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주! 나 고백받았다!' '근데.' '..어?' '너 고백받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 '...짜증나.' 그래. 부승관은 항상 그런식이었다. 내 기분이 어떻든간에 장난으로 툭툭 내뱉곤 해서 기분이 자주 상했었다. 차라리 그날에 우리가 정말 사귀는 건 맞냐고 물어봤으면, 차라리 그랬었다면, 이렇게 통수맞듯이 아프진 않았을텐데. 진짜 밉다, 부승관 너. 근데 어떻게해서든 네 옆에 남고 싶은 내가 더 밉다. 일단은 아까 서로 뒤틀려졌던 감정을 회복해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부승관은 친구로 두기에 정말 괜찮은 녀석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야 친구로라도 남을 수 있겠지. 그전까지는 그냥 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나보다. 많이 좋아했나봐. 이시간이 마치면 부승관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구연주랑 사귀는 거 축하도 할겸. -10년째 연애중 수업을 마치고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부승관을 향해 달려갔다. 뒤틀린 감정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은 되려 그 감정의 골을 파고들기만 한다. 늦기 전에 부승관과 감정을 풀고, 정리해야한다. "...부승관!" "..." 승관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승관이가 뒤돌아봤다. 여느 때처럼 방글방글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까 나 때문에 감정이 많이 상했나보다. 하긴, 내가 그렇게 무시했으니. 부승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내게 다가왔다. "아까는 미안! 내가 기분이 너무 안좋아서." "...어."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에 부승관의 눈치를 봤다. 부승관은 눈을 밑으로 내려 깔고 제 실내화 코를 보는 듯 했다. "기분 안좋다고 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네가 너무 편해서 그랬나봐. 내가 생각이 짧았어." 부승관은 입을 꾹 다문채로 날 응시했다. 그 눈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 이번엔 내가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말했다. 전혀 기분 좋지 않은데 부러 들뜬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척 조잘조잘 떠들었다.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야, 그리고 나한테 왜 말 안해줬냐!" "..?" "하하. 모르는 척 하긴. 너 구연주랑 사귄다며? 축하해. 인마. 연주 괜찮지, 공부도 잘하구 얼굴도 예쁘고." "..." "아, 부승관 부러운데. 예쁜 여자친구도 생기고. 오래가." 부승관은 횡설수설 말을 하는 날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도 싫었기에 오래가라는 말만 남겨두고 나 간다!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야." "..." 부승관이 내 손목을 잡았다. 평소와 다르게 야, 하고 뚝뚝 끊어 날 불렀다. 평소처럼 여주야- 나긋하게 불러주지 않고. 부승관을 볼 낯이 없다. 승관이에게 이 모습을, 벌개진 얼굴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서 뒤돌아선채로 응.하고 대답했다. "너 나한테 할말 그거 아니잖아." "...." "너 진짜.." "..." "그게 다야? 나한테 할말, 그게 다냐고." "..어."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부승관은 한숨을 쉬었다. "나 봐." "..." "김여주. 나 보라고 했어." "싫어.." "뭐?" "안 볼래." "..." "너 보기 싫어, 못보겠어. 승관아." 날 잡은 승관이의 손이 힘이 풀렸다. 스르륵, 생각보다 쉽게 놓아지는 팔이 허무했다. 날 잡고 내가 오해한게아니라며 부승관이 말해주길 기대한 찰나의 순간이 바보같았다. 접기로 해놓고 툭 건드리면 피어나버리는 부승관에 대한 마음이 서럽다. 뒤돌아보았을땐 부승관은 없었다. 반에 들어가버렸겠지. 허공에 내놓았던 손끝이 얼었다. 마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코를 쿨쩍였다. 이젠, 진짜 정리되어버렸다. 부승관과 나 사이의 어떤 끈 하나를 싹둑 잘라버렸다. 한결 간단명료해진 나와 부승관사이의 끈. 진짜 아무렇지 않은걸. 자기 위로를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진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사실은.. -10년째 연애중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치고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나로 돌아왔다. 지금은 미뤄두고 집에 가면 펑펑울고 엄마랑 치킨시켜 먹어야지. 그리고 자야겠다. "여주야." 그리고 새로운 복병같은 전원우. 원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전원우는 이제 나랑 친구로 남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를 밀어낼 명분은 사라졌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응." "끝나고 영화보러 가자." "...." "난 괜찮아.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거니까." 전원우는 진짜 괜찮은 애다. 부승관이 없었다면 우리 사이는 뭔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래." "..." "보러가자, 영화." 전원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게 끝을 맺어준 10주년이 어쩌면 새로운 시작일지도. -10년째 연애중 전원우와의 영화는 그저 그랬다. 간간히 웃음을 터뜨렸지만 관객들이 웃기에 그저 하하, 자조적으로 웃었다. 영화가 끝나고 전원우가 데려다주겠다고 하기에 거절했지만 전원우는 위험하다며 앞까지만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걷게 된 전원우와의 길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계속 이러면 안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때문에. "내가 했던 고백." "..." "다시 생각해줘." "..." "강요하는 거 아냐. 그냥 천천ㅎ.." "원우야." "..어." "미안. 내 대답은 계속 똑같을 것 같아." 전원우는 내게 다시 마음을 전해왔다. 이제 알았다. 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 그건 내 이기심에 희생당할 네가 불보듯 뻔했기때문이었다. "여주야. 굳이 조급할 필요는 없어. 그니까, 내말은," "너랑 있으면 편해." "..." "근데 편하다고 너랑 있는건 내 이기심이잖아. 지금은 승관이 일도 그렇고 내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럼 기다릴게." 원우는 간절해보였다. "아니. 시간이 지나도 너는 아닐 것 같아. 미안." 잔인하게 들리는 말을 뱉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애매하게 계속 끌면 원우에게 상처만 줄것을 안다. 해서,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다. 원우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담담했다. 다만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전원우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져서, 혼자서만 좋아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한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이제서야 전원우와 내가 같다는 공식의 착오를 실감했고 남은건 원우에 대한 미안함뿐. "알겠어. 이젠 진짜 친구네 우리." "..." "오늘 영화재밌었어." "나도." "..다음에 또 보러 가자. 그냥 친구로." "그래." 전원우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부담주지 않으려는 거겠지. 원우와는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오늘은 정말 다사다난했네. 휑한 기분에 앞섬을 슥슥 문지르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10년째 연애중 "김여주."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는 길이었다. 김여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부승관이었다. "어, 승관아." 의외의 인물에 깜짝 놀랐다. 승관이의 눈은 불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마치 추궁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모른 척 웃어버리자 승관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있었어." 내게 묻는 승관이의 코끝이 벌겋다. "그냥. 원우랑 영화!" 방글방글 웃으며 대답하자 부승관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김여주. 너 진짜," "나 할말있어. 승관아." 승관이를 끌고 도착한 곳은 놀이터. 유치하다며 앉기 싫어하는 승관이를 억지로 앉혔다. 승관이는 앉아서 묵묵히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오늘 내가 많이 이상했지? 이랬다저랬다." "..." 가방에서 주섬주섬 포장해두었던 니트를 꺼내들었다. 승관이는 이게 뭐냐는듯 쳐다보았다. 그에 풀어보라는 고개짓을 하자 승관이는 리본을 풀었다. 그리고 나온 진녹색니트. 승관이는 날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너 그거 갖고 싶고 했잖아." "..어. 고마워." "그리구, ..이것도!" 분홍색 상자에 넣어두었던 초콜릿케익을 꺼냈다. 승관이의 얼굴빛이 묘했다. "아, 부끄러운데. 우리 10년전에 있잖아. 네가 사귀자구, 그랬던거." "..." "나 그거 여태까지 진짜인줄 알고.. 그래서 오늘이 10주년인줄 알고.."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목소리가 떨릴 뻔했지만 웃음으로 밝게 포장했다. 조금 진정된거 같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케익도 만들고, 옷도 사고, 영화도 예매했었는데.. 진짜 주책이다 그치!" 그리고 손에서 영화표두장을 꺼내들었다. "이건 삼십분밖에 안남아서 이제 못보겠다. 에이, 다 주고 싶었는데." "..." "그래도 밝히고 나니까 후련하다. 고마웠어, 승관아. 10년동안. 이제는 진짜 그냥 친구네. 너 어이없겠다! 갑자기 내가 뜬금없이 굴어서." 승관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아마 정말 어이가 없었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젠 진짜 그냥 친구네!" "..누가." "응?" "누가 그냥 친구래." 그 말과 함께 승관이가 내 그네줄을 잡고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에 가까워진 승관이의 몸.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내게 당황한 틈에 승관이는 내 손에서 영화티켓을 가져가며 말했다. "누가 영화못본대." "..승관아." 승관이의 숨결이 얼굴 주변을 맴돌았다. "누가 오늘 10주년 아니래." 그말을 끝으로 승관이가 짧게 입을 맞췄다. "김여주. 너 진짜 어이없어. 알아?" "나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 "맞아." "어?" "10주년 맞다고." 능글맞은 승관이에게서 잘 볼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에 홀린듯 승관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 승관이가 나직이 말했다. "화해하자." "..." "안아주고," "..응." "뽀뽀해줘." 그 말에 승관이의 옷깃을 쥐고 입을 꾹 맞대었다 떼어냈다. 승관이가 나른한 얼굴로 속삭였다. "이제 10주년이고." "..." "좀 컸으니까." "..." "어른뽀뽀." 그말을 끝마치자마자 승관이는 한쪽 입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돌연 입맞춤. 아까보다 진한 입맞춤에 어깨를 흠칫 떨자 승관이는 살짝 입술을 떼었다. 코가 맞닿아있었다. 승관이는 푸슷, 웃자 숨결이 얼굴에 닿았다. "여주야." 내 이름을 부르자 입술이 입술에 스쳤다. "눈 감아." 그리고는 손으로 내 눈두덩이를 쓸었다. 아랫입술을 한번 물고는 다시 맞물리는 입술에 승관이의 마이깃을 더 세게 쥐었다. 어릴 적부터 항상 하던 뽀뽀와 달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부끄러워서 발끝을 꼼지락거렸던, "우리 오늘 10주년이야." 우리가 10주년이 된 오늘. "어른되면 결혼도 해야해." 17살의 우리. -hidden side1 승관이와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야, 너 구연주는 어떻게 된거야." "걔가 고백했는데 찼어." "근데 왜 붙어있었어?" "울길래 달래줬어." "그래." -hidden side2 '김여주! 나 고백받았다!' '..근데.' '..어?' '너 고백받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 '...짜증나.' 아 귀여워. -hidden side3 '승관이 너 왜 자꾸 여주 괴롭혀!' '...잖아.' '뭐?' '됐어!' 그래야 여주랑 뽀뽀할 수 있잖아. -10년째 연애중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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