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BGM ~ 봄을 노래하다 - 40
" 다시 말해 봐. "
쉽게 열리지 않던 전정국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전정국의 큰 눈을 마주하고 얼마나 흘렀을까 큰 돌멩이로 머리를 쿵 내려친 것처럼 멍해졌다. 정말 머리에 큰 타격이라도 온 것처럼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더듬었다. 그리고 무엇이 현실인지 깨닫고 그것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전정국이 또렷하게 보였다. 전정국보다도 커졌을 것 같은 눈이 지금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한 건지, 전정국의 눈이 순간 살갑게 접힌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 아니, 그러니까… 그게… "
" 진짜. "
" 아니, 나, 진짜 그게 아니라… "
" 좋아해? "
좋아한다는 말이 사람을 어찌나 간지럽게 만드는지 얼굴이 화끈거려 횡설수설 하다가도 좋아한다는 말만 귀로 들어가면 사고회로가 정지된다.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다. 부끄러워 숙였던 고개를 슬며시 올리면 전정국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전정국의 답이 어떻든 간에 부끄러운 게 현실이었고, 그 현실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건 전정국이 아니라 나였다.
전정국이 큰 손을 내 머리에 올렸다. 부드럽게,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괜찮다,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아서 전정국과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전정국이 웃고 있었다. 진한 립스틱으로 칠한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있는 게, 좋으면서도 우스꽝스러워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웃고 있던 전정국이 손을 내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팔을 뻗어 나를 당겼다.
" 잠시만… "
전정국의 품에 안긴 건 순식간이었다. 머리 위로 전정국의 얼굴이 닿았다. 등을 감싼 전정국의 팔이 따뜻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민망해진 손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좋아하는 감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큰 감정에 심장이 저려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기는 기분은, 전정국에게 안기는 기분은 생각보다도 너무 감동적이라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대답할까. "
이미 온몸으로 대답을 표현해 놓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은 건지 전정국이 넌지시 물어온다. 머리 바로 위에서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전정국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대답을 들어도 되는 걸까,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구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어딘가가 콱 메여 있는 것이 시원하지 않았다. 좋아한다, 말을 한 것도, 바라던대로 먼저 다가간 것도 나였는데 이상하게 속이 답답했다. 그리고 그게 윤기 오빠 때문이라는 건 몇 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무 대답 없는 나를 전정국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여전히 내 머리 위에는 전정국의 얼굴이 있었고, 내 등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멈춰 있던 손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전정국의 허리를 감쌌다. 전정국이 움찔하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나, 내 손길에 너도 놀라고, 떨리는구나.
" 아직. "
" ……. "
" 나중에 들을래. "
전정국의 허리를 조금 세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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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오늘은 술 안 마신다? 왜 안 마셔? "
수정이의 물음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기분이 너어무 좋아서 이 좋은 기분을 고작 술따위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고는 절대 못 말한다. 눈치 빠른 수정이는 지금 내 상황을 금방 알아차릴 게 뻔하니까, 수정이가 모르는 비밀 정도는 남겨두고 싶었다. 물론 모든 게 수정이 덕이었지만, 지금 내 감정은 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었다.
수정이는 그 이상으로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미 따라놓은 소주 한 잔을 혼자서 들이키는데 오늘은 술이 잘 들어간다며 쭉쭉 마시려는 걸 옆에서 태형이가 말린다. 여자애가 뭐 그렇게 조심성이 없냐며 타박하는 모습이 꼭 수정이 남자친구 같아 턱을 괴고 의심스런 눈빛을 보내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나를 보고는 바보처럼 실실 웃는다.
" 여기 있었네. "
익숙한 목소리가 내 옆을 차지했다. 윤기 오빠. 고개만 끄덕이고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윤기 오빠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받고, 곧바로 전정국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내가 어떻게 윤기 오빠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엄청난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는 내 앞에 놓인 잔만 만지작거렸다. 곧 시작할 술게임을 준비하는 듯 태형이가 맞은편에서 몸을 푸는 게 보였다. 마주친 눈에 어색하게 웃어 보이니 태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 전정국은? "
눈이 잠시 커졌던 것 같다. 왜 그걸 나한테 묻지? 괜한 것에 뜨끔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잔을 만지작대던 손을 멈칫하는데 나한테만 하는 질문이 아니었던지 제 옆에 앉아 있는 수정이를 툭 치고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 고백한 걸 티내는 것도 아니고, 민망한 마음에 다시 잔을 들고 윤기 오빠의 눈치를 보았다. 곁눈질로 본 윤기 오빠는.
나를 보고 있었다.
마주친 두 눈이 어두웠다. 눈빛뿐만이 아니라 어두운 낯빛에 당황스러웠다. 혹시 눈치 챈 걸까,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멈춰 있는데 윤기 오빠가 먼저 눈을 내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잔을 내쪽으로 미는 게 술을 달라는 것 같아 새 소주를 찾아 열어 따르려 하는데 큰 손이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소주를 낚아채간다.
전정국.
전정국이 윤기 오빠의 잔에 소주를 채워넣고 내 옆자리를 차지한다. 왼쪽엔 전정국, 오른쪽엔 민윤기. 한쪽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 한쪽은 내가 좋아하는 오빠였지만 불편한 자리임은 분명했다. 화장실이라도 가는 척 하며 자리를 벗어나야겠다 싶어 몸을 살짝 일으키는데 전정국이 따라 준 술잔을 잡아, 전정국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단번에 들이킨 윤기 오빠의 손이 내 팔을 잡아 앉혔다. 덩달아 전정국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역시나 불편한 분위기에 양 옆을 힐끗 보다가 시선 둘 곳이 없다는 판단 하에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술잔을 비워져 있었다.
" 야 게임해야지, 게임. 윤기 형 하러 오신 거 맞죠? "
태형이의 물음에 윤기 오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긋지긋한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태형이의 주도 하에 게임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틀리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누가 그랬던가.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술을 앞에 두고 술게임을 해야 한다고. 한층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여럿 동기들의 얼굴이 빨개졌고, 동기들의 표적이 되지 않았던 나는 비교적 얼굴이 하얀 편이었다. 중요한 건.
내 양 옆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였다.
" 야. "
둘의 주사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한 사람의 주사가 좋을 리가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윤기 오빠였고, 처음에 나를 부른 것인가 고개를 돌려 윤기 오빠를 보았지만, 잔뜩 풀린 눈은 내가 아닌 전정국을 보고 있었다. 꽤 많이 마신 전정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역시나 똑같이 풀린 눈으로 고개를 돌려 윤기 오빠를 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이제 슬슬 피해도 되겠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는데 윤기 오빠의 특기는 농구 다음으로 집착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내 팔을 꼭 붙잡고 나를 다시 앉힌다. 그리고 또 덩달아 전정국이 내 팔을 잡는다.
" 야. "
" 아, 왜요. "
" 그거 놔. "
" 형이나 놓으시죠. "
뭘로 실랑이를 하나 했더니, 내 팔이다. 고작 실랑이를 하려는 게 내 팔이다. 내 팔을 놓니, 마니 나를 사이에 두고, 여전히 내 팔은 꼭 붙잡은 채로 여러 말을 주고 받았다. 겨우 놓으라 마라 하는 대화에 한숨을 푹 쉬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맞은편에 앉아 얼굴이 빨개져 웃고 있는 수정이를 최대한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 좀 봐 줘, 수정아. 나 좀 구해 줘.
그런 내 눈빛이 닿았는지, 수정이가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나와 눈을 딱 마주쳤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팔이 붙잡힌 나를 보고는 태형이 어깨를 두드려 나를 가리킨다. 그리고는 둘이 웃는데. 내가 동물원에 있는 원숭인 줄 알았다. 내가 너네한테 뭘 바라니.
" 아, 놓으라고, 좀. "
" 형이나 놓으시라고요. 이거 제 거예요. "
" 그게 왜 네 거냐. 네가 샀어? 샀냐고. "
" 얘 저 좋아해요. "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뻔 했다. 조잘조잘 잘도 움직이던 윤기 오빠의 입이 싹 다물어졌다. 시한폭탄 같았다. 전정국도, 윤기 오빠도. 금방이라도 전정국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윤기 오빠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소주잔 끝을 만지작대다 혼자 소주를 따라 순식간에 들이킨다. 그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여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왼쪽에 앉아 있는 전정국이 얄미웠다.
소주 두 잔을 그렇게 비운 윤기 오빠의 입이 그제서야 열렸다.
" 그게 뭐. "
" ……. "
" 내가 얘 좋아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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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술 좀 깼어요? "
한바탕 게워낸 윤기 오빠가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나왔다. 속도 속이지만 머리가 아프다며 찬바람이라도 쐬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움직인 윤기 오빠가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다. 전정국은 눈을 감은지 오래였다. 윤기 오빠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 어느샌가 불이 붙어서는, 흔히 말하는 다이다이를 뜨게 된 둘 중 승자는 윤기 오빠였다. 다음날 일어나 지금의 윤기 오빠처럼 속을 게워낼지도 모르는 전정국을 위해 들어가는 길에 숙취해소제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옆에서 머리를 짚으며 겨우 몇십 미터 거리에 농구 코트가 보이는 곳에 있는 바위에 털썩 앉는 윤기 오빠에게 물었다.
" 술은 깼는데 속이 아프다. "
" 여명이라도 사와요? "
윤기 오빠가 고개를 저었다. 숙취해소제가 듣는 스타일이 아니란다. 걸어올 때처럼 배를 부여잡고는 끙끙대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윤기 오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던 윤기 오빠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땀을 흘려 축축해진 이마도 뜨거웠고, 윤기 오빠의 눈빛도, 뜨거웠다.
" 희망고문이야? "
사뭇 진지해진 윤기 오빠가 질문 아닌 질문을 뱉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얹었던 손을 떼었다. 윤기 오빠가 제 땀이 묻은 내 손을 붙잡고 제 옷에 닦아내었다. 어쩐지 스스로 거리를 두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땀을 닦아낸 후에도 윤기 오빠는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윤기 오빠의 분홍빛 머리통이 보였다. 쓰다듬고 싶었지만, 쓰다듬을 수 없었다. 붙잡히지 않은 손이 움찔거렸다.
윤기 오빠는 애써 시선을 떼어낸 후에 손을 놓아 주었다. 떨어지지 않는 것을 굳이 떼어내는 것처럼 윤기 오빠의 손이 아쉽게 떠났다. 여전히 윤기 오빠의 머리통밖에 보이지 않았다. 두 손을 바위에 올려놓은 채 몸을 기댄 윤기 오빠는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윤기 오빠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게 어쩐지 낯설어 또다시 손이 움찔거렸다. 이어서 윤기 오빠의 어깨가, 분홍빛 머리통이 조금씩 떨려왔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젖는 것만 같았다. 내 앞에서 애써 그렇지 않은 척 코를 훌쩍이며 주먹을 쥐고 있는 그를 안아 줄 수 없었다. 희망고문이냐는 그 질문과 동시에 받았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상처받은 것을 보듬어 줄 수 없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던가. 위로해 줄 수도 없는 처지에 바짓자락만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난 이런 상황에서도, 전정국이 떠올랐다.
" 들어가. "
잔뜩 젖어있는 목소리가 말했다. 들어가라고.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의 깊이를 알지도 못하는 내가 감히 위로할 수도 없었고, 내 처지에 그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발을 움직였다. 들어가라는 그 말이 정말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르고 싶었다. 그게 진짜 들어가라는 의미였든, 그게 아니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모르고 싶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발은 숙소 입구에서 멈췄다. 미안했다. 겨우 내가 그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게, 겨우 내가 그 사람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흔들었다는 게 정말이지 너무도 미안했다. 다시 돌아갈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예전의 나였다면 자신이 없는 그 상태로 발을 다시 움직였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몸을 돌렸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윤기 오빠에게로 달려갔다. 윤기 오빠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었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막상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힐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입은 쉽게 열렸다.
" 미안해요. "
" ……. "
" 정말 많이 미안해요. "
미동도 없었다. 아까처럼 코를 훌쩍이지도, 주먹을 떨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듣고 있을 거란 자신감은 또 어디서 나왔는지, 말이 술술 나오는데, 그동안 마음 속에 꼭 묵혀 두었던 생각이 그제서야 정리된 상태로 입을 통해 나오는 것 같아,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속이 후련했다.
" 저 전정국 좋아해요. "
" ……. "
" 생각보다 오래 좋아했는데,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멍청하게 마음이 썩어가는 걸 보고만 있더라고요. "
" ……. "
" 짝사랑도 오래 했고, 그래서 마음 고생도 심했고, 또 그래서 오빠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그렇다고 함부로 오빠 마음의 깊이를 재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오빠가 얼마나… 힘든지, 그건 알 것 같아요. 내가 그랬으니까. "
" ……. "
" 오빠가 저 좋아해 주는 거 기뻐요. 오빠가 챙겨 주는 것도 좋았고, 또… 아무튼 오빠 같은 사람이 저한테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
" ……. "
" 아마 전정국 없었으면 오빠를 좋아하게 됐을 것 같아요. 그만큼 오빠,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에요. "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목이 메여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서, 또 그게 윤기 오빠에게 닿으면 바보처럼 나를 위로해 줄 것 같아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윤기 오빠의 머리통이 조금씩 흔들리다, 이어 얼굴이 보였다. 나를 올려다 본 윤기 오빠의 눈동자 속의 나는 어땠을까. 서글퍼 보이는 눈이 나를 향했고,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술냄새가 났다. 내 등을 끌어안은 팔이 따뜻했다. 윤기 오빠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이 또 따뜻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따뜻한 것이 볼을 타고 막 흐르더니 신음이 새어나와 아랫입술을 이전보다 세게 깨물었다. 뒷머리에 손을 얹은 채 나를 조금 세게 끌어안은 윤기 오빠의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네가 우냐. "
" 진짜… 진짜, 너무… "
" 다물어. "
" 너무 미안한데… 저, 진짜… "
" 다물라고 했다. "
눈을 감고 나를 질책했다. 이럴 줄 알았어. 지금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윤기 오빠에게 더 큰 상처와 짐을 안겨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누구보다 아픈 사람은 윤기 오빠일 텐데 괜한 어리광으로 더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미안해서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그냥 지금 나를 안아 주는 이 사람이 안아 줘서 미안했고, 내가 이 사람에게 안겨 있어서 미안했다.
"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아니까. "
" ……. "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니까. "
" ……. "
" 말하지 마. "
" ……. "
" 네가 울 필요도 없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 "
" ……. "
" 이건 내 몫이야. "
윤기 오빠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떼어냈다. 온기가 사라지고, 찬바람이 들어왔다. 퉁퉁 부은 내 눈이 윤기 오빠를 맞이했다. 조금 빨개져 있는 윤기 오빠의 눈이 살짝 접혀 있었다. 정말 웃고 있는 걸까. 딱딱하게 굳은 그 입술이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숨이 진정되지 않아 끅끅대고 있는 내 어깨를 조금 세게 붙잡으며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맞춘 윤기 오빠가 또다시 웃어 보였다.
" 알았어? "
" ……. "
" 이건 내 몫이라고. "
입이 웃고 있었다.
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사담을 읽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포기했어요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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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이 다가오고 있어요 저는 삼각관계를 만들면 빨리 풀어나가고 싶은 병이 있나 봐요 제대로 된 삼각관계에 끙끙 앓아 눕는 독자님들을 보고 싶었는데 삼각관계 이전에 풀어야 할 오해들이 있어서 굳이 넣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사랑해요 독자님들! (급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