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엔 정말 미친것 같은 또라이가 한명있다. "안녕하세요. 이석민입니다." 처음엔 아닌줄알았다. 또라이. "제 꿈은 인터넷 소설 작가고요." 이때부터 삘이 안좋았는데 "롤모델은 귀여니입니다." 나랑은 안엮일줄 알았다. "제 앞에서 귀여니귀여니 하지 마세요. 자존심 상하거든요. 귀선생님이라고 호칭붙여주세요." 그냥 미친놈이니까 피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 귀선생의 후예 "..네가 김여주냐?" 오늘은 급식을 먹지 않고 매점에서 빵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서 수영이랑 팔짱을 끼고 매점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이석민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쩌잔거지. 엄청 당황스러워하며 이석민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이석민은 낮게 웃었다. 마치, 마치... "큭." 이름의 끝자가 혈로 끝나는 사람처럼. 옆에 있던 수영이는 당황해서 내 팔짱에서 손을 슬그머니 뺐다. 아냐! 나 그런 사람아니라고..! 나 화장실갈게. 수영이는 손부채질을 하며 사라졌다. 아 안돼...가지마.... 차마 돌아서는 수영이를 붙잡지 못하고 이석민을 한번 째려봤다. 완전 또라이 아니야? 새학기부터 망한 느낌이다. "어. 내가 김여주야. 왜?" 눈을 치켜뜨며 이석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석민은 내게 꽤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소설의," "...?" "여주인공이 되줘야겠어." ...미친놈. "대체 왜 싫은데?" "시끄러." 이석민은 날 지독하게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싫으냐고 묻기에 손을 휘휘 저으며 시끄럽다고 하자 이석민은 기가찬듯 '허.' 웃었다. 지가 뭔데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 "이유나 듣자." "아니 내가 무슨 여주인공이야. 애초에 나한테 왜 물어본건지 이해가 안돼." "그야 네가," "그리고 너 오면 수영이가 불편해하잖아." 턱짓으로 뒤쪽을 살짝 가리키며 이석민에게 눈치를 주었다. 수영이는 이석민이 가까이 올때면 항상 뒤로 빠져있었다. 아마 수영이의 직감으로 위험한 놈이라 판단됐기 때문이겠지. "아아." 내 말에 이석민은 눈치챈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걱정마. 내가 해결해줄게."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수영이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이석민의 포부당당한 뒷모습을 봤다. 그 뒤로는 흔들리는 동공의 수영이가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에 손을 뻗어 이석민을 말리려했지만 내 손보다 이석민의 입이 더 빨랐다. "야." "..어?" "너 나 좋아하냐?" 상상이상이었다. "뭐?" "미안한데. 나 친구의 남자친구같은 내용은 취급안하거든." "..." "어디서 그런 3류 스토리를." 이석민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수영이의 어깨를 잠시 토닥이더니. "나 좋아하지마라." 엄마. 나 전학가고 싶어. 망연자실한 내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 건지 수영이에게서 뒤돌아온 이석민은 내게 승리의 브이자를 보였다. "이제 됐지?" "..."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알았어! 이 새끼야!" 이석민의 뒤통수를 잽싸게 후리며 말했다. 이석민은 제 뒤통수를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본격적인 스토리구성은 내일부터 시작이야.
- 귀선생의 후예 "좋았어. 이젠 등장인물부터 고를 차례야." 헤헤, 이석민에게 옮은 건지 쓰잘데기 없는 소리에도 이젠 그러려니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왕 여주가 된거 남주는 잘생겼으면 좋겠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이석민의 뒤를 따랐다. "첫번째는 남주친구부터 골라야지." "왜?" "왜냐니. 그야 인소에서 남주친구는 감초같은 역," "아니아니. 남주부터 골라야지." "뭐?" 이석민은 크게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남주부터 고르라구.' 내 말에 이석민은 혀를 끌끌 차며 어이없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석민한테고 무시당하고 나도 참 할일 없나보다. "남주는 나야." 당연한듯 툭 떨어지는 그 말에 이석민을 조용히 올려다봤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 "그래서 널 여주로 선택한거야." "아, 그랬구나~" "후후. 너도 이제 내 깊은 뜻을 이해했구나." "응. 나 안할래." "..갑자기? 이제 와서?" "응. 이석민 안녕. 예쁜 여주 찾길 바라." 미쳤지. 남주가 무슨 이석민이야. 인생꼬일일 있냐. 주머니에 손을 대충 찔러넣으며 이석민에게 인사했다. 예쁜 여주 찾아라, 새끼야. 차마 끝말은 마저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담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대체 왜?" "너는." "..." "남주 비주얼이 아니야." "!!!!!" 이석민은 충격에 휩싸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남주인공감이 아니라니.. 그러면.. 대체 누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내 기척에 이석민은 급하게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럼 대체 어느정도는 돼야 남주인공 비주얼인데?" "..." 어,그러게. 그것까진 생각을 못했네. 눈알을 도륵도륵 굴리는 내게 이석민은 대답을 재촉했다. '내가 납득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겠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말투와 함께. "..미, 미안해." 내 사과에도 이석민은 꿈쩍 안했다. "내 눈앞에서 지금 당장 증명해봐. 남주로 누가 적합한지 데려와 보라고." "그럼 이것 좀 놔줘.." "싫어!" 이석민은 제 눈앞에 데려와서 증명해보라며 잔뜩 흥분해서 내게 쏘아붙였다. 조금 쫄아서 움찔거리다가 데려올테니까 이것좀 놔줘. 부탁하는 내말에 이석민은 재빨리 대답했다. '싫어!'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에게 붙들려있다가 대충 지나가는 이의 소매자락을 붙잡았다. 죄송해요. "이, 이정도 쯤은 돼야 인소남주라고 할 수 있지!" "..." 이석민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싸한 분위기에 나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올렸다. "..." 전원우. 날카로운 인상때문인지 친구들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그런, 굳이 나쁜 애라는 소문은 없지만 괜히 다가가기 무서운 그런 아이였다. 맙소사. 전원우는 말없이 당황한 티가 팍팍나는 내 얼굴을 내려보다 곧이어 이석민에게 시선을 옮겼다. "야." "..." "넌 오늘부터 내 친구다." 눈이 마주치지마자 이석민은 기쁜 듯 씨익 웃었다. "내가 생각하던 공고간판 남주친구랑 딱 어울리는 군." 취미인지 미친소리를 한번 더했다. "..고마워." 전원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둘이 뭐하는 거야. 사이에 껴있는 내가 더 어색해져서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악수를 한창하던 둘은 내 헛기침 소리에 자연스레 날 쳐다봤다. "나 가도 돼?" 내 물음에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이석민은 갑자기 '아!'하며 제 손바닥을 팡쳤다. "까먹고 있었다." 작게 중얼거리더니 전원우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아넣는게 아닌가. 전원우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조금 휘청거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거친 숨을 내뱉는 전원우 앞에서 이석민은 당당하게 버티어 섰다. "전원우. 너는 우정보다 사랑이냐." "..." "됐다. 너랑 나는 여기까지인가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제 할말만 늘어놓고 이석민은 반을 향했다. 전원우는 한약을 한사발 원샷한마냥 쓴 웃음을 뱉었다. "김여주."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낮게 깔린 원우의 목소리가 섬뜩하다. 우리 처음만난 사이잖아. 나 아무것도 안했어. 잘못은 이석민이.. "응?" 어색한 내 대답에 전원우가 말했다. "난 아직." "..." "우정인가봐." "어?" "잘지내라." 전원우는 뒤돌아서서 이석민을 향해 뛰었다. 내가 중학교2학년때에는 인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본명은 최은영이었지만 인소은영의 줄임말로 인영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나는 인소같은 삶을 살거야.' 중2스러운 꿈이었다. 갑자기 인영이가 왜 생각난거냐면, 인영아 나랑 바꾸자. 그냥... 내가 네 소원 이뤄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아씨, 전학가고 싶다. - 귀선생의 후예 "여주야! 선생님이 피구선 그으래!" "어? 나?" "응. 네가 제일 잘그을 것 같다고 너 시키래." "..으응. 그래." 이석민을 만나고부턴 나도 이상한 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되는 일이 없어. 입을 삐죽내밀고 툴툴거리며 흙바닥에 하얀 선을 긋고 있었다. "수영아. 나 이거 갖다 놓고 올게." 내말에 피구공을 모으던 수영이는 아쉬운 표정을 보이며 제손에 들린 피구공을 쳐다봤다. "같이 가고 싶은데 이거때문에. 미안." "아냐, 뭐. 이게 별거라고." 통을 질질 끌며 운동장 모서리에 나갔을까, "읍!" 이게 뭐야! 열댓명의 남자애들이 날 둘러쌌다. 그리고 내 입을 가로막은 축축한 손수건. 앗 차가워. "뭐, 뭐야.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하면 기절하던데." "일단 끌고 가자." 그들은 내 입에 아직 염소냄새가 남아있는 수돗물 묻힌 손수건을 붙인채로 내 양팔을 끌고갔다. 마치 강도가 경찰한테 붙잡혀 끌려가는 것 마냥. 너네 뭐해? 묻고 싶었지만 찰박한 손수건이 내입에서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순순히 끌려갔다.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곳은 체육창고. "...?" 그들은 내 의문가득한 얼굴을 힐긋 보고는 무시했다. 아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 그러더니 중앙에 있는 의자에 날 앉히고는 잠시 지들끼리 상의하더라. "야 묶을게 없는데 어떻게 하지?" "민수꺼 넥타이로 일단 묶자." "오. 그래." 그리고는 민수의 넥타이로 내 손목을 묶었다. ..이쯤되니 뭔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손목을 묶이고 나니 그들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손목에 묶인 넥타이는 엄청 허술해서 손을 조금만 털어내면 바로 풀릴 것 같았다. 아무튼 사악한 미소를 짓다가 내가 반응이 없자 무안해진 그들은 내 입에서 손수건을 떼며 물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으,응." 내가 정신을 잃었나. 정신을 잃은 기억이 없는걸보면 확실히 정신을 잃었던 걸지도. 대충 대답하자 그들은 내 머리를 툭툭 밀었다. "곧있으면 네 남자친구가 올거야." "?" 내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니. 중학교이후로 남자손도 못잡아본 나인데. (아빠제외) "내 소개는 안해도 알고있겠지? 나는 공고간판으로 유명한, 아 내 별명은 어둠의 다크니스." 어둠의 다크니스라니 그게 대체 무슨말이야.. 뭐 일렉트릭의 전기, 전설의 레전드같은 그런?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 지역엔 공고가 없잖아." 그리고 너네 우리반이잖아.. 내 말에 그들은 잠시 당황하더니 넥타이주인 민수가 다급하게 나섰다. "우,우린 옆동네 드림공고 재학생이다!" 뭐? 공고 이름이 드림이란 말이야? 게다가 옆동네에서 체육시간에 갑자기 왜 와. 뭔가 따지려했지만 곧 울것 같은 표정이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구렇구나." "그래. 곧 이석민이 올거야. 똑똑히 봐라 네 남자친구가 맞는 모습을." 예상대로. 이석민짓이군. 이자식 내가 여주를 안한다고 했는데! 화를 꾹꾹 누르며 몰래 넥타이를 털고 있었는데, 쾅- 어두운 체육창고가 밝아졌다. "김여주!" 그리고 결국 납신 주인공 이석민. "어쭈. 너희 많이 컸다? 꿈빛공고." 꿈빛공고는 또 뭐야. 희망이 넘치네. 그리고 왠지... 빵틀을 잡아야할것 같은 이름인데. "드, 드림공고다!" 이석민은 당황한듯 동공이 잠시 흔들렸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누가 보면 아주 이순재할아버지급 내공의 연기자인줄. "아무튼. 감히 내 깔을 건드리다니." 뭐요?깔? "너흰 뒤졌어." 이석민은 한쪽 입꼬리를 비장하게 끌어올렸다. "귀찮으니까 한명씩 덤벼." 아, 하느님.. 격투씬은 허무했다. 그러니까 이석민의 흐물거리는 주먹이 나가면 그들은 살에 닿기도 전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이석민은 가슴을 거칠게 부풀리며 숨을 내쉬었지만 얼굴은 땀한방울도 없이 뽀송뽀송했다. 열댓명의 남자들을 모두 쓰러뜨린 이석민은 눈을 살짝 찡그리며 제 이마를 훔쳐냈다. 웃기지마. 땀 하나도 안났으면서. 그걸 그저 감흥없이 보고있는데 쓰러져있던 남자애들이 우루루 입구로 서더라. "..?" 계속 쓰러진 척하는 거 아니었어?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이석민은 멋진척 (상남자인척, 싸움잘하는 척등 온갖 척이란 척을 다 끌어모았다)을 끝낸건지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일진에 재벌집 아들이야? 식상한 컨셉이네. 마음같아서는 배를 득득 긁으며 팝콘과 함께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지갑을 든 이석민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입구에 쪼르르 서있는 남자애들이었다. 뭐야 보통 여주한테 찾아오잖아. 입구에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헤헤, 석민아. 다음에도 일있으면 불러줘." "그래." 이석민은 지갑에서 푸른빛 지폐 두어장을 꺼내 그들의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와, 민수야. 나는 또 시급이 이천원이라길래 무슨박봉인가 했는데 이정도면 꿀이다. 한시간도 안채웠는데." "그치? 내가 하자고 했잖아." ...맙소사. 참나, 이젠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석민은 온화한 표정으로 그들의 어깨를 토닥이기도 하며 그들을 격려했다. '수고했다. 애들아.' 따뜻한 아버지 같은 말도 잊지 않고. 최강존엄이네. 정산을 마친건지 이석민은 내게 다급하게 뛰어왔다. "여주야!!!!!!!" 뭐 이 미친놈아. "괜찮냐." "..어." "다친 데는." "없어.." 우리반 애들이 나를 줘팼겠냐. 거의 떨어지려고 하는 넥타이를 손에 쥐었다. 민수 돌려줘야하는데. 내 말에 이석민은 한숨을 쉬며 내 머리통을 끌어안았다. "..?" 그리고는 내 정수리에 제 볼을 부비적거리며 나직이 말하는 것이었다. "다행이다." 다음에 서울에 가게 된다면 귀여니, 아니 귀선생을 만나서 간곡히 부탁해야겠다. 신작하나 내주세요. 그냥 남고생이 공부하는 별거 없는 이야기로. 제발. - 귀선생의 후예 "자, 이제 남주친구를 한명 더 골라야 해." 체육창고사건 이후였을까, 나는 무언의 압박을 통해 결국 여주가 되어버렸다. 이석민, 전원우, 그리고 나. 이 셋은 복도에 모여서 상의를 하고 있었다. 불편해죽겠다. 급식먹은거 올라오겠네. "..." 더불어 전원우의 날 보는 아련한 눈빛까지. 제발 나한테 이러지마.. 나한테 왜그래. 대충 눈을 내리깔고 무시했다. 쟤나 이석민이나. "다른 남주친구는 좀 요란하고 시끄러운 맛이 있어야지." "그렇군." 전원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잊혀졌으면 좋겠다. 나라는 존재가...BW...☆.... "그리고 좀 귀엽고, 동글동글한.." "..." "찾았다." 이석민은 지나가던 3반의 자칭마스코트 부승관의 멱살을 단숨에 잡아챘다. "컥, 뭐야 이 미친 놈은! 이거 안놔?" 그래 저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그 모습을 보다가 옆에 있던 전원우를 한번 쳐다봤다. "나랑 베프할래?" "뭐?!?!" ...전원우의 귀가 붉어져있고 눈망울도 지금 초롱초롱한게,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새친구를 사귀는게 신나는 모양이었다. 전원우 얘도 답은 없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사이 이석민은 부승관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는 부승관을 벽구석에 밀어넣어 제팔에 가뒀다. ..카베동? "너, 내 친구해라." 특유의 쿨워터향나는 미소를 지은 이석민은 부승관에게 열심히 구애, 아니 구애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열렬히 친구가 되어달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소름이 돋는 표정을 하고 있던 부승관은 벽치기때문인지 수줍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 . . 인생, 쓰다. "...." "김여주 선배님 맞으십니까?" "..예." 접니다. 저에요. 그 김여주가 저에요^^! 1학년인지모를 우락부락한 남정네들의 팔뚝엔 어울리지 않게 가녀린 장미가 한송이씩 들려져있었다. 열명의 후배님들은 내 주위를 둥그렇게 애워싸더니 먼저 한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니까, 그 있잖아. 왕자님이 청혼할때 한쪽 무릎을 세우고 무릎꿇는 그거. 그 자세로 내게 장미꽃 한송이를 건넸다. "너." 어디서 반말이야. 눈을 왜 그렇게 떠. "를." 뒤이어 풀썩, 무릎을 꿇은 시계방향의 후배님. 이러지 마요... "좋." 마음같아서는 뛰쳐나가고 싶은데 빈틈없이 날 애워싸고 있는 바람에 이도저도 못하고 아랫입술만 꾸욱 물고 있었다. "아." 한명한명 무릎꿇을때마다 "해." 두명세명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나." 동해물과 백두산이 "랑." 마르고 닳도록 "사." 하느님이 보우하사 "귀." 우리나라 만세. "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아름다움만큼 널 때리러 가야겠어. "..고마워요." 후배들의 손이 무안할까봐 장미꽃 열송이를 하나하나 건네받았다. 진짜 뒤졌어, 이석민 너는. 허탈하게 뒷문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뒷문에서 멈췄다가 차례차례 나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문틈새에서 보이는 익숙한 손과 푸른빛지폐 한장. 그들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감사인사를 하고는 1학년 층으로 향했다. 멍하게 뒷문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이석민이 코를 찡긋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은데." "..." "나가서 얘기할까?" 머리가 좋은 놈이다. 자기가 맞을걸 예측하고 덜 쪽팔리게 밖으로 향하는 거 아닐까.
- 귀선생의
후예- 학교 뒤 작은 뜰이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괜히 널 여주로 삼은게 아니야." "알고 있어." "..." "괴롭히려고 그런거잖아. 이 #@+×₩÷♤+♡'+야." "..." 이석민은 내 입에서 찰지게 뱉어지는 온갖 발음에 조금 놀란 듯 몸을 흠칫 떨었다. 날 감히 그런식으로 쪽을 줘?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이석민은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거 아냐." 꽤 진지한 표정이 정상인같아서 뭔가 어색했다. 나도 더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진짜로 널 좋아해." "..어?" "사귈래?" "아니, 그게 너무 갑작스러," "아니. 그냥 사귀자." "..." "여주야." 낮게 깔린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하는 모습이 조금 낯설다. 이석민 아닌 것 같아. 입술에 꿀을 바른 사람마냥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석민은 손을 뻗어 내 잔머리를 쓸어넘겨주며 다시 '여주야. 우리 사귀,' 비슷한 말을 꺼내려는데. "안돼!!!!!!!!!" ..전원우? "이석민. 미안. 아무리 너라도 여주는 넘겨줄 수 없을 것 같다." 전원우는 내팔뚝을 쥐고 제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날 품속에 감췄다. 앗, 생애처음 백허그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쳤다. (사실은 어이없어서 요동치는 것이었음.) 전원우를 밀어내려고 살짝 고개를 들어 전원우를 올려다보자 꽤 진지하게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모습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학기초에는 이석민한테도 쫄았던 쭈구리였는걸. 한뻔 쭈구리는 영원한 쭈구리인가.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이석민은 또다시 '큭.' 웃음을 흘렸다. 또다, 새로운 악몽의 시작. 이석민은 쿨워터향도 부족한 북극워터향을 풍기는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당겼다. 전원우도 질세라 날 더 끌어안았고. "나도 못넘겨. 김여주는." 나도 너네한테 안가. 내 의사 존중좀.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날 싸우고 있는 둘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얼떨떨하게 서있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귀선생님 어디 계세요..? 간절한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자 심각한 표정의 승관이가 내게 달려왔다. "너희 뭐하는 짓이야!" ..역시 제일 정상인 승관이. 감동을 촉촉히 담은 눈으로 승관이를 보자 승관이가 남은 내 한쪽팔을 잡았다. 이게 뭐하자는 플레이. 나 죄지었나. 이게 무슨 능지처참당하기 바로직전 죄수의 꼴이람. "나도 김여주 좋아해!" "뭐?!" 놀란 둘의 눈빛. "30분 전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다!" 눈물나게 고마워. 좋아해줘서.. 남자복이 터졌다. 이게 무슨 팔자에도 없는 사각관계에 역하렘이람. "김여주." 셋은 날 불렀다. 그에 어색하게 '응?' 대답하자 이석민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선택해." "뭐를..?" "나야, 전원우야." "난 왜 빼." 부승관의 상기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앗, 미안." 예의가 바르군. "괜찮아." ..성격이 좋네. "다시 물을게. 나야, 전원우야, 부승관이야." 내 팔을 잡고 있는 둘의 눈빛은 잔뜩 고조되어 있었다. 내 정수리가 따끔거리는 걸 보아 전원우도 잠자코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를 어쩐다. 어느덧 각별해진 셋 사이에 내가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소녀만화주인공같은 생각이라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들의 우정을 나때문에 깰 수는 없었다. "..나 너네 다 안좋아해." "..그럼?" 대충 아무나 둘러댔다. 아, 그 우리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김민규라면 인기가 제일 많으니까 이석민을 납득 시킬수도. "나 기, 김민규 좋아해..!" 내말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길가면서 김밥을 먹다가 꼬다리의 햄을 떨군 사람같은 표정을 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정적을 깬 사람은 다름아닌 "뭐? 나?" 김민규.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는지 김민규는 손가락으로 자기자신을 가리키며 뭐?나?하고 재차 물었다. 한번도 말 안한 사이었는데 진짜 망했다. 이제 쪽팔려서 얼굴 어떻게 들고다녀. 나중에 김민규에게 해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김민규에게 눈치를 주려는데, "..뭐야. 쟤 표정 수상하지 않냐." 마치 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의 표정이었다. 볼이 발그레했다. "이 이야기에서 너까지 낄 필요는 없어." "맞아!" "..그래. 넌 가." 어느새 나는 뒤로 내평겨쳐져 넷이서 한바탕 하고 있었다. 꼭 털뭉치들이 뭉쳐있는 것 같았다. 아, 인생 존X 꼬였다. 스크류바인줄. 귀여니의 후예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