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이는 녀석의 모습을 뒤로 하고 복도로 들어서니 사방의 시선이 다 내게로 날아와 꽂힌다.
난 지은 죄가 없음에도 몸을 구부려 조심히 반으로 들어간다.
"야...! 너 반장이랑 사귀어...?!"
오, 지져스.
결국 이런 말이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건가.
나는 반에 발을 디디자마자 나를 붙잡고 추궁하는 친구에게, 알맹이 없는 말만 중얼거린다.
나를 채 지켜보기도 전에 친구가 한 번 더 말을 꺼낸다.
"야, 아니지?"
"다... 당연하지...! 얘는 무슨~"
"지금 네가 우리학교 아이돌의 이거라고 소문이 쫙 깔렸어…"
"뭐라고~?!"
친구가 치켜든 새끼손가락을 보며 난 큰 소리를 냈다.
나의 큰 소리에 당황한 친구는 황급히 내 입을 막고 자리를 옮긴다.
복도를 지나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몇 십개의 눈과 마주쳤는지 모른다.
난 그 눈을 바라보다가, 내가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에 정신이 들어 고갤 돌려버린다.
나를 질질 끌고온 친구가 계단앞에 서서 말을 이어간다.
"어제 너랑 반장이랑 복도에서 키스했어?"
"!!...무슨..! 나 걔랑 얘기도 별로 안하는 거 잘 알잖아!"
"...게다가 그 소문... 네가 내고 다닌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
"무슨 소ㄹ...."
"...왜 그래?"
난 입을 놀리다 어제의 장면이 재생되어 말을 끊었다.
야자시간에 복도를 지나가던 여자애들이 둘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난 것이다.
야자시간에도 둘이 같이 화장실을 가는 걸 보면, 어지간히 호들갑스러운 여자애들인가 보다.
찾아가서 추궁하고 싶지만, 얼굴 따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아..."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짚이는 게 있구나?"
"...응. 그치만 난..."
"알아, 결백하겠지."
"……"
아니. 솔직히 결백하진 않다.
거기서 키스를 한 건 아니지만 교내에서 응응한 짓거리까지 했으니까.
다만 소문의 내용이나 유포자가 내가 아닐 뿐이다.
난 말없이 친구를 껴안으며 말을 삼킨다. 친구는 얌전히 내 어깨를 토닥인다.
실상을 알고 전부 이해해준 것은 아니지만, 그 격려가 어쩐지 조금 위로가 된다.
"내가 다른 반 친구한테 아니라고 해줄게."
"응... 고마워..."
그렇게 암묵적으로 해명을 하고 다시 돌아온 교실은 쑥덕대기 바빠보인다.
자신들이 날 쳐다보고 있는다는 걸, 내가 못 느낀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정말 전따가 된 것처럼 난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다.
그 녀석과 얽힌 뒤로는 정말 바람 잘 날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조회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중간에 껴들어오는 녀석,
그리고 녀석을 향한 반 아이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내가 뚫어져라 녀석을 바라보는데도, 녀석은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나를 흘겨보지도 않는다.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것만 같다.
어느 새 학교에서 남아있는 내 편은 친구가 전부였다.
...
아... 또 어느 새 잠들어버렸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애들이 아무도 없이 반 불이 꺼져있다.
나만 덩그러니 반에 남아서 책상 위에 구겨져있던 것이다.
반 애들은 그렇다치지만, 날 챙기지 않은 친구에게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교과서를 들고 컴퓨터실로 가려고 문을 여는데
"...!..."
열리지가 않는다.
난 꽤나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있는 힘껏 문을 열어 젖혔지만 역시 열리지 않는다.
문을 밖에서 걸어잠근 것이다.
'이 XX XX...'
욕이 절로 나는 상황에, 문을 발로 차고는 씩씩거림으로 성질을 표출하며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 가둔 걸까.
또 남들 눈을 피해 그짓이나 하려는 걸까?
하지만 난 복도가 훤히 보이는 창문을 보며 고갤 젓는다. 그 철두철미한 미친놈이 여기서 그럴 리는 없다.
"하아..."
오늘만 몇 번째 쉬는 한숨인지.
난 책상에 얼굴을 옆으로 뉘여본다.
그 때, 복도에서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들긴다.
"안에 있어?!"
"어..?!"
난 목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복도 열의 첫번째 자리로 다가간다.
의자를 밟아 창문을 살피니,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친구는 어디서 난 건지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고, 곧 드르륵 소리가 난다.
난 석방과 함께 찾아와 준 친구 덕분에 감격했다.
"아, 놀랐네...!"
"어디 갔었어~"
나는 친구를 껴안았다. 친구가 내 등을 살살 토닥이며 입을 연다.
"김명수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너무한다."
"어...!.. 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까 전에 너 깨워서 데려 가려했어."
'저... 잠깐만.'
'....어?'
'얘는 내가 깨워서 데려갈게.'
'...?'
'할 말이 있어서.'
"설마 여자애랑 싸움박질이나 할까 싶기도 했고 그래도 반장 믿었는데, 와..."
"......."
기분이... 복잡 미묘하다.
자신의 이중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까지 나를 가둔 이유가 뭘까.
게다가 가둬주고는 타인에게 들킬 것을 노출한 것이 뭔가 찜찜하다.
내가 생각에 잠겨서 미간이 좁혀지자, 친구가 내 책상의 컴퓨터 책과 필통을 집어 온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자.
나 지금 선생님이 너 땡땡이 친 걸로 생각하시길래 그거 무마하려고 뛰어온 거란 말이야."
다시 문을 걸어잠근 친구가날 컴퓨터실로 데려가는 순간에도,
머릿 속으론 온통 이상한 의구심 뿐이다.
"반장. 어떻게 된 거야."
"......"
들어간 컴퓨터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컴퓨터 선생님의 추궁에도 녀석은 입을 떼지 않는다.
반장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반 아이들도 혼돈이 오는 것 같다.
선생님과 녀석이 기싸움을 하는 그 틈에 반 애들은 지들끼리 쑥덕대느라 바쁘다.
반장이 운을 떼길 기다리던 선생님은 결국 먼저 눈을 떼신다. 그리고 그 눈은 곧 나를 향한다.
"......"
"...앉아."
벌점이나 체벌이 날아올까 맘 졸이던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자리를 찾아 앉는다.
반으로 돌아와서 받는 관심은 의외의 것이다.
"뭐야, 반장이 너 벌점 받으라고 여기 가둔거야?"
"헐, 진짜? 반장도 독하구나."
중립을 유지하던 친구들은 소문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지켜보다, 적절한 타이밍의 질문에 소문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반장을 그저 상냥하게만 보던 애들도, 조금씩 나를 믿어주는 것 같다.
내가 누명을 벗은 것은 기쁘지만, 어딘가 마음 한 켠이 개운치가 못하다.
"그래. 솔직히 넌 그 팬클럽 회원도 아니였잖아."
"(웃으며) 맞아맞아."
"...으, 응...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자리가 조금 불편한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