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자국 02
"공주야, 이거 봐. 나 염색 잘됐지."
어제 손을 맞잡고 부끄러워하던 전정국은 어디로 가고 다시 막무가내로 돌아온 전정국은 한창 자신의 머리색을 자랑하는 중이다. 어제처럼 굳어 있을까봐 걱정 아닌 걱정을 한 내가 무색하게도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리고 머리색은 내가 보기에 전이랑 별다를 게 없는데 자기 딴에는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하는지 십분 내내 떠들고 있다. 바뀐 머리색이 마음에 드는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넘겨보며 거울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그러다 거울을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흠칫했지만 태연한 척 했다.
"우리 공주 너무 비싸."
"뭐가 비싸."
"말 한마디도 비싸서 대답도 안 해주는 거야?"
"너한테만 비싸."
내 대답이 끝나자 전정국은 갑자기 나에게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턱까지 들이밀어진 머리에 나는 고개를 뒤로 물렀다. 머리색 예뻐? 전정국의 말에도 나는 입을 꾹 닫고 열지 않았다. 지금은 고개를 움직이는 것조차도 귀찮은 상태라 입을 여는 건 말할 것도 없이 하기 싫었다. 그러나 나의 부답에도 전정국은 머리를 치워내지 않았다. 가만히 있기라도 하지 자꾸 들이밀고 부비고 난리도 아니었다. 머리색 예쁘지? 흩어지는 머릿결에서 나는 향이 전정국이 머리에 신경을 얼마나 썼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치워."
결국 나는 입을 열었고 그에 전정국은 드디어 머리를 제 쪽으로 들었다. 그때서야 나는 바르게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정국의 물음은 멈추지 않았다.
"예뻐? 예쁘지?"
흘깃 바라본 눈동자에는 기어이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눈빛은 나에게 더 대답을 하기 싫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대답을 않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어제 저녁 읽다 말았던 책을 마저 읽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책상에 놓기도 전에 전정국이 가져가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이리 줘."
"예쁘다고 해줘."
"……."
"안 예뻐?"
전정국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는 다른 책을 읽을 의향이 충분히 있다. 나는 전정국을 쳐다보다 다시 가방을 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정말 안 예뻐서 그래?"
"……."
"이것도 대답해주기 싫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 시무룩해진 것 같았다. 몇 분 동안 답을 받지 못한 질문의 물음표가 허공을 부유했다.
"아니면 내가 싫어?"
여기서 대체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전정국의 말에 결국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예뻐."
덤덤하게 내뱉은 말이 끝나자 전정국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예뻐. 좋아."
"……."
"그러니까 나 책 읽고 싶은데 좀 줄래?"
말을 마친 나는 전정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정국은 얌전히 내 손 위에 책을 올렸다. 정말 세살 먹은 아기도 아니고 이렇게 단순해서야. 속으로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부분을 찾고 있는데 부동 자세였던 전정국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을 넘기다 오른쪽 페이지의 숫자에 눈을 옮겼을 때 전정국이 내 쪽을 향해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 책을 읽을 때 집중해서 읽는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 공주야, 하는 부름이 들렸다.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전정국은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도 예뻐."
"……."
"그리고 나도 너 좋아."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 좋다는 말은 안했는데 전정국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버린다. 나는 그제야 전정국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책에서 눈을 떼지는 않았지만 글자가 하나도 읽히지 않았다. 더 이상 전정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언제나 내 말을 듣지 않는 전정국은 움직임이 없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공주 귀가 빨개."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기분이 이런 걸까.
***
할 일 없는 체육시간은 지루하다. 째깍거리며 열심히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보며 생각했다. 긴 시곗바늘이 열심히 달리다 한 바퀴를 덜 되게 돌았을 때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의지 없는 발을 끌어 탈의실로 향했다. 화장실 옆 탈의실은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나는 전학 온 이후로 쭉 이 탈의실만을 사용해왔다. 나는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없다는 걸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두 번째 줄 두 번째 락커를 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지저분안 이 탈의실과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하얀 체육복 위에 걸쳐 입었던 후드집업을 벗었다. 후드집업을 걸어두고 체육복 상의의 목 부분 지퍼를 내리려는데 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잠그는 걸 깜빡했나.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가 출입자를 짐작케 했다. 나를 보자마자 말을 걸 줄 알았던 전정국은 말이 없었다. 오늘은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교복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교복을 챙겨 문 쪽으로 향하는 나의 앞을 전정국이 막았다.
"공주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공주 소리가 지긋지긋했다. 나는 걸음을 옮겨 전정국을 지나치려 했지만 전정국은 그런 내 앞을 다시 막아섰다. 비켜. 계속되는 행동은 결국 입을 열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말에도 전정국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전정국은 나를 구석으로 슬슬 몰았다. 또 왜 이러는 걸까. 전정국은 정말 피곤한 새끼다.
"나 천천히 못하겠어."
"뭐라는 거야. 비켜."
"손도 잡았는데"
"……."
"이 다음은 뭔지 몰라."
"그럼 안하면 되겠네."
"안 돼."
오늘따라 공주가 예뻐. 말을 마친 전정국은 비키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다가와 입술을 물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갑작스런 움직임에 이에 부딪힌 입술에서 피가 났을 뿐 전정국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고개를 돌려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계속되는 전정국의 행동에 화가 났다. 나는 잠깐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전정국이 입술을 붙이기 전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전정국이 이번에는 귀를 물었다. 귓바퀴에서 점점 내려가 귓불을 혀로 몇 번 굴리나 싶더니 이로 세게 씹었다. 아! 전정국은 기어코 피를 보았다. 귓불이 화끈하게 아팠다.
나는 전정국을 밀어내던 손을 거두었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전정국은 손으로 체육복 상의의 지퍼를 내리며 목으로 향했다. 뜨겁고 축축한 게 자꾸 닿았다 떨어졌다. 뜨거운 뱀 한마리가 목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정국은 한 뼘 밖에 되지 않는 지퍼를 다 열어놓고도 더 열어야겠다는 듯이 잡아 내렸다. 그렇게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전정국은 쇄골쯤에서 멈추었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어느새 입술을 뗀 전정국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좀 놀란 것 같기도 했다.
"…….너"
전정국은 왜냐고 물어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화를 내고 싶은 걸까? 그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전정국은 그럴 자격이 없다. 나는 아래에 멈춰있는 전정국의 머리를 잡아 내 눈높이까지 올렸다. 그리고 한 번 눈을 맞췄다. 옅은 쌍꺼풀 잘 어울리는 눈이다. 나는 전정국의 얼굴 옆으로 향해 똑같이 귓불을 씹었다. 전정국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물었던 귓불에 빨갛게 핏망울이 졌다. 지금 나도 이런 모양일까.
"재미 다 봤어?"
전정국은 여전히 멍했다. 빠져버린 정신은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 쪽으로 쏠려있던 전정국을 밀어냈다. 아까와는 달리 순순히 밀려났다. 나는 차분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수업 시작종이 친 지 오래였다.
"귀여울 정도까지만 해."
"……."
"좆나 짜증나게 하지 말고."
탈의실을 나오면서 본 거울에는 아까 봤던 빨간 모양새가 비쳤다.
***
이 정도는 불마크 안해도 되겠죠ㅠㅠ?
+) 수정 끝! 암호닉 받아요~
++) 독방에 추천해주신 분들 스릉...♥
+++) 바뀐 부분 있으니 다시 한 번 읽어주시면 다음편을 읽으실 때 더 좋을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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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글 뭐야ㅋ 아이유는 장발이지 무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