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고자 최한솔
"최한솔. 안녕!"
최한솔과 친해지기로 마음먹고 지금은 열심히 다가가는 중이다. 솔직히 최한솔 애가 무뚝뚝하긴 해도 잔정도 많고 속은 따뜻한 것 같은데. 아침 일찍 온 최한솔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내자 대답도 하지 않는 최한솔이다. 뭐, 애가 원래 이런애기도 하고 답인사를 해줄거란 기대도 안했으니까. 가방고리에 가방을 걸고 책상에 엎어져 눈을 감았다. 으, 피곤해. 선생님 들어오시려면 이십분정도 남았으니 눈좀 붙여볼까. 최한솔과 나, 그리고 몇몇아이들밖에 없는 교실은 어색하리만큼 조용했다. 내 옆에서 최한솔이 사각사각 문제를 푸는 소리나 책장을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야."
몸을 일으켜 최한솔을 부르자 최한솔은 뭐냐는 듯 날 응시했다. 피곤하긴 한데 잠이 오지도 않고 기왕 최한솔과 친해지기로 한거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말을 붙여본 거였는데. ..할말이 없는건 좀 낭패다. 최한솔의 옅은 갈색눈을 보며 뭘 묻지, 짧은 시간동안 고민하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던져본 말이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다. 여자라면 돌로 아는 최한솔한테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고 묻다니. 최한솔은 내말을 듣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아, 그러니까 내말은 어이없어서 벙찐 표정으로 변했다는 거다. 그리고 최한솔은 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문제집으로 얼굴을 갖다대고 샤프를 들었을 뿐. 물어본 나도 황당해서 그냥 뒷머리만 긁적였다. 바보같은 김여주. 그냥 잠이나 자지는! 다시 쓰러지듯 책상에 몸을 엎드리자 최한솔이 내게 툭 말을 건냈다.
"있을지도."
"..."
고개를 돌려 최한솔을 다시 쳐다봤을땐 최한솔은 문제집만 풀고 있었다. 내가 선잠에 들었다면 꿈이었나 싶을정도로 너무 태연하게.
-연애고자 최한솔中
쉬는 시간이 되면 최한솔과 말을 붙여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 자식이 지금 나한테 철벽을 치는 건가 싶을정도로. 대꾸를 해주지 않거나 짧게 고개끄덕이기, 단답으로 끝나는 바람에 이야기는 이어갈 수가 없었다. 후.. 얘한테 화술책이라도 사줘야 하는건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정도 되니까 얘랑 친구하려고 드는거지 누가 얠 견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한번이라도 더 말해보자.
"최한솔."
"..."
최한솔은 여전히 문제집에 열중하고 있었다. 참고로 최한솔은 용건으로 말해야 쳐다보지 이름으로 부르면 여간해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최한솔에게 말을 붙여본 결과 얻은 나름의 꿀팁이랄까.
"오늘은 도시락 뭐 싸왔어?"
"밥."
"..."
아 진짜 짜증난다. 나 오늘은 엄마가 안해주길래 소세지 내가 그냥 볶아오고 나름 계란말이(물론 알아볼 수는 없다.)도 해왔거든. 나도 더이상 갈비찜같은 거에 휘둘리지 않는 단 말야. 라고 항상 생각은 하지만 최한솔의 반찬을 보면 그럴 수가 없다. 제육볶음은 매콤한 냄새를 풍기면서 붉음 기름이 좌르르 흘렀고 최한솔의 카레는 끝내주게 맛있었다. 아, 카레 잊을 수가 없다. 보온병에 담겨서 따끈하게 밥에 비벼먹으면 그렇게 맛있던데.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
최한솔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건지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은 돼지보스를 보는 것 같았다.
"..."
참고로 나는 한번도 달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그냥 최한솔이 꺼내는 반찬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최한솔이 알아서 한숨을 내쉬고 말없이 반찬통을 밀어주는 거지, 절대 내가 강요한건 아니었다. 반찬통을 내게 밀어줄때 와! 진짜 먹어도 돼? 하고 물어보면 최한솔은 대답도 하지않고 젓가락을 들어 밥을 한술 떴다. 그게 바로 먹어도 된다는 신호! 정확히 말하면 네가 먹던 말던 신경도 안쓴다는 그런 뜻이었다. 헤헤, 먹으면 되는 거지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있어. 분명 최한솔이 별거 없는 척 밥이라고 말했어도 반찬은 어마무시하게 맛있을 걸. 아 빨리 점심시간 오면 좋겠다.
.
.
.
"오늘도 최한솔이랑 먹어?"
슬기와 매점을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다. 점심시간 종이치고 잠시 매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슬기가 내게 물었다.
"엉. 최한솔네 엄마 요리 엄청 잘하신다."
"너도 대단하다."
"...응."
"무시당하면서 그렇게 밥도 잘 얻어먹고."
"..."
"나같으면 체해서 밥도 못먹겠,"
"1절만해 1절만!!"
슬기의 등을 퍽퍽 내려치자 슬기가 입을 앙 다물고 몸을 비틀었다.
"하여간 김여주.. 성격더러운 거 봐라. 저러니까 남자친구도 못사귀어보지."
"닥쳐!!!!!!"
슬기와 투닥거리며 교실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도시락을 까고 거의다 밥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슬기와 나는 뒷문에서 갈려 나는 최한솔을 향했고 슬기는 뒷자리로 향했다.
"여주 오늘도 최한솔이랑 먹는대?"
"응."
슬기와 다른 친구들이 간단히 나누는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최한솔의 옆에 의자를 끌어 앉았다. 다들 밥을 먹고 있는데 혼자만 그 틈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종치면 바로 밥먹고 양치하고 공부하는 애가 오늘은 문제집부터 풀다니. 밥보다 공부인건가. 이해 안되네. 최한솔이 문제를 푸는 모습을 바라보다 최한솔이 한 문제를 끝내자 바로 말을 걸었다.
"최한솔. 밥먹자 이제."
그에 최한솔은 한 3초간 샤프를 쥐고 문제집을 바라보다가 갈무리하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혹시.. 나 올때까지 기다린건가. 머릿속에서는 상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종이 치자마자 내가 나가는 바람에 도시락도 못꺼내고 허둥대는 최한솔. 일단 문제집을 풀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밥은 먹긴 해야겠고 말은 못걸겠고. 내가 말걸어줄때까지 문제집푸는 척 하는.. 풉. 상상해보니까 최한솔도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잖아. 살짝 웃는 소리가 새어나가자 최한솔은 가방지퍼를 열다말고 날 힐긋 쳐다봤다.
"아냐아냐. 빨리 꺼내."
최한솔은 말없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드디어 눈에 보이는 빨간색 도시락통. 갈비찜이나 제육볶음같은 메인메뉴가 주로 담기는 성스러운 통이었다.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이젠 빨간색 통만 보면 침이 샐것 같다.
"..."
최한솔이 빨간색 도시락통을 나와 최한솔의 책상사이, 그러니까 우리의 중앙에 도시락통을 놓았다. 헐. 이게 무슨일이람. 뭔가 감격스러운 느낌에 최한솔을 바라보자 최한솔은 무시하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이젠 침을 삼키며 최한솔의 도시락통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아예 중앙에 놓여있으니 최한솔이 내게 도시락통을 밀지 않아도 된다. 솔로몬과 같은 최한솔의 판단력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젠 계속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걸 인정한건가..! 그럼 좀 친해진 거 아닐까.
"..고마워. 오늘도 잘먹을게."
"..."
"한솔아."
-연애고자 최한솔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고 있는 최한솔을 보는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간혹 내려오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슥 올리는 걸 보는 모습도 꽤 재밌다, 그 긴 머리가 흘러내리면 머리를 쓸어넘기곤 하는데.
"..."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사심 담겨서 하는 말이 아니고 말그대로 얼굴이 너무 예쁘다. 여자인 나보다 더 뽀얀 피부에 높은 콧대. 살짝 긴 머리가 잘어울리는 것도 이 얼굴때문이 아닐까. 진짜 예쁘네. 아예 턱을 괴고 자세를 잡아 최한솔의 얼굴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자 내 노골적인 눈빛때문인지 최한솔이 공부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구경이 취미야?"
"..."
"공부나 해."
그리고는 내 이마를 툭 밀었다. 그에 턱을 괴고 있던 손이 어긋나 교과서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최한솔이랑 처음으로 한 장난인가. 뭔가 기쁘다. 최한솔이 장난도 쳐주고. 뭔가 최한솔은 또래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는데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한편으로는 또 다행이다. 한솔이가 공부하라고 했으니 공부해야겠다. 샤프를 쥐는 내 모습을 최한솔은 한번 힐긋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귀여운 자식.
"한솔아. 난 너희 엄마 갈비찜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어쩌라고."
"..그냥."
.
.
.
"여주. 오늘도 최한솔이랑 먹어?"
"응. 그러려고 했는데 왜?"
"오늘은 밖에서 도시락 같이 먹으면 안돼?"
"음.. 그래!"
슬기가 내게 밖에서 밥을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간 최한솔이랑 점심시간에 붙어있었으니 슬기에게 신경을 못써준 것도 맞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수락해버렸다. 점심시간에 혼자 있을 최한솔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원래 혼자 먹는 애였으니까 하루쯤은 괜찮겠지. 같이 있던 친구들이 김여주가 밥도 같이 먹어주고! 비싼 몸이신데 감격스러워. 하고 놀렸다. 아씨, 조용히 하라구! 친구들은 내 말을 들은체도 안하고 서로 도시락을 챙기기 바빴다. 그에 나도 몸을 일으켜 내 가방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도시락을 먹으러 오는줄 알았는지 최한솔은 제 가방에 손을 얹었다. 자리에 앉지 않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나를 최한솔은 의문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도시락을 들고 슬기에게 향하자 최한솔의 눈길이 나를 좇고 있다는 걸 알수있었다. 아,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가슴 안쪽이 묵직한 기분이다.
"가자."
뒷문에서 날 기다리던 친구들에게 가자, 말을 건내자 친구들은 어디서 먹을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등나무 가자."
"놉. 조회대가 내 로망인데."
"별 로망이 다있어."
왁자지껄한 친구들사이에서도 웃을 수가 없었다. 날 좇던 최한솔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충 친구들을 따라 조회대 계단에 앉긴 했지만 도저히 도시락통을 들 수가 없었다.
"여주 너 왜 안먹어?"
"..."
"엥. 어디 아파?"
"미안. 나 한솔이가 신경쓰여서."
"어디가!"
그리고 교실을 향해 숨이 차게 달렸던 것 같다.
-연애고자 최한솔
"한솔아."
가쁜 숨을 내쉬며 최한솔의 앞에 섰다.
"..."
최한솔은 밥을 다 먹은건지 책상이 깨끗했고 늘 그랬듯 문제집이 책상위에 놓여있었다. 힘들게 달린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앉았다.
"...미안해."
최한솔에게 중얼거리듯 던진 말이었다. 최한솔은 믄제집을 갈무리 하더니,
도시락통을 가방에서 꺼냈다.
언제나처럼 빨간통이 아닌 조금 더 큰 파란색 통이었다. 최한솔은 말없이 파란 통을 우리의 중앙에 놓을 뿐이었다. 통의 색깔이 바뀐 것 말고는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그에 나도 주섬주섬 도시락통을 열었다. 그리고 최한솔이 자신의 다른 도시락통을 여는 사이에 파란통을 열었다. 갈비찜. 도시락통에 들은 건 갈비찜이었다.
"먹어."
처음으로 최한솔이 먼저 먹으라고 말을 해준 날이었다
"..한솔아."
"..."
"미안해."
기다렸겠지. 최한솔은 나를. 진짜 이기적이다 김여주. 늘 혼자였었으니 한번쯤은 혼자여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렇다면 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다. 한솔이는 이렇게 나를 기다려줬는데. 생각해줬는데.
"..."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함인지 감동인지 고마움인지 가슴속의 무언가는 형태없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왜이렇게 많이 싸왔어. 통이 엄청 크네."
평소처럼 밝게 말을 걸자 최한솔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
"..."
"친구랑 같이 먹을 거라고 했어."
오늘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
드디어 여주가 한솔이랑 진짜 친구가 되었네요! 좋으시겠어요 여러분... 그나저나 下편까지 이제 한편 남았네요. 많이 정들었던 글인데 8ㅅ8 참고로 下편은 수련회에 갑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 부족한 글 읽으러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下편과 순영이 단편들고 찾아올게요. 오늘도 함께 달려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