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차안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머리를 살짝 부딪히긴 했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이따금씩 나뭇잎들이 창문을 스쳐 소리가 나기도 했다. 소음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얼마 만에 와보는 곳인지, 많이 변해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저 내가 없었고, 박찬열. 네가 없었다.
동네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던 고등학교와 옆에 쌍둥이처럼 붙어있던 중학교. 추억이라면 추억이고 아픔이라면 아픔인 이곳에 2013년, 현재의 내가 들어섰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 이야기는, 열다섯 여름에 시작해 열아홉 겨울에 끝난 조금은 풋풋하며, 어쩌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자기소개할래?"
"네? 아, 네. 어…. 안녕! 난 박찬열이고, 잘 지내보자."
말을 끝내고 수줍게 웃는 모습이 꽤나 소년 같았다. 큰 키, 뚜렷한 이목구비. 여자애들은 알게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며 나이스를 외쳐댔고, 남자애들은 알게 모르게 그를 경계했다.
"책상 빈 거 없어? 백현아, 책상하고 의자 하나씩만 가져올래?"
"저요?"
한번에 쏠리는 시선들이 민망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일어서 교실을 나갔다. 그런데 박찬열이 따라나와 내 옆에 서서 걸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네가 가져오기 힘들 것 같아서."
내가 힘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인가. 나도 남자라고, 그 말에 자존심이 살짝 상했는지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전혀. 안 도와줘도 되는데."
내가 발끈 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박찬열은 날 보며 웃었다.
"그래, 알겠어. 사실 교실에 있기 싫어서."
애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거든. 찬열의 말이 끝나고 우리 둘 사이에 찾아온 정적과 끝나지 않은 복도는 날 상당히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냥 들어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박찬열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백현아."
찬열은 내가 언젠가 쟤를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알고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날 처음 본 것 치고는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백현이야? 김백현? 이백현? 최백현? 독고백…."
"변백현이니까 그만해."
2학년 1반의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온 교실은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새로운 사물함, 책상, 의자…. 문을 닫고 들어서 교탁 앞에도 서보고, 괜히 칠판을 건드려도 보고, 교실의 뒤편으로 걸어가며 책상을 손끝으로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창문이 옆에 있는 마지막 줄 자리의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군데군데 칼로 낸 흠집들과 책상을 뚫은 흔적이 보였다.
"요즘 애들도 이러고 노는 건 안 변하나 보네."
한쪽 팔을 뻗고 책상에 엎드렸다. 옆에 보이는 벽에는 낙서 하나 없었다. 박찬열과 내가 한 낙서를 생각해본다면, 아마 새로 페인트칠을 다시 한 듯했다. 손을 뻗었다. 벽이 손끝에 살짝 닿았다. 우연하게 시선이 닿은 벽 맨 아래에 연한 낙서가 하나 보였다. 아마 구석진 곳이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몸을 일으켜 벽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쭈그려 앉아 글자를 읽었다.
"변백, 20, 3, 8…."
연필로 쓴 것인지 중간 중간이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박찬열이 옛날에 내 이름 따위를 쓰며 장난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앉았던 자리 책상 서랍 안에서 아무 연필을 꺼내 옆에 쓸 말을 생각했다. 할 말은 너무 많았고 자리는 너무 좁았다. 내 감정을 담아내기에 모든 것은 내게 좁고 제한적이었다. 서로 다른 글씨체의 글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연필을 다시 집어넣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아까와 같이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문을 닫는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진정 가을이 온 것인지, 주위를 채운 공기가 쌀쌀했다.
변백 20 3 8 박찬열
결국 참지 못하고 다른 글을 질러 버렸어요..
소재만 넘쳐나면 무얼하나 글을 못쓰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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