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오늘은 밥 반 친구들이랑 먹으면 안 돼? 아, 좀 그런가…."
자기 생각에 난 원래 혼자였고, 또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다른 사람들과 달리 밥먹을 때에도 혼자인 걸 별로 개의치않아했다.)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반 친구 한 명과 있는 걸 봐서 그 아이와 먹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박찬열은 내게 자신의 새로운 친구들과 밥을 먹겠다고 말해오고있다.
"그래, 난 괜찮아."
"밥 맛있게 먹고 조금 있다 집에 갈 때 보자."
마치 꼬마아이 취급하 듯 내 머리카락을 흐트려놓는 그 손길이 싫지 않아 가만히 서 있었다. 박찬열이 지나간 자리가 휑했다. 분명 다른 아이들로 가득 차 있는 이 교실이 꼭 나만 있는 것 처럼 비어보였다.
"밥 안 먹어?"
"응. 속이 안 좋아서."
같은 반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교실을 나섰다. 평소에 같이 먹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문이 닫히고 비로소 비어보이는 교실이 아닌 진정한 빈 교실이 되었다. 편해지는 마음에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박찬열."
진정 모르는 걸까. 학생에게,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 사이에 급식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와 같이 먹지 않는 다는 의미. 아무렇지 않다고 넘어가는 이 행위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아, 내가 고작 박찬열과 점심 한 번을 안 먹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박찬열은 고등학교에 들어와 사귄 새 친구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 같이 올라왔지만 떨어진 반에 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걸 예상했기 때문일까. 새롭다라…. 새 학교, 새 친구…. 낯설고도 설레는 단어를 되뇌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았다. 가끔 박찬열이 축구를 할 때 골을 넣으면 내게 달려 와 칭찬을 바라는 어린 아이 처럼 날 쳐다보고는 했었는데, 그 주체가 바뀐 적이 한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유치하고 어이없지만…. 코 끝에 물방울이 닿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맞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만히 앉아 운동장을 바라봤다. 옛날엔 모래로 되어있던 운동장이 이젠 초록색 인조잔디로 바뀌어 있었다. 새 운동장…. 잔디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가을비인가.
"헤어져줄래?"
"뭐라고?"
내 앞에 있는 여자 애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에게 되물었다.
"헤어져달라고, 박찬열이랑."
나름 예쁘게 생긴 아이. 박찬열에게 고백해 사귄지 이제 막 한 달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네가 뭔데? 나 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너 평소에도 항상 그랬잖아."
"그냥 헤어져줘, 아니 헤어져."
"너 미쳤니 정말?"
"아니."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짜증나게 진짜."
그렇게 한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랬고 여자 애도 지칠대로 지쳤는지 결국 박찬열은 이별했다. 굉장히 웃기고 어이없을지 모르겠으나 그 여자애도 나름 스트레스가 컸는지 결국 박찬열과의 연애를 포기했다. 그 과정에서 내 얘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난 박찬열이 헤어졌다는 사실에 기뻤다.
"찬열아. 걱정 마."
"걱정? 야 그냥 잠깐 사귄 애인데 뭐…."
그 아이가 박찬열에게 어떤 위치에 있는 지 듣고 또 한 번 기뻐했다.
"종쳤네. 수업 잘 듣고."
"응, 너도."
수업의 내용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박찬열이 이별한 것은 좋았으나, 내가 왜 그에게 집착하는지 나조차도 이해 되지 않았다. 대체 무엇때문에 나는 이러는 것인가. 내가 박찬열을 좋아하나.
"선생님 옛날에 첫사랑이 소크라테스를 좋아했어."
"오-."
"아주 미친 놈이지 그거. 고등학생이 소크라테스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돼?"
선생님의 비속어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도 수업보다 다른 얘기 하는 시간이 더 긴 도덕 선생님은 결국 참지 못하고 오늘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 땐 되게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지."
"사귀었어요?"
"첫사랑이라니까.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름다운 거지."
정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진정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름다운 것인가.
"어쨌든. 자꾸 신경쓰이고 생각나고 그러는 게 웬 미친 놈 하나 신기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좋아하는 거였더라 그게."
"언제 알았는데요?"
"졸업하고나서, 졸업도 아니고. 너무 늦었지."
"근데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게 말이 돼요?"
"말이 되더라. 자 시간 너무 갔네. 다시 98쪽."
"아-."
"놓치기 전에 잘 생각해봐 너네도."
난 박찬열을….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오는 후회감은 정말 상상도 못 하거든."
좋아하는 걸까?
"지금 이 얘기 듣고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박찬열.
"다음은 이제 본인의 판단."
난 박찬열을 좋아한다.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난 한 층을 올라가 1학년 1반의 문을 열었다.
"잠겼네."
박찬열네 반으로 가볼까. 8반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 찬열의 반으로 걸었다. 코너를 세 번이나 돌았다. 8반까지 꽤 머네…. 항상 박찬열은 이 먼 곳까지 무엇하러 찾아왔을까.
"아…."
8반의 문또한 잠겨있었다.
그 후로 그 여자애가 무슨 소문을 내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찬열이 간간이 받던 고백들도 사라졌다. 덕분에 난 마음을 놓았던 것 같다.
"백현아,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오늘은 밥 먹기 싫어서."
내 말을 들은 찬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앉아 같이 엎드렸다.
"너는 왜."
"그냥 너 안 먹으니까 나도 안 먹을래."
엎드려 서로 마주친 눈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조금 피곤한가."
머리에 박찬열 손이 올려졌다. 잘 자.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 적당히 불어 머리카락을 살짝 스치는 바람. 박찬열과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 공간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찬열아."
대답이 없는 찬열의 손을 잡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자?"
사실 난 찬열이가 그 여자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다. 박찬열이 고백 한 번 안 받아봤을 리가 있겠는가. 그 수많은 고백을 다 거절했으나 그 아이의 고백만큼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았던 기억이 있다.
"미안해."
조용한 교실에 작게 웅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울렸다.
"근데 난."
잘못했다는 생각 안 해. 내가 먼저잖아.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살짝 후회된다. 찬열은 대답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
책상에 엎드려 서로 마주 본 우리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기가 마냥 달았다. 이 공기 또한 내게만 달게 느껴지겠지, 네겐 아무런 의미 없겠지. 널, 내가 욕심내도 되는 걸까? 손을 살짝 뻗어 찬열의 얼굴을 만지려다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잘 자."
찬열아,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맞는 걸까?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대체.
제목 잘못써서 수정해서 다시 올려여... 겁나 놀랐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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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 잘되는거 싱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