서 전화걸었나.”
[ 어제는. 몰라도 돼 넌 . 니 다시는 조아랑이랑 둘이 술먹지 마라. 진짜 죽인다 ]
대체 어제 내가 어땠길래. 살벌한 민윤기의 목소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민윤기 집에 찾아가야지.
우리는 둘 다 대구에서 서울로 학교를 왔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자취를 하고 있고
물론 민윤기와 나의 자취방은 약 5분 정도의 거리다. 지금은 방학이기 때문에 바로 대구로 내려가도 될텐데 민윤기는 부모님이 보고싶지도 않은지 바로 서울 자취방으로 왔다.
나는 4학년 취준생이 되기 때문에, 자격증 공부에, 토익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할 게 많이 남아 서울에 남아있다. 물론 꼬박꼬박 내는 월세도 아깝고. 대구에 가봤자 더워 죽을 텐데.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가야 되기 때문에 낮에 민윤기를 만나야한다.
움직여 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었다.
안씻고 그냥 윤기네 집에 갈까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민윤기인데 예의는 지켜야할 거 같아서. 물론 어제 내 몰골을 봤겠지만.
머리를 감고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했다. 어차피 저녁에 카페아르바이트를 가기 때문에.
늘 봐왔던 민윤기인데. 어제 아랑이의 말 때문인지 몰라도 괜히 신경쓰이는건 뭐야.
나름 평소보다 신경써서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입고 윤기네 집으로 향했다.
분명 귀찮아서 아직 침대에 누워있을 거다. 민윤기는.
민윤기네 자취방 비밀번호는 내 자취방 비밀번호와 똑같다.
하도 자주 깜빡거리는 민윤기 때문에 내가 그냥 내생일로 설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민윤기는 믿기지 않게도 나보다 깔끔한 성격인 것 같다. 자취방이 항상 깨끗하다.
(그렇다고 내 자취방이 그렇게 막 더럽다는 것은 아님.)
문을 열자마자 바로보이는 침대에는 역시 민윤기가 누워있다.
아까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잠든건지 손목으로 눈을 가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 민윤기라 그런지 괜히 반가워 민윤기의 침대로 올라가 민윤기를 흔들었다.
자는 줄 만 알았던 민윤기가 눈을 가린 손목을 들어 내 양 손을 잡는다.
“뭐야. 이 돼지는. 무거워 내려가”
무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민윤기.
저렇게 밑에서 보면 완전 못생겼는데. 망할.
내려가라면서 내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 윤기 때문에 끙끙대면서 몸을 비틀자
특유의 표정으로 웃는 민윤기. 저 표정도 겁나 오랜만이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와서도 친구들이나 동기들은 민윤기의 저 표정을 설렌다고 했다.
뭔가 우쭈쭈 - 해주는 표정이라고. 근데 하도 표정이 없는 놈이라서 그 표정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한텐 그냥 한심해하는 표정같은데.
“ 아 그렇게 올려보니까 못생겼지 ! 빨리 놔라 내려가게. 나도 나 무거운거 알거든-”
“ 싫어. 우리 돼지 못 본사이에 살쪘네. 턱살봐. 니 그러다 턱 없어지는거 아니냐 ”
결국 나한테 한 대 맞고 아프다고 징징대는 민윤기.
일어나서 아무것도 안먹고 씻고 바로 민윤기 집에 달려왔기 때문에
배가 고팠던 나는 빨리 밥먹으러 가자고 재촉했고 민윤기는 씻고오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온 민윤기는 군대에서 타지도 않았는지 여전히 피부가 뽀얗다.
군에서 운동했는지 몸은 더 단단해 진거 같고. 어깨는 더 넓어진 거 같기도 하고.
“뭘 보냐. 돼지야.”
저 망할자식. 내가 이번 여름에 살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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