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끝난 후에도 멍한 얼굴로 회의실에 남아있다가, 이태일의 호출을 받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날아오는 담배. 불이 붙어있던 담배가 흰 가운에 닿았다 떨어지고, 나는 가운에 남은 자국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표지훈."
"예."
"정신 안 차리지."
"죄송합니다."
"말이면 다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태일. 안 그래도 작은 체구인데 더 작아 보이게 만드는 모습. 하지만 이태일의 존재는 이상할 정도로 크고 위협적이었다.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고, 이태일은 후, 하고 숨을 내쉬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똑바로 해."
"네."
멍청한 놈.
이태일은 그렇게 한 마디 하고 휠체어를 돌려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 꺼진 방을 가득 채운 모니터들, 그 모니터에 뜬 알 수 없는 난잡한 글씨들. 가만히 이태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옷깃을 움켜쥐다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놀라울만큼 깨끗한 손. 우지호에게 있는 어떤 이상한 능력. 원래대로라면 내 상관인 이태일에게 보고해야겠지.
하지만, 이태일에게 알려선 안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그냥, 불안하다. 이태일에게 우지호를 맡기는 순간 그 하얀 앳된 얼굴의 눈이 감기고 바스라질 것 같다.
유리벽이 열리고, 캄캄한 안에 불이 켜진다. 자고 있던 우지호가 움찔하며 실눈을 뜨고, 나를 알아보자 몸을 일으킨다.
"왜 지금"
"말할 시간 없어."
우지호의 몸을 일으켰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식은 땀이 흐르고 손이 축축해져서 옷에 몇 번이고 닦고 있는데, 우지호가 내 손을 덥석 붙잡는다. 조용히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우지호가 고개를 푹 숙인다. 뭐라 말을 하려는데 입 안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입만 열었다 닫았다 할 뿐이다.
"우지호,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있어?"
"아니."
"뭐 아는 사람이라던가."
내가 지금 괴물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괴물? 생긴 건 인간인데? 기껏해봐야 돌연변이 괴물 밖에 더 되겠어하고 말하던 난데 왜 지금 이런 소리를 내가 하는 거지.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숨을 내쉬며 안절부절 못 하는데, 우지호의 검은 눈이 눈에 들어왔다.
"우지호."
"응?"
"어떻게든 되겠지?"
"몰라."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뒤로 꺾었다. 바짝 마른 입술을 씹다가 내 손을 더 꽉 잡아오는 우지호를 의식하고 고개를 내렸다. 어차피 이러던 저러던 우지호는 안 좋은 상황에 처해지게 되는데, 제발. 이태일이 저지르려는 짓에선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여기서, 나가게 해주려는 거야?"
우지호가 조곤조곤 물어온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에 띄게 밝은 표정을 짓는 우지호. 내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손에 힘을 주며 우지호가 고개를 든다.
"난 괜찮아."
"아니, 내가 안 괜찮아."
"왜?"
내가 이걸 대답할 수 있을까. 웃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우지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손으로 꽉 붙잡고, 유리방의 불을 껐다.
CCTV가 있는 길을 피해 복잡하게 복도를 걸었다. 어렵다. 불이 꺼져 최소한의 동력만을 이용한 푸른 빛에 의지해 걷는 이 복도가 조금은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우지호의 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우지호도 내 손을 꽉 붙잡아 왔다. 아이같다. 이런 아이를, 이태일은. 이태일은.
이태일의 생각을 하니 몸이 굳으며 겨우 진정됐던 마음이 다시 긴장으로 굳어간다. 아니,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과연 이태일이 날 살려둘까.
우지호를 내보내고 나면 난 어떻게 해야 돼.
아니, 내보낼 수 있을까?
어느새 1층. 조금만 더 가면 출구다.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로비로 나왔다. 복도에서 나온 로비. 갑자기 높아진 천장과, 특수 유리 밖으로 보이는 묘하게 푸른 빛을 띠는 밤하늘. 우지호의 얼굴을 힐끗 보니, 깨끗한 얼굴에, 검은 눈이 반짝이고 있다. 이제 여기만 빠져 나가면 끝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길 나갈 수 있을지.
"난, 모르겠어."
"어?"
"왜 사람들은."
갑자기 들린 우지호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바닥을 보며 나를 따라 걷고 있는 우지호가 보인다. 눈을 곱게 내리깔고 조곤조곤 말하는 우지호.
"날 괴롭히려고 해?"
그 말에 몸이 굳었다. 아니, 비단 우지호의 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켜진 불과 함께, 목에 닿은 따끔한 느낌. 순식간에 몸이 마비되며 다리가 풀려 풀썩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살짝 겁에 질린 듯한 우지호의 얼굴. 미안해.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인 건 캄캄한 어둠 뿐이었다. 암순응이 되어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내 눈에 들어온 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
"박사님."
"표지훈."
이태일이 기가 차다는 듯 '허'하고 웃는다. 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온 몸이 쑤시고, 왼팔은 부러지기라도 한 건지 어쩐건지,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입술을 핥아보니, 으. 터졌네. 입 안도 이빨에 찢긴 상처가 있다. 기절했을 때 맞았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탁탁 하고 순간적으로 생겨난 불에 이태일의 얼굴이 잠시 보였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이태일이 정말 화가 났을 때 짓는 표정.
담배를 입에 문 이태일. 연기를 두어번 내뱉는가 싶더니, 조용히 "들어 와"한다. 문이 열리고 철그럭하는 소리가 들린다.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저 실루엣만 대충 봤을 때.
"박경?"
그리고 박경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 손이 수갑으로 묶였는지 연신 찰그락대는 소리만 내댄다. 아마, 우지호겠지. 멀쩡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나처럼 맞은 건 아니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훈."
"네."
"니가 드디어 미쳤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우지호만 바라보는데 이태일이 담배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진다.
"난 널 가장 믿고 있어."
조금은 서글프게 들리는 목소리. 이태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태일의 실루엣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태일이 날 믿는다라, 그건 사실 누구나 잘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태일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수많은 부하들 중에서도 나만 유독 불렀으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기회를 줄게."
보기 드물게 아이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박경도 조금은 의아했는지 살짝 고개를 돌린다.
"다시는 날 실망시키지 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태일이 "대답 안 해?"하고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나는 우지호가 있는 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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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오지도 않은 주제에 똥글이에여... 내가 많이 미안합니다..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