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자국 03
숙면을 취하지 못한 몸이 개운하지 못하다. 언제나 그렇듯 침대 옆에 놓인 물이 든 컵을 비우고 잠깐 눈을 감았다. 어제는 그렇게 탈의실을 나온 뒤로 전정국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따뜻한 물을 쓴 후라 뿌옇게 덮인 거울을 보았다. 흐릿하게 형체가 보였다. 입고 있던 티의 목부근을 끌어내렸다. 흐릿한 거울은 그것을 반사시키지 못했다. 나는 손으로 거울 속 나를 한 번 쓸었다. 차가운 손은 거울을 생생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또렷하게 비추어냈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보다. 오래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따뜻한 물을 틀었다.
***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자리로 걸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인기척에 전정국이 몸을 뒤척였다. 언제나 2교시는 지나야 학교에 왔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나보다 빨리 와 자리에 앉아있다. 자리에 앉은 나는 문득 전정국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졌다. 어제의 일로 나를 어색해할까, 아니면 평소의 전정국처럼 행동할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전자라면 짜증이 날 테고 후자라면 골치가 아플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나에게 이득은 없다. 될 대로 되라지.
나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곤히 자고 있는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입을 닫고 있으니 이렇게나 정상적이다. 나는 전정국과 똑같이 책상위에 엎드렸다. 엎드려 감상한 전정국은 생각보다 속눈썹이 길었고 피부도 좋았다. 그렇게 전정국을 바라보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여전히 빨갛게 피멍이 든 귀로 눈이 갔다. 그걸 보니 괜히 내 귀도 아려오는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습관처럼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다 엎드린 지 몇 분 만에 아침부터 피곤했던 내 몸이 나를 잠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
생각보다 깊고 편하게 잤다. 일어나보니 전정국은 없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 시작종이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1교시부터 윤리시간이었다. 자연스레 책상 서랍에 손을 넣어 책을 꺼냈다. 원래 수업 순서대로 책을 정리해놓는 습관 때문에 당연히 윤리 책이 나와야하는데 나를 반기는 것은 국어책이었다. 당황한 나는 서랍에서 모든 책을 꺼내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책이 없었다. 윤리 시간에는 책이 없으면 수업을 듣지 못한다. 오십분 내내 교실 뒤에 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윤리 선생님은 깐깐해서 봐주는 법이 없으시다. 초조해진 나는 사물함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오 분이나 지나있었다. 내가 한창 당황해 있었을 쯤 전정국이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전정국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전정국은 책상 위에 엎드리려다가 당황해 하는 나를 보고 멈추었다. 나는 전정국에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선생님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성적에 민감한 나는 수업을 못들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책상 위에 공책을 올려놓고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윤리 책이 내 공책을 덮었다. 이름조차 쓰지 않은 새 책이다. 책이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전정국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정국은 자신의 책을 쓰라는 듯이 턱짓을 했다. 나는 책을 다시 전정국 쪽으로 밀었다. 나는 내 책이 아닌 다른 책이라도 준비했다며 옳다구나 하고 쓸 위인이 못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정국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내가 안쓰러웠든 불쌍해서이든 이런 거북한 배려는 내 쪽에서 사양이다. 전정국은 다시 내 쪽으로 책을 들이밀었고 나는 다시 그것을 전정국 책상에 두었다. 암묵적인 실랑이가 계속되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긴장했다.
"반장, 인사하자."
차렷, 선생님께 인사. 무슨 정신으로 인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항상 그랬듯이 수업 준비 못한 학생들은 뒤에 서있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조용히 교실 뒤로 나가려했다. 하지만 내가 의자를 뒤로 뺀 순간 전정국이 일어서려는 내 손목을 끌어내렸다. 그 덕에 엉거주춤 자리에 다시 앉은 나를 뒤로하고 전정국이 일어섰다. 일어선 전정국을 올려다보자 전정국은 조용한 목소리로 넌 있어, 라는 말을 하곤 교실 뒤로 나갔다. 선생님은 그런 전정국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고개를 돌리자 내 책상 위에 놓인 윤리 책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교실 뒤로 향했다. 그리고 전정국의 옆에 가만히 섰다. 수업을 하다 교실을 돌아보신 선생님은 나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조용히 발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하는 거야."
"뭐가."
"너 책 있잖아."
"니 책이잖아."
전정국은 아까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깔린 목소리가 낮았다.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은 건 난데 전정국이 도리어 묻는다.
"너 나오지 말라고 내가 대신 나왔잖아."
"내가 시켰어?"
"말 좀 들으면 안 돼?"
전정국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뒤로 나온 것에 대해 화가 난 듯 했다. 나는 그런 전정국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책을 주라고 부탁한 것도, 시킨 것도 아닌데 책을 받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 거기다 이제 나에게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을 요구한다.
"내가 왜?"
"그냥 좀 하,"
"니가 뭔데."
너희 둘, 교실 밖으로 나가. 결국 화가 난 윤리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교실 밖으로 내쫓으셨다. 나는 전정국보다 먼저 걸음을 옮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전정국이 따라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발장 앞에 조용히 섰다. 교실 바로 앞의 화장실 거울에 내가 비췄다. 전정국은 성큼성큼 다가와 내 옆에 붙어 섰다. 그래서 나는 전정국으로부터 한 발짝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정국은 또 그 걸음을 따라왔다. 포기한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미안해."
이건 또 뭐지. 전정국은 대뜸 사과를 했다. 나는 대답을 않고 자세를 유지했다. 전정국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교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본 게 공주여서 기분 좋았어."
"……."
"근데 공주는 아닌 거 같아서 왜 그럴까 했는데, "
"……."
"공주 하는 거 보니까 이유가 너무 잘 보여서"
"……."
"내 책 준거야."
전정국은 고해성사 하듯이 말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초조한 게 많이 티가 난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상했다.
"윤리가 책 없으면 뒤로 나가라고 하는 거 뻔히 아는데"
"……."
"어떻게 우리 공주를 그냥 둬."
대단한 공주맘 나셨다. 그래서 그 결과가 지금 교실 밖에서 벌 받는 게 되었다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아까는 내가 대신 나갔는데"
"……."
"공주가 그거 알면서도 나오길래"
"……."
"화나서 그랬어."
내가 화내서 공주 삐졌어? 내가 감성 충만한 여리여리한 소녀도 아닌데 삐졌냐고 물어보는 모양새가 웃겼다. 옆을 돌아보니 아까 인상을 쓰고 화를 내던 전정국은 어디가고 눈이 동그래가지고는 나를 살피는 전정국이 보였다. 이번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간 저번처럼 끝도 없이 물어볼 것이 뻔해서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안 삐졌어."
"진짜?"
"삐지지도 않았고 화도 안 났어."
전정국은 처음과 다르게 좀 어려져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전정국을 대할 때면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전정국이 손을 잡아왔다. 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전정국이 웃었다. 잡은 손을 몇 번 흔들다가 나를 톡톡 치기에 전정국을 보았더니 전정국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니 아까 봤던 그 거울이 보였다. 거울 속에서 전정국과 손을 잡은 내가 보였다.
"우리 잘 어울리는 거 같아."
거울로 본 내가 웃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전학 첫 날에는 반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모여 급식을 먹었는데 둘째 날 부터는 나 혼자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다. 앞이나 옆에 항상 전정국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까 말이다. 전정국이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반 아이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그래서 결국 지금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까 손을 잡은 이후로 자꾸 전정국은 실실거렸다. 하루도 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공주는 밥 먹을 때도 섹시해."
"……."
매일 이러니 죽을 맛이다. 자기 급식 판에는 손도 안대고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한 번은 넌 안 먹냐고 타박했지만 '공주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하는 역겨운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며칠간의 숙련 끝에 무시하고 밥을 먹는 게 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급식 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근데 공주야, 아까 진짜 슬펐어?"
"아니야."
"책 없어진 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아니라니까."
그새 또 내가 울 뻔 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그걸 가지고 자꾸 말을 건다. 나는 정말 쪽팔려 죽겠는데 전정국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부끄러워진다.
"그러면,"
"……."
"내가 없어져도 아까처럼 슬퍼해줄 거야?"
"……."
"나 막 애타게 찾아줄 거야?"
"……. 안 그럴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전정국은 별에 소원을 비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꼭 그렇게 해줬으면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나의 대답을 들었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그런 전정국의 말에 다시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어져 입을 닫았다.
"입술 예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건지 하나도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나랑 자자."
"좀 닥쳐."
"그럼 키스할까?"
하지만 언제 들어도 한숨이 나오는 건 여전하다. 결국 상스러운 말을 하게 만드는 전정국이다. 하지만 내가 말에도 멈추지 않는 전정국에 정말 체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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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른 저를 매우 욕해주세요!!!!!!!! 어제도 컴퓨터 켜놓고 5시간 동안 한 줄 썼어요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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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글 뭐야ㅋ 아이유는 장발이지 무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