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뭘 하도 많이 빼앗겨서, 나는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지. 중학교에 들어오고서부터, 내 것이 아닌 걸 처음으로 손에 넣고 나서부터. 어린아이의 잔혹함이라고 하던가. 나는 그 영양가 없는 단 맛에 중독이 되어 인생선 한 번 제대로 삐딱히 탔더랬다. 양아치인 척을 할 수 있는 온갖 짓은 다 하고 다녔었다. 술, 담배. 폭행, 뭐 그런 것들. 아, 하나. 딱 하나. 여자 빼고. 예쁜아,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분명 자다 깬 국어 시간에 얼핏 들었던 시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권순영한테는 해당이 안 되었다. 백 날, 백 번. 아무리 부른들 우정이라 치부하며 웃어넘겼던 놈. 이상하게 그 애 이름만 부르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라, 별 시덥잖은 소릴 붙여간답시고 붙인 게 예쁜이. 예쁜아, 예쁜아. 그게 하필 너였는지. 왜 너한테 잘 어울렸는지. 왜 자꾸만 욱신거렸는지는 지금에서야 알고 말았다. 아, 내 첫사랑. 첫사랑이었구나. 처음으로 울었다. 발악했다. 나는 터진 입술을 손으로 훔쳐가며, 그 찬 바닥에서 소리를 질렀다. 세상이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쁜아, 네 세상만 남겨두고 모두의 세상은 터졌으면 좋겠다. 너만 행복하게. 너만 빛나게. 나는 마음이 시린 건지, 몸이 추운 건지도 자각하지 못해 몇 시간이고 내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날렸던 너한테서 정신 나간 놈 마냥 좋다고 온기를 찾아 흐느낀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예쁜아. 내 온전한 마음에서부터의 그릇된 출발은 관계를 헤집어 우리의 우주 온갖 곳에 흐트려놓고 말았다. 너는 행복할까. 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네 옆에 있는 그 새낀, 꼭 행복해야 한다. 내 첫사랑을, 내가 먼저 쟁취했던 그 애를 부르는 새 단어를, 그렇게 다 앗아갔으니 그 애를 옆에 두고서는 꼭 행복해야 한다. 행복해 마지않아야만 한다. 예쁜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좋아한단 말 한 번 못 꺼낸 건 안일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 안에 다 집어넣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쑤셔넣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아렸었다. 예쁜아, 순영아. 사랑한단 말 채 못 꺼내는 건 그것이 필히 과거형이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