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왔다.
집배원이 들렀다 간 건지 싸늘함만이 가득했던 우편함엔 편지 한 장이 덜렁 놓여있었다. 그 편지가 누구에게서 온 건진 모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편지 한 장만으로도 우편함이 꽉 차있는 것처럼 보였다.
열쇠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대충 가방을 내버려 둔 뒤 편지봉투의 앞뒤를 살펴보았다. 보내는 이엔 알 수 없는 이니셜만 덜렁 쓰여 있었고 받는 이엔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것도 한국어가 아니었다. 나는 우편함으론 접하지 못 했던 새로운 언어에 새로운 장난감을 산 아이처럼 기대감에 부풀어 편지봉투를 뜯었다.
편지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엔 흰 편지지와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묘한 기대감에 둘 다 꺼낼까 생각하다 고개를 젓고 그중 흰 편지를 먼저 꺼내어 펼쳤다.
「이름아, 여긴 벚꽃이 잔뜩 피었어.」
그 긴 편지지 안엔 저 내용만이 쓰여 있었다.
여긴, 벚꽃이, 잔뜩, 피었어.
나는 그 문장을 계속해서 눈으로 좇으며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했다.
여긴, 벚꽃이, 잔뜩, 피었어.
많이 읽을 필요가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단박에 알 수 있었으니까.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편지봉투 안에 있던 사진을 꺼냈다. 편지 내용처럼 화사하고 화려하게 핀 벚꽃 사진이었다.
넌 역시 내게 봄을 보여주려 편지를 보냈구나. 내가 마치 네 머릿속을 엿본 거 같아.
작게 웃으며 사진과 편지를 봉투 안에 다시 넣곤 서랍장을 열어 빼곡하게 쌓인 편지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 빼곡하게 쌓인 편지들 사이에서 쓰지 않은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골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손에는 연필을 쥐곤 호흡을 가다듬었다. 글씨가 삐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볼펜을 종이 위에 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한 자씩 적기 시작했다.
「정국아, 여긴 모란이 잔뜩 피었어.」
아래엔 붉은 펜으로 작게 꽃을 그려두었다.
네 사랑은 여전하더라, 내 사랑도 여전해.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이은상,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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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서 정국이를 너무 슬액히로 만들어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가져왔슴다..
물론 정국이는 나오지 않았다..☆
봄을 보여주려고 했다 = 여전한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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