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환, 왜 그래?어디 아파..?
정말 모른다는듯이 내 이마에 손을 갖다대는 쑨의 손을 탁- 내쳤다.
멈칫거리며 손을 거둬들이는 그.
아무리 밝다지만 여기도 클럽이기에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상처받은 표정이라는건 짐작할 수 있다.
너, 뭐야.
그래도 지금은 내 짜증이 우선이다.
응? 무슨말이야 태환?
순수하게 질문하는 어조. 정말 몰라???모를리가 없다. 아니, 모르더라도 그런짓은 하지 말았어야 되는거다.
너......
더 말을해서 다그쳐야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좋아하면서 다른여자랑 놀아나는건 뭐야??라고 말을 하면 그는 내가 자기가 날 좋아하고있다는걸 알고있었다는걸 알 것이다.
그를 싫어한건 아니다. 외려 좋게말하자면 충분히 고려해보고 더 발전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좋아한다고 말했던 상대가 눈앞에서 여자랑 놀아나는걸 봤는데, 네 진심을 믿으라고?
그건 진심이더라도 곧 변할 것이다. 그는 내 마음을 모르겠지. 하지만, 난 이미 실망해버렸다.
그래, 내가 뭐 큰걸바래서 얘한테 기대를 한건지.
하아..
침묵 속에 내 자조의 한숨이 흐른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쑨은 영문도 모른채 그저 서있다. 그를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멍하니 있던 그가 화들짝 놀라며 날 잡는다.
어디가.
....화장실. 그러니까 놔.
저 성격에 도망간다, 말을 하면 분명 잡고 놓아주지 않을거니까 우선은 둘러 말했다.
잠시 의심스러워하다가, 곧 힘을 푸는 쑨.
그럼, 갔다와. 자리에 있을테니까, 돌아오면 뭐 때문에 화났는지 말해줘야되.
아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쑨의 목소리가 조금은 신경쓰였지만, 난 대답도 않고 그길로 밖으로 나와버렸다. 다행히도, 아까 봐둔 화장실의 위치가 출구와 가까워서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아.......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는 밤의 거리. 술에취한 남자들과, 노골적이게 자신을 드러낸 여자들이 지나다니고, 젊음의 치기에 몸을 맡긴 대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무리지어 돌아다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이 부신 지상과는 다르게 까만 하늘이 위를 덮고있다.
휘잉~
바람이 잘게 부는데, 약간 쌀쌀해진건지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어딜가야되나........
갈데가 없다. 짐은 그의 집에 모두 놔두고 왔고, 지금 몸에 가지고 잇는건 혹시나해서 들고온 지갑 뿐.
올때부터 그의 집에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호텔이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해둔 것이 없다.
생각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다리가 슬슬 아파온다.
길거리에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도 돌아다니고...피곤하기도 하고...하지만 아직 갈데가 없는데....
한국친구한테 도와달라고라도 할까?싶어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갔다. 그떄, 지갑을 꺼냄과 동시에 떨어진 빳빳한 종이 한장.
손가락 세개 합쳐놓은 정도 크기의 조금은 큰 명함이다.
Diplomat..?
외교관이란 말인데.... 이 명함이 왜 여기있지?싶어 뒤로 돌리니, 증명사진이 밖혀있길래 자세히 살펴보니까 얼굴이...아까 클럽에서 본 그 남자다.
머릿속을 순간 스치는 생각.
그래 이사람한테 연락하면 되겠다!!!!!!!
아까 춤출때 은근슬쩍 밀어넣었나보다. 방금점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찮던 남자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적힌 번호데로 꾹꾹 번호를 누르니 뚜르르-뚜르르- 신호음이 들린다.
꽤 길어지는 신호음에, 안받으면 어쩌지..?란 불안감이 느껴질 찰나.
Hello?
앗싸 받았다!!!
저...아까 클럽에서 만났던....
후훗. 전화올줄 알았어.
네..?
아까 애인?인가, 그사람이 다른여자랑 춤추는거 보고 뛰쳐나갓잖아, 안그래?
그건 또 언제 봤단 말인가.
애인 아니에요!!!!
열낼 필요 없어~그래, 지금 어디?
밖인데.....
그건 알고 있고. 주변에 뭐 커다란 건물같은거 없어? 우선 널 찾아야 될거 아냐.
아, 여기 옆에 맥도날드 있는데...
그럼 거기 꼼짝말고있어. 곧 데리러 갈게.
뚝-
다행이다.....그래도 이런식으로 자신이 기댈 사람이 생겨서 마음이 놓인다.
공중 전화박스안에 계속 서있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린다.
내 말 잘 듣고 있었네?
네?
아냐. 자, 가자.
손을 내미는 남자에게 손을 주자 꾹 잡아서 끌어당긴다.
아까 쑨의 손은 모질게 쳐냈었는데....
아냐 아냐!!지금 그딴 놈은 생각하지 말자!!!!
좋아한다면서 버젓이 딴여자랑 놀기나 하는 그런 가벼운놈에게 두뇌용량을 할애하긴 싫다.
혼자 머리를 흔들고 생쇼를하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집에는 안돌아갈꺼지?
당연하죠.
갈데는 있어? 없어보이는데?
알면서 물어보지마요.
후훗. 안그래도 우리집에 가자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너, 발끈하면 더 귀여워서 꺠물어버리고싶은건 알아?
아 진짜!!!!!놀리지좀 마요!!!근데 그 쪽은 몇살인데 그렇게 반말해요????
그럼 넌?
나 24살!!!!!!!!
내가 형이네. 나 27이거든.
.........쳇.
그러니까 앞으로 형아라고 불러~아니. 오빠가 좋으려나?
날 놀려대는 그가 얄미워서 발을 꾹 밟았더니, 아프다고 난리다.
아악!!!!!!!!!!!!!!!!!!!!!!!
..엄살은.
엄살아니거든!!!!!!아우..넌 무슨애가 이렇게 힘이 세?
그쪽이 엄살피우는거거든요~
그쪽말고, 챠오 리우.내 이름이니까 알아둬. 부를땐 리우오빠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
그와 함께 투닥거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밤의 거리를 빠져나와 주택가에 들어서있었다. 쑨의 집과는 정 반대방향같다.
그 중에서도 꽤 큰 빌라같은데로 들어가는 그. 아마 오피스텔같다.
자, 들어가.
안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오피스텔과 비슷했다.
혼자 살아요?
응. 24살때 분가했거든.
난 지금도 집은 엄마랑 같이사는데.....내나이때 벌써 분가를해서 이런집에 산다고하니, 마냥 능글능글한 클럽 기둥서방같던 이미지가 조금 달라져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보아하니 옷이랑 짐은 그 애인님집에 다-두고온 모양이고..옷은내꺼 빌려줄게. 우선은 좀 씻자.
내 손에 옷과 수건한장을 올려주고 날 욕실로 밀어넣은 리우. 그렇게 땀냄새가 심하나?싶어 팔을 들어 냄사를 맡는데...
.....윽..씻긴씻어야겠다. 춤추느라 좀 땀을 빼긴했나보다.
그래도 첨보는 사람집이라 빨리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데....
쾅!!!!!!!!!!!!!!!!!!!!!!!!!
야!!!!!!!이게 뭐야!!!!!!!!
어허. 밤중에 소란피우면 쓰나.
오~역시 생각대로 잘어울리는데? 각선미가 죽여주는구만?
이..이걸..지금..옷이라고...!!
그럼 그게 옷이지 밥이야? 얼른나와. 나도 좀 씻자.
저 변태새끼...!!!!
잠옷이라고 준게 달랑 와이셔츠한장?????
다행히도 사이즈가 많이커서 내 작지않은 몸에도 넘쳐흘러 간신히 엉덩이는 가릴 수 잇지만...이거 완전 야동에나오는 여주인공차림이잖아!!!!
내가진짜 내 옷만있었어도 저자식을 찢어죽였을거다.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는 그를 기다리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 꽤 많은 일이 있었던갓같은데, 몸은 하나도 피곤하지않고 오히려 말짱하다. 머리는 아픈데 말이지.....
그런 차림으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으면 나 덮쳐주세요~하는걸로밖에 안보이는데? 오빠랑 뜨거운 하룻밤 어때?
....또 밟히고 싶어요...?
헛소리를 하는 그에게 목소리를 깔고 진자하게 대꾸해주자, 아까 밟힌게 아프긴 아팠던건지 조용해진다.
바스가운을 걸친 그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더니, 새수건을 들어 이제는 내 머리까지 닦아준다.
내가할게요. 이리줘.
머릿결 좋네? 부드럽다.
또 동문서답. 하여간 말이 통하지 않는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놔둿더니 먼저 말을 걸어온다.
술 한잔 할래?
술먹여서 팔아먹을려고?
아니, 술먹여서 잡아먹을려고.
제발 그런장난은 안치면 안될까요? 저 남자거든요?
알고있어. 아까 누워잇을때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는걸?
정강이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발을 날렸더니 이번에는 피한다.
두번은 안당하지롱~
진짜...당신 외교관 맞아? 음담패설로 외교해??
흐흐...
웃어넘기며 냉장고로 가 술을 꺼낸다.
근데 저 술..익숙하다?
가을국화..??
이거...
아, 우리 외삼촌이 보내주신 술이야. 한국에서 술장사하시거든.
중국에서 만났던 양조회사 사장님회사에서 이 술을 생산하는데, 아빠가 좋아하셔서 항상 냉장고에 상비되어있는 술이기도하다.
자, 받아.
언제 따랐는지 내 앞에 놓아진 술. 오늘 기분도 별론데 에라모르겠다!!!싶어 한입에 털어넣었다.
크으~쓰다.
역시 술이 달달하게 느껴지려면 난 아직 멀었나보다. 내가 인상을 확찌푸리니 리우는 가볍게 웃고 자기는 짧게 술에 입을 데며 말을 꺼냈다.
그래, 뭐때문에 싸운거야?
응?
애인이랑 싸웠잖아, 안그래?
아..쑨..
애인.....아니야.
애인도 아니면, 이렇게 다른나라에 와가지고 혼자 열받아서 혈혈단신 밤거리를 돌아다닐만큼 큰 일은 아니잖아.
그건.....그냥...
말 끌지 말고 이야기해봐.
그냥..걔가..
걔가..?
나 가지고 논거같아서...
...왜그렇게 생각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술을 한잔 따라 바로 원샷했다. 리우는 내 갑작스런 자작에 놀란것같다.
걔가...씽....어젯밤에..나보고 좋아한다고 말햇거든?
그래서 받아줬어?
아니아니, 좀더 들어봐봐..내가아..자는줄 알고 이야기한건데에...내가 들은거야.
전부터 너보고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었어?
아니,그런적은 없는데에...그냥 무지 잘해줘써. 나 하고싶은거 다~해주구...챙겨주구....
술이 살살 올라오는지 말이 느려지는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 할말은 다 해야겟다.
그래서?
그런데에...어제 그렇게 이야기해노코 오늘 클럽을 가자는거야...내가 거기까진 이해했거등?
그런데, 그 자식은 너 두고 다른여자랑 놀았고, 넌 거기에 화가난거고?
그러치!!!!!어쩜 그리 잘아냐.....같은 쭝국인 마자???으히히히...
하아.......이야기를 꺼낼때까지만 해도 능글능긇하게 웃던 그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하게 변해잇다.
있잖아...
우웅??
나 너 좋아하거든?
거어-짓말...너 나 오늘 처음봤자나...내가 모를줄알구??
첫눈에 반한다는거 몰라?
그런게 어디써...
여깄어. 넌 그 사람이랑 아직 사귀는것도아니고...그럼 내가 너 가져도 되? 나, 되게 잘해줄 자신잇어. 너만보고, 항상 웃게만해줄게. 이렇게 속상해서 ㅜㄹ마시는 일 없게 해줄게. 나랑 사귈래?
헤헤...미안한데에..그건 쫌 곤란하다 히히..
왜?
왜냐며언, 나도 걔 쪼오끔 조아하거덩...절대 많이는 아냐!!쪼오끔-조아해..
살짝 쳐지는 그의 눈꼬리가 안타까워서 손을 들어 쭉 올려주니, 입꼬리를 들어 웃는다.
방금 너 좋다고 한사람앞에서 다른남자한테 사랑고백하는거 꽤 잔인한 짓인거 알아?
사실, 너 지금 엄청 위험한 상태야. 너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반쯤 벗고, 반쯤 안겨서 헤롱대는데, 내가 멀쩡한게 이상한거지. 당장이라도 덮칠수있는데, 내가 안그러는 이유가 뭔지 알아?
....
왜냐면, 니가 소중하거든. 그냥 클럽에서 만난 하룻밤 원나잇상대라면 안이러지. 아마 그 클럽위의 호텔에서 바로 안앗을걸? 근데, 넌 그러기 싫었어.
우웅....
춤을 추면서 밝게 웃는 모습이 어두운 조명아래에서도 너무 예뻐서, 거기가 클럽이라는 것도 잊을만큼 햇살같은 웃음에 이끌려 너에게 다가간거야. 좀더 알고싶고, 웃는걸 보고싶어. 물론 내옆이라면 더 좋겠지만...그게 다른사람옆이라도 네가 웃는모습이 보고싶어...
나긋나긋한 리우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귓바퀴에 흘러들어와 무슨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체온과 말소리는 마치 최면이라도 부리는듯 날 잠에 빠뜨려버렸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
그러니까, 당분간은 내 옆에 있자. 지금 네 그사람이 잘못을 저지른동안만, 나도 좀 행복할게.
색-색-
턱아래에서 들리는 숨소리를 부드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리우. 오늘 처음만난, 하지만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해진 천사가 자신의 품에 누워잇다. 두어잔쯤 마실때부터 내쪽으로 몸이 기울더니, 발음이 꼬일때부터 완전히 자신에게 쓰러져 안겨버린 그.
....양.....ㄱ..지마..
뭐라 웅얼거리는 태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물오물 옹알이를 하는 입술에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그의 엉덩이를 받쳐들어 침대에 눕히고, 자신도 그 옆에 누워 팔베게를 해준다.
언젠간 이 입술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 날을 그리며, 천사의 어리석은 애인이
제발 자신의 잘못을 늦게 깨닫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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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편을 짧고도 허접스럽게 끝낸 관계로 이번편은 좀 깁니다ㅎㅎㅎ
전 이만 분데스리가 경기보러가야되서 급하게 올리고 떠나요~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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