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누구냐, 그런 말이에요"
"친한오빠에요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던"
"야유회 오빠는"
"그 오빠가이오빠에요"
"오빠라는 말도 쓸 줄 알고"
"나쁘지 않네요"
뭐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틀어지지 않아 안도감이 밀려옴
"표정 풀어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손만 만지작 만지작
"원래 미는 맛도 좀 있어야지, 이사원이랑 나랑 연애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같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말 한마디 없이 숨소리만 공유하고 내려옴
열심히 일을 하는데 타자가 내맘대로 쳐지지 않으니까 너무나 답답했음
그래도 언제까지 부탁만 하고 살 순 없으니 꿋꿋히 다 해냄
오늘은 야근이 있었기에 밤까지 일에 잠겨 있었음
아까 약도 먹었는데 스트레스에 감기기운에 서서히 어지러워지기 시작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책상위에서 잠들어버림
눈을 떠보니 내 위에는 차장님 자켓이 덮여있었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돌리니 피곤한 눈으로 일하고 계신 차장님이 보였음
대리님들은 전부 퇴근하신 듯
잠시 일하는 차장님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차장님과 눈이 마주침
"일어났어요"
"아,,네,, 깨우시지"
시계를 보니까 9시가 조금 넘었고 밖은 어두컴컴.
"깨우지 말아달라는 표정으로 자던데"
"아,,네,,"
"몸은 괜찮아요 열 나던데"
"네 좀 개운한 것 같아요"
내자리 - 차장님자리 앉아서 원격대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차장님 눈이 커짐
"어 이사원 코피나요"
황급히 책상위에 휴지 두칸 뽑아서 걸어오심
나는 놀라서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힘
"아니아니 고개 숙여요"
가까스로 휴지로 코를 막음
"아 이거 혼자보기 아까운데"
이거 = 휴지를 코에 끼운 내 얼굴
"혼자 보세요 귀하니까"
"보약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아니요 ㅋㅋㅋㅋㅋ 저 튼튼해요"
"퇴근해야죠 늦었는데"
"일은 어떡하죠...자버려서"
"했어요, 가요"
"?누가요"
"가요"
하시고는 내 등에 걸쳐져있던 자켓을 거두곤 문 쪽으로 걸어가심
나도 어서 따라나섬
엘레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 오늘도 데려다 주신다고 해서 차장님 차에 타게됨
일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머리가 닿기 무섭게 또 잠들어버림
눈을 떠보니 우리 집 주차장이었고 차장님도 운전석에서 팔짱을 낀채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붙이고 계셨음
깨우고 나가야 하는건지 나혼자 나가야 하는건지 망설이던 중에 차장님께서 고개를 드심
"일어났네"
"얼른가요 늦었어"
자꾸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민망했음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차에서 내려서 인사를 한 번 하고 집으로 들어감
ㅡ
드디어 깁스 푸는 날이 되었음
일단 출근을 하고 병원 점심시간이랑 겹치지 않으려고 점심시간보다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서 병원에 갔음
무거웠던 석고를 떼어내고 아대를 차고 시원하고 가뿐한 기분을 만끽하며 회사로 복귀함
마침 오늘 회식도 잡혀서 기분좋게 마무리하고 즐거운 금요일을 마무리하러 갔음
오늘의 메뉴 = 불닭
맵고 뜨거우니까 정신없이 마시고 먹었음
나 이대리님
테 이 블
차장님 박대리님
이렇게 앉았는데 눈이 마주친 차장님이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시곤 무슨 손짓을 하심
나는 눈으로 계속 네? 뭐요? 신호를 보냄
휴지 두칸을 뽑아서 팔을 뻗어 내 입에 살짝 뎄다 때시고 손에 휴지를 쥐어주심
그 후엔 다시 대리님들과 대화를 이어나가셨음
더우니까 대리님들이랑 차장님 모두 자켓을 벗어두고 식사를 하셨는데
술이 조금 들어가니 차장님께서 넥타이를 조금 푸심
그 후로도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마셨음
취직하고 난 뒤에 나도 덩달아 술이 조금 는 느낌
박대리님의 의견으로 2차로 노래방을 갈 생각을 하고들 계신 듯 했는데
혼자 여직원이니까 이런저런 고민도 생기고 망설여지기도 했음
세 분이서도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으심
어차피 술이 들어간다고 변하는 분들도 아니시고, 여직원 배려를 안해주시는 분들도 아니기에
대리님들 차장님들 노래실력이나 한 번 들어볼까해서 함께 가기로 함
내가 상상했던 노래방 = 보통 회식자리에서 가는 노래방 이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등학교 다닐 때나 몇번 가봤던 아주 건전한 시설좋은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음
역시 순수한 영혼들이심.. 예측하기 힘듦
노래방에 들어갔는데 워낙 사람들앞에서 나서고 그런 성향이 아니니까 박수봇으로 변신했음
박대리님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웃기셨고 이대리님은 예상외로 노래를 정말 잘 부르심
신난 와중에 차장님은 쇼파에 기대어 간간히 박수만 치시고 계셨음
전화기가 울려서 보니 오빠한테 문자가 옴
[너 어디야]
[회식]
[어딘데]
[싱잉룸]
[여자 혼자?]
[여기선 나도 남자야]
[어딘데]
[ㅇㅇ노래방]
[회식인데 ㅇㅇ노래방?]
[응 나 중학생 때 같이 왔었잖아]
[언제 들어갈거야]
[몰라 곧]
[제때제때 문자 받아]
[알겠어]
문자를 하고 있었는데 차장님이 나가심
얼마 뒤에 나도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고 나갔는데 차장님 목소리가 들림
"안 나가요"
"취향이 아니라니깐"
선 얘기인 듯 싶었음 능청스래 전화를 이어가시다가 나랑 눈을 마주침
화장실 갔다가 나왔는데 차장님이랑 또 마주침
"선 얘기인가봐요"
화장실 통로에 기대서 말없이 고개만 두번 끄덕끄덕 하심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던져 봄
"왜 안나가요? 여자분 되게 예쁘시던데"
"예쁜사람이 취향은 아니라"
"그럼요?"
"귀엽고 섹시한 스타일"
내가 화들짝 놀라니까 농담이라고 하시고는 혼자 웃으며 가심
다시 들어가서 앉아있었는데 내가 또 살짝 졸았나봄
나를 살짝 깨우셔서 문쪽으로 눈을 돌리시더니 자켓을 챙기시곤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심
대리님들께 인사를 했는데 웃으며 잘가라고 하심
"두 분이서만 계셔도 될까요?"
"원래 둘이 놀아요, 잘 놀지"
"그런 것 같기는 했어요"
"뭐 타고 갈거에요"
"가까우니까 걸어가려고요"
끄덕 끄덕 하시더니 걸어가심
갑자기 뒤 돌아보시곤 안갈건가? 하시곤 잠시 멈춰 기다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