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자국 01
"나랑 자자."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들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너 어제 나랑 처음 만났어."
"맞아."
"넌 얼굴 하루 보고 자자는 말이 나와?"
"24시간이면 충분하지."
"도대체 뭐가?"
"내가 공주랑 잘지 말지 고민하는 거."
전정국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24시간도 아니고 겨우 한 시간 남짓을 함께했음에도 자자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괜찮다. 전 세계 70억 인구에는 여러 인종이 있고 여러 종교가 있고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또……. 그러니까 내 말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다. 처음부터 미친놈일거라 예상했어서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그게 생각보다 정도가 심해서 좀 짜증날 뿐이지.
나는 전정국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 포기 선언을 했다. 물론 내 마음속에서. 그리고 나는 꽤 오래 펼쳐놓아 이제 무안해보이기까지 하는 수학 문제집을 풀기 위해 샤프를 들었다. 어제 7번 문제에서 막혀서 숙제를 포기했었는데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자줄 거야, 말거야?"
"얼른 나랑 잔다고 해."
"공주가 싫대두 소용없어."
내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꾸 개소리를 짖어대는 전정국 덕분에 가방 깊숙이 넣어뒀던 이어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음악 플레이어를 재생시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켜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화면에 떠서 기분이 조금 좋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겨우 삼분이나 지났을까 하는데 갑자기 문제집을 덮는 큰 손이 있었다.
"나랑 자자니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전정국은 어느새 내 책상 앞으로 내려와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내가 풀던 문제를 가리고 예의 그 큰 개 같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전정국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문제로 눈을 돌렸다. 문제 위를 덮은 전정국의 손을 샤프 끝으로 밀어 치워냈다. 전정국은 그런 나와 자꾸 눈을 맞추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종국에 나는 고개를 아주 숙여버렸다.
그렇게 다섯 문제 쯤 푸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기척이 사라진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내 자리는 복도 쪽 첫 분단이라 고개를 들면 항상 칠판 옆 게시판에 붙여진 거울이 보인다. 원래는 내 얼굴이 반쯤, 세라의 얼굴이 반쯤 보였는데 지금은……. 그리 달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전정국은 마치 내가 거울을 볼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처음부터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전정국과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전정국이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나는 그것을 해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국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머리가 먼저 인식하고 말았다.
'나'
'랑'
'자'
'자'
답할 가치도 없고 답하고 싶지도 않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진짜 왜 저래. 전정국이 아무한테나 저러는 건지 아니면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아무한테나 이러든 나한테만 이러든 둘 다 기분은 썩 좋지 않겠지만. 내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문제를 풀기 위해 펜을 들 때쯤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야"
"……."
"내가 너무 빨라?"
"……."
"난 잘 모르겠지만,"
"……."
"공주가 싫으면,"
전정국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답이 돌아오지 않는 대화를 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전정국의 시선이 느껴졌다. 막무가내로 들이대던 전정국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을 하는 건 내가 듣지 않아도 좋다는 뜻인가. 나는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금방 지워버리고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그런데 말을 멈췄던 전정국이 책 옆에 놓였던 내 휴대폰을 가져갔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방해를 해 짜증이 났다. 나는 전정국에게 화를 내려고 했다.
"오빠가 천천히 할게."
재빨리 말을 마친 전정국은 휴대폰 볼륨을 키웠다.
"안 듣는 거 티나."
전정국은 휴대폰을 다시 책 옆에 놓아두고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교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전정국이 그러는 동안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전정국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전정국이 볼륨이 0이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노래를 듣는 척하며 전정국을 무시했던 게 조금 미안해졌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 책을 덮었다. 결국 숙제를 포기하기로 한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전정국이 볼륨을 키워놓고 간 노래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
이틀째지만 아직도 몸이 학교에 적응을 못해 학교가 끝날 쯤에 나는 녹초가 되었다. 원래 몸이 약한 탓도 있지만 오늘은 국영수의 연속이었던 시간표가 한몫했다. 돌을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다리를 질질 끌고 교문을 나서자 아침에 사라져 내내 보이지 않던 전정국을 볼 수 있었다. 전정국은 첫 날처럼 걸어가던 내 옆에 성큼 따라붙었다.
"공주 안녕."
"그래. 안녕."
"오빠 많이 보고 싶었어?"
"딱히."
단호한 나의 말에도 전정국의 능글거림은 끝이 없었다.
"그럼 나랑 자고 싶은 마음은 있어?"
나는 전정국을 빤히 바라보다 소리를 지를 힘은 커녕 대답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정국은 갑자기 무엇을 깨달았다는 듯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빠가 천천히 한다고 했는데 잠깐 잊었다. 그래, 우리 공주. 오빠가 천천히 할게."
참으로 대단한 걸 깨달았구나. 그렇게 생각한 김에 좀 천천히 해줬으면 했다. 나무늘보보다 더 느리게. 아주 천천히.
"그럼 공주야, 오빠랑 손잡을까?"
전정국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을 끌어다 잡았다. 뿌리칠 힘도 없는 김에 어떻게 하나보자 하고 가만히 있어보았다. 전정국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사실 전정국의 손이 커 내 손을 '쥐었다'고 보는 게 더 맞았다.
내 손을 잡은 후로 그렇게 시끄럽던 전정국은 말이 없었다. 손도 꼭 잡은 채로 미동이 없었다. 입도 다물고 뭐하고 있나 하고 옆을 돌아보니 전정국은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순간 나무 인형인 줄 알았다. 내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굳어있었다. 애 이런 건 처음인가. 자자니 천천히 한다니 손을 잡자니 하던 건 자기면서 정작 손 하나 잡아놓고 경직이라니. 이렇게 모순일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느낌이 나쁘지 않아 손을 놓지 않았다. 바람도 느리게 불고 선선한 기온에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두 발자국쯤 딛었을 때, 평탄할 줄 알았던 길에 갑자기 올라온 턱에 걸린 나는 발을 헛디뎠다. 몸이 기울고 속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순간 전정국이 내 손을 세게 당겼다.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었다.
"고마워."
내 감사 인사에도 전정국은 말이 없었다. 놀랐는지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정지상태가 된 전정국에 내가 먼저 손을 끌어당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맞잡은 손 사이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땀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손에 힘을 줘 잡는 전정국에 포기했다. 전정국은 그렇게 내가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말이 없었다. 아빠 말고는 처음 잡아보는 남자 손이 나보다 더 떨고 있었다.
***
+) 급하게 올려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오류 있어요ㅠㅠ 조금 있다가 수정할게요!
++) 수정 끝 ^*^
+++) 00편 프롤로그 있어요! 첫화 아닙니당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전정국] 이빨자국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302/2681762c38eaa9c6f8cc84cc158b65d0.jpg)
초록글 뭐야ㅋ 아이유는 장발이지 무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