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드ㅡ]님과 [한재호]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일곱의 봄 10 Written by. 여우 |
아름드리 벚꽃나무의 그늘이 훤히 진 운동장에 두 남녀학생이 마주앉았다. 아직도 운동장에서는 뜨거운 햇빛과 하늘색 구름을 배경삼은 학생들이 열심히 운동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이거 마셔-. 여학생은 금방 사온 듯한 시원한 음료를 성규에게 건네었고, 이내 음료캔에 맺힌 이슬이 성규의 손자락에 차갑게 맞닿았다. 아- 고…고마워-. 여학생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성규를 향해 배시시 웃어주었다. 탁-칙. 탄산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성규의 목구멍이 따갑게 식혀내려왔다. 성규는 이내 자신의 옆에 캔을 내려놓았고 촉촉히 젖은 손을 체육복바지에 쓱쓱- 문질렀다. 한아영-. 여학생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짧았지만 단단했다. 응? 성규가 다시 되물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다시 시선을 옮겨야만했다. 아마도 고개를 돌리자마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여학생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름이야, 한아영-. 아…. 성규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조물거렸다. 게다가 계속해서 자리를 고쳐앉았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하는 게 영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모습을 불안한 기색을 떨치지 못했다. 성규야-. 어…어? 아영의 달큰한 목소리가 성규의 이름을 부르자 성규는 바짝 쫄은듯이 몸을 굳혔다. "너 남우현이랑 사귀지?" 어?! 아…아닌데?! 성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고함을 쳤다. 아영은 배시시 웃으며 성규를 쳐다보았다. 앉아서 얘기해도 들을 수 있어-. 성규는 귀까지 빨갛게 익어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 아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이내 바짝 얼어붙은 성규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 알고 있어, 성규야-. 성규의 멘탈이 로그아웃되었습니다-. 아아아아악-, 오늘 벌써 두번째야…. 하루동안 두번이나 당한 아웃팅 아닌 아웃팅은 벌써 로그아웃이 아니라 아예 코드를 뽑아버린 듯 이미 구름위를 노닐고 있는 성규의 정신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아영은 그런 성규를 보면서 귀엽다는 듯 성규의 머리를 헤집어주었다. 성규는 아영의 손길에 깜짝놀라 살짝 몸을 움츠렸다가도 다시 방금전의 빳빳한 상태로 돌아와버렸다. 우현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하나…, 하…. 성규는 아영이 뱉어내는 한숨에 고개를 돌려 아영을 바라보았다. 우현이가… 뭐라고 했는데?-. 떨리는 눈빛으로 아영의 얼굴을 읽으려고 애쓰는 성규가 안쓰러워보였는지 아영은 그런 성규의 머리를 다시 헤집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 전해줘서 미안한데, 우현이랑 헤어져야겠다…." "…뭐…뭐?" "2년? 아, 너무 짧은가 3년…?" "무…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남우현이 그 정도 짝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았어? 성규는 아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되물어왔다. 나랑 우현이랑 몇년정도 친구일 것 같아? 하지만 아영은 성규의 놀란 표정같은 건 신경도 쓰이지 않는 다는 듯 예쁘게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현이가 나랑 사귀겠대-. 성규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회색빛 스탠드를 더욱 어두운 색깔로 물들였다. 나… 먼저 일어설게. 성규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한채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성규의 머리를 강타한 정신적 데미지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성규는 창피한 줄도 모른 채 그 자리를 빨리 빠져나오려는 생각으로만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하지만 아영은 성규가 떠나는 것을 막으려는 듯 이내 자리를 피하려는 성규의 팔을 잡아끌었다. 다 듣고 가지? 성규의 떨리는 눈동자는 갈 길을 잃은 채 어른거리는 아영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이거 놔 줘…. 성규의 부탁에도 아영의 손길은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끝까지 듣고가랬잖아-." "이거 놓으라고…." "소속사에서… 남우현이 동성애자 인 걸 알고도 가만 있을 것 같아? 넌 지금 남우현 꿈을 빼앗고 있어." "…헤어져…줄테니까 그만…하라…고." "…네가 헤어져 주는 게 아니야. 정확히는 까인…거지?" "그만 못해…?" 악-. 성규가 차오르는 분노에 팔을 잡아뺐다. 그 탓에 넘어져버린 아영은 성규를 눈물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지만 성규는 아랑곳없이 아영을 노려보았다. 여자 상대로 이러는 것도 우습다…. 성규는 몸을 돌려 운동장으로 뛰어가려 했건만, 성규의 앞에는 얼마나 뛰었던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우현이 서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는 우현은 성규의 등 뒤로 쓰러져 울고 있는 아영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 성규는 자신의 팔목한 번 쳐다보지 않고 아영의 곁에 주저앉아버린 우현으로 인해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성규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야, 남우현-. 성규의 부름에 고개를 든 우현의 눈가에는 실망의 기운이 역력했다. 지금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어? 성규의 목 끝까지 우현을 타박하는 목소리가 차올랐다. 하지만 성규는 끝내 그 말을 잇지 못했다. 성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금니를 꼭 깨문 채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 뿐이었다. 성규는 다시 뒤돌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어나갔다. 성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람에 차마 우현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기에 한 번 심호흡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네꺼내꺼 구분 못 하는 게 아니었네. 자기 물건은… 어떻게서든 지키는 놈이었네." 김성규, 너 무슨 말이야?-. 우현의 질문에도 성규는 단지 걸어나갈 뿐이었다. 계속해서 성규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성규는 꾹꾹 울음을 참아냈다. 오늘은… 오늘은, 조퇴해야겠다. 성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천히 수돗가로 걸어나갔다. 세수라도 하지 않으면 쿵쾅대는 심장이 아무래도 얼굴까지 터뜨려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뒷편, 아무도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수돗가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밀려오는 서러움에 도무지 울음을 멈출수가 없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폭 감싸버렸다. "흐으…윽, 으으…. 하…으, 진짜…아…." * 성규는 다행스럽게도 조퇴를 내주신 담임선생님덕분에 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터덜터덜 교문을 빠져나가는 성규의 등 뒤로 움직이는 아이들은 아직도 황토빛 흙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공을 피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공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그 모습은 현재의 기분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성규에겐 사치처럼 보일 뿐이었다. 성규는 접어올렸던 체육복이 언제 풀려내렸는지도 모르게 흘려내려있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조퇴해? 성규의 어깨 위로 긴 팔이 둘러졌다. 성규는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누군가를 알아채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이성…종? 성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깜빡여보았지만 자신의 앞머리가 길게 내려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 손으로 앞머리를 흩뜨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이성종이었다. "뭐…야. 조퇴는 아닌 것 같고… 설마…." "빙고." "…학교로 돌아가…. 괜히 제대로 조퇴한 나까지 욕먹어." "욕먹어야지." "뭐?" "이제부터 나랑 진짜 놀꺼니까." 뭐…뭐? 성종은 성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나…나 체육복인데? 성종은 앞서가던 발을 멈추고 뒤돌아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귀엽게도 갑자기 멈춘 성종탓에 제자리에 서서 멀뚱멀뚱 성종을 보고있었다. 아 괜찮네, 뭐-, 충분히 예쁘네. 성종은 자신 혼자 만족한듯이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성규를 끌어다 꼭 안아주었다. 자- 이제 기분 다 좋아졌다고 생각해, 놀자-. 성종은 다시 성규의 손을 잡고서 앞장서걸었다. 담쟁이넝쿨이 길게 뻗쳐올라온 학교담을 거닐다 결국 성규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성종은 무거워진 팔에 다리를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성규의 어깨는 벌써부터 들썩이느라 바빴고, 한 손으로 감싼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성종은 말 없이 성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울어-, 울어 성규야. "나…나는 정말… 그렇게 사랑하지…않는다고…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 너무 비참한 것 같아…. 드라마에서 멍청한 여자들이 당할 때 엄청 비웃었는데…, 나… 흡…흑. 나 너무 멍…청해…흡…." "괜찮아, 괜찮아-." "정말…흐윽…. 나 우현이… 정말로… 좋아했나봐…. 그냥… 보슬비인 줄…알고…맞으려 했는데… 흐읍, 흡. 벌써… 다…다 젖어버렸어. 성종아-, 나 왜 이러지?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흡, 고통스러울 줄… 몰랐어…. 하아…, 우리 형한테 너무 미안해… 흡, 성종아…." 성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성종은 그런 성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의 앞에 함께 털썩 앉았다. 성규는 그런 성종의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같이 앉아 있으면 덜 창피하잖아-, 멍청아. 성규는 바보같이 웃어주는 성종때문에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참을 수 없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울음이 입술 새로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결국은 큰 소리를 내며 성종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성규는 아무말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스하게 등을 토닥거려주는 성종이 마치 어릴 적 자신을 안아야만 잠을 잘 수 있다며 좋아하던 명수처럼 느껴졌다. 물론 다 지나간 이야기인 것 처럼-, 성규는 분명 지금 이렇게 괴로운 일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지금만큼은…, 지금만큼은 정말 괴로우니까. "성종아-, 나 이제…어떡…하지."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면 되지, 멍청아-." 성규는 멍청하다면 멍청하다고 느껴질 성종의 웃음을 보면서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그래- 예쁘다. 어이없는 성종의 태도로부터 비롯된 웃음인것을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성종은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이리저리 얼굴을 닦아주었다. 혹시나 세게 닦으면 생채기가 날까, 동그랗게 말아 톡톡 닦아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성규는 자신의 얼굴을 닦아내주던 성종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마워-, 정말로. 성종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어주더니 먼저 일어서 성규를 일으켜세워주었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데-. 성규는 성종의 손을 잡고 일어나 성종의 앞에 바로서더니 활짝 웃어주었다. "학교 빼먹고 놀아줘서…. 오늘 하루는 너한테 양보할게, 재밌게 부탁해." |
*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허허, 오늘은 일찍 찾아왔지요?
이거 쓰느라 답답글이 조금 늦었습니다!
답답글은 지금 바로 달러가요~
그대들이 재밌게 읽어주신다는 댓글 하나만 남겨주신다면
저는 행복해마지 않는답니다!
허허허, 그리고 2학기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구요..
ㅠㅠㅠ.. 전교 10...등.. 을.. 자꾸 겉도는 게 가슴이 아퍼서
엉엉, 해야겠어요, 해야겠단 말입니다!!
허허허헣, 아잌- 그대들. 제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쓰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ㅠㅠㅠㅠ 그래도 3~4일에 한 번은 웬만하면 올리겠습니다!
허허허, 감사드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