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사귀기로 한 날부터, 찬열은 꼬박꼬박 백현에게 모닝콜을 했다. 저딴에는 아주 다정한 남자친구 역할을 행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아침잠이 많은 백현으로서는 아주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여느 날 같이 아침일찍 전화를 한 찬열에 백현이 잔뜩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굿모닝!" 지도 방금 일어났는지 잔뜩 잠긴 목소리이면서 굿모닝이라니. 찬열을 비웃은 백현이 잘잤냐, 내 꿈 꿨냐, 신난듯이 재잘대는 찬열의 말허리를 동강 잘라냈다.
"지금 몇신지 알아?"
"일곱시 칠분이요! 칠칠! 럭키세븐! 우와!"
"럭키세븐이고 나발이고 나 잠 좀 자자."
까칠한 백현의 말에 놀랐는지 찬열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박찬열, 자?" 백현의 물음에 잔뜩 의기소침한 찬열이 "아뇨…." 하고 대답했다. 어휴. 잔뜩 심통난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이 한숨을 쉬었다.
"나 아침잠 많은 거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그럼 이제 부터 모닝콜 해야되요, 안 해야되요?"
"안 해야되요."
큼, 큼. 잔뜩 심통이 났으면서도 백현이 묻는 데에는 곧잘 대답하던 찬열이 갑자기 목을 가다듬었다. "뭐해?" 백현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던 찬열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수들에게는 문외한인 백현도 알고 있는 유명한 가수의 노래였다. 노래에서 꿀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달달한 노래였다.
"우와, 너 노래 잘한다."
의외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던 백현에게 찬열은 하던 노래를 멈추고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얼른 다시 자요. 자장가 불러주는 거니까."
그 말에 백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헐, 뭐지. 마음 깊숙이에서 깃털이 하나 내려앉았다가 숨쉴때마다 포르르, 올라오고 다시 가라앉고. 뭐 어찌됐든 말로는 형용못할 간질거림과 두근거림이 백현의 마음 속에서 공존했다. 찬열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낮은 목소리와 달달한 노래가 조화를 이루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잠을 어떻게 자! 울상을 지은 백현이 제 가슴께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자요?"
노래를 마친 찬열은 혹시나 백현이 다시 잠들었을까 싶어 작게 전화기에다 대고 속삭였다. 백현은 "아니, 안자."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곧 들려오는 찬열의 목소리에 다시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잘 자요. 사랑해."
아, 나 죽네에. 백현이 끊긴 전화기를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누가 안정제 좀 주세요….
-
백현은 7시 7분, 럭키 세븐 찬열의 전화를 받고나서는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던 잠기운들을 날려보냈다. 됐어, 찬열이가 깨워줬는데 일어나야지! 백현은 기지개를 펴며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열었다, 가 다시 닫았다. 아, 너무 춥잖아! 제 양팔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백현은 주방으로 나갔다. 아침 먹고, 출근해야지. 냉장고에서 달걀 두 알을 꺼낸 백현이 후다닥 스크램블을 만들어냈다. 절대로 프라이를 못 뒤집어서 스크램블을 한 게 아니다. 진짜 스크램블 좋아해서 그래. 백현은 하얀 접시에 스크램블을 담아넣고 토마토케첩으로 웃는 얼굴 모양을 그려냈다. 찬열이 닮았네. 작게 중얼거린 백현이 아까 전 찬열의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아, 나 어떡해!
스크램블을 먹고난 백현이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얼른 출근해야지! 코트를 입고 크로스백까지 맨 백현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바람은 겁나게 추웠지만 백현의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찬열이의 노래로 중무장! 뱃속은 스크램블로 중무장! 백현은 팔랑팔랑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백현은 잘나가는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운전을 못했다. 물론 면허증은 있었으나 그는 장롱면허였다. 대학 입학했을 때 면허를 땄으니 어언 운전대를 안잡은지도 꼬박 7년이었다. "아직도 운전 안해?" 하고 주변에서 놀려대도 ─특히 김민석.─ 백현은 꿋꿋하게 버스를 타고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뭐 어때서!
초록색 앙증맞은 마을버스는 백현의 집에서 회사까지 단 한번에 가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환승 한번도 안해도 돼!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기특한 버스에서 내린 백현은 곧바로 불어오는 찬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백현은 찬열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데웠다. 히히. 백현의 하얀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좋은 아침!"
수정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팔랑팔랑 걸어 제 작업실로 들어가버리는 백현을 보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아니, 우리 디자이너님 맞는거야? 다른 사람 아냐? 수정은 문이 닫힌 뒤에도 닫힌 문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잠깐 제 손등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분명히 어제도 저에게 혼쭐을 내던 사람이었다. 수정이 멍하게 눈만 깜빡이다, 백현의 호출에 경기를 일으키듯 벌떡, 일어나 백현의 작업실으로 들어갔다.
"수정 씨. 홍차 좀 내줘."
백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홍차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수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찬열 씨는 디자이너님한테 독을 선물한거야. 찬열 씨가 홍차를 선물로 사왔을 때부터 무슨 조짐이 보였어. 수정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백현의 작업실을 나갔다. 수상해, 수상해. 홍차를 타는 내내 수정은 연신 중얼거렸다.
"고마워."
수정이 내온 홍차를 한 모금 홀짝인 백현이 또 함박 웃음을 지었다. 분명 수정의 표정이 묘한 것 같았지만 지금 하이텐션인 백현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얼른 옷을 완성해서 모델에게 입혀봐야했다. 바쁘다, 바빠. 백현이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뒤적이며 안감부터 악세사리, 모델들의 스펙까지 다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전 싸구려 안감으로 혼쭐이 났던 그 후로 안감은 싹 바뀌어있었다. 만족. '참 잘했어요!' 도장을 다섯 번은 찍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백현이 다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마법의 홍차. 일이 술술 풀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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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칠개월만인 Fashion, Passion!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던 Fashion, Passion을 다시 쓰게해주신 패릿님께 감사드립니다!
전에 조금씩 쓰던 걸 어제 새벽 댓글을 보고 열심히 몰아서 써봤어요.
생각보다 술술 잘풀리더라구요? 혹시 마법의 댓글? ㅋㅋㅋㅋ
꽤 진도가 많이 나갔답니다. (뿌듯뿌듯)
댓글 달아주신 행쇼님, 니은님, 그 외 두분! 감사드립니다.
그간 우울한 글만 올렸는데 다시 달달함을 되찾으려나봐요!
요즘 날씨가 아침저녁이랑 낮이랑 변덕이 심해 감기 걸리시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전 이미 걸렸지만요.
그럼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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