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하나씩 들어주세요.
내가 이걸 왜 해. 남자가 제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물걸레를 발로 슥슥 민다. 무심한 듯 석진을 훑는 시선엔 불만이 서려 있다. 윤기야, 한 번만 부탁할게. 너 지금 딱히 할 일도 없잖아. 석진이 힘없이 쓰러진 걸레를 윤기에게 들이민다. 둘 사이에서 맞닿은 시선이 묘하게 뒤틀려졌다. 비뚤어진 윤기의 시선을 애써 피한 그가 윤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너만 믿는다, 하고 제 손에 쥔 물걸레를 윤기의 손에 쥐어 준다. 윤기가 잡힌 두 손을 내려다본다. 손이 왜 이렇게 차. 애써 하지 못할 말을 삼킨다. 걱정스러운 눈빛도 잠시, 윤기가 불만이 서린 눈빛으로 눈을 치켜뜬다. 넌 내 상사만 아니었어도 뒈졌어, 알아? 잡힌 손을 내친다. 우리 윤기한테 뒈졌으면 참 행복했겠네. 몇십 년 빌어 먹을 셰프 인생 못 끝내서 참 아쉽다, 아쉬워. 석진이 내쳐진 제 손을 바라보며 비뚤게 쳐다보는 그에게 농을 던진다. 물걸레를 고쳐 잡은 윤기가 얼른 꺼지라는 듯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맞물린 시선을 피한다. 언제 봐도 버터 처발라 먹은 것처럼 느끼한 김석진은 윤기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기에 항상 경계심을 풀 수 없다. 제 머리를 잔뜩 헝크린 석진이 윙크를 날리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정신 나간 놈.
윤기는 본연 청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남 부러울 거 없이 부모님의 사랑 가득 받으며 자란 세월, 손에 물 하나 안 뭍히고 곱게 자라 셰프의 길을 걷는다는 그의 말에 오래전부터 그의 부모는 칼질하는 위험한 곳에 제 아들을 보낼 수 없다며 극구 말렸으나 그 누구도 윤기의 센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깔끔한 성격이지만 씻는 걸 귀찮아했다, 사랑받는 걸 좋아했지만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은 왜 이토록 모순적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윤기도 찾지 못 했다.
물걸레의 끄트머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슥슥 대리석 바닥과 걸레의 표번이 부대끼는 소리가 홀을 울려 퍼졌다. 윤기가 걸레질을 할 때마다 갈 곳을 잃어 바닥으로 표류한 먼지들이 닦여 나갔다. 그는 깨끗함을 좋아했지만 기분이 더러워짐을 느낀다. 혜원이, 그녀가 부탁해야 할 일을 왜 김석진이? 멍하게 오더를 내리는 석진을 응시하다, 자신의 방향으로 다가오는 정호석을 보자 윤기는 누가 볼까 얼른 고개를 돌린다.
제 감정의 흐름은 윤기 자신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엥? 윤기 형이 왜 청소... 혜원 두고 그걸 왜 해요?"
"몰라, ... 김석진이 시켰어."
"솊이? 아, 여튼 수고해! 오늘 회식한대, 윤기 형도 꼭 와요. 오랜만에 달리자고!"
넌 어제도 달렸잖아, 새끼야. 윤기가 호석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가격한다. 회식? 갑자기 웬 회식이래. 뜬금없는 회식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윤기가 곧장 아, 하며 입을 동그랗게 벌린다. 그러고 보니 어제 새로 오너가 온 것 같기도 했다. 키는 제 자신보다 큰 게 재수없었지만, 능력 하나 만큼은 대단했다. 물론, 김석진이 그 놈에게 꿇린다는 게 아니다. 김석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체를 이끌어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라면, 그 놈은 깔끔하고 정확한 게 오너 하나는 끝내줬으니까. 하나, 단점이 있다면 상당히 싸가지가 없다는 점인데 자신은 그런 곳에 관심이 없었다. 마주치지만 않으면 그만이니까.
8 시가 다 넘어가는 시간, 최근에 그렇게 큰 행사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아침부터 호텔이 북적인다. 고객이 들어오기 전, 김석진이 삿대질을 해 가며 손가락으로 인원을 체크한다. 거의 다 온 것 같네. 대충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석진이 시계를 확인한다. 솊, 혜원 누나가 아직이에요. 안절부절하던 박지민이 석진의 검정 유니폼을 그러쥔다. 가늘고 긴 대걸레로 몸을 지탱하던 윤기가 삐끗거리자 옆에 자리하던 석진이 윤기의 몸을 지탱하며 단단히 고정시킨다. 윤기야, 조심 좀 해. 제 팔뚝을 단단히 거머쥔 석진을 잠시 멍하게 응시하던 윤기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늦을 줄 알고 윤기한테 혜원이 일 맡겼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들 위치로 돌아가."
"예, 솊."
홀을 가득 메운 고객들이 북적거리며 자신들의 음식을 기다린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엉덩이를 잠시 붙일 새도 없이 바빠진 주방 내에서 한 명이 빠진 빈자리는 꽤나 컸다. 파스타 면을 삶던 윤기가 대충 석진에게 뒤를 맡긴다. 석진이 한숨을 내쉰다. 윤기가 무심하게 석진의 낯빛을 치켜보다 정국에게로 발걸음을 돌린다. 무표정으로 데코를 하던 정국이 인기척이 느껴지자 옆으로 시선을 돌린다. 야, 오너님. 허공에서 정국과 윤기의 시선이 맞물린다. 정국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조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혜원이는? 정국이 인상을 찌푸린다. 말없이 서로를 견제하다 정국이 먼저 시선을 돌린다. 바쁘니까 나중에. 정국의 검정색 셔츠 등 뒤로 땀이 흥건했다.
9 시. 시곗바늘이 직각을 이루기 직전. 혜원이 들어오자 마자 정국이 매섭게 그녀의 앞에 선다. 연신 사과를 반복하는 혜원이 안쓰러울 만도 한데 정국은 매정했다. 하긴, 첫 출근부터 등에 땀 흥건하게 일했으니. 사태를 알아차린 김석진이 정국을 제지했다. 제지하면서도 석진의 시선은 혜원을 향한다. 윤기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주먹을 쥐었다. 쟤가 뭔데. 석진은 본체 팀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면 '너희끼리 알아서 해.', 하며 지나치지 일쑤였는데, 혜원 앞에선 달랐다.
윤기는 제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원인도 모를.
"너 때문에 아침부터 청소한 난 안 보이냐? 빠져가지곤, 진짜 정신 촘 차려라. 내가 청소할 짬밥이냐? 막내도 휴가라 없는데, 참나."
"민윤기, 말이 심해."
정국이 물러서자 윤기가 그 자리를 꿰찼다. 윤기는 본연 누군가를 위로할 성격이 되지 못 했다. 윤기 파트를 석진이 다 하는 바람에 정국 만큼 힘에 보채지도 않았다. 애초에 화를 내고 윽박질러야 할 사람은 석진인데. 윤기는 석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말려. 네가 제일 힘들었잖아, 왜? 쟤가 뭔데. 윤기가 제 어깨를 거머쥔 석진의 손길을 쳐내곤 따졌다. 윤기야, 난... 맞닿은 시선이 버거웠다. 석진이 윤기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혜원을 멍한 눈으로 응시했다. 속에서 무언가 자신을 옥죄는 게 목구멍에 끊임없이 차올라도 꾹 다문 입술 때문에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제 감정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실의 무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버거웠다. 형, 난... 형이.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아이를."
"..."
"넌 눈치가 빠르니 알 수도 있겠다. 믿을게, 넌 내가 가장 믿는 후배니까."
끝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석진을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의 경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명확했고, 윤기는 그 경계를 넘을 생각이 없었다.]
***
犬八靑春 ③
bgm 을 켜 주세요.
쉬라고 해서 진짜 잠만 잤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아, 잠만 잤더니 배고프다. 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대충 제 옆에 놓인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전자시계는 3 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미친! 내가 다섯 시간이나 잤다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애써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내가 다섯 시간이나 잤겠어. 시계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상대는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한, 그리고 나보다 똑똑한 이 기계가 잘못될 리가 없지. 우려했던 게 현실로 다가오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미쳤어, 이혜원. 피크라 눈, 코 뜰 새도 없는데 런치도 넘겨???? 그냥 죽자, 죽어. 베개를 끌어안고 이불을 발로 퍽퍽 차대자 휴게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쾅!! 하고 열린다.
"아프다더니, 팔팔하네."
"억!... 깜짝이야..."
열린 문 사이로 전정국이 들어선다. 병신 같이 놀라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기본이요, 표정과 더불어 괴상한 말투는 덤이었다. 제 앞에 선 전정국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나니...? 아프다니 무슨 소리지. 아프긴 아프지... 네 놈한테 혼나서 산산조각이 난 멘탈이라든가, 깨진 무릎팍이라든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니 뭘 꼬나보냐며 일어났으면 눈곱이라도 떼란다. 사람인데 눈곱 생길 수도 있지, 지는 꼭 안 생겨본 것처럼 말하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은 눈언저리를 향한다. 허허, 사람이 말이야 이런 건 조용히 눈치만 줘도 된단 말이지.
한참을 전정국과 피터지게 씨름하고 있던 찰나 ㅡ 실제로는 살벌하기만 하고 우려했던 몸싸움은 다행히도 없었다, 똑똑- 하며 노크 소리가 휴게실 안을 일정하게 채우더니 열린 문틈 사이로 석진 선배가 고개를 대뜸 들이민다. 일어났으면 나오지? 당장이라도 식칼이 날아갈 것만 같은 이 분위기를 바꾸어 준 선배에게 고맙다며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오늘부터 석진교 설립합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
"전정국, 내가 사과하라고 했잖아."
왓...?? 사과라니. 무언가 까먹은 것 같은 느낌에 머리를 굴리다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워메, 나 뚫어지겄소! 그가 분하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곤 석진 선배 몰래 입모양으로 '넌 나가면 죽었어' 라고 입만 뻥긋한다. 처음엔 저게 무슨 말이지 싶어서 '뭐' 라고 반박했지만 전정국의 손짓에 입을 앙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정국이 왼손으로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만 들더니 목에 가져다 대어 직- 긋는 시늉을 했기 때문이랄까. 순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 기분이 들었다. 쉣, 쫄면 안 돼...
"내가 왜 사과를 해, 맞는 말 했잖아."
"전정국."
"...요."
선배와 전정국의 얘기를 눈앞에서 들은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존댓말이라니, 존댓말이라니! 전정국을 본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어제 일도 그렇고 오늘 아침의 일을 종합해서 성격을 분석하자면, 전정국은 뼛속까지 '지랄견' 임이 분명하다. 생긴 건 꽤나 온순하게 생겨서 저 놈은 분명 성격만 멀쩡했어도 여자 여럿 홀렸을 거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쪽팔리지만 처음 본 순간 너무 헉- 소리나게 잘생겨서 욕할 뻔했다. 아, 물론 지금은 절대 그런 생각 눈곱만큼도 없지만.
선배가 정국의 등을 밀면서 얼른, 이라며 그를 재촉한다. 전정국의 썩은 표정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애써 시선을 피하자 그가 야, 하며 나를 불러세운다. 설마 저 입에서 '미안'이라는 말이 나오겠어. 그래도 혹시, 엄청 희귀한 경우라도 사과할 것만 같아 실날 같은 희망을 걸어 본다. 전정국이 뜸을 들이자 시끌벅적대던 휴게실 안이 순식간에 적요해졌다.
뭐!! 뜸 들이지 말고 얼른 사과하란 말이다!!! 너 때문에 입은 내 마음의 상처는 안 보이냐!!!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휘두르기라도 해야지!!!!
"... 시발, 안 해."
전정국은 남자가 아닌 것일까. 석진이 막아선 휴게실 문을 열어제끼곤 씩씩거리며 홀로 나가는 꼴이 그렇게 밉살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개새끼. 기대한 내가 울트라 병신이지. 한참을 빡 쳐서 전정국이 나간 자리만 노려보자 선배가 문틈 사이로 들리지 못 할 거친 언행을 구사한다. 저 새끼가... 미안하다며 식은땀을 연신 흘려대던 선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어설프게 허허, 웃는다. 쟤가 오늘따라 왜 저럴까? 네가 이해 좀, 허허. 일부러 연기한답시고 서툴게 발연기를 시전하는데 정말 눈뜨고 못 봐 줄 정도였다. 연기... 다메요...! 평소 일상이 어색한지라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오는 제스처와 표정이 연기인지, 아닌지는 분간하기 쉬웠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왜 선배의 인영과 학창시절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송하다며 변명을 구구절절 흘기는 엄마의 인영이 비슷하게 겹쳐보이는 건지.
"네가 곤란할 것 같아서 애들한텐 너 아프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입 맞추자."
난 정말 썩었다. 입 맞추자를 그 입으로 듣다니 난 썩은 게 분명했다. 매번 감사합니다. 고개를 몇 번 숙이자 석진 선배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이제 나가자고 재촉한다. 아아, 안 돼. 선배랑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전정국 그 새끼 얼굴 꼴보기도 싫은데.....! 나가지 마!!! 다메...!! 속으로 몇 번이나 석진 선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얼마나 말렸는지,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순식간에 짓밟곤 홀로 나가 버린다. 그렇게 나왔는데 팀원들 얼굴을 어떻게 봐... 풀이 잔뜩 죽은 채로 터덜터덜 선배 뒤를 밟으니 레스토랑 안이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것 마냥 조용했다.
"엇, 누나! 아프다면서요?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엄청 걱정했잖아요!"
"으응? 응... 맞아 모, 몸이 아침부터 좀 아프더라고..."
고요함에 긴장감도 참시, 지민이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품에 가둔다. 뭐라 거짓말을 할지 몰라 눈만 도르륵 굴리면서 눈치를 보자 마주친 시선에서 석진 선배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두어 번 흔든다. 쉣, 거짓말도 저렇게 자연스럽지 않은 거짓말은 없다. 말을 더듬으며 말하자 아직 아픈 게 아니냐며 대뜸 지 손을 내 이마에 척 대더니 열은 없는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시발, 아픈 척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면 매일 아프고 싶다... 지민이가 아프게 만들어 준다면 매일 아플 수...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방 안을 살피자 선배들이 주뼛거리며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 꼬맹이 아프면 아프다고 미리 말하지, 미안하잖아"
"미안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제, 제가 몸관리를 잘 해야 했던 건데..."
되도 않는 거짓말을 계속 하려니 식은땀이 등뒤로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게, 더 이상 계속한다면 들통이 나 버릴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구기며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다. 팀원들이 미안하다며 욕한 거 사과한다고 나를 둘러싸자 괜히 찔리는 마음에 석진 선배에게 구원의 눈짓을 보내자 자기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 잠깐만 지민아 숨 막혀서 뒈질 것 같아...! 그런데 행복하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
"어쩌라고, 키도 멀대 같이 큰 게 여태 처먹은 거 다 키로 갔나 봐?"
"키가 작아서 잘 안 들리네, 머리 옆으로 치우는 게 좋을 텐데. 어깨에 안 부딪치려나 모르겠다."
"시발, 이 새끼가."
언제 친해진 건지 윤기 선배와 전정국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서자 석진 선배가 한숨을 짓곤 고개를 젓는다. 분위기가 왜 저래... 정호석이 자자! 다들 살벌하게 왜 이러실까. 오늘 마치고 회식 있는 거 알죠? 꼭 와야 돼!, 라며 둘 사이를 떼어 놓는다. 동시에 전정국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면서 난 안 가, 라며 으름장을 놓자 그런 게 어디에 있냐며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된다느니 정호석이 구구절절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어제도 그렇게 달려 놓고서 지치지도 않는지 궁금했다. 진심 정호석의 간은 안녕하실까? 매일 술을 들이붓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제 기능을 수행해내는 정호석의 내장에 경의로움을 표하고 싶었다.
"정호석, 넌 어제도 클럽 처가서 이혜원 고생한 건 눈에 뵈지도 않냐?"
"에이, 형도 참. 우리 혜원이 저랑 집 가까워서 괜찮아요! 담 하나만 넘으면 쟤네 집인... 읍!"
시발, 그걸 말하면 어떡해. 혹여나 전정국이 들었을까 당황하며 얼른 정호석의 주둥아리를 손으로 꽉 물자 읍읍! 거리면서 제 손을 얼른 쳐낸다. 전정국이 들은 건가. 재빨리 전정국의 눈치를 살핀다. 아니나 다를까, 전정국이 한쪽 입꼬리만 스윽 올리며 썩소를 짓는다. 개망했다. 어제 어떻게 도망쳤는데... 당장 정호석의 입을 꿰매고 싶은 걸 꾹 참고 애써 미소를 짓는다. 증흐슥 그스끄... 어제 취한 틈을 타서 죽이는 거였는데.
정호석과 나를 번갈아가며 시선을 흘기던 윤기 선배가 한심하다며 정호석의 머리를 두어 번 쳐내곤 메뉴는 무조건 삼겹살이라며 단단히 일러주다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평소에도 분위기가 살벌한데다가, 자기 일 아니면 귀찮아 해서 이렇게 가까이서 말을 붙이는 일이 처음이라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건지 입을 옴싹달싹 못 하며 망설이는 듯 하다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제 말에 선배가 한숨을 쉬더니 이내 꾹 닫힌 입을 뗀다. 욕, 욕하려는 건 아니겠지.
"미안."
아픈 줄 몰랐어. 둘만 알아들을 수 있게 가까이서 속삭인 윤기 선배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듯 몸을 돌린다. 예상치 못 한 사과에 입만 벙끗거리다 뒤로 돌아선 선배의 뒷통수에 대고 괜찮아요! 하며 소리쳤다. 시끄러워. 석진 선배 곁으로 다가간 윤기 선배가 인상을 찌푸리곤 실실 웃어 보이는 석진 선배 정강이를 발꿈치로 보란 듯이 퍽퍽 쳐낸다. 아, 윤기야 아프잖아! 꺼지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윤기 선배가 남자 휴게실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휘파람을 부르며 걸어간다.
멀어져 가는 선배의 인영 사이로 양쪽 귀가 발갛게 달아오른 것만 같았다.
***
'출처 네이버 블로그'
발갛게 무르익어가는 술판, 지글지글 익어가는 돼지고기 위로 일사분란하게 분쟁을 벌이는 젓가락들의 싸움이 시작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잔을 들어올리며 건배를 시작한다. 새로 들어온 전정국을 위해서 건배라느니, 새해엔 아프지 말자며 실상 아프지도 않는 나를 위해 건배를 하더니 이젠 주제도 떨어져서 정호석이 일어나더니 대뜸 연설을 시작한다. 시발, 그냥 대충 잔 부딪치면서 조용히 건배만 외치면 되는 걸 왜 굳이 구구절절 건배를 위해 안 그래도 없는 머리, 쥐어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친, 건배 외치다 고기 다 탈 것 같은데.
"전정국, 첫 잔은 무조건 원샷이다."
"그딴 거지 같은 룰 누가 만들었어, 안 마셔."
쳇, 재미없기는. 정호석이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와 전정국에게 대뜸 술을 권한다. 언제 또 저렇게 취한 건지 깨방정을 부리며 아양을 떠는 모습이 좆같아서 그냥 보지 말자는 심정으로 고기만 굽자 자신이 굽겠다며 집게를 뺏어가려는 지민이를 극구 말렸다. 누나능 안 머거요오? 시발, 너무 귀여워. 정호석이 주는 술을 냅다 전부 받아서 마신 건지 지민이 양볼을 붉힌 채로 집게를 가져가려 손을 내민다. 누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해...
지민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지 얼굴만 한 상추를 들고는 쌈을 싸기 시작한다. 고기 두 점, 마늘 두 개, 쌈장, 무쌈, ... 고기 굽는데 집중하느라 못 봤지만 대충 고추도 몇 개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저걸 누가 처먹어. 어느새 내 주먹만 한 쌈이 지민의 손에 들려 마무리를 하려는 듯 상추를 오므린다. 뭐, 석진 선배 주려고 싼 거겠지. 그럴 거야. 시발, 그래야 해.
"우리 지민이 그 쌈 누구 줄 거예요?"
"누나 줄 거애오."
응??????????
지민아???????????
아니 안 줘도 되는데... 지민이가 작은 두 손으로 곱게 싼 쌈을 내밀자 난감해서 누난 지민이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해... 우리 지민이 먹어요, 하며 쌈을 극구 거절하자 헤실거리던 눈웃음을 지우곤 울상을 가득 짓는다. 울락 말락 하는 지민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아이고! 우리 지민이가 직접 싸다 준 쌈인데 먹어야지...! 누구 안 주고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하며 오버액션을 취했다. 진심 개크다. 가까이서 보니 더 큰 것 같아... 움찔하며 쌈을 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이내 입을 찢어질 듯 크게 벌리곤 주먹만 한 쌈을 밀어 넣는다. 볼이 미어 터질 것 같지만 행복해......
"우와, 누나 입 디게 크다아"
"그므으 (고마워)..."
쌈 대란이 끝난 후 매워 뒈질 뻔했지만 진정된 혀에 고기를 흡입하려던 찰나, 술자리에선 술게임이 빠질 수 없다며 정호석이 대뜸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추억의 007 빵에서부터 시작해서 말 게임, 손병호 게임, 이제는 유치하기까지 한 369 게임까지. 벌칙은 단연 벌주였고, 게임을 지독히도 못하는 난 망연자실하며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상한 것과 크게 바른 것 없이 모조리 벌칙에 걸린 난 술잔에 맥주와 소주를 들이붓는 정호석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 저거 어떻게 다 마시라고.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깟 술 마시면 그만이었는데... 이 인간을 지치지도 않는지 술게임만 계속해서 반복한다. 나름 주량이 쎈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칙에 걸릴 때면 마셔라! 마셔라! 언제까지 어꺠춤을 추게 할 거야! 하는 노래를 부르며 벌주를 제작하던 정호석의 어깨를 정말 부러뜨리고 싶었다. 술자리도 막바지에 이르고, 게임도 막판으로 치닫으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보통 한 사람이 게임에 계속 걸리면 노잼이라며 나를 제외시키기 일쑤였는데, 이 인간들 진짜 끝장을 보려는 건지 막판으로 손병호 게임을 시작한다.
- 여기서 제일 막내 접어.
허허, 하나 쯤은 괜찮겠지.
- 오늘 아팠던 사람 접어.
허허... 두 개 쯤이야...
- 여자 접어.
세 갠데 뭐... 괜찮... 겠지...
- 정호석이랑 집 제일 가까운 애 접어.
......
- 나 빼고 다 접어.
시발.
이젠 그러려니 하며 제작해 주는 벌주를 기다리기도 잠시, 불안한 기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정호석이 켈켈 웃으며 다시 벌주를 제작하는 폼이 아까와는 달랐다. 술잔과는 사이즈가 다른 대접이를 어디서 들고온 건지 그 안에 막걸리부터 시작해서 소주, 맥주까지 있는대로 때려 넣은 후 턱- 하며 내 앞에 들이민다. 저거 다 마시면 뻗을 것 같은데. 집에도 못 갈 것 같은데... 어마무시 한 벌주의 사이즈에 침을 꼴깍 넘기며 양손으로 대접이의 몸통을 그러쥔다. 진짜... 어떡하지... 도움의 손길을 구원하려 석진 선배를 바라보니 이미 선배도 취할대로 취해서 헤롱헤롱 하는 게 눈에 들어섰다. 맞다, 선배는 술에 약했지... 그래... 이제 난 마시고 죽자...
눈을 질끈 감으며 벌주를 입에 대려는 순간,
내 손에 쥔 벌주를 채간 전정국이 벌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어제 글 올린다는 게 쓰다가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오늘 올리게 되었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ㅅ;
죄송합니다 (--)(__) 꾸벅 암호닉을 상당히 많이 신청해 주셨더라고요... 제 글이 뭐라고...
암호닉을 신청해 주시면 완결이 났을 때 신청해 주신 분들만 텍파 공류를 하려고 해요 물론 수정할 것도 많지만.
정비공 재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다시 할까요... (근심)
오늘... 윤기가 너무 애잔하게 나왔네요......
다음 편은 일요일이나 다음 주 화요일 전에 올리도록 할게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
*** 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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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 오늘자 살목지 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