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저 박스를 여기에 들인 그 순간부터, 그니까 토달지 말고 남준이라는 새끼 수요일에 만나러 가지 마. 김탄소"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네가 뭔데 내 남친이야 난 너 허락한 적 없어 없다고! 기가 찼다. 너무나도 기가 차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런 내 표정에도 미동없이 제 말만 밀어붙이는 김석진의 행동은 나를 더 열받게 했으며 내 피를 솟구치게 했다. 난 그런 김석진의 건방짐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무슨 억지야 그게! 내가 왜 네 말 듣고 약속을 깨야 해?"
"두 번 말하게 하는 거 딱 질색인데, 다시 말해 줘? 내가 김탄소 네 남자친구라고 저 새끼가 아니라." ㅈ,저새끼? 어디서 그 요망한 입으로 남준 오빠를 새끼라고 칭하는 거야! 나의 생각보다 김석진은 더 고집이 셌고, 칼 같았다. 분명 억지는 김석진이 온갖 다 부리고 있는데 김석진의 침착함과 논리정연함 때문에 제 3자가 볼 경우, 오히려 내가 억지부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밀어 붙이는 김석진을 내가 어찌 말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나는 최후의 방법을 이용했다. 바로, 여자의 눈물
"너 내 남자친구 아니야!!!! 흐엉 난 이런 애랑 사귀기 싫단 말이야!!!!!! 무효 해 달라고 알바비 다 가져가도 되니까아!!!! 흐어어엉..." 억지로 울려고 했지만, 이미 내 속은 썩어 뭉들어져 있는지 진심을 다해 울게 되었다. 사실 갑자기 일어난 모든 상황이 무서웠다. 강도인 줄 알았던 사람이 내가 만든 남자친구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면 미친년이라고 할만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 눈물에 대한 김석진의 반응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바닥에 앉아 김석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ㅇ,야 김탄소 왜 울고 그래" 난 김석진의 목소리를 듣고 확신했다. 김석진은 지금 내 울음에 상당히 당황했다는 것을 말이다. 한참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을 때쯤 나는 내 몸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온기로 인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탄소야.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응?" 김석진이 나를 껴안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듯 김석진은 나를 껴안아 달래주고 있었다. 또 한 번 머리가 새하얘졌다. 지금까지 난 아빠를 제외하고 성염색체가 다른 사람과의 포옹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김석진의 품은 따뜻했다. 무엇보다도 김석진이 내뱉은 말들은 모두 하나같이 따뜻했고 정이 있었다. 아까 김석진의 말투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람들은 누군가 위로해 주면 더 울컥한다는 말에 철저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김석진 품에서 열심히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한참 눈물을 흘려낸 후 김석진한테서 떨어져 김석진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는 처음보는 김석진의 표정에 당황했다. 그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다정했고 온화했다.
"다 울었어? 얼마나 울었으면 얼굴이 젖어있냐..." 김석진은 말없이 제 손으로 내 얼굴의 물기를 하나하나 닦아줬다. 난 분명 그의 손을 뿌리쳐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진이란 진은 다 빠진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그저 김석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석진의 손길이 내심 싫지는 않았다. 모태솔로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김탄소, 아깐 내가 너무 억지를 부린 거 같다. 그 부분에서 너도 많이 당황했을 거라 생각해. 사과할게,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너와 나 사이에 합의점을 찾아야 될 거 같아." 맞는 말이다. 우린 서로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김석진도 원치 않아서 내 남친 아닌 남친이 된 건데, 난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합의점이 필요했고 대화가 필요했다. 나는 김석진의 말에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나는 김석진의 살며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야, 말을 듣네. 말 들으니까 좀 좋냐. 근데 김탄소 가장 중요한 말을 잊었는데..." "...ㅇ,어?" 중요한 말? 나는 또 내 멘탈을 무너뜨리는 말이 들릴까, 잔뜩 긴장하며 토끼눈으로 김석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정말 예상밖의 말이었다.
"나 좀 많이 배고픈데, 먹으면서 얘기하면 안 되냐."
"...아, ㄱ,그래..." 그래 우리 둘 사이에는 진지함이 있을 수 없다. 잠깐 이 또라이한테 되도 않는 설레임을 느낀 내가 등신이다. 나는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김석진은 이와중에도 눈치없이 너도 먹을 거면 4 개를 끓이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말에 김석진을 미쳤냐는 듯이 쳐다보았고 김석진은 뭐가 문제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야! 나 여자거든! 어떻게 2 개를 먹어! 그리고 나 다이어트 중이야! 안 먹어!"
"누가 네 2 개씩이나 준대? 오빠라고 부르랬지. 이따가 한 입만 이라는 개소리 했다간 손모가지 잘릴 줄 알아라. 그리고 내가 3 개 먹을 거니까 지랄말고 빨리 끓어" 이런 건방진 돼지가 다 있나!!!!!!! 아까 그 다정한 개새끼는 온데간데 없고 흔한 시트콤에 나오는 현실오빠모드를 장착한 김석진은 나를 동생부리듯이 대했다. 나는 순간 울컥해 네가 그러고도 내 남친이냐?라는 개소리를 내뱉었고 김석진은 이런 제 말에 비아냥거렸다.
"아깐, 자기 남친 아니라고 그렇게 온지랄을 다 떨더니 이제와서는 남친이라고 우기네 이 친구 참 놀라운 친구일세." "ㄱ,그게 아니라! 아 몰라! 라면이나 처먹어!" "김치는?" "냉장고에" "계란은" "그것도" "치즈는" "있어" "찬 밥은"
"이 ㄱ,개새끼야!!!!!! 이 밤에 얼마나 처먹으려는 거야!!!! 네가 사람이냐!!!!!!! 돼지새끼지!!!!!!!!!" "어느 돼지가 이리 잘생기고 말랐냐." 결국 폭발했다. 이건 남친이 아니다, 그냥 뭐같은 친오빠 한 명이다. 외동이었던 나는 그동안 남자형제가 있는 친구들에게 부럽다는 말을 했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며 김석진에게 또 한 번 히스테리를 부렸다. 김석진은 역시 이런 내 행동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장고에서 김치 치즈 계란을 꺼내 와 냄비에 뿌리고는 묵묵히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김석진의 먹는 모습은 파프리카 TV 먹방 BJ수준이었다. 정말 더럽게 복스럽게 먹고 있었다.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누가보면 3일동안 굶었다고 착각할 수준이었다. 이런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김석진은 김치와 라면을 입안 가득 집어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저를 쳐다봤다.
"얼굴에 뭐 튀겼냐? 뭘 그리 쳐다 봐" "ㅇ,아니"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죽여버린다" 순간 할 뻔했다. 김석진의 먹는 모습은 그냥 존나 햄스터같았다. 가뜩이나 생긴 것도 그 쪽 과인데 김석진의 먹는 모습을 보니 해바라기 씨를 입에 가득 넣는 한 마리의 햄스터 같았다. 그런 김석진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상당히 흉했을 게 분명하다. 이러한 지 표정을 눈치챘는지 김석진은 라면이 들은 냄비를 꽉 쥐며 내 거야 건들지 마라는 눈빛으로 영역표시를 했다. 이또한 햄스터 같았다. 솔직히 은근 그 모습이 귀여워 풋하고 웃었다. 그리고 머리 속으로 한 마디를 계속 되새겼다. '김석진을 다루려면, 눈물 그리고 음식이 필요하다'
"야 아까, 합의점을 생각해 봤는데 일단 너 수요일에 그 새끼 만나."
"ㄱ,갑자기 왜?" "싫냐? 싫으면 말아라. 나야 좋지" "ㅇ,아니 그 뜻이 아니라. 아깐 만나지 말라며"
"제대로 마무리는 지어야 될 거 아니야. 문자 전화통보는 너무 싸가지가 없고, 내 여친 싸가지 없는 년 만들기 싫어서."
"이런 씨ㅂ, 내가 왜 네 여친이야!!!"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이렇게 나처럼 엄한 놈한테 눈 뜬 채 코를 베일 수 있다. 김석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를 자기 여친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 김석진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김탄소 너 그 새끼랑 연애해도 금방 깨져야 돼."
"허? 어차피라니, 네가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 그리고 왜 어째서!" 김석진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고, 난 그의 말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난 내말을 이은 김석진의 마지막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고? 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어. 나랑 정확히 500일 후에 결혼하는 거. 설명서에도 나와있었을 텐데 안 읽었나 봐? 끝이 있는 만남은 그 새끼한테 쓰레기짓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끝을 바라보고 연애 해. 계약 연애도 아니고."
5화는 잘 읽으셨는지요? 아 포인트가 오른 거에 대해서 일단 사과드립니다. 제가 시간이나 양에 많이 투자했다고 느끼는 화들은 5p~10p 오를 거 같아요...8ㅅ8 원래 1-3화까지는 프롤로그 형식이라 전체적인 흐름만 집약되어 있거든요. 독자님들의 소중한 포인트를 많이 걷어가는 거에 죄송함을 느낍니다.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아마 독자님들의 소중한 포인트도 회수받고 저도 뿌듯한 감정을 갖게 돼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그동안 달아주신 댓글들과 암호닉 덕에 힘을 가득 받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 사랑해요! 남친을 키우는 너탄들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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