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올 것을 암시라도 했는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임에도 우산을 집에 두고나온 성열은 당황한다. 소나기 치고는 꽤나 거센 비에 뛰어가야하나, 말아야하나를 수십번 고민하는 성열. 거기에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던 성열이라 더욱 고민되는건 어쩔수 없다.
“명수 보고싶다"
그리고 항상 이럴때면 항상 성열의 곁에는 명수가 있었기에, 항상 성열의 우산이 되어준 명수 덕분에 성열이 어느순간부터 우산을 챙기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세지고 성열은 어쩔수 없다는듯이 투명한 빗물 사이로 한걸음씩 내뱉는다. 소리없이 머리부터 어깨, 어깨에서 상체로 점점 젖어버린다.
“영화나 소설 이딴거 다 거짓말이야"
항상 소설과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비를맞으러 뛰쳐갈때마다 어느샌가 나타나서 뒤에서 우산을 씌워주던 남주인공이 등장하고 꼭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다만, 그런일이 현실에서 읽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야기처럼 헤어졌던 연인이라면.
“이래서 다 헛된희망을 키워주는거라고"
피식- 괜히 자조섞인 웃음을 짓는 성열이지만 자꾸 흐려지는 시야에 붉은 입술을 앙-다물고 눈물을 삼키려 애쓴다. 명수와 함께했던 추억이 성열에게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것일까. 흐르다못해 흘러 넘치는 추억에 어느새 뜨거운 눈물도 후두둑 떨어진다. 성열의 두 뺨은 이미 눈물과 비로 젖어있어서 그런지 더 슬퍼보인다. 하염없이 걷다보니 집에 가는길이 이렇게 머나,싶은 성열이다. 붉었던 그의 입술은 어느샌가 추위에 약간 푸른빛이 돌고 있고 이대로 가면 정말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싶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던데-"
시덥잖은 농담을 잘 하는 명수의 성격을 아는 성열이기에 그가 너무 그리운 나머지 혼자서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렇게 말을걸어보아도, 달라지지않는건 그의 온기가 더이상은 곁에 없다는것. 지금 걷고있는 이 길이 이전의 두사람에게로 돌아갈수 있는 길이기를 절실히 바라는 성열이다. 마치 두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 * *
“아 짜증나"
“왜?" “아악!! 아 누구야" “김명수" “명수? 풉- 이름이 명수야? 얼굴은 반반한애가?" “..." “아, 그건 그렇고 날씨 덥잖아" 덥다며 처음보는 명수에게조차 투덜댔던 성열에게 그때의 명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펼쳤다.
“너 4차원인거냐 또라인거냐"
“피식-" “쪽팔리잖아, 접어" “덥다며." 그렇게 두 남학생이 같이 쓰기엔 비좁은 우산아래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되었고 그날과 비슷한 여름날, 더이상 친구가 아닌.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지속됐을까,
“이성열"
“헤어지자" “...뭐?" “질려" “...질리는게 아니라 더운거잖아, 너." 유난히 온도에 민감한 성열이었기에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곤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또한 충동적으로 내뱉은 한마디지만 이번에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지만은 않는다.
“...진심이야?"
“...어" “...그래, 그럼." * * *
그때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던 성열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명수가 있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어쩌면 그때의 성열은 명수가 한번 더 붙잡아주기를 바랬는지도. 찬찬히 과거를 짚어보던 성열은 당시 이해하지 못했던 명수의 담담함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나쁜놈... 니생각도, 좀...하란말이야"
너무나 쉽게 내쳐버렸던 자신의 행동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크고작은 상처들로 흉터가 남았을 그의 마음이란걸 알지만 그래도 사람이 정말 이기적이기는 한건지 아직 마음속에 자신이있다면 젖은 채라도 좋으니 달려가고만 싶은 성열. 그래도 그때보다는 많이 성숙해진듯한 모습이다.
“...많이 사랑한건줄 알았는데,"
그의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저 풀잎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소리뿐이다.
“많이 모자랐나보다"
그렇게 비를 맞고 나서 아니나다를까 성열은 감기에 걸렸다. 식은땀으로 등이 젖고 펄펄끓는 열에 온몸을 가눌수 없을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뜨거운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린다. 이런 감기보다, 사랑이라는게 훨씬 더 아파서. 자신의 사랑은 왜 항상 이렇게 되는걸까 싶어서. 성열은 답답한 마음에 그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아파오는 머리에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아른거리는 명수의 얼굴에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성열. 사랑은 성열에게도 누구에게나 그렇듯 달콤했고, 뜨거웠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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