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추위가 예상됩니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올해 첫눈 소식이 있어.."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께서 고개를 저으신다.
기사 아저씨와 함께 나도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기사님은 눈 소식에 마음에 먹구름이 깔리셨을 지도 모르겠다. 눈이 얼면 미끄럽고 녹으면 물이 될테니까.
나?
나는 좀 다른 이유라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지금 내 옆에서 아니, 내 위에서 나를 보며 웃는 이 아이 때문이랄까
"…………….학교...안가니?"
"어…? 아싸! 오예"
이런것이 우문현답이었나, 내 질문은 '학교 안가니?' 였는데 것도 엄청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얘는 왜 이러지? 변태인가? 막 한심한 취급 당하는 걸 좋아하나..?
"에이, 나 변태 아니에요 누나"
"헉"
"쩔죠? 내가 원래 좀 쩔어요- 막 눈치도 빠르구, 그래서 학교생활도 짱 잘하는데! 캬-"
"……………그.그렇구나 그럼 잘 가렴"
아무래도 오늘도 한 정거장 먼저 내려야겠다. 그냥 추위에 내 다리를 맡기는게 이 아이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덜 힘들것 같기 때문이다. 젠장 오늘 전공책도 들었는데..
출근길이라 그런지 굳이 내가 누르지 않아도 여기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옆에서는 눈만 마주치면 웃어 대는 녀석이라 아마 여기서 내리는 걸 눈치 못 챘을 거다.
버스의 뒷문이 열리고 그 전에 내가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놓은 후 재빨리 움직여 내렸다.
갑자기 몰려오는 겨울의 찬 바람에 순간 몸을 움츠렸지만, 일단 저길 빠져나온 것에 그리고 저 아이를 따돌린 것에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움츠린 몸을 폈다.
"하- 춥다! 으으"
그래도 춥다. 너무 추워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하-춥다! 으으"
도심 한 복판에서 메아리가 울렸나..? 내 말에 이어 같은 말이 울렸다.
이런
"누나! 왜 여기서 내려요? 항상? 누나 학교는 한 정거장 더 가야는데?"
"네 학교는 이 방향도 아니잖아."
"누나 그리고 추운데 왜 자꾸 치마입어요? 네?"
"네 교복이나 똑바로 입으렴"
"오올 지금 나 고나리 해주는거? 아싸"
고나리는 또 뭐야, 고사리도 아니고 고나리를 하다니..
아 머리야..
나 이제 겨우 21살인데… 18살한테…. 세대차이라는 걸 느끼는건가…?
"누나 책 안무거워요?"
"응 안무거워요"
"아 진짜 지금 존댓말 한거에요? 그렇죠? 그럼 나 말 놓을까? 누나?"
"죽어요"
"치……….. 누나, 나 갈게요. 여기서 뛰어가도 지각이에요. 쌤한테 혼나겠다"
"그러니까 누가 자꾸 나 따라오래?"
"누나만 보면 따라가고 싶은데?"
"이게 진짜-"
"나 진짜 가요!! 나 오늘은 데리러 못 가!! 연습실 가야 해요!! 나보다 키는 작은데 잔소리 대마왕 형이 늦으면 완전 잔소리 폭탄 투척 한댔어요!! 대신 문자해요!! "
"내가 왜-"
"알겠죠? 오늘도 내 생각 완전 많이 하기!!!"
하……..
지나다니는 사람들이쳐다보잖아…
교복입은 키 큰 아이가 누가봐도 본인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여자한테 사랑 고백이라니..
하하하하…. 친한 친누...아니 안닮았으니까 친척 누나 정도라고 생각해주길.
"야! 넌 오늘 또 그러고 오냐? 너 또 걸어왔지?"
"하… 시끄러…...후.. 교,교수님은?"
"아직. 다행인 줄 알아라 으이구, 그러게 그냥 무시하고 오라니까"
"어떻게 그래, 우리 학교에서 내리면 걔.. 뛰어가는 걸로는 안된단말야"
"이 츤데레기집애, 매일 싫다고 해도 걱정은 되는구나?"
나의 이야기를 아는 친구라는 년이 위로를 해주지는 못 할 망정 나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걱정?
나.. 걱정하는건..가??
아니 걱정은 할 수 있지. 측은지심이랄까. 불쌍한 녀석을 걱정하는거니까.
어렸을 때 이웃으로 만났고, 우리들의 윗집, 아랫집 심지어 옆동의 이웃들이 이사를 가도 우리 두 식구의 집만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더욱 친하게 지냈고, 뭐.. 갑자기 어느 날 나타나서는
"누나! 좋아해!"
라고 외치면서 따라다니지만 않았어도 예전처럼 예뻐했을 텐데 말야..
더군다나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 기획사에 들어갔으면서, 아니 거기는 어? 연습생 관리 안하나..?
그렇지만 결코 그 아이가 못생기거나 뭐 맘에 안드는 건 아니었다.
단지 걔는 18살이고 난 21살인데. 연애감정은 무슨.
더군다나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내년 쯤에는 신인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는데… 어후….
솔직히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얼굴도 잘 생겨서,.. 안된다. 그런 아이를 혹시라도 만나면.. 내 하나뿐인 목숨은 누가 지켜주냐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수업이 끝났다.
날씨도 춥고,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과제들을 생각하니 급 소주 타임
"야 정신차려 아까부터 계속 울린다. 네 폰"
친구가 소주를 마시면서 내 폰이 울린다며 아무래도 그 고딩같다고 했다.
역시나.
"여보세요오"
<어….? 뭐야… 이거 …. 잠깐..어..>
"으응?"
<뭐야, 이름누나?>
"그래!!! 나 성이름이다!!!! 왜!!!"
<지금 술 마시는거에요?>
"응 그런데?"
<하...진짜.. 지금 몇신데 술을 마셔요>
"뭐 어때서, 네가 내 아빠야? 오빠야? 아님 남친이라두 되냐아?"
<아 진짜…어디 술집인데요>
"왜? 오려구? 여기 너 같은 18세 고딩은 못들어오는데에?"
<아 정말!!!! 어디냐구요!!! 나도 알거든요? 진짜, 누가 고딩이고 싶어서 고딩인 줄 알아?>
"치………………..왜 ...오...왜..화내냐.. 알려주면 되잖아.."
거기 딱 있어요-
라는 말과 동시에 화가 난 듯해 보이는 그 아이의 전화가 끊겼다.
"야아, 얘 화낸다 나한테?"
"...으휴… 참...너도 답 없다…."
"내가아? 왜에?"
"됐어 이년아. 부러워 뒤지겠다. 이모!!! 여기 소주 1병 더!!"
갑자기 내가 부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더니 소주를 시키는 친구였다.
내가 왜 부러워? 참나
그렇게 그 아이와의 전화를 잊고 친구와 술 잔을 기울이고 있었을까.
"저,저기요.."
"있잖아 아 진짜 내가말이야아 그래서어"
"저,저기..성이름..씨?"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느낌에 돌아보니,
와우-
누가 봐도 ' 나 좀 사는 집의 막내아들이에요' 라는 듯한 백마탄 왕자님인줄
"네..? 저,,저요?"
"네. 성이름씨 맞죠?"
"네.. 저..그런데 누구신데…."
젠장.
역시 김칫국이었다.
그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술집 밖 창문을 가리키자 그 곳에는 그 아이가 엄청난 표정으로 서있었다.
"세훈이가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여기를 와야한다고 떼를 쓰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들어온거에요. 친구분도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아 친구분은 제가 택시라도 태워서 보내드릴테니까 저 녀석한테 가보세요. 지금 완전 화났어요."
형이라는 사람에게 친구를 맡기고 무거운 전공책을 들고 술집 문을 열었다.
순간 몰려오는 차가운 바람에 술이 깨는 기분이 들었다.
"자알..한다..아주"
"뭐,뭐가!"
"지금이 몇시인줄 알긴해요?"
"나,난 21살이거든? 지는 교복입고 있으면서, 야!! 이 시간에 교복입고 다니는게 더 이상하거든?"
"와 진짜 누나.. 내가 저 잔소리대마왕한테 어떤 소리를 들어가면서 부탁한건데"
"…..누,누가 뭐 데리러 오랬나? 쳇 "
"하…...진짜 너무한다 뭐 그렇게 알면서 모른척하는것도 힘들지 않나?"
내가 좀 심했나.
이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닌데.
"그거나 줘요,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왜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어"
추위에 싸우며 전공책을 들고 걸어가는 나를 잡아당기며 내 책들을 빼앗아갔다.
그러고는 대뜸 내 손을 잡았다.
"야,야 너 이,이거 지금"
"시끄러워요 안 잡으면 넘어지게 생겼잖아"
"어쭈, 말이 짧다? 야, 너는 이제 18ㅅ.."
"뭐요, 난 18살이고 누나는 21살이라고? 겨우 3살차이면서 되게 어른스러운척은"
"이게 진짜! 으아-"
"봐봐, 넘어질뻔했잖아. 어른스럽다 아주- 어른스러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나의 진심인걸까
"누나"
"왜"
"좋아해요"
"………….."
"이름아, 많이 좋아해 내가"
(4년 뒤)
"아 진짜 티켓팅하기 너무 힘들어"
"참나 지 남친 콘서트인데도 티켓팅을 하냐?"
"시끄러- 난 정정당당하게 갈거다"
"그러시던지"
그날 술집에서 같이 술 취했던 친구와 티켓팅을 해야한다며 피씨방에 갔다가 실패하고 근처 카페에 들어왔다.
"참, 너는 연락해?"
"나? 난 뭐. 그냥 가끔?"
"뭐야, 잘 되는 줄 알았더니."
"너무 잔소리가 많아"
그 잔소리 대마왕은 현재 세훈이와 같은 그룹에서 여전히 잔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내 친구와 뭔가 있어보이기는 했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야, 전화온다"
<누나!>
"어"
<헐, 거의 로봇급인데,?>
"로봇은 무슨, 야 힘들어"
<왜요? 어디 아파?>
"아니, 너네 콘서트 티켓팅 실패했어. 너네 팬들 장난아니야. 진짜 넌 평생 절하면서 살아야한다"
<에헷, 우리 팬들이 쫌 장난아니긴 하지>
"시끄러, 야 이거 국제전화아니야?"
<맞는데요?>
"돈 들어, 끊어"
<와 진짜 어쩜 이렇게 한결같냐>
"욕한거야?"
<아니. 그래서 좋다고 너>
또 한번 반말하면 죽여버린다는 말과 함께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카톡이 미친듯이 울려대는데 그냥 것도 무시해버렸다.
앞에서 친구는 '야, 5분도 못 참으면서 뭐하러 무시하냐? 에라이' 라며 나가자고 옷을 챙겨입었다.
매일 항상 5분 이상 참는게 목표이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나의 목표이다.
분명 나가자마자 전화하겠지.
그 겨울날
내 손을 먼저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내가 먼저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시리즈물이에요!! 세훈이가 첫 스타트였네요 흐흐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단편이니까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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