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에서 이어집니다 :D
녀석은 여전히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아냐, 그런 거. 우린 우리가 열심히 해서, 그래서… 된 거야. 네 착각이야, 운아. 다녀올게. 녀석의 목소리는 오늘 스케줄이 무엇인지 전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도어 락을 해제했다. 녀석이 문을 열어 나가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너, 거짓말할 때 손 떨리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았던 거야? 그렇게 몸을 돌리는데 시야에 동생들이 들어왔다. 아직까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차학연 본인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차학연이 거짓말을 한 그 의도를 파악하기에 앞서, 나는 우선 차학연과 동생들을 지켜내야 했다. 너희도 들었잖아, 내 착각이라잖아. 늦었다. 들어가 자.
그리고는 나는 소파에 다시금 누웠다. 차학연, 지금 털어놨더라면 그걸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될 뻔했잖아. 왜 너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널 싫어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럴리가 없잖아, 우리를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이잖아. 넌.
그날 밤 숙소 안의 누구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재환이 녀석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형, 학연이 헝. 진짜로… 진짜 아니에요? 아니죠? 그냥 회의하려고 회사에서 부르는 거죠? 나는 녀석의 말에 긍정했다. 응, 그럴 거야. 차학연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게. 차학연이 이럴 리가 없다. 누구보다 정직한 것을 높이 사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을 이렇게까지 만든 건 우리가 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녀석을 제외한 우리들이었다. 녀석은 우리들을 지키기 위하여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녀석을 이해하게 되자 녀석을 생각할 때 크나큰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차학연이 '우리' 를 위해 이런 일까지 하는 동안 나는 우리가 높아진다는 사실에 취해 녀석을 보지 않았다. 우리가 앞을 향해서 무작정 뛰어나갈 때 차학연은 미리 길을 닦아두고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잔가지를 치워 두었다. 녀석이… 그 거지같은 리더였기 때문에. 그저 그 때문에 녀석이 이런 짓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분명 녀석에게 미안했다. 미안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아닌' 녀석이 리더인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감정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학연에 비해 아주 더러운 사람이었다.
동생들이 기다리다 지쳐 잠들고 혼자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도어 락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학연이었다. 나는 녀석의 앞에 섰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옅은 밤꽃 냄새가 났다.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오늘도, 산책이야?
녀석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차학연, 대답. 나는 녀석의 대답을 재촉했다. 녀석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운아, 나 피곤한데. 나는 녀석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했다.
녀석의 입술은 터져 딱지가 앉아 있었다. 볼은 접때의 붉은 기와는 차원이 다른 정도로 부어 있었다. 녀석은 그 와중에도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녀석의 눈은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어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더하지 않고 얼음을 담아왔다. 얼음을 건네며 녀석에게 물었다. 울었냐, 너.
차학연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건네받은 얼음을 제 볼에 댔다 눈에 대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밤은 길었다. 녀석에게도, 나에게도.
그날 밤은 특히나 길고 어두웠다. 그 긴 밤을 지새우는 동안 차학연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앉아 어두운 밤을 지새웠다. 차학연은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손톱을 깨물고, 나는 옆에서 그 손을 잡아 내렸다. 그렇게 먼 하늘에서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안아주며 말했다. 학연아, 그런 거. 안 해도 돼. 하지 마. 그리고 내 잠자리를 향했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잠을 자려 억지로 눈을 감고 누웠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었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은 뜨지 않았다. 전의 그날처럼 자는 척을 했다. 누군가 옆에 앉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운아. 그리고는 그 '누군가' 는 자리를 떴다.
대체 뭐가 고마운 거야. 내가 뭘 했다고. 넌 우리를 위해 그런 일을 하면서도 고맙단 한마디를 들은 적이 없잖아. 고귀한 척 아무것도 안 하던 내가 한번 다 아는 척, 이해한 척. 그런 시늉을 한 것뿐인데 뭐가 고마워. 울어야 하는 건 녀석이었음에도 그날 익숙한 내 잠자리에서 나는 녀석을 대신해 울었다. 대신 울어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운만큼이라도 녀석이 울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죽여 울다 잠을 잘 수 없을 것만 같아 일어났다. 차학연은 씻으러 들어간 것인지 물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다시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봤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항상 차가 많았던 도로에는 드문드문 차가 지나다녔다. 멍하니 지나가는 차에 시선을 두고 시간을 보냈다. 물소리가 그치고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안 잤어? 피곤하지 않아? 녀석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슬쩍 웃었다. 왜 그렇게 봐, 운아. 아직도 부어있어? 나는 녀석의 눈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며 네 눈을 피했다. 머리 위로 네 말이 지나갔다. 운아,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동생들한테 숨겨준 것만 해도 난 고마워.
다시금 코끝이 시큰해왔다. 여전히 차학연과 눈은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입을 열 수 있었다. 연아, 학연아. 고마워.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또 떨어질 것 같았다.
동생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고, 차학연은 제 잠자리로 들어가 잠에 빠졌다. 재환이 녀석은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형, 학연이 형은요? 들어왔어요? 괜찮아요?
차학연, 널 걱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커.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런데 넌 왜 우리한테 기대질 않아? 왜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해? 그 빌어먹을 리더라는 자리가 널 그렇게 만든 거야? 그 무거운 부담감을 왜 혼자서 다 받아내는 거냐고. 차학연, 너는 왜.
매니저 형이 들어왔다. 아마 차학연의 상태를 보러 들어온 것일 테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형을 붙잡았다. 형, 차학연은 왜 뒷구멍을 내주고 다녀요?
매니저 형은 아무 말 없이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매니저 형은 표정을 굳히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나를 따로 불러내 얘기를 시작했다. 택운아, 지금 네가 학연이 스폰 받는 거 눈치 챈 게 맞지. 형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뜬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입을 열었다. 차학연이 몸 파는 거, 결국엔 사실이라는 거네요.
매니저 형은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봤다시피 학연이 얼굴 꼴이 말이 아냐. 그렇지? 근데 오늘… 중요한 접대 자리가 있어.
그러니까, 네가 대신 나갔으면 좋겠는데. 저런 얼굴로 내보내기도 좀 그렇고, 다른 애들 보내자니 상황을 모르니 오히려 그딴 짓을 왜 하냐며 욕만 먹을 것 같아서. 택운아, '너흴' 위하는 일이야.
'우리' 를 위하는 자리. 녀석이 여태까지 웃음을 팔아 온 그 술자리. 결국 나는 녀석을 대신해 그 자리에 나가게 될 것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뜯어 먹힌다. 강자는 약자의 위에 항상 군림한다. 어떤 사회에서든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게 왜 그렇게도 거지같았는지에 대해서는, 글쎄.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연아,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녀석의 방문을 열었다. 차학연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고 있었다. 언젠가 녀석이 자고 있다고 생각된 내게 한 것처럼,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차학연. 나, 너 대신… 돈 벌어올게. 쉬고 있어.
술자리가 그렇게 재미없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잔뜩 굳어 술을 따르고 별 재미도 없는 얘기에 웃으며 그들의 비위를 맞췄다. 음반 제작사 사장이라던가, 그가 날 보며 말했다. 처음 보는데. 대신 나온 건가?
매니저 형이 분명 2차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을 편히 가다듬고 왔다. 술만, 술만 따르면 돼. 그럼 돈 버는 거야. 차학연이 몸 안 팔아도 돼. 더 이상 제가 더러운 몸이라고 안 느껴도 돼. '우리' 를 위하는 일이야, 이건.
그러나 그것은 그저 꿈이었을까. 이곳은 더러웠다. 가장 더러운 사회의 밑바닥이다. 돈을 위해 동성에게 몸을 팔아야만 하는 이곳에서 깨끗한 것은 오히려 죄악이다. 나는 그렇게 더러워졌다.
차학연, 넌 이런 생활을 매일 버텨낸 거야? 어째서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거야? 리더라는 자리가 그렇게 무거워야 하는 자리야? 엔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중요해?
우리는 더 빛나게 될 것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속은 모두 썩어 문드러진 그들의 별로써 우리는 아등바등 살아나갈 것이다. 더럽지 않은, 남은 아이들을 지켜내며 이 더러운 정글 속을 살아낼 것이다.
발을 들인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 여전히 이름 없는 주저리 |
본편은 끝이라구 합니다... 비하인드 또 가지구 올게요. 이야 하루에 몇 편을 올리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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