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분명 어두운게 맞는데, 자꾸만 새빨갛게 겹쳐보여 눈을 비비고 또 비빈다.
눈이 아려올때까지 계속 투박하게 쓸어도, 자꾸만 하늘은 빨갛고, 귀는 먹먹하고,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방금 전, 내 친구 순영이가 죽었다.
"느그들, 여기 가만히 숨어있으래이, 딴 데 가지말고, 어른들 올때까지 가만히 여기 숨어있는기다."
"....아지매."
"어른들, 꼭 살아돌아올기다. 그러니까 울지말고 얌전히 있으라, 그래야 내가 또 니 엄마 몰래 맛있는거 줄거 아이가."
"응, 나 꼭 숨어있을게. 숨어있을기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숨어있는 우리들을 보지못한 일본군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났다. 옆 마을을 우리처럼 만들려는게 분명했다.
내 또래의 아이들밖에 남지않은 우리의 평화로웠던 마을에서,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정신이 멍했다. 순식간에 가족들을 잃은 우리는 그렇게 마을에 남겨졌다.
막막했다, 그나마 제일 나이가 많은 언니가 우리를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집에서 먹을것들을 챙겨온 아이들이 하나둘 다시 마을 중앙으로 모였다.
우리집으로 가고싶었다, 우리집으로 가고싶었는데.
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시체에 그만 입을 틀어막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결국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내가 가진것뿐이라곤, 지난 밤 전쟁이 일어나기전 어머니가 엮어준 꽃반지뿐이다.
그마저도 밤을 지나니 시들어 풀이 죽었지만, 절대 손에서 빼지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본군이 우리에게 항복을 선언하는 그날, 보란듯이 꽃반지를 빼고 하늘에 내보이리라 다짐했다.
아직 일본군의 발이 닿지않은 조금 멀리 떨어진 마을로 향하며, 우리는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그렇게 밤낮을 걸었다.
그렇게 걷기만 하니 배가 고팠다.
언니는 잠시 쉬어가자말하곤 숲 속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먹을것을 먹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배가 저릿했다. 그래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분명 아이들도 배가 많이 고플테니까.
혼자 멍하니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손에 다 식은 차가운 감자 하나를 쥐어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민규다.
"니 이거 묵으라, 느그 집엔 이거 없제. 좀 식긴했어도, 봄감자다.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