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물의 클리셰 ;
열 넷, 그 날의 겨울. 나는 고아원을 떠났다.
견학을 온 건지, 아니면 구경을 온 건지, 들린 건지.
내가 지내던 고아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다,
어떤 남자의 손을 붙잡고 오더니 '얘랑 가면 안 될까?' 하고 말했다.
날 데려가겠다는 건가. 나를 물건 취급하듯, 말하는 어투가 사춘기의 나에게는 전혀
곱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를 꺼내 줬다는 점에서는 고마웠다.
"앞으로 우리 민규랑, 잘 지내렴. 편하게."
"......네."
가시방석이었으니. 편할 리가. 부모한테 맞고 자라다 버려진 나에게 모든 건 사치였다.
김민규는 내 예상과 빗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잣집 도련님. 천상천하 유아독존.
가지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지 쉽게 가지고, 철도 없고. 난 김민규가 싫었다.
김민규에게 친누나같은 존재가 돼 달라고 사모님은 부탁하셨다.
네. 대충 대답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열 넷, 나는 그 때부터 김민규가 싫었다.
*
김민규는 무슨 이유였는진 몰라도, 어차피 둘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텅빈 집을 나가고 싶어했다.
김민규 말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줄 수 있었던 사모님이었기에 김민규는 집을 하나 얻어서 나갔다.
나를 데리고. 도대체 왜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김민규의 말이, 이 집에선 법도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스물 일곱, 이제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다. 이제는. 김민규는 스물 다섯,
김민규는 여전히 철이 없었다. 김민규는 애 같다. 그냥 정말 애 같다. 그냥 개념이란 게 없는 애다.
오냐오냐 하고 자랐으니 그럴 수밖에. 김민규는 꼭 자기 멋대로 해야 뭐든지 성에 찬다.
철이 없고, 돈 물 쓰듯 쓰고.
"나 왔어."
"......응."
"오늘 뭐 했어?"
김민규는 나에게 목을 맨다. 왜 그런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볼일이 있어서, 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김민규 주변에 널린 게 여자고,
김민규가 쫓는 사치스러운 풍경들이다. 나와 김민규는 갭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김민규에게 정을 줄 수도 없었고,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 애와 나의 괴리감은,
그냥 단순히 살 맞대고 사는 것에서 극복할 수 없는 거였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했어."
"밥은?"
"...먹었어."
"응. 그리고 전화 좀 받아."
"......."
"알겠지? 세봉아?"
"......누나라고 했잖아."
전화 좀 받아. 라는 말에 잘 쓰지도 않는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화가 와 있었다.
발신인은 다 김민규.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규의 그늘은 생각보다 너무 크다. 어느 순간부터 김민규는 나를,
자기 멋대로 부리기 시작했다. 김민규한테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민규야."
"응?"
모든 게 다 김민규 멋대로다. 하나밖에 놓여져 있지 않은 침대도, 다.
자정을 넘은 시간, 침대에 먼저 눕자, 뒤이어 김민규가 들어왔다. 김민규의 팔이 내 허리를 감았다.
"......나, 이제 따로 나가서 살거야."
"......."
"같이 살 사람도... 있고."
김민규는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걸까. 놀리기 좋은 여자애? 아니면 정말 누나같은 존재?
일단 후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내뱉었다. 따로 살 거야.
뒷 말은 넣어둘 걸 그랬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나는 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누구?"
"......그건,"
"권순영?"
옅은 불빛 속에서 보이는 김민규의 표정은 안 봐도 뻔했다.
굳어져 있겠지. 권순영? 혀를 찬 김민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7년이야, 민규야. 7년이나 지났다고."
"그게 뭐."
"회장님이랑, 사모님이랑. 너한테 누나, 돼 달라고 말씀하셨었고."
"......."
"이제 넌 혼자서도 다 할 수 있잖아."
"......아니."
아니. 단호하게 내뱉어진 말과는 상반되게 김민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권순영은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 줄은 알아?"
"......."
"아, 누나, 동생."
"......."
"요즘은 누나랑 동생이랑 키스도 하나?"
김민규의 그늘은 너무나도 크다. 날카롭게 내뱉어진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다 네가 억지로 한 일들이잖아. 고개를 떨구었다. 난, 김민규한테 묶여도 너무 단단히 묶여 있다.
"가지 마."
"......민규야."
"너가 가려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붙들어 놓을 거야."
김민규가 더 세게 나를 끌어안았다. 내가 김민규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내가 김민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나는 김민규를 내칠 수가 없다.
7년 내내 그랬다. 나는 몇 번이고 김민규에게 떠나겠다는 말을 했다.
그 때마다 매달리는 김민규를, 나는 쉽사리 잘라낼 수가 없었다.
김민규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너를,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더 되뇌이던 김민규였다.
"나 정말 너 없으면 안되는 거 알잖아."
"......."
"제발, 가지 마."
왜, 너는 너를 미워하지 못하게 해. 김민규는 멀다. 가까이 있지만 그 누구보다 멀고,
나는 그런 김민규가 내게 가까이 오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알겠어."
"진짜지?"
김민규는, 정말 애다. 금새 진짜지? 하며 되물어 오는 김민규에 그럼. 이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난 오늘도, 무슨 사이인지 모를 김민규를 받아들이고, 또 죄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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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으로 쓴 건지 모르겠는 글....이 아니고
상당히 필터링된 글입니다. 원래 이런 건 필터링 하면 안 되는데...
너무나 많이 필터링 되어 있는 것...... (한숨)
원버전 갖고 싶은 싸람~~~~~~없겠죠~~~~~~~~~~~~~
그럼 모두 굿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