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아니, 민윤기. 좆같이 굴지 말라 했잖아.”
여자는 테이블 옆 의자에 다리를 꼬아 앉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여자의 말엔 언뜻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항상 그런 험악한 대화를 이어왔던 사이였기 때문에 남자는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여자의 얼굴에 손바닥을 냅다 휘갈겼겠지만(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맞아줄 여자는 아니었다), 자신과 여자의 사이가 꽤나 깊었고, 여자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아슬아슬한 관계도 계속해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럼 내가 잘못한 거냐?”
“누가 거기서 냅다 총 갈기래?”
“내가 호구 새끼냐? 그쪽에서 먼저 갈기려고 하는데, 어? 그럼 눈 뜨고 멍청하게 가만히 있냐?”
“그럼 네가 호구 새끼지 뭔데. 말로 잘 구슬려야 될 거 아냐. 그 새끼들 소담이 고객이라고……. 돌아가서 짜증 받아주게 생겼네.”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고, 그 대답엔 한껏 짜증이 담겨있었다. 씀씀이가 좋던 고객을 놓쳐버렸는데 어찌 짜증 나지 않을 사업가가 있을까. 여자의 짜증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남자가 상체를 일으켰다.
“삐쳤냐?”
남자가 물었다.
“돌았냐?”
여자가 대답했다.
이에 남자는 아님 말고,라는 속 편한 말을 하곤 침대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리곤 이 방이 제 방이라도 되는 듯이 익숙하게 와인셀러를 둘러보다 레드와인 한 병과 와인 잔 두 개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주 네 집이지?”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따지냐.”
“닥쳐, 좀.”
여자는 험악하게 말하면서도 오프너로 코르크를 땄다. 이에 남자가 병을 손에 들어 잔에 따랐고, 여자는 턱을 괴며 잔에 담기는 와인을 쳐다보았다. 오늘 손해 본 금액만 해도 얼마지, 민윤기를 죽여, 살려,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마실 기분 아닌데.”
“그러면서 손에 잔 들고 있잖아.”
“시발 새끼.”
여자의 말에 남자는 비웃음 같은 웃음을 흘리고 여자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맑았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그다지 맑지 못 했다. 맑은 분위기를 바라는 것도 웃기지만.
잔에 있던 와인이 여자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 목을 적셨다. 붉은 립스틱과 와인이 뒤섞여 어느 것이 와인이고 어느 것이 립스틱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손에 있던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엄지손가락으로 여자의 입술을 훑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성이름. 오늘 담배 냄새가 안 나는데.”
“……그래서.”
“피우지 말라 했더니 정말로 안 피우는 거냐?”
“내가 네 말을 왜 듣는데.”
“귀엽게 굴긴.”
여자는 자신의 입술에 머물러있던 남자의 손을 치워내고 의자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향했다. 이를 놓칠 새라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나가.”
“너 같으면 같이 있고 싶겠냐?”
“같이 있고 싶으니까 지금 여기 있잖아.”
“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손 놔.”
여자의 날카로운 말에 남자는 손을 여자의 허리로 옮겨 뒤에서 여자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기를 달래듯 꽤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꽃이 또 왜 이럴까, 응?”
“내가 우리 애들이랑 나랑 같은 취급하지 말랬지.”
“아, 잘못했어. 화 풀어라, 좀.”
남자는 여자를 달래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여자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남자의 행동에 따라 침대 위에 누웠고, 여자의 위엔 자연스럽게 남자가 올라탔다. 이에 여자는 남자를 짜증 난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내려가.”
“내가 미쳤다고 내려가냐?”
“아, 좀!”
“그만 튕겨라.”
“…….”
여자는 남자의 말에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여자가 아는 남자는 정말로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고, 안 한다고 하면 안 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튕기는 것 자체가 씨알도 안 먹히는 남자였다. 아마 여기서 자신이 거부한다면 정말로 남자는 자신의 위에서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 또한 끝일 것이다. 벌써 남자가 쳐둔 거미줄에 걸려버린 자신은 벗어날 길이 없었고, 이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여자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곤 나지막하게 남자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좆같은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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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좋으면서 튕기는 여주와 그걸 받아주는 민윤기를 생각하며 썼지만 결과는.. 별별..
정말 이 장르는 저와 맞지 않는 거 같은.. 어두운 건 역시ㅜㅠㅠㅜㅠ 밝은 걸 써야겠어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작가의 멘탈과 함께 글은 망해버렸다고..☆
암호닉S2
[바나나] [망고] [흥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