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땅을 적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젖은 땅을 일훈의 눈물이 적셨다.
난간위에 선 일훈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것이다.
비가 내리니까..........
..아무튼, 아무도 모를것이다.
옥상위에서 일훈은 비바람을 얼굴에 그대로 맞으면 가슴이 잠깐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비가 자신의 얼굴을 씻어주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씻어줄수 없음을 다시 인지하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래를 보았다.
반짝이는 네온 사인에 빗방울들이 내려 앉아 더욱 더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옥상문이 열렸다.
"정일훈!"
일훈은 조금 놀랐다.
아무도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일훈은 성재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눈물은 마지막의 순간 자신을 잡고 죄를 덜기 위한 일종의 면죄부라고 느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확실하게 전달하자면,
"늦었어."
늦었다.
성재는 모든 것에서 항상 늦었다.
싸움이 나면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마지막에 도착했고,
학교는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수업이 끝날즈음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이자리에서 성재의 사과도.
"미안해."
늦었다.
일훈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울었다.
속이 조금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가슴은 아까보다 더 시원해진것 같은데, 괜스레 성재가 원망스러워졌다.
"..나한테 왜 그랬어?내가 그렇게 만만했어?왜 하필 나였어?내가 그렇게 힘들 줄 알면서 그랬어?왜,왜!"
일훈이 주저 앉았다.
성재가 천천히 다가갔다.
"넌 나를 강간했어, 알긴 알아?"
성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어?"
일훈이 독기 어린 눈으로 성재를 노려보았다.
성재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일훈이 고개를 숙였다.
"근데..근데 날 왜 그렇게 힘들게 했어.."
목소리가 떨렸다.
일훈의 몸도 같이 떨렸다.
한참을 울기만 하던 일훈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대답 없는 성재를 올려다보았다.
일훈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그랬어.."
성재가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주먹 쥐어진 손을 펼쳤다. 그 커다란 손바닥 위에는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막대사탕이 올려져 있었다.
성재가 말했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성재는 모든 것에서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