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아, 그 분 말하는거구나? "
성용이 태환의 '아저씨'를 지레 짐작 해 물어왔다. 태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아저씨 돌아가신지도 꽤 됐네. "
" 어. "
" 아직도 증오해? "
태환은 묵묵히 조직 본거지 내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캐비닛 앞에 섰다. 성용은 곧 따라 들어와 태환이 기다리길 한 참을 기다리다 결국은 ' 말하기 싫은가 보네. ' 하고는 태환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 옷 다 입으면 큰형님한테 먼저 가 봐. "
큰형님은 조직 내에서 거의 모든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본래의 이름보다 거의 '형님', '큰형님' 으로 불리는 일이 더 잦은 분이었다. 체격도 왜소하고 인상도 좋아서 이런 깡패들의 우두러미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은 분이었다.
태환은 눈치도 빠른 그 분에게 어떤 거짓말을 쳐야할지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 알겠어. "
기성용은 문을 닫고 태환의 방을 나갔다. 성용의 발소리가 희미해질때까지 태환은 그저 캐비닛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기성용의 발걸음이 아예 들리지 않자, 태환은 ' 후- ' 하고 숨을 내쉬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온 몸이 아프다. 요근래 이렇게 맞아본 적이 없어서 더욱 아픈 듯 했다. 갈아 입을 옷을 꺼낸 후 상의를 벗었다. 문득 쑨양이 감아 준 붕대들이 눈에 띄었다. 조심스레 만졌다. 웃음이 피식 하고 새어나왔다.
자신을 그렇게도 닮은 아이를 처음 본 듯 했던 태환이다. 겉모습이 닮았다기보단 하는 짓이 닮았다.
" 걔 때문에 아저씨 꿈을 꾼 건가. "
사실 아까 전부터 꿈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태환은 고아였다. 부모님 성함,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 곳에서 학대받았다. 원장의 폭행을 견디지 못했던, 어렸던 태환은 결국 6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쳐버렸다. 잡히면 다시 그 지옥같은 곳으로 돌아가 맞을 생각을 했던 태환은 계속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뛴 태환은 그가 도착한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외출을 한 적은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바깥 이야기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소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태환은 결국 두려움에 울며 그 곳을 배회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태환은 한 명의 ' 아저씨 ' 를 만나게 되었다.
" 꼬마야, 여기서 뭐하니? "
" ..... "
검은 양복을 입고 얼굴에 작은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물어오니 태환은 더욱 겁에 질렸다.
" 엄마를 잃어버렸니? "
" ....전 거기서 도망쳤어요! "
남자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태환은 울면서 외쳤다.
" 그러니까 다시 거기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또 맞아야하고, 답답한 그 곳에서 지내기 싫어요! "
" 꼬마야. "
" 어른들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나가버렸어요. 전 나쁜 어린이예요. 하지만 제발 그 곳 만은.. "
태환이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남자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던 태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환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태환과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 그러면 아저씨랑 갈까? "
척 봐도 무섭게 생긴 인상, 손에 있는 흉터, 얼굴에 난 칼자국이 결코 그를 좋은 사람으로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태환은 그 남자를 따라가고 싶었다. 태환은 어쩔 줄 몰라 그저 멍하니 그 아저씨를 쳐다 볼 뿐이었다.
" 꼬마야, 아저씨 손 잡아야지? "
태환은 그의 손을 덥썩 잡아버렸다.
잠시 옛날 생각에 빠져버린 태환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미치겠군. ' 하며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제일 후회하는 기억이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 왜 자꾸 생각나는거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
문득 머릿속으로 쑨양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 참, 그 녀석이 있었지. ' 하고 중얼거렸다. 괜한 녀석이 나타나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는다고 생각한 태환이다.
옷을 다 갈아입은 태환은 성용의 말대로 ' 큰 형님 ' 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섰다. 태환의 방 바로 옆옆방이 큰 형님의 방이었다. 태환은 그의 방 문 앞에서 한번 헛기침을 한 뒤 노크를 했다.
" 형님, 박태환입니다. "
" 아, 들어와. "
태환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서 환하게 웃으며 태환을 반긴다.
" 밤엔 무슨 일이었는가? "
태환은 우물쭈물하며 거짓말 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 ...볼 일이 급해서 화장실 좀 다녀왔습니다. "
해버렸다. 자신이 말 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다. 이 곳에 멀쩡히 있는 화장실을 두고 뭐하러 밖에까지 갔다오겠냐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는 태환이었다. 태환은 별안간 형님의 눈썹이 꿈틀 하는 걸 목격해버렸다. 그러나 이내
" 푸핫! 그래? 그래서 볼 일은 잘 해결했는가? "
하며 재미있어했다. 태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 네, 잘 다녀왔습니다. ' 했다.
" 그렇군! 그럼 됐네. "
하고는 껄껄 웃는다. 태환이 허리를 깊게 숙여 ' 감사합니다, 형님. ' 하고는 뒤 돌아 나오려는데, 다시금 태환을 부른다.
" 태환아. "
" 예. "
" 고민이 많아보인다. 착각이냐? "
태환은 움찔했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난다.
" .....형님. "
" 그래, 말 해봐라. "
" ... 잠시 여기서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까 생각중입니다. "
' 여길 떠나겠다는거냐? ' 하며 날카롭게 물어오는 형님의 말에 태환은 절대 아니라며 해명했다.
" 근데 왜 굳이 여기서 지내지 않겠다는거냐? "
태환은 골똘히 생각하다 ' 친구가 같이 살자고 제의 하덥니다. ' 하고 대답해버렸다. 실은 태환에게 친구는 몇 없었다. 혹시 그가 자신에게 ' 친구 누구? ' 하고 물어올까 두려워 다리가 후들거렸다.
" .... 니가 괜찮다면, 맘대로 해라. "
하며 석연찮으나 그냥 눈감아주겠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형님에게 태환은 다시 꾸벅 인사하며 ' 감사합니다, 형님. ' 했다.
다시 방을 나서려는 태환에게
" 대신 다음에 급하면 말 해라. 여기에도 화장실 있다. "
하고 껄껄껄 웃는 그였다.
웃으며 ' 알겠습니다. ' 하고 대답 한 뒤 태환은 방을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 그나저나, 마지막에 왜 그런 얘기를 해버린거지. "
' 이러면 진짜 짐 싸들고 그 녀석 집에 가야하는거잖아. ' 하며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당혹감을 나타내는 태환이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속보] 쿠팡 영업 정지 논의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