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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Mess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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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miling tears (by.명수)_(BGM : 동방신기 - SHE)
아이는 예뻤다. 그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허밍을 하고, 가늘고 긴 손가락의 끝이 닿아와 심장을 뛰게 만들고, 쪼르르 달려와 포옹을 하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작은 입술에 조심스레 입맞춤을 하고 볼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웃고. 하루하루가 달콤함의 연속이었다.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어느 좋은 날의 꿈처럼.
아이를 바라볼때마다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내가 지킬 것이라고.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도록 지킬 것이라고 그렇게- 무모한 결심을 했었다. 그저 열여덟 어린날의 치기였다는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아이가 임신을 했다.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유월의 그날, 그 자그마한 몸 안에는 생명이 자라기 시작했다. 마르고 약한 아이가, 그 작은 아이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섰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작고 약했다. 그리고 여렸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 마치 팔랑이는 나비의 날개처럼. 그런 아이를 위해 곧-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맑고 깨끗한, 아이에게 어울리는 자연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잔인한 전쟁의 파편이 튀지 않은 예쁜 풍경들을 보며 환하게 웃을 아이를 생각하며.
아이는 그 자연의 품을 매우 좋아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폴짝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자연과 어울렸다. 아니, 아이는 자연 속에 있었다. 우중충하게 시든 회색빛 하늘은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는 푸른 바다를 닮았다. 싱그러운 녹색 숲을 닮았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을 닮았다. 바알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닮았으며 투명한 이슬을 닮았다.
아이는 꽃을 한아름 꺾어다 내 품에 안겼다.
「그러게.」 「근데 말이죠... 난 예쁜 꽃보다 그대가 더 멋진 것 같아.」
웃었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일지라도 찬란하게 빛나는 예쁜 나의 아이에겐 그저 무채색의 흔한 풍경 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웃었다.
「니가 더 예쁜 것 같다.」
촉- 부드럽게 입술이 닿았다. 따뜻한 바람이 코끝에 맺힌다.
「응.」
예쁜 아이의 모습을 작은 사진 속에 담았다. 영원히. 아주 먼 훗날에도 영원히 그 예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사진 속의 아이는 그저 웃고있었다. 티없이 맑고 예쁘게.
지금 그 누구보다도, 훨씬 불안하고 아플 작은 아이를 알기에.
몇시간이 흘렀을까.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감기는 눈을 겨우 떠서 그 맑은 눈망울 속에 나를 담을때면 어김없이 아이는 웃었다. 그 바보스러움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그 모습을 보는게 너무 아파서- 차마. 멀리 떨어져 서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
툭-
꺼림직한 소리를 끝으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곧 아이의 혈압을 측정하며 출산 내내 시끄러운 소음을 내뱉던 기계가 조용해졌다.
무심코 아이의 이불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혈흔이 서서히 번져나가며 이불을 물들였다.
귓가에는 여전히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언젠가 박사가 내게 말했다. 모든게 자신의 실수고 자신의 죄라고. 그렇게. 불쾌하게 표정을 찌푸렸다. 그는 더이상 밝게 웃지 않았다. 깊은 어둠에 갇혀버린 박사는 내가 동경하고 존경하던 박사 유한수가 아니었다.
「내 탓이지. 내가 성열이를 만들었고, 그 작은 녀석을 아프게 했으니까.」
「아니다.. 아니야..」 「박사님은 처음부터 혼자였습니까. 우린 아무것도 아니였단 말입니까?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마세요. 왜 그래야만 합니까.」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가 된 것 뿐이지.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한명이라도 부정한적이 없다.」
그래서 박사에게 등을 돌렸다. 그저 박사가 비겁한 배신자로 느껴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평생 홀로 살다가, 박사라는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과 '가족' 라는 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왔다. 그 '가족'을 부정하고 벗어나려는 박사가 미웠을 것이다. '가족'이 무너지면 다시 혼자가 될 것이 너무 두려워서. 지독히 외로웠던 과거가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박사를 보내고 말았을까.
그는 나를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몰랐다. 그래서 그를 떠났다. 평생 후회하게 될 줄 알면서도 떠나버렸다.
등 뒤로 느껴지는 박사의 아픈 숨소리에 눈물이 났다. 눈물을 참지 않았다. 현실이 서글펐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을 내려보내 연구소를 압박해왔다. 아마 박사를 스스로 사퇴시킨 뒤 자신들이 M정책의 권한을 휘어잡을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는 뻔한 결과를 두고도 어찌 할 수 없었다.
힘. 연구소를 지켜줄 힘은 그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박사는 생각보다 꿋꿋하게 버텨나갔다. 비록 박사에게 등을 돌렸지만, 나 또한 몰아붙이는 정부에 맞서 연구소를 지키기로 했다. 연구소는 나와 아이의 소중한 집이었다. 아무에게도 내어줄 수 없는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현 국회의원이자 정부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있는 최진.
그는 미쳤다. M정책을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올인한 그는 악귀와도 같았다.
「이성열- 이성열이라.」
「그건...」 「변명할거리가 있긴 한가?」
악귀. 악귀. 이 말 외에는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 」 「그리고 거기 두 조수들. 자네들도 마음이 있다면 곧장 나에게로 오게나. 유박사의 조수들이라하니-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야. 급박해지면 자네들도 어찌할지 아무도 모르는거지. 안그렇나?」
그 반응에 의원이 피식- 실소를 뱉아냈다.
이쪽으로 다가서는 의원의 발걸음에 살짝 비껴서는 순간, 의원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어갔다.
「...」 「연애는 예쁜 아가씨들이랑 해야지.」 「...네?」 「M이랑 그런짓하면 못써-」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불길한 느낌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건 그저 작은 날갯짓일 뿐이라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눈을 감았다. 아이가 그토록 보고싶었다.
-
탁하게 번진 하늘을 가리는 검은 어둠이 좋았다. 책에서나 보았던 별, 반짝이는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그 깊은 밤을 견디지 못하고 풀썩- 잠들곤했다. 곤히 잠든 아이의 머리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목 중간 즈음에 머무르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미끄러졌다.
나의 별은 여기에 있었다. 반짝이는 별보다 더 빛나는 나만의 별이. 아이의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성규형과 아이를 배려하려는 박사의 지시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저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무시했다. 박사는 그런 나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의원이 너 부른다고. 대회의실에 있을테니까 가봐.」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고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에 들어올때만 해도 가득했던 자신감 따위는 꺾인지 오래였다. 그저 한없이 몸이 떨려왔다.
「왜 그렇게 떠는가? 무서우면 티를 내면 안되지. 딱 봐도 어려보이는군.」 「아, 아닙니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통하지 않을겁니다.」 「이성열을 걸겠다해도?」
그러나 의원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성열... 을 건드릴 생각이면 협상따위...」 「성열군과 자네의 미래를 보장하겠다는거지, 절대 그를 해하려는게 아니야.」 「...」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평생 그와 자네를 책임지겠네. 성열군이 유박사의 실수로 하루하루를 아프게 살아가야한다는건 참 유감이었어. 그를 죽일생각은 딱히 없었단 말이지. 나도 인간인데 동정심이 있을게 아닌가? 그래서 성열군을 보살펴주고 내 권력도 잡을 방법을 생각해봤지. 새로 지어질 M센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래서 생각한게 자네라는거야. 자네는 성열군을 좋아하지 않는가.」 「아니,」 「다 알고있으니까 괜찮네. 왜 성열군과의 사랑을 부정하려하는가. 그가 M이라서?」 「너무 좋아해서 그렇겠죠. 지켜야하니까.」
아이. 아이와 함께라는 말 한마디에.
「무슨...」 「곧 새해가 찾아오지 않는가.」 「그렇죠.」 「새해 아침이 밝으면, 정부군들이 KIST로 들어올 수 있도록 보안망을 좀 조작해주게. 그것만 하면 자네는 성열군이랑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야.」 「아-」 「새벽 5시까지 KIST 후문에서 보자고. 성열군은 항상 있는 방에 재워놓고 나오면 될거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가는 의원의 발걸음이 넓은 대회의실에 울렸다. 곧 창민이형이 들어왔다.
「그냥. 성열이 얘기.」 「...괜찮아?」 「네. 지킬 수 있을거에요.」
악마와의 거래는 너무 달콤하고 유쾌하게, 나를 잠식했다.
그냥 쓰게 웃었다. 살기 위해 박사를 배신하고 말았다. 이미 날 한번 살렸던 박사를 이렇게. 과거의 나약했던 모습과 현실이 오버랩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독히도 외로웠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이대로- 행복하고 예쁘게 살고싶었다. 비겁하고 용서받지 못할 짓이란걸 알지만 모든 것은 강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웃어주던 박사가 생각나 쓰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았다.
「박사... 그게, 그게 아니라-」 「괜찮다. 처음부터 다 알고있었어.」
「...」 「절대 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을거란다. 왜냐하면 넌.」 「그만해요」 「넌 내 아들이 아니니.」
「명수야」 「...」 「난 '우리'를 지키고 싶었단다. 하지만 유한수란 존재는 '우리'를 지키기에 너무 약했어. 그래서 이렇게 모든 죄를 가지고 떠나려고 하는거다.」 「...그럼 박사가 그렇게 떠나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생각하지도 않은거야?」 「잊으면 돼. 그럼 괜찮아.」 「어떻게, 어떻게 소중한 사람을 그렇게 쉽게 잊어?」
지독한 모순에 미칠 것 같았다.
「박사-」 「내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면. 너가 꼭 이루어주렴. '우리'를 지키는 일. 성열이와 함께. 무너져가는 이 세상을 지켰으면 해. 넌 강한 아이니까 충분해. 괜찮을거야.」 「난 못해. 난 못해요. 이 잔인한 세상에 나혼자 두고 가지마.」 「...」 「아버지... 내 아버지...」
「무서워. 여긴 너무 무서워. 혼자 떠나지마요, 제발. 응?」 「...」
박사가 다시 입을 떼려 하는 순간 뒤를 돌았다. 그리고 뛰었다.
눈을 찔러오는 밝은 빛에 정신을 차렸다.
「일어났는가?」
「왜 그를 찾는거지?」 「그야 물론...」
붉은 피로 물든 하얀 벽. 그리고 붉은 피로 물든채 바닥에 떨어져있는 하얀 가운.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잔뜩 구겨진 가운을 집어들었다. 정갈하게 수놓아져있는 다섯개의 글자가 보였다.
「공교롭게도 현실이네.」
「...」 「자네는 너무 멍청했어. 유박사의 조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었지.」 「그렇죠...」
「생각해보게나. KIST는 지키는 군인도 얼마 없지 않나? 보안망 조작 따위는 애초에 필요치도 않았어. 그런데 내가 왜 자네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까?」 「...?」 「난 사람들이 죄책감에 허우적대는 그 모습을 매우 즐기는편이지. 괴짜같은 성격이지만 어쩔수가 없어. 그 죄책감의 늪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는건 흥미로운일이야.」 「그게 무슨-」 「그래서 어린 자네를 가지고 좀 놀아봤네. M과 함께 평생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그런 뻔한 거짓말에 그렇게 쉽게 넘어갈줄이야. 역시 사랑이란게 무섭기는 한가봐?」
「명수야... 우리 이제 어떡해? 창민씨도... 박사님도... 다 사라졌어... 어떡해-」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린 아픈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말하지 못할 나의 비밀을 조용히 사죄하며.
「명수, 넌 아무렇지도 않아?」
「성열이 보러가자.」 「... 이성열? 이성열 그,」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러다 뒤를 돌았다. 웃고있는 의원이 보였다. 의원을 따라 웃었다. 소름끼칠정도로 즐겁게 웃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째서, 형. 박사는 우리를 지키려고 했던 것 뿐이잖아.」
큰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박사를 바라봤다.
-
춥고 아팠던 겨울이 지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나 첫 봄을 맞이했다. 그 해 봄은 유난히 따뜻했다. 모순적이게도.
「바쁘다고 해.」
총장에게 몇번이나 불려가, 소장자리를 권유받았다. 번번이 거절했지만, 총장만이 알고있는 그 치명적인 비밀 때문인지 괜스레 눈치가 보여 그와의 만남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따라들어오실 생각입니까?」
「...」 「잘릴 각오 하는게 좋을건데 말이죠?」
「...」 「...이성열」 「왔어요, 그대?」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이와 나는 변하지 않았다. 이 공간에만 들어오면 알 수 있었다.
M센터로 자리를 옮기고, 아이와 나는 정들었던 KIST를 떠나왔다. 센터는 첨단장비와 깨끗한 시설로 각광을 받았지만 아이와 내겐 틀렸다. 다행히 아이는 금세 적응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하루하루 잠에서 깰 때마다 낯선 곳이 이 M센터였다. 센터의 모든 연구원들은 정부에서 뽑히고 배정된 상위 0.1%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를 소위 '이방인'처럼 바라보곤 했다. 마치 신기한 생물을 바라보듯이. 특히 싸구려같은 미소를 흘리며 다가오는 여직원들은 삶의 의욕을 떨어뜨릴 기세로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아마 아이가 아니였다면 박사의 당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사표를 썼을지도 모를일이다.
방에서는 아이 특유의 달콤한 초콜릿향이 풍겨왔다.
「아. 오늘 실험했던거!」
아이는 실험용 M이었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아이에게 가해지는 실험은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오늘 이 실험처럼.
「총맞은거요!」
움찔- 겁먹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차가운 금속이 스쳐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아이의 하얀 피부에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아이의 팔은 온통 주삿바늘과 흉터, 그리고 멍으로 얼룩져있었다.
「그으- M이 전쟁터에서 잘 견뎌야하니까... 회복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총맞고 얼마만에 낫는지 본다고...」 「그만.」
분명 이건 쓸데없는 실험이었다. 이런 의미없는 실험때문에 아이가 아팠다는게 용서되지가 않았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뭘?」 「기억상실약 그거요.」
거짓말이라곤 모르던 순수한 아이가 이젠 나에게 연기까지 가르치려든다. 하얀 영혼에 때를 묻힌 것 같아서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와- 진짜?」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서랍속에서 소독약과 붕대를 꺼냈다. 상부에게 걸리면 미친듯이 잔소리를 들을 범칙행위였지만 그런 건 아이와 나 사이에선 통하지 않았다.
아이의 벌어진 상처에 조심스레 약을 발랐다. 아픔을 참으려는 아이때문에 깨물려버린 그 작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이가 내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뜯기는 소리와 함께 진한 혈향이 입안을 감쌌다.
동시에 아이의 새 붕대를 단단히 묶었다.
「그대도 자야죠.」 「아, 아니다. 너 아프면 니가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올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라.」
그걸 어떻게 봤는지 먼저 입술을 쭉- 내빼는 아이다. 그게 꼬리치는 여우같으면서도 기분이 좋아 아이를 껴안았다.
「그대- 그대가 지금 문열고 나가면 보고싶을거에요.」 「내가 어딜가겠어. 항상 니옆에 있는데.」
「응.」
아이의 생일이었다. 실험용 M이라는 되도않은 이유로 생일까지 연구실에 갇혀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밤을 꼬박 세며 총장과의 말싸움에서 이긴 덕에 겨우 아이를 센터에서 빼낼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아이는 잔뜩 설렌 얼굴로 온 복도를 폴짝거리며 뛰어다녔다. 여전히 순수하고 철없는 아이의 모습이 그저 보기 좋았다.
「네, 그대. 기분이 완전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
「응」 「예전처럼 꽃밭에도 가고-」 「응」 「바다도 보러가고- 강도 보러가고- 그래요, 응?」
왜 이렇게 비틀어지고 엇갈려버렸을까.
「헤헤-」
한참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가서 본전은 뽑아야하지 않겠냐는 아줌마같은 아이의 말에 한껏 웃으며.
채 벗지않은 가운속에서 짧은 진동이 여러번 울렸다. 총장의 호출이었다.
「아. 잠깐 위에서 부른다. 빨리 갔다올테니까 챙기고 침대에 앉아있어.」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차마 떠나지 않았을거다. 차마.
괜히 아이와의 즐거운 시간을 뺏긴 것 같아 기분이 안좋았다. 아이와 함께있는 시간이라면 눈을 감았다뜨는 그 순간조차도 아까운 시간이었기에.
총장실로 가는 길 내내 유난히 들러붙는 직원들로 인해 얼굴을 파삭하게 구겼다. 한참이 지나서 도착한 총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곧,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어제 말한 그 일 말인가. 성열군과 노닥거리러 나간다는거 말일세.」 「노닥거리는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거죠. 입조심하세요.」 「자네, 곧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게 될거야.」 「무슨,」
마치 그 옛날 어느 날 처럼,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연애는 예쁜 아가씨들이랑 해야지.」 「...」 「M이랑 하면 못써-」
「...」 「성열군은 죽어.」
아이가 죽는다. 이성열이 죽는다.
「자네는 날 너무 과소평가했어. 조금 기분이 나빴네만- 그토록 오만방자하게 굴었으면 벌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전 믿지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지. 난 죄책감에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는걸 매우 좋아한다고.」 「...」 「분명 후회할거야.」
방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복도는 고요했다. 조금 전과 다를게 없었다.
문득-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아이의 주위로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총장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 내 손으로 아이를 죽인다는게 사실이라는 것.
아이는 너무 예쁘게도. 너무 하얗게도 웃었다. 화염 속 하얀 아이는 지독히 이질적이게도 예쁘게 웃었다.
제발 들어줘 이성열.
언젠가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성열.
「응?」 이성열.
「나는 그대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그대도 날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이성열.
「응」 사랑하는 내 아이야.
「왜 그대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나요? 단 한번도.」 나에게는 단 하나뿐인 이성열.
「그 말은. 니가 정말 힘들고 죽고싶을때 해줄게. 그 말로 널 살려낼 수 있도록」 사랑해.
「그게 뭐에요!」 너무 많이 사랑했어. 죽도록 사랑했어. 그런데 말해주지 못했어.
「...」 「정말 사랑해... 제발 들어줘...」 「...」 「널 너무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말하지 못했어.」 「...」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거야」 「...」 「이성열. 내 작은 아이야.」 「...」 「사랑해.」
아이를 바라보았다.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온 몸의 힘을 짜내어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바보스럽고 예쁜 웃음을 짓는 그 아이를 보았다.
「그대- 난 이제 가야해요.」 「가지마. 사랑해.」 「안녕.」 「성열아 제발,」 「우리 아주 멀고 먼 내일에 다시 태어나서도 꼭 만나요 그대.」 「이성열!」 「난 영원한 악몽 속으로 갑니다. 정말, 정말 안녕-」
그대로 김명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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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봉봉입니다!
달달한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을 마치고... 칙칙한 본편으로 돌아온 이 상큼한 기분!^^*
사실 이번 18편에는 아픈 사연이 많습니다.. 일단 시험기간때부터 1달간.. 적어왔습니다. 뭐 이건 하루에 한문장씩 적은 것도 아니고..ㅋㅋ
게다가.. 반쯤 썼을때 바탕화면 정리를 하다가.. 팬픽폴더를 통째로 날려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쓰게 되었죠..흡..☆★
보시다보면 막.. 갑자기 문체가 변할꺼에욬ㅋ 하도 오래써서 무슨 누더기처럼 되버렸음ㅋㅋ 저의 한과 분노와 삶이 들어있는 편입니다!
그래도 1달동안 적었다고 길이는 참 길어요. 사실 들어갈 내용도 많았고, 묘사할부분도 많았고, 대화도 참 많습니다.
18편은 정말... 십팔입니다. 십팔. 그렇죠. 숫자 십팔입니다 십팔! 아이고 십팔!!!!!!!!! 이편 끝나니까 20편부터는 술술 써지고 있어요. 기쁜 일이죠. 아이 십팔!!!!!!!
어쩌다보니 코멘트가 정신분열이 되어버렸네요..ㅋㅋ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스릉스릉합니다♡♥
Ps. 이 편을 끝으로 수열은 더이상 나오지 않을 예정입니다ㅠ 대신 새로운 커플링이 .. 생길거에요^^* 아시는 분들은 스포금지! 쉿! 숼러님들 그래도 쭉 봐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