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장 민윤기랑 연애하기 07 (부제 : 여섯 살 차이란, 민윤기 시점)
w. 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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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내가 학회장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예비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그다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애들도 없었고. 아니, 있었다면 장기자랑 때문에 잠깐 홀 앞으로 왔었던 신입생들인가. 뭐, 그래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얼굴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대충 입은 옷만 기억날 뿐이다. 그냥 평범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새 학기를 앞두고 진행되는 정말 형식적인 행사였으니까. 그저 이 많은 아이들을 언제 다 외우나, 싶었다.
장기자랑 연습 첫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자기 몸집보다 큰 져지를 입고선 춤 연습을 하러 온 신입생이었다. 이름이 김여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 이성적으로 신경이 쓰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애가 큰 옷을 입고 어설프게 춤 연습하는 게 귀여워보였다. 보아하니 춤을 처음 춰본 것 같던데 장기자랑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낑낑대며 연습하는 게 기특해 보이기도 했고. 아마 그 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번 연습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자주 입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연습이 끝난 후, 마지막 뒷정리를 하고 나가려는데 누가 급하게 들어왔다. 문 옆에 서있는 나를 못 본 듯 허겁지겁 들어와 무언가를 놓고 온 것인지 책상에 있는 걸 집어 들더니 주머니에 넣고 그제야 나를 바라본다. 김여주였다. 김여주는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고, 나 역시 굳이 대꾸를 해주지 않아도 어련히 나오겠거니 하고 서있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한 마디 했다.
안 나올 거야?
정신을 어디다 빼둔 걸까, 아니면 귀가 안 좋은 걸까 이마저도 듣지 못한 김여주는 가만히 멍만 때렸다. 내가 이름을 부르고, 안 나올 거냐고 재차 물어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죄송하다며 얼른 강의실을 빠져나온다. 애들은 이미 1층으로 모두 내려갔는지 시끌벅적 하던 소리가 가라앉았고, 복도에는 나와 신입생 단 둘 뿐이었다. 이런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딱 질색인데. 김여주는 내 뒤에서 걸었다. 애가 걸음이 느린 건지, 나도 그렇게 걸음이 빠른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뒤쳐졌다. 이번이 두 번째로 보는 신입생과 단 둘이 걷는 학교 복도란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고, 나는 그 분위기를 나라도 깨야겠다 싶어 말을 건넸다.
아까 뭐 놓고 온 건데 그렇게 급하게 들어 와?
한동안 답이 없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은 건지 싶어 김여주를 바라보자 놀란 듯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모습에 내가 놀라게 한 건가 싶어 급 밀려드는 당황스러움에 놀랐냐고, 갑자기 말을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괜찮다며 아까 한 내 질문에 답을 해준다. 틴트를 놓고 왔단다. 연습 하느라 잠깐 빼둔 걸 깜빡하고.
어둡다. 앞 보고 걸어.
아니 얘는 대체 왜 앞을 안 보면서 걷는 걸까. 복도가 어두우면 앞만 보며 걸었어야지 대답을 하면서 다른 곳만 보고 있었나보다. 자칫하다간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순간 답답한 마음에 김여주를 바라보자 내가 잡은 팔이 아픈 듯 작게 신음을 내뱉었고, 아프다는 소리에 놀란 나는 쥐었던 손을 풀고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아, 오늘 얘한테 미안한 게 뭐가 이렇게 많냐. 미안하다는 내 말에 마음이 불편한 듯 김여주는 팔까지 휘저어가며 괜찮다고,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게 또 귀여운 나는 신입생에게 웃어 보이고 만다.
그냥, 처음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첫 연습 이후에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게 되었어도 애가 불편해 보이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툭 던진 한 마디였다. 신입생과 우연히 같은 버스정류장이었어도 이 적막한 분위기가 숨 막히도록 싫어 말을 건넸던 것이었고, 버스를 기다려줬던 건 그 늦은 밤에 신입생 홀로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게 눈치 보여서 했던 행동이었다. 그냥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까마득하게 어린 신입생을 홀로 두고 먼저 가버리는 고학번의 이미지란 그저 좋아보이진 않았기에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김여주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던 건 언젠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춤 연습이 끝난 후였다. 이제껏 내가 학회 일로 바쁘기도 했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첫 연습 이후에 김여주와 같이 버스정류장을 갔던 기억이 없다. 마침 오랜만에 일도 없고, 어차피 같은 방향이기에 같이 가기 위해 김여주에게 안 갈 거냐고 묻자 갑자기 당황하며 약속이 있으니 먼저 가란다. 이 늦은 시간에. 정말 누가 봐도 거짓말인 듯 오버하는 행동들에 내가 그렇게 불편한가 싶기도 하고, 대체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나랑 같이 가려고 하지 않는 걸까, 하다 보니 신경이 쓰이게 됐다. 대체 왜, 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그 뒤로 김여주가 신경 쓰였다. 연습할 때 자연스레 김여주 쪽으로 시선이 가게 되고, 여전히 대체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한 채 그렇게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 쉬는 시간에 김여주가 자기 동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노는 동안 우연치 않게 내가 김여주한테 시선을 옮긴 적이 있는데 마침 그때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당황스러웠다. 날 보면서 그렇게 환하게 웃어줬던 적이 없었으니까. 날 피했으면 피했지 저런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마주한 얼굴은 날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내가 더 당황스러웠던 건 마냥 귀엽기만 하던 어린 신입생이 예뻐 보여서.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하며 웃던 모습이 예뻐서. 그래서 더 당황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건 자리 합리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연애를 안 한지 너무 오래 돼서 여섯 살 어린 애한테도 잠깐 설렐 수 있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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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고 더 바빠졌다. 그리고 신입생들에게 카톡을 받아야 할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김여주도 포함이었고. 처음엔 형식적으로 오갔던 카톡에서 어쩌다보니 김여주와는 카톡이 이어지게 되었다. 내 말도 안 되는 문제에 기름을 붙여버린 게 바로 이 연락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신입생과 연락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분명 이 연락을 함으로써 사태가 심각해졌으면 심각해졌지 더 나아지지는 않을 터인데 계속 연락을 이어나가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알면서도 그만 못 두는 짓.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는 게 참 무서운 거였다. 연락을 하다 보니 김여주에게 당연히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가끔 새벽에 침대에 누워 연락을 할 때 프로필 사진이 바뀌면 확인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애써 부정했다. 여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 뒤에 숨어서 말이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연습이 왔고, 첫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김여주와는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것도 옆자리.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자리. 처음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런데 김여주와 앞에 앉은 신입생들의 대화 이후부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온 신경이 김여주 쪽으로 곤두섰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옆에 있는 것을 달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내 손으로 직접 가져가며 김여주를 신경 쓰기 급급했으니까. 참, 스물여섯 살 먹고도 이렇게 한심할 수 있나 싶었다. 이것도 병이지.
오늘도 그 이상한 거짓말을 칠까, 했더니만 그냥 집에 가려나보다. 이번이 두 번째로 걷는 길이었다. 확실히 첫 번째와는 느낌이 달랐다. 내가 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그래도 적어도 티는 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면서도 부정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내가 좋다고 무작정 난 네가 좋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쉬운 나이 차이도 아니었다. 이 아이는 막 들어온 신입생이었고, 나는 내년이면 졸업을 앞둔 고학년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아이가 너무 예뻤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예쁘기 보단 귀여워서. 옆에서 당황한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머리로 손이 올라갔다.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머리를 헝클인 걸로도 모자라 예쁘다는 말도 해버린 뒤였으니까. 아차,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장난인 척 대꾸했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인 것을 몰랐기를 바라면서.
오늘 이 아이를 기다려준 건 단순히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사심이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애써 부정하면서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별 다른 핑계 없이 그냥 기다려줄 테니 앉아 있으라고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한 채 휴대폰만 만졌다. 이미 다 읽어버린 카톡들과 메시지창을 보면서 말이다. 그냥 보는 척만 했다. 아까 봤던 버스 시간표에서 아직 오래 남은 시간에 마음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버스가 도착했단다. 티만 안 냈지 아쉽긴 했다.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아쉬워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그렇게 김여주를 버스에 태우고 가만히 바라보는데 김여주가 나를 보더니 어설프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당황스러워서 일단 손을 흔들긴 했는데 버스가 떠나간 뒤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그 아이가 어설프게 흔든 손이 나를 흔들어 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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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와의 연락은 계속 됐다. 내가 답이 느리고, 말투가 딱딱하기만 하지 읽고 씹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늦더라도 다 받아쳐주고 있었고, 이 아이도 나와 같은 건지 도무지 우리 대화가 끊길 날이 없었다. 내 짧은 대답에도 두 배로 늘려 답이 오는 카톡에 이젠 그냥 그러려니 연락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새 학기를 보내다보니 금방 오티 날이 왔다. 하필 또 김여주와 같은 버스였다. 이 아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접촉하면 할수록 더 깊어질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래서 피하려고만 했다. 연락은 내가 무작정 답을 안 해버리는 꼴이 웃겨서 놔두긴 했지만 말이다. 김여주가 멀미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 옆에 앉은 친구가 멀미를 하는 건지 꽤나 앞쪽에 앉은 김여주는 내 대각선에 앉았고, 대각선이라는 사실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관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오티 행사는 물 흐르듯 진행 되었다. 임원이라 바빴기 때문에 김여주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여러 개의 행사를 진행하고 나니 금세 장기자랑 시간이 왔고, 과 학회장으로서 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기 위해 대기실로 내려갔다. 그냥 정호석을 시킬 걸 그랬나보다. 어차피 봐야 할 모습이었지만, 춤 연습 때 맨날 져지만 입던 아이가 무대의상이랍시고 꾸민 걸 보니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괜찮다, 예쁘다 여러 말을 해줬지만 김여주로 시선을 옮기고 나서는 입을 다문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예쁘면 안 되는데. 아니, 내가 더 이상 예쁘게 보면 안 되는데.
드디어 시작 된 무대에서도 김여주만 봤던 것 같다. 느릿하게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면서도 시선은 그 아이에게 고정되어 도무지 옮길 기미가 없었다. 내 눈에는 여전히 어설픈 모습들이 보여 그 모습이 또 귀여웠고, 흰 블라우스에 검정색 치마를 차려 입은 모습은 또 너무 예뻐 보여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을 쳐다보던 도중, 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입 모양으로 예쁘다고 해줬다. 아마 제 정신이 아니었을 테지. 내 입 모양을 못 알아들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모습에 다시 한 번 예쁘다는 말을 해줬고, 이제야 알아들은 듯 내 눈을 피해버린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치던 박수를 그만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날 밤, 여느 오티가 다 그렇듯 우리 역시 술 파티가 시작됐다. 정호석과 나는 학회장과 부학회장이라 모든 방을 한 번씩 돌며 건배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이 김여주네 방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본 김여주의 얼굴은 이미 붉어진 상태였고, 아마 술 게임을 숙지하지 못한 채 놀다보니 벌칙 주란 벌칙 주는 얘가 다 마신 듯 했다. 후. 그 모습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아무리 게임이지만 신입생이면 조금씩 봐주면서 놀았어야 할 텐데,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애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건지.
망할 정호석은 취하기라도 한 건지 건배만 하고 나갔어야 할 방에서 마지막 방이라 아쉽다며 술 게임을 진행 시켰고, 역시나 김여주는 모르는 눈치였다. 당장 정호석을 끌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흥 오른 방 분위기를 내가 가라앉힐 수는 없고 일단은 게임에 동참했다. 그리고 걸리는 건 김여주.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신난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신나 벌칙 주를 타는 정호석을 툭 치며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넘어가라고 말했다. 앞쪽에서 틀렸다고는 했지만 사실 틀린 사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이 벌칙 주를 마시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았을 뿐이다.
그렇게 술 게임은 계속해서 진행 됐고,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걸렸다. 벌칙 주쯤이야, 하고 마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정호석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학회장님과의 러브 샷 타임이라며 이번 판은 킵이란다. 얘 이따 임원 방 가서 죽었다. 방금 했던 게임과는 다른 게임, 그러니까 아까 김여주가 걸렸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고, 이번 판에서 걸리는 건 또 다시 김여주. 이쯤 되면 얘가 이 게임 룰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게임을 못하는 것 같다. 하필 김여주와의 러브 샷에 김여주만 바라보는데 이 아이는 정호석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판에서 킵한 것을 잊어버리고 벌칙 주 마실 생각만 하고 있었나보다.
워낙 오티, 엠티와 같은 행사에서 수위 높은 술 게임으로 적발 되는 방이 많아서 몇 년 전부터 우리 과는 철저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던 탓에 러브 샷은 고작 해봐야 팔을 교차해서 마시는 것뿐이었다. 근데 나는 단지 고작 그뿐인 것에 신경이 쓰이는 거고. 김여주는 당황스러운 듯 다가오지도 못하고 술잔만 받은 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자 정호석이 살짝 내 앞으로 옮겨왔고, 그러자 더 당황한 듯 이리저리 눈만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 귀여워 내가 먼저 다가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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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 이후에 급격하게 김여주에 대한 마음이 커지는 걸 느끼는데 애써 부정했다. 부정해도 커지는데 인정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냥, 갓 신입생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그 아이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았다. 나는 학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고,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그 아이에게 이런 것들이 영향이 갈 거라는 것을 아니까, 그래서 더 부정하려 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김여주와 카톡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아이,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단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 아이는 고작 중학교에 올라가는 1학년, 어린 아이였다. 나는 연애를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 이전에 했던 연애가 비교적 긴 연애였기에 적어도 연애에 대한 환상 같은 건 꿈꾸지 않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첫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고, 나는 그 환상에 충족시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맞게 풋풋한 연애를 할 수 있는 권리가 김여주에게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더욱 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다. 이 마음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조차도.
연락도 더욱 딱딱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말을 이어가는 김여주 때문에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상태로 엠티를 가게 됐다. 다행인 건지 김여주와는 같은 버스에 타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김여주랑 연락을 계속 하고 있는데. 그렇게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가고 있는데 김여주에게 사진이 왔길래 금방 들어가 보니, 정호석이랑 같이 찍은 셀카다. 물론 정호석과 김여주 단 둘이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괜히 기분 나빠지는 모습에 옆에서 막 자려고 눈을 감은 임원, 아니 김태형을 깨워 야, 사진 좀 찍어봐. 하고 휴대폰을 건넸고 김태형은 자려다 봉변을 당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설마 김여주한테 보내시게요? 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찍으라고 하자 형도 참, 이라며 휴대폰을 받아들고 사진을 찍어주고는 이제 잘 테니 깨우지 말라는 말과 함께 눈을 감는다. 나는 그대로 사진을 전송 시키고, 아까 보내준 사진을 조용히 저장한다.
엠티도 오티와 다를 게 없었다. 그냥 술 파티다. 단순히 술 파티. 한 가지 다른 점은 내가 초반부터 의리주로 살짝 맛이 갔다는 것. 오티 때와 마찬가지로 한 방씩 들어가 인사를 하는데 처음 들어간 방부터 의리주를 제안하는 탓에 고생했다. 우리 팀이 걸린 이상 학회장인 내가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고, 큰 페트병의 반을 채운 소주 반, 맥주 반의 벌칙 주는 아무리 앞쪽에서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나를 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직 남은 방도 많았고, 이 많은 방을 정호석 혼자 관리하기엔 무리였으니까. 그렇게 방을 돌고 나서 정신을 차리려 방 한쪽에서 쉬는데 김여주에게 카톡이 왔고, 나는 ‘같이 놀자면서요.’만 알아듣고 계속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다 결국 어지러워 글씨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할 때 폰을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여주는 내가 있는 방으로 찾아 왔고, 삐지기라도 한 건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왜 이렇게 어디 있냐고 말을 안 해줬냐며 타박하기 시작한다. 아, 술이 취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귀여워 보이냐. 민윤기 정신 차려라. 계속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내가 그랬냐며, 그래도 네가 결국 오지 않았냐며, 얼른 앉으라고 이야기를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러네요. 한 마디 하고는 시선을 돌리고 앞만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술 게임. 그렇게 몇 바퀴를 돌더니 김여주가 내 팔을 툭툭 치며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재미없다고, 나가자는 뜻이겠지. 나는 술에 취했음에도 용케 알아듣고 먼저 밖으로 나선다.
아무도 없는 밖은 조용했다. 내가 걷는 소리와, 그리고 내 뒤에서 따라오는 김여주 발소리뿐이었다. 가로등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주인공인 것처럼 밝게 비추고, 나는 정말로 남자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춥다는 김여주에 말에 겉옷을 벗어 던져준다. 막상 벗고 나니 좀 춥긴 했지만, 달랑 져지 하나 걸치고 나온 김여주가 정말 추워 보였기에 던져줬더니 이제 안 춥다며 다시 내게 던져준다. 추워 보인다고 입으라고 여러 번 말해도 저 고집은 버릴 생각이 없나보다. 그럼 이따 추워지면 다시 이야기 하라고 옷을 걸쳐 입고 다시 걸었다.
잠깐 술을 깨려고 걸었던 것뿐이다. 찬바람이라도 조금 쐬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걸었던 길인데, 초반부터 달렸던 탓인지 어지러움이 나아지질 않아 잠깐 벽에 기대섰다. 기대서 바라본 가로등 아래 빛 받은 김여주가 예뻐서, 그렇게 예뻐 보여서.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미묘하게 흐르는 정적 속에서 울린 내 목소리에 김여주는 흠칫 놀라며 이리 오라는 내 말에 쭈뼛쭈뼛 다가온다. 술이 들어가서일까, 판단력이 흐려진 나는 그냥 예뻐 보이는 이 아이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가가 끌어안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에도 이 끌어안은 손을 풀 수가 없었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조금이라도 더 품에 안아보고 싶어서. 이 시간이 좋아서, 그래서 밀려드는 김여주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젠 나도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없겠구나, 하고.
오티에 갔다 오고 나서,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지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문제인 것 같아 결국 제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임원이자 아끼는 후배인 김태형에게 말해버렸다. 사실 정호석에게 말할까 생각하다가 그 녀석은 술만 마시면 입이 문제라 넘겨버렸다. 괜히 퍼지면 나나 그 아이나 곤란할 게 뻔했으니까.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뿐이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면, 그 주변 사람과 조금 나누는 것. 단지 그것 뿐. "형, 아니 그러니까 형이 김여주한테 관심이 있다는 말이죠?" "아니." "아 뭐예요. 관심 있다면서요." "응." "……." "……." "형 지금 장난해요?" 막상 김태형에게 말하기는 했지만 인정한다는 사실이 싫어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나자 김태형도 어이가 없는지 그래서 관심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제대로 대답하란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관심은 있어. 근데 좋아하는 건 아닐 걸, 이라며 구차한 뒷말을 만들어낸다. 김태형은 몇 번 한숨을 내쉬더니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라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여섯 살 차이라는 게 그렇게 쉽고 가벼운 차이는 아니라고. 방송을 보면 띠 동갑인 사람과도 잘만 만나지만 그게 실제로는 쉽지가 않다고. 내가 그 아이의 나이였을 땐 김여주는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고, 아무리 지금 나와 같은 이십 대라고는 하지만 갓 성인이다. 갓 스물.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을 수도 있고, 그 아이의 첫 연애를 스물여섯 살인 나와 함께 하기엔 그 아이의 나이가 아깝지 않느냐고. 그리고 만약 모든 걸 감수하고 만나게 된다고 쳐도 내가 학회장이라 받게 될 시선들을 그 아이가 감당하게 하는 게 싫다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 "형 말하는 거 보면 이미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냥 좋다고 해요. 연락 이어가는 거 보면 김여주 걔도 형한테 마음 없는 것 같진 않구만." "…아니 그게," "아, 형. 진짜 형이 답답한 게,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이것저것 걱정하면 앞으로 연애는 어떻게 하시려구요." 맞는 말이었다. 나는 늘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었고, 이번 문제 역시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도 한 번 퍼지기 시작한 고민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더 크게 퍼뜨리는 것이다. 가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한심하기 짝이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고민이 되는 걸. "형. 저는 형 응원합니다." "뭐?" "김여주랑 잘해보시라구요. 애도 귀엽던데." "……." "힘내세요." "…네 눈에도 귀엽게 보이냐, 김여주." "……." "……."+ 보너스 / 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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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달비입니다 :D 개강 전에 올려두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오늘 올리게 되네요. 다음 편까지 정리가 되고 올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개강이다보니 그렇게 되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먼저 올려둡니다! 시간표가 나쁜 건 아니지만 1교시 때문에 집만 오면 피곤해서... 엉엉. 앞으로 주말마다 틈틈이 글을 써야할 것 같아요. 휴. 오늘 빡빡해서 읽기 많이 힘드셨죠...? (쭈굴쭈굴) 오늘은 윤기 시점이라 대화가 없는 점은 양해 부탁드려요. 윤기 심정 적기도 바쁜데 이전 대화까지 끌어들이니 글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 쓰다가 다 잘라냈어요 ㅠㅅㅠ 이번 편에서 윤기 시점이 나온 이유는, 제가 봐도 진도가 답답해서 윤기 심정이라고 먼저 보여드리고자 1화부터 6화까지 나오지 않은 윤기의 속마음을 적어봤습니다! 네. 여러분. 윤기도 여주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쩌렁쩌렁) 이제 좀 답답한 감이 사라지셨나요...~? 허허. 아무튼, 요새 글 읽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댓글들도 너무 감사하구요. 아직 미숙해서 부족한 부분들이 많을 텐데 꾸준히 쓰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ㅠㅅㅠ...! 앞으로 텀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틈틈이, 그리고 열심히 써볼테니 기다려주세요! :D 항상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싸랑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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