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주의 숙취와 뻐근한 허리에 낑낑대는 준면이 안쓰러웠는지 세훈이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나섰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 준면이 세훈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오늘이 토요일이라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것 정도?
아마 오늘학교를 가야했다면 준면은 정말 죽을맛이었을 것이다.
"으어, 시원하다…"
"이제 좀 괜찮아?"
"응, 좀 낫다."
침대에 엎드리고 누운 준면의 허리를 꾹꾹 누르며 마사지를 하던 세훈이 준면의 몸 위로 몸을 던졌다.
준면이 낮은신음소리를 내며 버둥거리자 킬킬대던 세훈이 준면을 끌어안고 침대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보니 속이 뒤집어 지는것만 같았다. 어제 먹은 복분자주의 여파가 남아있는듯 했다.
금방이라도 속에서 올라올것같은 느낌에 준면이 세훈을 밀어내려 낑낑댔지만 그런 준면의 행동을 그저 앙탈이라고 생각한 세훈이 준면을 더욱더 꽉 끌어안았다.
볼에 쪽쪽 입맞추며 이리저리 구르는 세훈의 행동에 입을 틀어 막은채 참던 준면이 결국 속에있던 것들을 게워냈다.
"준면아, 준면아!!"
"내가 비키랬잖아."
"어떡해, 속 많이 안좋아?"
아직 빈속이라 멀건 위액을 켁켁대며 토해내는 준면의 곁에선 세훈이 준면의 등을 두드려주며 발을 동동굴렸다.
속을 게워낸 준면이 조금 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이 뜨거운게 눈물이 차올라있었다. 코끝이 시큰했고 게워낸 입안이 텁텁했다.
자신의 곁을 맴도는 세훈을 지나친 준면이 화장실로 들어가 입안을 헹궈냈다.
찬물로 세수를 한 준면이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침대로 돌아왔다.
준면이 게워낸 것들로 이불이 엉망이었다. 준면이 더럽혀진 시트와 이불을 걷어냈다.
다행이 매트리스에는 스며들지 않은듯 했다. 이불을 손에 쥔 준면이 한숨을 쉬며 화장실로 걸어들어갔다.
더럽혀진 부분을 애벌빨래한 준면이 세탁기 안에 이불을 구겨넣었다.
다행이 여름이불이라 부피가 크지 않아 한번에 넣고 돌릴수 있었다.
화장실 문턱에 앉은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준면의 머리위로 손하나가 내려앉았다.
"준면아, 밥먹자."
"니가 할꺼야?"
에이, 아니. 나 요리 안해. 손사래를 치는 세훈을 보며 웃던 준면이 부엌을 뒤적였다.
전기밥솥을 열어보니 두 사람 몫은 밥은 될것같았다. 냉장고에서 마른반찬 몇가지와 콩나물을 꺼낸 준면이 손을 씻고 요리할준비를 했다.
가스렌지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콩나물을 넣은 준면이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하고 대파를 송송썰어넣었다.
금새 부엌을 채우는 고소한 냄새에 세훈이 준면의 뒤에서 기웃거렸다.
숟가락을 들고 괜히 끓고있는 국을 휘적거리던 세훈이 국 한숟갈을 떠 입에넣었다.
"와, 짱맛있다."
"정말?"
"어, 준면이 나한테 시집와도 되겠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피식댄 준면이 가스렌지앞에선 세훈을 밀어냈다.
행주 두개를 든 준면이 냄비를 식탁위로 옮겼다.
금새 한상가득 차려진 식탁에 세훈이 눈을 반짝이며 수저를 들었다.
우적대며 먹는 세훈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준면도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흐아… 따뜻하다…"
따뜻하고 시원한 국물이 숙취로 엉망이된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는것 같았다.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그릇을 금방 헤치운 준면이 턱을 괸채로 밥을 먹는 세훈을 바라봤다.
볼이 터져라 구겨넣으며 우물대는 모습이 웃겨 킥킥대며 웃는 준면을 슬쩍 본 세훈이 따라 웃음을 지었다.
"어, 배부르다."
식탁의자에 기대 배를 통통치는 세훈의 이마를 쿡 찌른 준면이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먹은 밥그릇과 냄비는 싱크대에 넣고 반찬은 뚜껑을 닫아 다시 냉장고에 넣어뒀다.
싱크대 안에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며 잠시 망설이던 준면은 설거지를 잠시 미뤄두기로 결정했다.
손에 물기를 대충 닦은 준면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넣어둔 이불은 어느새 세탁이 끝나 있었다. 세탁기에 있는 이불을 꺼내기 위해 세탁기를 열자 준면을 따라온 세훈이 이불을 꺼내 들었다.
"옥상가면 이불 널수있어."
이불을 들고 앞장선 세훈을 따라간 준면이 옥상문앞에 다다르자 세훈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따뜻한 햇살과 함께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간지럽혔다.
세훈의 집에 드나든지는 꽤 된것같은데, 옥상은 처음온것 같았다.
"우와, 니네 빌라에 이런데도 있었어?"
"어, 오피스텔이라서 큰 빨래는 널기 힘들잖아. 주인아줌마가 옥상에 이렇게 만들어 놨더라고."
"우와…"
"준면아, 이것좀 도와줘."
"어, 어. 알았어."
길다랗게 늘어진 줄위에 이불을 대충 걸어둔 세훈이 시트를 손에 들었다.
이불의 네 귀퉁이를 잡은 두사람이 팡팡 소리를 내며 이불을 털기 시작했다.
이불에 묻어있던 물방울이 튀기며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부서졌다.
시트와 이불을 턴 두사람이 빨랫줄에 이불을 널고 집게로 잘 고정한후 발랄하게 외쳤다.
빨래, 끝!
*
세훈의 집 바닥에 나란히 배를 깔고 누운 두사람이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세훈은 민망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준면은 귀엽다는듯이 눈을 반짝이며 눈을 뗄줄 몰랐다.
두사람이 보고있는것은 세훈의 앨범이었다. 준면이 모르는 어린시절의 세훈이 가득담긴 앨범.
"세훈아 너 어렸을때 진짜 귀여웠네?"
"당연하지."
"근데 지금은 왜 이래?"
"…어?"
예상치 못한 준면의 공격에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꿈벅대는 세훈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춘 준면이 킥킥대며 웃었다.
어릴때는 귀엽고 지금은 잘생겼어.
준면의 말에 헛기침을 하던 세훈이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야?"
넘어가는 앨범들 사이로 준면이 가르킨 사진은 세훈이 여자아이와 뽀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종종 선생님들이 시킨, 누구나 한장쯤은 있을법한 사진이었지만 괜한 장난기가 발동한 준면이 입을 삐죽댔다.
너 어릴때부터 막, 막 뽀뽀하고…
틱틱대는 준면의 말에 당황한 세훈이 버벅였다. 어, 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하하, 어릴땐데 뭐. 어색하게 웃은 세훈이 급하게 앨범을 접었다.
"어어, 왜 접어? 더 볼래."
"아, 싫어."
앨범을 품에 안은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꽂이에 후딱 꼽고는 준면의 옆에 다시 누웠다.
너, 저 사진말고도 더 많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보는 준면의 시선을 애써 피한 세훈이 준면을 품에 끌어안았다.
순순히 품에 안겨오는 준면을 안은 세훈의 머릿속에 어린시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샛별어린이집의 왕자님으로 이름을 날리며 수많은 여자아이와 손을 잡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귀엽다며 사진을 찍어대던 어린이집의 선생님들도. 그리고 그 사진들은 저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터였다.
물론 준면이 어린시절에 있던 사진으로 질투를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괜한 일을 만들기전에 싹부터 자를것이 나을것 같았다.
"세훈아, 근데 그 여자애는 누구야? "
"누구?"
"그, 너랑 뽀뽀하던 애. 니가 걔 좋아했어?"
"어, 걔가 우리 어린이집에서 제일 예뻤거든."
아아, 그러세요? 그럼 걔찾아서 사귀시던가. 준면이 자신을 안은 세훈의 팔을 치우며 옆으로 굴러갔다.
허전해진 품에 쩝 하고 밉맛을 다신 세훈이 준면의 옆으로 굴러가 다시 준면을 품에 안았다.
"김준면 어린이, 지금 질투하세요?"
"아닌데요."
에이, 맞구만. 킬킬대던 세훈이 준면의 뺨에 얼굴을 부볐다. 우리 준면이 질투 했쪄요?
아오, 아니라니까! 손으로 세훈의 얼굴을 밀치자 세훈이 준면을 끌어안고 한바퀴 굴러 준면의 위에 올라탔다.
"얘, 얘가 왜이래."
눈을 꿈뻑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준면의 입술에 쪽 하고 뽀뽀한 세훈이 준면의 옆으로 내려와 준면을 끌어안았다.
"준면아, 지금은 니가 제일 예뻐요."
당연한거 아니야? 새침하게 말하는 준면의 몸위로 다리하나를 올려 준면을 옭아맨 세훈이 준면을 토닥였다.
두사람은 나른한 숨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가만히 세훈에게 안겨있던 준면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한 이불빨래와 아직 다 풀리지않은 어젯밤의 피로, 배부르게 먹은 아침이 주는 식곤증이 겹친듯했다.
병든 병아리 처럼 꾸벅꾸벅 조는 준면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세훈이 준면을 끌어안고 잠이들었다.
따뜻한 햇살이 두사람위로 내려앉았다. 꿀처럼 달콤한 낮잠이었다.
*
"세훈아, 세훈아!!"
자신의 어깨를 잡아흔드는 준면의 행동에 눈을 뜬 세훈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큰일났어, 비와!!"
"어?"
잠이 덜깨 멍하게 대답하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답답하다는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불!! 비오면 이불 다젖는다니까!!"
"아!!"
그제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세훈이 급하게 신발을 신고 옥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잠들때는 햇살이 좋았는데 하늘에선 어느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빨리, 빨리!!"
빗속을 뚫고 달려간 두사람이 널어두었던 이불을 걷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두사람의 몸을 적셧다.
이불을 걷은 준면이 울상을 지었다. 이미 흠뻑 젖은 이불은 아무래도 다시 빨아야 할것 같았다.
"괜히 잠들었어…"
"괜찮아, 다시 빨면 되지."
"그래도…"
"괜찮다니까. 감기걸리겠다, 빨리 내려가자."
이불을 들고 내려온 준면과 세훈이 젖은 이불을 다시 세탁기에 밀어넣었다.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들도 벗어 이불과 함께 넣었다.
간단한 조작을 마친 준면이 작동버튼을 누르자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에젖어 차가워진 체온탓에 몸을 살짝 떨자 세훈이 샤워기를 틀어 따뜻한 물로 온도를 맞췄다.
준면의 몸에 물을 뿌려준 세훈이 자신의 몸에도 물을 뿌렸다.
"준면아, 머리 감겨줄까?"
"머리?"
"어."
그래, 그럼. 얌전히 세훈의 앞에 앉은 준면이 머리를 내밀자 세훈이 손에 샴푸를 짜고는 준면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겼다.
샴푸칠을 한 세훈이 준면의 위로 물을 뿌리자 거품이 물에 씻겨 내려왔다.
"나도 감겨줄게."
자리에서 일어선 준면이 세훈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앉혔다. 자신의 머리 이곳저곳을 간지럽히는 준면의 손에 세훈이 헤실대며 실없이 웃었다.
이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 거품이 씻겨 내려가고 물에 젖어 내려온 머리를 쓸어올린 세훈이 샤워기를 들고 준면에게 뿌려댔다.
"아, 하지마."
얼굴에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받으며 어푸대는 준면을 보는 세훈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한참동안 샤워기를 서로에게 뿌려대던 두사람은 세탁기가 멈춰설때쯤에야 욕실에서 나올수 있었다.
이불을 꺼내 집안에 널어놓은 두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쇼파위에 나란히 앉았다.
"준면아, 진짜 귀엽다."
"니옷 너무 커."
입을 삐죽대며 투정부리는 준면이 입은것은 세훈의 옷이었다.
물에젖은 준면의 옷은 이불과 함께 널어져있고 세훈이 빌려준 옷은 준면의 작은 몸을 감싸고도 남았다.
장롱안에서 새 이불을 꺼낸 세훈이 준면에게 던지자 준면이 이불로 몸을 감싸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하얀 이불위로 빼꼼히 올라오는 준면의 얼굴을 본 세훈이 킥킥대며 이불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불을 뒤집어 쓴채 장난을 치는 두사람탓에 이불이 펄럭거리며 움직였다.
한참동안 이불 아래에서 키득대던 두사람이 숨이 부족했는지 이불위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두사람의 눈꼬리가 곱게 휘었다.
"으이구, 우리 애기."
"내가 애기냐? 너보다 나이 많거든? "
"내눈에는 애기처럼 보이는데."
"헛소리 한다 또."
주먹으로 세훈의 배를 퍽 하고 친 준면이 세훈이 반격하기전에 후다닥 도망치자 이불을 뒤집어쓴 세훈이 준면을 쫒아왔다.
으허허 난 귀신이다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쫒아오는 세훈을 보며 배를 잡고 웃던 준면이 세훈에게 붙잡혔다.
목에 얼굴을 묻고 푸흐흐 하며 바람을 불어넣는 세훈탓에 몸을 비틀며 웃던 준면이 휘청였다.
그런 준면을 잡으려 손을 뻗은 세훈은 자신이 뒤집어 쓰고있던 이불을 밟고 미끌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넘어진 두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마주쳤다.
잠시 아무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던 두사람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웃었다.
자신의 곁에 누워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는 준면을 끌어안은 세훈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불과 함께 굴러진 두사람이 김밥마냥 이불에 둘둘말려 있었다.
방안을 이리저리 휘저으면 굴러다니던 두사람이 잠시 멈춘채 숨을 골랐다.
"흐어, 힘들다."
"형이 늙어서 그래."
"언제는 애기같다며!!"
"애기 싫다며."
"늙은건 더 싫거든?"
투닥거리던 두사람이 풋 하고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키득대며 서로의 얼굴 이곳저곳에 뽀뽀를 하는 두사람의 위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았다.
어둑어둑 하던 구름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가 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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