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가장자리w.레녹 1."우리, 헤어질까?" 주위가 시끄러웠지만 그 말은 왠지 모르게 내 귓속에 꽂혀들어왔다. 백현이는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분홍색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반쯤 남은 초코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가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백현이는 사르르, 녹은 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늘 가장자리만 숟가락으로 퍼먹곤 했다. "백현아, 아이스크림 녹아." 백현이가 놓은 숟가락을 집어 백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백현이는 숟가락을 쥐고 나를 올곧이 쳐다보았다. 나를 노려본다거나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몇 달전 슬픈 영화를 같이 봤을 때의, 그 때의 눈빛이었다. "니가 좋아하는 가장자리." 내 숟가락으로 퍼서 입가에 가져다주었지만 백현이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두 어번 깜빡거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벌렸다.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먹고 백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찬열아. 우리, 연락하지말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목이 아파왔다. 심한 목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목 안이 뻑뻑해져왔다. "사실 너랑 나랑, 무슨 사이인지 잘 모르겠어." 백현이는 그 말만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무의자가 바닥에 긁혀 듣기 싫은 소릴 냈다. 아이스크림 집을 나가는 백현일 잡지 못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가고 있었다. 녹아서 흐물흐물해지는 것이 꼭 나와 백현이 같다고 생각했다. 흐물흐물.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것.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인도 아닌.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의 가장자리같던 우리는, 이제는 완전히 녹아 물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물이 되는 걸 빤히 쳐다보다가, 백현이의 숟가락과 내 숟가락을 아이스크림 통 안에 집어넣었다. 2.그 뒤로 정말 백현인 연락이 없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잊지말고 우산을 챙기라고 문자를 넣으려다가, 문득 우리가 헤어진 걸 깨닫고 홀드키를 눌렀다. 그 때의 씁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문자를 입력했다가 이내 홈버튼을 누르는 일도 잦아졌다. 아, 정말 우리는 헤어진 것이구나.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3.백현이와 나는 같은 회사동료였다. 카페모카를 유난히 좋아하던 백현이였기에 난 커피심부름을 할 때마다 사무실 직원들의 아메리카노들 사이에 백현이 몫인 카페모카를 꼭 챙겨오곤 했다. 가득 올려진 휘핑크림을 빨대로 저어 녹이며 백현이는 나를 살짝 보고 웃곤 했다. 헤어진 지금도, 나는 백현이의 카페모카를 챙겼다. 백현인 나를 흘끔,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백현이에게 나도 고개를 까딱, 숙여보였다. 고개로 인사를 한다는 것. 우리가 헤어졌다는 증표였다. 백현이와 나 사이에, 좀 더 멀어진 거리. 커다란 사탕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목이 메어왔다. 4.갑작스레 백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보고싶다. 내가 문자를 확인해서 숫자 '1'이 사라졌지만, 나는 곧장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쉽사리 답장을 보낼 수가 없는 사이까지 되어버렸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홀드키를 눌러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잠깐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을 쳐다봤다가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뉴스 속보가 떴다. 다리가 무너졌다고 했다. 넥타이를 메다 말고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그 다리는, 백현이의 집과 회사 사이를 잇는 다리였다. 화면 왼쪽 상단에 뜬 시간을 확인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백현이가 늘 출근하는 그 시간이었다. 한 몇 초간은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다. 그냥, 눈물이 터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닐 걸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면서도 불안해하는 내가 싫었다. 방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쥐었다. 홀드키를 누르고, 백현이의 번호를 내 집 번호마냥 익숙하게 눌렀다. 백현이가 좋아하던 여가수의 노래가 흘렀다. 노래가 두 번쯤 반복되어도, 백현이의 목소리는 들리질 않았다. 그 뒤로 몇 번이나 통화버튼을 누른 지 모른다. 회사에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사무실에 들어서고 나서도.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에야, 나는 전화하는 걸 멈췄다. 백현이는, 출근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입사하고, 2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5.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집에 들렀다.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서, 백현이의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다다른 백현이의 현관문에 달린 우유주머니 안에는, 오늘 아침 배달된 우유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신문도 현관문 앞에 놓여있었다. 다시 나는 자켓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백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흔아홉번 째 전화였다. 처음으로 음성메시질 남겼다. 보고싶다. 백현이의 집 앞에서 한 시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가방에서 노란색 메모지를 꺼냈다. 볼펜으로 '이거보면 연락 좀 해.' 하고 휘갈겨썼다. 백현인 내 글씨를 보며 악필이라고 낄낄대며 웃곤 했다. 그래 놓곤 내 편지를 보며 감동받았다고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휘갈겨 썼지만 백현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메모지를 현관에다 붙이고, 신문 옆에 아이스크림 통을 놓았다. 내일, 다시 왔을 때는 우리 보지 말자. 아이스크림 통을 내려놓고, 메모지와 아이스크림 통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내내 뒤를 몇 번을 돌아봤는지 모른다. 내가 코너를 돌아 뒤를 돌아보아도 백현이의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현이의 집의 창문은 끝끝내 밝아지지 않았다. 어깨가 또다시 축, 처졌다. 그러나 다음 날. 백현인 또 나타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백현이 몫의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주인 없는 책상에, 테이크아웃 잔이 놓여졌다. 이제 나는 백현이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보고싶다. 전송. 어디야? 전송. 그렇게 문자를 한 열통 쯤 보냈을까, 동료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내가 고개를 들자 말 없이 사무실 한 켠의 벽걸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파란 배경에 하얀 글씨로 실종자 명단이 떴다. 두번째 줄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변백현. 아아, 저기에 왜 니 이름이 있는 거니, 백현아. 심장이 또 한번, 내려앉았다. 6.초코 아이스크림을 샀다. 백현이의 집으로 갔다. 안 보길 바랬던 메모지와 아이스크림 통이 그대로 놓여져있었다. 다시 메모지에다 메모를 쓰고 현관문에 붙였다. 보고싶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백현아. 문자를 보낸 시간 옆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지? 전송. 실종자 명단에 뜬 이름, 너 아니지? 백현인 듣지 못할 물음을 했다. 7.백현이의 최근 문자를 읽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아침 일곱시 사분. 사고가 일어난 직후였다. 일을 하다말고 나는 종종 책상에 엎드려 소리죽여 울었다. 고개만 들면 빈 백현이의 책상이 보여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백현이의 몫으로 내가 사온 카페모카 컵들만 쌓여가고 있었다. 보고싶다.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백현이가 읽지 않은 문자들도 쌓여가고 있었다. 8.아침, 사망자 명단에 백현이의 이름이 떴다. 그제야 나는 백현이의 책상위에 쌓여가던 카페모카 잔들을 치웠다. 테이크아웃 컵들이 쌓여있던 백현이의 책상 위로 하얀 국화꽃 여러 송이가 놓여졌다. 세면대에 카페모카를 버리면서, 나는 울었다. 목이 뻑뻑해져왔다. 마지막 카페모카를 버리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화장실에 내 울음소리가 울렸다. 지금이라도 백현이가 나타나 왜 우냐고, 내 어깨를 두드려줄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백현이 몫의 커피를 사고, 백현이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사고, 문자를 보냈던 내 모든 행동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백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9.퇴근길에 백현이의 집에 들렀다. 여전히 백현이의 집은 깜깜했다. 괜히 잠겨있을 것을 알면서 현관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백현아. 문고리를 돌리며 백현이를 불렀다. 나야, 백현아. 지금이라도 백현인 문을 열고 나를 반길 것만 같다. 현관문 앞에, 주저앉았다. 잔뜩 쌓인 신문들을 대충 옆으로 치워냈다. 오는 길에 사왔던 아이스크림 통의 뚜껑을 열었다. 가장자리가 녹아있었다. 같이 챙겨온 분홍색 숟가락으로 가장자리만 퍼냈다. "백현아, 니가 좋아하는 가장자리." 현관문 앞으로 숟가락을 내밀었다. 그때처럼, 백현이가 입을 벌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해서, 백현인 내 대답도 듣지못하고 그렇게 갔다. 바람이 불었다. 현관문에 다닥다닥 붙은 노란 메모지가 팔랑였다. 10.퇴근길에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집을 들렀다. 초코 아이스크림을 샀다. 일년 만이었다. 백현이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었다. 녹은 가장자리를 퍼내 입 안에 넣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바람에 벚꽃잎이 꽃비가 되어 거리에 내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잠시 멈췄을 때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백현이에게 사진을 보냈다. 시간 옆에 숫자 '1'이 떴다. 백현이가 가고 처음 맞는 봄이었다. 사진을 보내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전송. -오랜만입니다!전에 짧게 조각조각 써놓았던 것들을 이어서 단편으로 올립니다.사실 이건 kbs 드라마스페셜 '딸기 아이스크림' 에서 모티브를 따왔어요.혹시 보신 분 계세요? 혼자 밤에 보면서 끅끅대면서 울었는데...ㅠㅠ 근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포인트가 생겼네요?어느 정도가 적당한거에요 이거?.? 그냥 10p 정도로 해놓을게요. 요즘 날이 너무 덥죠ㅠㅠ 진짜 너무해ㅠㅠ 비도 안와ㅠㅠ다들 건강 챙기세요! 그럼 이만 총총!다음 글[EXO/찬백] 루머주의보 112년 전 레몬녹차 l 작가의 전체글 신작 알림 설정알림 관리 후원하기 이 시리즈총 0화모든 시리즈아직 시리즈가 없어요최신 글최신글 [EXO/오백] 배트와 글러브 B 712년 전위/아래글[EXO/찬백] Fashion, Paasion 16 3612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5 2612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4 3212년 전[EXO/찬백] 갤러리 속 소년 1312년 전[EXO/찬백] 루머주의보 1 812년 전현재글 [EXO/찬백] 보고싶다. 사랑한다. 전송 3012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3 7213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2 2713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1 4413년 전[EXO/찬백] Fashion, Passion 10 5513년 전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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