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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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인간' 이라고 불리우는 종족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하며, 대부분 우리를 두려워한다. 저들의 목덜미에 희고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넣어 제 허기를 채우는 무정한 존재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오히려 숭배하기까지 한다. '강하다' 고 생각되는 존재에게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되는 약점이다. 자신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는 존재에게는 반감과 매력을 느끼며 한번쯤 더 눈길을 주게 된다. 그 후에 그 존재를 깎아내리거나, 혹은 숭배하는 것에 대해선 그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일이지만. 생명체들에게, 특히 이성이 있다고 이야기되는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약점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시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 상에서 우리는 끔찍한 괴물일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우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피를 마시는 일은 그들이 '밥' 이라는 것을 챙겨 먹는 행위처럼 자연스럽다. 그들 역시 자연의 생명을 앗아 자신들의 허기를 충족한다. 그저 그 자리에서 자라났을 풀과 열매들, 그리고 죄 없는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 우리 역시 우리가 살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앗아냈을 뿐이다. 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 누구도, 이것을 판단할 자격은 없다. 이것은 그 '인간' 이란 종족이 우리에 대해 혐오스러운 관심을 던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그른 존재, 바탕부터가 틀려먹은 종족이 아님을 뜻한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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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인간의 피를 먹으며 생명을 영위한다는 상상 속의 종족이라 알려져 있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생명을 갖고 존재하는 종족이라 알고 있었다. 사실 실제로 존재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맞을 것이다.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신빙성 있는 일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있다 해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은 채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이 인간의 피를 먹는다고 해도 별 상관 없었다. 그 인간이 '나' 는 아닐 것이었기 때문에.
초승달이 뜨던 날이었다. 손톱 모양의 달이 예뻤다. 희게 빛나는 그 적은 달빛에 홀린 것이었는지 나는 그저 거리를 돌아다녔다. 달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 돌아간 집에서 나를 기다렸던 것은 그날 술을 마시자며 찾아왔던 친구 녀석이었다. 정확히 하자면, 친구 녀석의 사체였다. 붉은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마치 그 날의 달빛 같은 흰색을 띈 녀석의 피부였다. 세상의 어떤 상식을 대입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죽음이라고 했다.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 죽는 병은 나의 짧은 지식 속에 들어있지 않았고, 그러한 병이 있대도 녀석의 주위에는 녀석의 피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뱀파이어' 를 현실로 믿게 한 것은 녀석의 목이었다. 전해져오는 말 그대로, 녀석의 목에는, 굵은 핏줄이 자리했을 자리에는 놀랍게도 자그마한 구멍 모양의 상처 두개가 나란히 뚫려 있었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알지 못했을 흔적. 나는 '그것' 이 실제로 존재하며, 내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깊게 자각했다. 그리고 비로소 꿈 같았던 친구 녀석의 죽음 역시 자각하게 되었다.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였으며, 많이 아끼던 녀석이었다. 그러한 녀석이 '그것' 에 의해 말도 안되는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신에게 돌아올 나의 자책이 무서워서 그것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초승달의 기묘함에 홀리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죄책감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 에게 책임을 돌려냈다. 그저 존재하여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끼니를 때웠을 뿐일, 죄 없는 '그것' 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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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인간이 있고, 뱀파이어가 존재하며, 뱀파이어 헌터 역시 존재한다. 인간은 뱀파이어에게 있어 피식자이지만 뱀파이어 헌터는 인간임에도 뱀파이어에게 있어 포식자, 먹이사슬의 윗부분에 존재하는 그들의 천적이었다. 끝이 이어진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슬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먹이였지만 동시에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들의 목숨을 끊어 놓는 존재였고, 그들은 그저 인간을 흡혈하며 그 인간에 의해 죽어버리는 약한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약한 존재임에도 그들을 약한 존재로 만드는 뱀파이어 헌터라는 부류에 속했다. 속설과 같은 것은 단 하나였다. 은으로 만들어진 탄알만이 그들을 죽일 수 있었다. 십자가니 마늘이니 햇빛이니, 그런 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그들을 죽일 수 있는 탄알을 지급받았고, 그 탄알의 강함을 나의 강함이라 인식하며 살았다. 그 거짓된 강함에 도취되어 그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얕보고 깔봤다. 나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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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처럼 식사를 하기 위해 인간을 고르려 내려갔다. 초승달이 그날따라 예쁘게 빛을 냈다. 흰 빛을 스러질 듯 그러나 뚜렷하게 내비추는 그 달 아래 달빛에 홀린 것 같은 인간을 보았다. 흰 달빛 아래서 취한 듯 비틀대는 그 인간은 몸의 선이 곱고 예뻤다. 왜, 인간들도 예쁜 것을 먹기 아깝다며 마지막으로 미루곤 하지 않는가. 그 낭창낭창한 선의 인간을 지금 당장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그랬기에 그 인간을 지나쳤다. 인간에게선 눅눅한 먼지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 속에선 바람 냄새가 풍겼다. 스치는 것만으로 이러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그를 아껴두려 억지로 눌러 참으며 무의식적으로 그 먼지 냄새를 쫓았다. 그리고 멈춰선 한 건물의 앞엔 아까의 인간보다 키가 더 큰 인간이 있었다. 한 손에 검은색 비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비닐 가방 안에서 초록빛 유리 병이 부딛치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습성은 여럿 있었으나, 그 중 하나는 그들이 알코올을 마시는 행위였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그 알코올을 마시며,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을 그 알코올에 의존했다. 그런 인간들은 몸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힘을 쓰지 않고도 식사하기 쉬운 상대였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의 피에선 고약한 맛이 났다. 알싸하고, 씁쓸한 맛.
그러나 내 시야에 들어온 그 인간은 내 판단 상에서 맨정신이었다. 알코올 특유의 향을 풍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인간의 뒤로 들어가 목덜미를 물었다. 키가 컸던 그 인간은 꽤나 뜨뜻한 피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이 방금 된 '밥' 을 좋아하듯, 나 역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의 피를 좋아했다. 신선한 식사였다. 한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로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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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뱀파이어들이 인간 무리에 섞여 살아간다. 인간과 떨어져 사는 뱀파이어는 이제 몇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순종. 그들은 자신이 순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과 인간들을 완전히 '다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같은 공기와 같은 땅을 공유하는 동물. 그저 조금 닮았을 뿐일. 원숭이와 고릴라 정도, 그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 무리에 섞여 있는 대다수의 뱀파이어들은 그들이 '돌연변이' 라는 것을 인정한다. 인간과 동족이고, 그저 조금 다른 식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뱀파이어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자연의 어떤 동물도 동족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종족을 자신이 살아가는 양분으로 두는 돌연변이이다. 그들은 항상 인간의 이성과 뱀파이어의 본능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고, 역시 대다수의 경우에는 뱀파이어의 본능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정말 극소수의 뱀파이어들만이 인간을 먹지 않고, 동물의 피를 마시며 인간과 완벽한 공존을 이룬다. 나 역시, 이 극소수의 뱀파이어에 속한다. 인간 무리에 섞여 인간에게 적응을 하며 친분을 쌓은 그 인간에게선 짙은 먼지 냄새가 났다. 그 속에선 원래 살던 그 곳의 바람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를 맛보고 싶다는 충동을 그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참아내야 했다. 이 세계에 적응을 한 뒤에도 그는 항상 나를 본능적으로 만들곤 했다. 그의 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그의 눈동자는 예의 짙은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이 탁했다. 그는 내게 말해왔다. 재환아, 뱀파이어라는 게 실제로 있었나 봐. 그게, 그게… 내 친구를, 마셔버렸어. 그의 탁한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나는 다시금 본능을 참아내야 했다. 그의 목덜미에 동물만을 물어왔던 나의 본능을 박아넣고 싶었다. 겁에 질렸거나, 혹은 화가 난, 슬퍼하는 감정의 끝에 다다른 인간은 순간 몸의 피가 데워진다. 그들의 피가 가장 맛있는 식삿거리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까스로 다시 인간이 되었다. 정, 말요. 진짜 뱀파이어라는… 게, 있는 거예요? 아, 학연이 형. 울지 마요. 나의 존재를 뿌리 끝부터 부정하며 인간을 달랬다. 인간과 떨어져 사는 그들이 우리를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존재를 부정해낸다는 그 사실에서 시작한다.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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