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김동혁 정보 바탕으로 김한빈이 자세한 계획은 짜서 알려줄 거야, 내가 알려주는 건 여기까지.”
그는 다리를 쭉 뻗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여유롭게 소파에 늘어진 지원 오빠와 달리 나는 점차 초조함이 몰려왔다. 최대한 빨리 작전을 진행해야 했다. 아마도 내일, 아무리 늦어도 모레쯤이면 타이타닉 침몰 계획이 적힌 AFT의 기밀문서가 우리의 수중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다. 문서가 있어야 AFT의 계획을 파악할 수 있고, 그를 토대로 김동혁이 침몰을 막을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이며 입을 꾹 다무는데, 지원 오빠의 손이 내 입가로 올라왔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천천히 훑었다.
“입술 다 망가져, 뜯지 마.”
또 무슨 오그라드는 말을 하려나, 하던 참에 그가 건넨 말은 의외로 담백했다. 그런데도 내 얼굴을 감싼 그의 손길은 끈적했다. 나는 민망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뒤로 뺐다. 그 모습을 본 오빠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왔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내 얼굴에도 그것이 느껴졌고, 훅 다가온 열기에 괜히 몸이 굳었다.
“아, 안 뜯을게요. 일단 오빠, 나 좀……”
“좀 뭐,”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깝게 밀착되었고, 당황하여 고개를 뒤로 빼려 애쓰는데, 볼이 그의 손에 잡혀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끈적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다가왔고, 이내 입술에 촉 하고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카지노의 룸이었다. 키스가 길어진다 하더라도 분위기상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입술은 한번 가볍게 닿은 이후로 금세 떨어졌다. 다시금 가벼워진 입술에 살며시 눈을 뜨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뜯지 마, 응?”
그는 씩 웃으며 내 입술을 다시 쓰다듬었다. 분위기가 또 이상해지려 했다.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내 입술 위에 올라온 그의 손을 잡아 내리려 팔을 올렸다. 그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 하는 거야?”
한빈 오빠였다. 그는 내 얼굴을 붙잡고 있는 지원 오빠를 위아래로 쓰윽 훑더니, 당당한 걸음으로 거침없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심기 불편한 시선을 유지하며 건너편 소파에 걸터앉았다. 한 점 부끄럼 없이 나를 꿰뚫어 보는듯한 그의 눈길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에이, 분위기 다 버렸네.”
지원 오빠는 내 뺨을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나는 눈만 굴리며 한빈 오빠와 지원 오빠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뭐 씹은 듯한 얼굴로 우리를 주시하던 한빈 오빠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놀러 온 거 아니야, 장난치지 마.”
“임마, 장난 아니었어. 하긴, 네가 뭘 아냐.”
이에 지원 오빠는 능글맞게 대꾸하고는 나른한 몸짓으로 기지개를 켰다. 순간, 지원 오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한빈, 너 소매 뭐야.”
수트 재킷 밑으로 살짝 삐져나온 한빈 오빠의 와이셔츠 소매 끝자락에 검붉게 번진 자국이 눈에 띄었다. 피 묻은 물체를 꾸덕하게 짓누른듯한 핏자국에, 점점이 방울진 흔적까지. 나는 벌떡 일어나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한빈 오빠는 놀란 눈치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애매하게 그의 팔을 잡은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힘이 자연스레 빠졌고, 스르륵 그의 팔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에반스 사살 중 구준회가 부상을 입었다.”
지원 오빠는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한빈 오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수트 재킷 자락을 잡아당겼다. 수트 밑에 살짝 비치던 피 묻은 와이셔츠 소매는 재킷에 가려졌다. 더 이상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작전은 성공했으나, 반격해온 에반스 때문에 팔에 총탄을 맞았다. 응급조치는 내가 취했고, 미리 매수해둔 청소부가 사건 현장을 치웠다. 지금 구준회는 객실에서 휴식 중이고.”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결국, 나 때문이었다. 내가 괜히 그의 정체를 밝힌답시고 나서지만 않았다면, 그는 이 불필요한 작전을 수행할 일도 없었을 터였다. 물론, 제 앞가림은 할 수 있는 구준회였지만, 부상은 부상이었다. 이번 일의 원흉을 내 탓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죄책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저 눈치만 살피며 다시 소파에 애매하게 앉았다. 한빈 오빠는 건너편 소파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눈길을 피하려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내 어깨에 와 닿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가, 걱정돼?”
“그럼, 애가 다쳤다는데……. 제가 괜히,”
대답하려던 나의 목소리는 지원 오빠에 의해 막혔다.
“응급처치했으니까 괜찮아. 저격수 새끼가 다치는 거 한두 번이라고. 어차피 구준회, 이번 작전에서 할 일도 많이 없는데, 다친 김에 쉬라지, 뭐.”
“그래도 총 맞은 거면……”
“괜찮아, 이미 벌어진 일 걱정해봐야 아가 속만 상해요. 너무 마음 쓰지 마.”
나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구준회는 이미 총에 맞았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상처가 나아질 것은 아니었다. 객실에 가면 간호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식 정보요원으로 투입되기 전, 나는 온갖 종류의 상처를 치료하고 간호하는 법을 배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바벨탑의 설계자’ 멤버들이 그랬다.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 정보요원의 삶이었다. 나는 다행히 작전 수행 중 크게 다친 적은 없었지만, 다친다고 하더라도 바로 응급처치를 진행할 만큼 능숙함을 보일 자신이 있었다. 구준회의 총상을 간호하는 것 역시 자신 있었다. 그거라도 해줘야지, 미안함에 못 버틸 것 같았다.
“가자.”
순간, 한빈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데리러 오는 거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객실까지 데려다준다고. 김지원, 형은 다시 카지노로 가. CCTV 확인하니까 일하던 중에 튀었더만. 포커 테이블 난리 났던데.”
지원 오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나는 가야지, 먼저 간다, 말하며 그는 룸을 나갔다. 단둘이 남은 룸에서 나는 어색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가자.”
“…네에.”
쿵쿵거리는 카지노를 뚫고 나는 한빈 오빠를 따라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아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를 대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래, 이것이 진짜 김한빈이었다. 서울 숙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준비하던 모습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칼 같은 리더, 그것이 김한빈이었다. 시답잖은 얘기를 건네기도, 농담을 하기도 어려운 상대. 그래야만 ‘바벨탑의 설계자’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는 바벨탑의 주인이었으니까.
“구두.”
그의 목소리가 순간 복도에 울렸다. 맞다, 구두. 그날. 에반스를 만나고 온 그 날, 칵테일바에 가서 쉴 새 없이 칵테일만 퍼마시다 뻗고 한빈 오빠 등에 업혀온 날. 아침에 한빈 오빠에게 혼나며 정신이 없었던 탓에 구두를 그의 방에 두고 객실용 슬리퍼를 신고 돌아왔더랬지.
“오늘이나 내일, 시간 나면 내 객실로 와서 받아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받으러 가야 하나, 싶었는데, 기억하고 있었구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준 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할 일이 없을 때, 천천히 받으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네, 알았어요. 오빠, 그럼 들어가세요.”
나는 객실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는 뒤에 서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끝까지 나를 향한 그의 시선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 그 비스름한 것이라도 해야 했다.
“……죄송해요.”
“들어가서 쉬어라, 구준회랑 같이. 내일이나 모레 다시 연락할게.”
문이 닫혔다.
객실은 조용했다. 구준회는 어디 있나, 하고 안을 살폈다. 혼자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어색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지, 생각하니 우스워졌다. 정식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었는데, 단체 작전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람을 찾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거실은 한적했고, 화장실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왼쪽 침대의 이불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침대에 앉았다. 이불 한 귀퉁이 밑으로 정갈한 구준회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불을 살짝 들쳤다. 그는 하얀 반소매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쌕쌕 숨을 쉬었다. 하얀 팔에, 깔끔하게 감긴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쓰렸다. 아프겠다. 아프겠지, 총에 맞았는데.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곤히 잠든 그의 볼을 쓸었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하얗고 곱기만 한 피부가, 생각보다 까칠했다.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가만 내려다보는데, 입꼬리가 꿈틀한다. 눈매도 살짝 찌푸려지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움찔하며 손을 내렸다.
“깼어? 자, 자.”
“……아니야.”
평소보다 한 톤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한빈 오빠가 나에게 연락한 것은 약 두어 시간 전이었다. 구준회의 피가 튄 소매를 제대로 닦거나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나를 데리러 카지노로 온 것이었다면, 구준회가 객실에 머무른 시간도 짧았을 것이었다. 기껏해야 한 시간밖에 못 잤겠네.
“많이 아프지.”
“괜찮아. 처음 다친 것도 아닌데.”
“나 속상하게, 이게 뭐야. 조심하라고 했잖아. 저격이라 다칠 걱정 없다며, 다 허세였냐.”
괜히 투덜거림을 늘어놓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팔을 올려 내 뺨을 쓰다듬었다. 이불을 덮고 있어 열이 올라 그런지, 그의 손가락은 뜨거웠다. 그의 손가락이 내 뺨 언저리에서 맴돌더니, 입술 옆을 살짝 훑고 미끄러졌다.
“괜찮다고 했잖아. 왜, 괜히 오빠 걱정되냐?”
“그럼, 걱정 안 되겠어? 지가 다쳐서 와 놓고.”
“그러면 나 물 좀 가져다 주라. 목마르다.”
그는 핏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요, 나는 그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방을 나가기 직전, 무심코 뒤를 돌았다. 잔뜩 찌푸린 구준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통에 찬 표정. 나는 보지 못한 척,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티 안 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겠지. 그런 내색을 안 비쳐서 그렇지, 많이 아플 것이 분명했다. 구준회와 내가 같은 객실을 쓴다는 것이 이다지도 감사한 일은 처음이었다. 그를 봐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암호닉 |
(계속 신청 받습니다, 가장 최근글에 신청해주세요. 신청했는데 안 올라가 있거니 잘못 올라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비회원 신청도 받아요) 바벨탑 / 신 / 주내 / 마그마 / 토마토 / 준회원 / 준회 / 카누 / 준회(오빠) / 뿌요를 개로피자 / 꾸주네 / 둡우 / 숨소리 / 쓴다 / 동그라미 / 구주네 / 87주내 / 메추리 / 극찬준회 / 아침 / 밀실의 저격수 / 환생 / 시작 / 쭈꿁히 푸 / 코튼캔디 / 랄랄리 / 코드넘버_1221 / 꾸꾸 / 위저드 / 됴아 / 뽀로로 / 이퓨 / 김냥 / 거난영 / 예이 / 엽떡 / 까까 / 정수정 /기맘빈 / 느낫해 / 말랑 / 호빗 / 스벤 / 찌푸 / 유메 / 티록신 / 반지 / 이부 |
더보기 |
안녕하세요, 맥심화이트골드예요! 아이콘이들이... 데뷔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드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석함탈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행복하군요 떡밥이 우수수 쏟아져서 정신 못차리고 있습니다 요즘 8ㅅ8 아참 추석은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늦게 와서 죄송하구요..ㅎㅎ 대신 다음화는 일찍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당 많이 기대해주세요 :) 사랑해요 독자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