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오늘부터 과외 받기로 한... "
" 아, 00이? 어서와요, 앉아! "
" 아... 네... "
평소 교육열이 활활 타오르는 우리 김 여사님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글쎄 중국어 과외를 시작하자며 나를 이렇게 이 자리에 오게 만들었다.
근데 어째서 남자가 나보다 더 예쁘지? 요새 과외 선생님도 얼굴 보고 뽑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모습에 넋이 나가 나도 모르게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 어... 00아?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나? "
" 아, 아니에요. 아 저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 아 00이는 아직 나에 대해서 모르겠다, 선생님은 문준휘라고 해. 나이는 딱 너보다 4살 많고. 그냥 편하게 준휘쌤 이라고 불러. "
" 아... 네! "
" 말도 잘 듣고 착하네 00이는. "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준휘쌤은 첫날부터 수업은 재미없다며 나를 이끌고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보는 볼거리 하며 먹거리 하며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나를 호기심 천국으로 이끌었다.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준휘쌤은 중국 전통 옷 체험을 하자며 나를 끌었다.
서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마주친 그 순간의 설렘은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짜릿했다.
약간은 어색한 옷을 입고 약간은 어색한 사람과, 약간은 어색한 문화를 즐기는 기분.
이 약간의 어색함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한 손에 각자 간식을 하나씩 들고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저 멀리서 카메라를 든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 저기요,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
" 아, 네. 그럼요. "
커플로 보이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뒤돌아 가려는데 그 남성이 다시 한 번 우리를 불렀다.
" 혹시 커플이세요? 커플이시면 제가 한 장 찍어드릴게요! "
" 아 저희 커플 아닌ㄷ... "
" 네, 우리 00이 예쁘게 잘 찍어주세요. "
준휘쌤은 여전히 그 예쁜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른채 우리의 첫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쌤과 함께 수업을 하며 어느새 4개의 계절이 지났다.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카메라를 가져와 우리의 추억이라던가 나의 모습을 담아내기 바쁘셨다.
우리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 엄마, 대체 왜요? 왜 준휘쌤 자르는데? "
" 얘가 왜 이래.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넌 들어가서 공부나 해. "
" 엄마... 나 쌤 덕분에 성적 진짜 많이 올렸어, 이건 예의가 아니지! "
" 이게 왜 예의가 아니니? 손수 중국 가는 티켓까지 끊어줬어. 가서 떵떵거리고 살 만큼 돈도 줬고.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니? "
" 엄마...! 지금... 뭐라 그랬어요? "
" 내가 공부하라 그랬지 언제 너희 연애하라고 그랬니? 정신 차려 000. 내가 왜 비싼 돈 들여가며 너 공부 시키는지 모르겠어? "
" 아뇨, 엄만 공부 밖에 모르죠? 엄마는 엄마 딸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또 키는 얼마쯤 되는지 친구들이랑 사이는 좋은지... 이런 거 모르잖아. "
" 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당장 방으로 들어가지 못해? "
" 내가 지금 또 숙이고 방으로 들어가면요 나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 "
" 뭐...? "
" 엄마 제발요, 엄마 딸한테 사랑주는 거 안 바라. 그냥... 작은 관심이라도 좀 주면 안돼? "
한 대 맞은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무 말도 못하는 엄마를 지나쳐 집을 나왔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들어서자 마자 비행기 이륙 시간이 떠있는 전광판을 확인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넓디 넓은 곳에 혼자 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세고 싶지 않았다. 그 날짜가 바로 준휘쌤을 못 본 시간을 의미하니까.
나는 엄마가 시키는대로 모든 것을 했다, 좋은 대학도 들어갔고 엄마가 소개시켜주는 남자도 만났다.
이 길이 행복해질 것이라며 혼자 최면을 걸고 또 걸고 선택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소개해준 그 남자를 만나 엄마가 시키는 대로 내숭을 떨고 거짓 웃음을 짓고 엄마가 사준 차를 타고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이 세상 어는 곳에도 내 것은 없었다.
엄마가 만든 세상 속에 갇혀 사는 내가 보였을 땐 나는 너무 익숙해져 나갈 방법조차 잊어버린 그저 갓난아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여론을 뜨겁게 달구는 동영상이 있었다.
나에겐 별 관심 없는 일들이 천지라 그 또한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저... 혹시... 그 동영상 주인공 아니세요? "
" 네? 무슨... "
" 이거요, 여기 나오는 사진들 다 그 쪽 같은데... "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그가 보여주는 동영상을 봤다.
왜 그 동영상에서 준휘쌤이 찍은 나의 모습이 나오는 걸까.
" 저기요 이거 누가 올린 건지 아세요? "
" 아, 이거요? 문준휘라고 중국에 되게 유명한 사진 작가님이요. 이 분 내한 하신다고 한 것 같은데...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길가에 붙여진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그로 인해 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한 번 쳐다보고 높이 솟은 건물들도 한 번 쳐다보고.
서점에 들러 그가 팬 싸인회를 연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사진첩도 한 권 샀다.
그리고 곧장 그의 팬 싸인회장으로 달렸다.
멀리서 본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약간 야윈 듯했지만 문준휘가 맞았다.
오는 내내 문준휘가 아니길 바랐다.
그를 보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기에.
그를 보고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오롯이 그만을 내 눈동자에 담으려 애썼다.
공중에서 마주친 두 시선은 첫만남 때 의상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의 설렘보다 백 배는 짜릿했다.
여전히 그를 응시하며 나는 천천히 줄이 들어들 때마다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속사포로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했다.
" 미안해요, 내가 그날 공항에 갔는데 이미 비행기는 떠났고 그리고 내가 알았을 땐 너무 늦었을 때였어요.
내가 많이 미울 거 알아요, 그런데 나는... 나는 그냥 쌤이 너무 보고 싶어서... "
"그만. "
"..."
"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
" 쌤... "
" 想念了,我回忆啊 "
그리웠어, 내 추억아.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손을 잡고 울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고 나를 감싸주었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매스컴을 타고 전국 곳곳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딱 두 번째로 엄마에게 반항을 하고 집을 나왔다.
그 두 번 다가 문준휘 때문이지만.
나는 그렇게 자연스레 문준휘와 살게 되었다.
워낙 바쁜 인물이라 얼굴 볼 시간이 적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간 나의 고생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한적한 주말 그가 갑자기 전화를 해왔다.
자신의 스튜디오에 와달라는 말에 혹여 무슨 일이 생겼나 조바심에 부리나케 찾아갔다.
그 곳에서 나는 우리 엄마를 만났다.
엄마도 내가 오는 것을 몰랐는지 놀란 눈치였다.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그 사이에 문준휘가 나타났다.
그는 최대한 공손하게 엄마께 인사를 하며 이차저차 사정을 설명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엄마와의 사진 촬영.
오랜만에 본 엄마는 알게 모르게 늙어있었다, 그런 엄마의 손을 먼저 살며시 잡았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너무나도 예뻤다, 아빠가 없는 빈자리를 채우려 날 이리저리 성장하게 만드느라 힘들었을 우리 엄마.
딸내미 아빠 없다며 무시 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나를 그리도 단단하게 만든 엄마.
문준휘는 그렇게 나와 우리 엄마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녹여갔다.
" 오빠, 너무 고마워. "
" 뭐가 그렇게 고마울까 00이는? "
" 그냥... 다? "
" 그렇담 내가 고마울 게 더 많다. "
" 아 뭐야~ 오글거려! "
" 오글 거리는 거 동감. 근데 00아. 얼른 자야지, 내일 신부가 늦어서 되겠어? "
" 오빠가 나 깨워주면 되지! "
" 늦게 자면 얼굴 부어요 아가씨, 사진 많이 찍을텐데 그래도 돼? "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이불을 덮고 눈을 꼭 감으니 푸스스 바람빠진 웃음 소리를 내며 문준휘는 나를 토닥였다.
" 엄마, 왜 울고 그래요. 성가신 딸내미 이제 남한테 맡겨도 되는데 그게 그렇게 슬퍼? "
" 엄마가 다 미안해... 우리 딸 입장할 때 지 아버지 손도 못 잡고... "
" ... 나 괜찮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오빠랑 같이 손잡고 들어갔잖아. 그리고 그게 엄마 잘못이야?"
" 예쁘다... 우리 딸 예쁘게 잘 컸다. 너무 고마워 내 새끼. "
" 아이 참... 엄마... 나도 눈물 나게 이러기야? 나 얼른 신혼여행 갔다 와서 계속 엄마랑 붙어있을게 응? "
" 어머 얘! 그건 사양한다, 이제 좀 징글징글해! "
눈물바다를 뒤로하고 오빠의 고향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단 잠에 빠졌다.
도착해서 본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문준휘는 이런 곳에서 자랐구나... 그래서 사람이 그렇게 예쁘구나...
" 00아, 어때? 예쁘지? "
" 응... 진짜 예쁘다. "
" 근데 00아. 오빠가 제대로 된 프러포즈도 못했는데 어떡해. "
" 에이 괜찮아, 그런 거 필요없어! "
" 이건 뭐 너무 소소해서 프러포즈라고도 못 하겠다. "
" 응? "
오빠의 말이 끝나고 내가 바라보는 앞 쪽에 하얀 막이 내려왔다.
그리고 오빠가 스위치를 누르자 그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새삼 우리가 머릿속 기억들 중 많은 부분을 채웠구나 하는 마음에 찬찬히 훑어보았다.
사진은 우리의 결혼식 모습을 담은 채 끝이났다.
" 00아, 우리 추억은 여기까지야. "
" 많은 거 했다 우리. "
" 그치, 많은 걸 했다. 근데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 "
" 응... "
"난 너 닮은 딸도 나 닮은 아들도 다 좋아, 우리 애를 낳고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 "
"... "
" 너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추억이야 내겐, 그게 슬프던 기쁘던. "
" 나도... "
" 내가 너한테 추억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들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
" ... "
"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래, 근데 네가 추억이라면 나는 절대 잊지 않을거야. 네 모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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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빨리 시리즈를 떠나보내고 얼른 새 작으로 오고 싶어서 한솔이 올린지 얼마 안됐는데도 벌써 와버렸네용 헤헤
봉봉들도 보고 싶고 뭐 겸사겸사!
이제 정한이만 남았네요ㅠㅠㅠ 우리 정한이는 무슨 주제가 좋을까요? 8ㅅ8
오늘 날짜가 딱 세븐틴이네요 헤헤 별 거 아닌 거에도 의미 부여... 나란 덕후...
봉봉들 오늘도 좋은 꿈 꿔요, 안녕!
암호닉, 주제 신청, 오타지적, 신알신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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