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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국방부의 시계를 잘 흘러가고 있었다. 제대까지 앞으로 2. 세훈은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며 달라진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개인 정비 시간을 보내며 자격증 책을 꺼내들었는데 갑자기 생활관 문이 열렸다.

오세훈 병장. 잠깐 따라 오도록.”

세훈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이상하리만큼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머니랑 단 둘이 산다고 했지?”

.”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전해야할 것 같다. 어머니가 오늘 사망하셨다고 한다. 생활관으로 돌아가 외박 나갈 준비하도록.”

세훈은 지금 이 말이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까지 정성스레 쓴 편지를 보내며 아들의 안부를 묻던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했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노릇이었다.

? 소대장님 저는 9소대 오세훈 병장입니다. 혹시 12소대 오세훈 이병과 착각하신 것 아니십니까? 저는 며칠 전까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오세훈 병장. 얼른 외박 준비하도록.”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어머니가 죽고 벌써 5일이 지났다. 어떠한 것도 변함이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달라질 세상도 아니었지만 실망스러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을 내비치는 세상이 죽도록 원망스러웠다. 이런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세훈은 화가나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얼마나 못 미더운 아들이었으면 자신을 등지고 저 멀리로 떠나버렸는지. 어머니의 믿기 어려운 선택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안겨다주었는지. 얼마나 많은 불행을 몰고 왔는지. 세훈은 깊은 수렁에 빠진 채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책망하기에 급급했다.

 

chart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준면 앞에 따끈한 종이컵이 놓였다. 세훈이 사복을 입고 웃으며 서 있었다. 준면은 세훈을 힐끔 쳐다보다가 웃고 있는 세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훈은 그 모습에 다시금 움츠러들었다.

선배. 인사하려고 왔어요. 저 오늘 퇴원해요.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커피 가져왔는데, 선배는 자판기 커피 싫어하시나 봐요.”

벌써 퇴원이라니 빠르지 않아?”

아니에요. 저 멀쩡해요. 보세요. 열도 안 나고, 얼굴도 까매졌죠?”

준면은 세훈의 너스레에 풋하고 웃어버렸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까매졌다고 이야기 하는 세훈의 너스레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준면은 자리에서 일어나 센터 밖 벤치로 세훈을 이끌었다.

와 오늘은 날씨가 생각보다 안 춥네요.”

그러게. 오늘은 좀 따뜻하네.”

선배. 하실 말씀 있으면 하세요.”

?”

하실 말씀 있으셔서 이렇게 조용한 곳까지 데리고 나오신 거잖아요. 그 정도 눈치는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준면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세훈을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좀 더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작정 끌고 나온 것이었다.

아 뭐 어머니랑은 잘 계시지? 어머니는 왜 병원에 한 번도 안 들르시는 거야?”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몇 해 전에. 그러고 보면 선배랑 저랑 닮은 점이 참 많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세훈을 보며 준면은 놀란 기색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핀잔의 말을 내뱉었다.

이런 거 닮아서 뭐해. 그럼 퇴원하고 어디로 가는 거야? 혼자 사는 거야?”

혼자는 아니고 그 때 저 업고 왔던 친구 기억 하세요? 걔네 집에 얹혀살아요.”

아 그럼 그 친구네 집으로 가는 거야?”

. 선배는 병원에서 아예 사시는 거에요?”

아니. 병원 앞 사거리에 있는 오피스텔 401. 거기 살아.”

. 딱 봐도 되게 비싸 보이던데.”

비싸봤자 집이지. 그나저나 너 몸 관리 잘해라. 이유가 어찌되었든 너 계속 그 몸 방치하고 살다가는 이승 밥 더는 못 먹는 수가 있다.”

선배도 그런 말 할 줄 아세요? 저는 그런 말은 종인이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해요.”

네가 너무 계집애 같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보지?”

제가요? 남자 형제가 없어서 그런 걸 거에요. 게다가 제가 생각보다 친구도 많이 없어서... 그래도 알고 보면 저 완전 상남자에요.”

신기하다는 세훈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에 발끈한 준면의 말에 세훈 역시 발끈하며 말을 이어갔다.

선배. 저 이제 가볼게요.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 아쉬우니까 악수 정도는 괜찮죠?”

사내새끼들끼리 어색하게 악수는 무슨. 됐어. 약 잘 먹고 빨리 낫기나 해. 또 실려 오지 말고.”

세훈이 내민 새하얀 손을 보고 있자니 준면은 괜한 심술이 났다. 정말 이 손을 잡으면 앞으로 영원히 세훈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나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지 않았다. 일부러 외면해버렸다.

 

하루가 48시간 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병원으로 찾아드는 환자마다 제각기의 사연이 존재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안타깝기보다 짜증스러운 날이 딱 오늘 같은 날이다. 아침부터 여자아이가 센터로 날아들었다. 온몸 이곳저곳에 멍이 들어있었고 사진만 봐도 복강 내 출혈이 의심될 정도의 최악의 상태였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아이를 두고 수술을 거부하는 보호자와의 날카로운 신경전을 치러야했고, 쓸데없는 소모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짜증도 났다. 아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야 준면은 오늘 같은 날은 꼭 집에 돌아가 쉬어야겠다는 결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 앞에 서자 복도의 천장 센서가 인기척을 감지하고 불을 밝혔다. 준면은 자신의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세훈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친한 사람의 안부를 묻듯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걸었다. 세훈도 준면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어 준면을 올려다봤다.

야 너 뭐야. 너 왜 여기에 있어? 여길 어떻게 안 거야?”

선배. 하나씩 물어봐요. 저는 오세훈이고, 여긴 걸어서 왔고, 선배가 저 퇴원하던 날 여기 산다고 알려주셨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뭐한 거냐고. 설마 나 기다린 건 아닐 테고.”

? 저 지금까지 선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갈까요?”

아니 그러니까 왜 나를 기다리냐고!”

선배. 근데요. 저 지금 너무 추운데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준면은 얼떨결에 세훈을 자신의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와 선배 진짜 깔끔하네요. 완전 새 집 같아요.”

세훈의 반응이 어쩌면 당연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이 집에 와서 잔 날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매일 의국에서만 새우잠을 자는 게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집에 오는 게 사치라고 느껴졌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세훈은 준면에게 건네 받은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았다. 준면도 마주 앉아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치고 세훈을 다그쳐묻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기다린 거야?”

손가락으로 3을 펼쳐 보이는 세훈을 보자 준면은 점점 더 인상이 굳어갔다.

? 3시간?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3시간 전부터 기다려 기다리길.”

세훈이 고개를 저으며 준면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아니요. 3일이요. 3일 전부터 선배 기다렸어요.”

? 3시간이라고 해도 황당해죽겠는데, 너 지금 3일이라고 했어? ! 오세훈. 너 미쳤어? 용건이 있으면 병원으로 찾아오면 되지. 너 뇌가 없냐?”

병원은 선배가 일하는 곳이잖아요. 저는 더 이상 환자도 아닌데. 병원에 찾아가 귀찮게 하는 건 너무 앞뒤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3일씩이나 밖에서 기다리는 지금의 네 행동은 앞뒤가 있는 행동이고?”

선배. 그렇게 화내니까 저 여기서 나가야 될 것 같잖아요. 선배 말대로 3일씩이나 기다렸는데 오늘 하루만 재워주세요. 얌전히 굴게요. ?”

? 대체 왜? 그 친군가 하는 놈팽이랑 싸웠어? 그럼 화해를 해야지 대체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온 건데.”

그러게요. 화해를 하면 되는데. 그래서 저 나가요? 나가야 해요?”

준면은 막무가내인 세훈을 어찌할 수 없어 일단은 세훈이 해달라는대로 해주기로 했다.

네가 침대에서 자. 내가 소파에서 잘 테니까.”

에이 선배! 침대가 이렇게나 넓은데, 같이 자요.”

. 징그러운 소리 해댈 거면 당장 꺼져.”

아 알겠어요. 항복! 그럼 제가 손님이니까 소파에서 잘게요.”

네가 환자니까 침대에서 자. 그만 끝. 더 이상의 소모전은 사양이야. 너 아니라도 오늘 하루가 충분히 길었으니까 그만하고 얼른 자.”

준면은 세훈이 더 이상의 고집을 피울 수 없도록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대체 왜 이렇게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걸까. 준면은 화가 나는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눈을 감았다. 어느새 세훈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은 세훈에게 묻고 싶은 것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왜 제대로 입을 뗄 수가 없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자 준면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득 방 안에서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는 세훈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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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작가님 완전 취향 저격이에요ㅠㅠㅠ 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 받으시면 신청하고 싶은데ㅠㅠㅠ이게 무슨 흔한 이야기 입니까!!!!!!!!!! 절저절절대 흔하지 않아용 둘의 케미가 제 머릿속에서도 막막 포텐이 터지네용ㅎㅎㅎ 신알누르고 가용
8년 전
유즈드
감사합니다. 더욱 열쓰할게요. 암호닉 알려주세훈^^
8년 전
독자2
[로봇]으로 신청할께요ㅜㅜㅜ
8년 전
독자3
저도 암호닉 신청할래요!!![ㅈㅎ]입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8년 전
독자4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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