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후 찾아오는 월요일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주말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득한 만원버스에 올라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찍 나가면 되지 않냐는 주위의 조언은 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나에게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을 시간을 아껴가면서까지 잠을 비축하며 간신히 학교에 도착하는 내게는 등교가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면 시간은 자그마치 3달전인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날 같았다면 평소처럼 늑장을 부리며 집을 나섰겠지만 하필 이번 주 주번이 되어버려 집을 일찍 나서야 했다. 학교 근처로 가는 버스는 많지만 내려서도 몇 분을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학교 바로 앞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평소보다 이른시간이어서인지 길에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었고 몇몇 가로등은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정경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해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버스 정류장이었고 가방에서 버스 카드를 꺼내자마자 버스가 도착했다. 왠지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 같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공허한 버스안을 가득 채우는 이 목소리만 없었다면 말이다.분명 저번에 잔액을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비를 충전하겠다고 가져왔던 돈으로 김태형이랑 신나게 나가 매점에서 빵을 사먹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미쳤지 내가.. 빨리 돈을 내라고 쳐다보는 듯한기사 아저씨의 눈빛에 작게 죄송하다 한 후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학생 두 명이요."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등 뒤에서 훅 하고 밀려 들어오는 낯선 향기에 돌리려던 고개를 다시 고정시켰다. 삑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팔 옆으로 뻗어졌던 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향기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숨 쉬는 것도 멈춰버린 채로 가만히 움직이지도 못하던 나는 "학생 얼른 들어가요" 하는기사 아저씨의 말에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길수 있었다.
'뭐지? 이 근처에 나랑 아는 애가 있던가?'
의구심을 가지고가방을 다시 메려는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띄엄띄엄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 교복을 입은 한 남자 아이가 보였다. 아 쟤구나, 나를 도와준 애가. 교복을 보니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남고인 것 같았다. 등교하면서 저런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나 오늘 주번이라서 일찍나왔지.
18년 인생 처음으로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호의를 받아본 나로서는이런 상황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턱을 괸 채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방해를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용기 내어 그 아이의 앞자리에 앉았다.그게 더 이상한걸 알지만 바로 옆에 앉기엔 너무 부담스러웠고 건너편에 앉기엔 너무 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얼른 하고 자리 옮겨야지. 난 잘 할 수 있어, 탄소야.
"..안녕?"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센 후, 홱 하고 몸을 돌리자 저를 향한 시선이 느껴진건지 그제서야 의아한 눈으로 저를 쳐다본다. 언뜻 본 명찰은 저와 같은색이었고 그 위엔 "민윤기" 라는 석자가 정갈하게 새겨져 있었다. 민윤기, 저도 모르게 입에서 감도는 그 이름을 내뱉자 제 입 모양을 읽은건지 민윤기가 한 쪽 이어폰을 빼내었다. 또래 남자애들 치고 하얀 피부에 한 번, 제 생각을 읽어버릴 듯한 짙은 갈색 눈동자에 두 번,
"할 말 있어?"
"..어? 어, 그게, 있지."
외모랑은 다르게 생각보다 낮지만 기분 좋은 목소리에 세 번. 생각치 못한 삼연타에 어안이 벙벙해지는데 한 쪽 이어폰을 뺀 채 저를 쳐다보는 그 눈빛에 도저히 입에서 맴도는 그 말들을 뱉을 수가 없었다. 고맙다고 해야하는데..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내 표정을 읽은건지 민윤기는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아까와 같이 팔을 한 쪽을 뻗어 내 머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뭐지 내가 또 뭐 잘못 했나.
"이럴 땐"
".."
"고맙다고 하는거야."
이내 제 귓가에는 아까와는 또 다른 삑- 하고 하차를 알리는 기계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뻗은 팔을 거두어들인 민윤기는 유유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제 앞을 지나가 출구 앞에 서있었다. 멍하니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제 모습이 우스웠던 건지 민윤기는다시 한 번 살며시 웃더니 한 마디를 나직이 내뱉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다시금 문이 닫히고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점점 작게 보이는 민윤기의 동그란 뒤통수와는 달리 머릿속에서는 흘리듯 남기고 간 민윤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다음에 보자, 김탄소."
자꾸만 그 아이의 뒷모습이 밟혔다.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다.
처음 맞는 봄 上
w. 진심을 담아
버스에서 내린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민윤기를 한번 더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동그란 뒤통수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는 것뿐. 차를 탈 때 느껴지는 멀미처럼 마음 한 켠에서 일렁이는 감정이 낯설어 하루 종일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 시간만, 한 시간만 하던게 점심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친구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이지 않아서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며 나를 달래주었지만 주번을 핑계로 야자까지 빠져가며 잠을 자다 온데다가 아침에 먹은 것도 없어서 체할 일도없었는데 자꾸만 속이 뭉근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도전에 총알같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니 더 복잡해지는 듯한 마음에 소화제라도 마셔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 머리 위로 누군가의온기가 느껴졌다. 분명 지금 교실은 다 비었을 테고, 김태형은 이런 살가운 짓을 해 올만큼의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탄소야,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제 짝꿍인 박지민이다. 지민이와는중학교에 들어와서 김태형을 통해 만나게 된 사이였다. 김태형을 통해서 만나서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래 전부터 만났던 사이였던 것처럼 급속도로 친해져서 중학교 3년 내내 붙여 다녔었다. 하도 붙어 다녀서 우리 중 하나를 찾으려면 나머지 둘을 찾는 게 더 빠르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아니, 딱히 별 일 없어..”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손사래를 쳐봤지만 제 반응이 영 평소보다 힘이 없어 보이는지 이내 제 쪽으로 의자를 돌리며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어온다.
"근데 왜 이렇게 축 처져있어. 어디 아파?”
“..”
“미열이 조금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긴 무슨. 하도 건강해서 유치원 때부터 쭉 개근상을 타온 나를 봐온 김태형이 들으면 특유의 못생긴 표정을 지으며 비웃을 소리다. 지민아 그거 그냥 엎드려 있어서 그런거야..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차마 연신 제 이마를 번갈아 짚어가며 걱정하는 지민이에게 그런 말을 할수가 없었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나는 결국 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지민이에게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어 애써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냥 힘이 없어서.”
“오늘 주번이라아침부터 고생해서 그런가.”
한번도 아프다는 말을 한적이 없어서인지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지민이에게 미안해졌다. 엉엉, 지민아 미안해. 거짓말을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렇게 지민이가 한참을 이마를 짚어가며 없는 열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란 나와 지민이는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뛰어온 건지 땀을 흘리며 제 교실인 것마냥 자연스레 들어오는 김태형이보였다. 문 좀 살살 열라고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다.
"박지민, 김탄소! 밥 먹으러 가자."
“탄소 아프대.”
“아프다고?”
쟤가 아플리가. 제 상태를 대신 전해주는 지민이의 말을 듣던김태형은 이내 의아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 니가 생각해도 이상하겠지.내가 생각해도 이상한데, 어릴 때부터 쭉 봐온 너라고 안 이상할리가.제가 생각해도 어이 없는 변명이라고 생각할 때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이내 제 시야에 들어온 김태형은 제 앞자리에 있는 의자에 살짝 걸터앉더니 이내 저를 유심히 쳐다보기시작한다.
“김탄소, 많이 아프냐?”
“조금.”
“밥도 못먹을정도로?”
그정도로 아픈건 아니었지만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내 다시 엎드렸다. 아니 정확히는 엎드리려고 했다. 저의 팔을 잡아오는 김태형의 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숙이려던 고개를 다시 들며 김태형을 쳐다보자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쯤이면 포기할만도 한데 어째 제 입에서 내려간다는 말이 나오기전까지는 움직이지도 않을 기세다.
“아프다는애한테 왜 그래, 그냥쉬게 놔둬.”
“흐음.”
“그만 괴롭히고얼른 가자.”
“그래, 오늘은 둘이서 맛있게 먹고 와.”
얘를 어떻게 떼어내나 고민을 하던그 때, 제 편을 들어주는구세주 같은 지민이의 말에 자연스레 섞여 둘이라는 말에 은근히 강조를 두며 보낸 후 고개를 돌리려던 그 때,
"오늘 미트볼 나오는데?"
미트볼 얘기가나오자 저도 모르게 일순간 흠칫하고 동작이 굳었다. 그런 제 모습을 놓칠리가 없던 김태형은 이내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아 자존심 상해, 김태형은 분명히 내가 미트볼을 좋아하는걸 아니까 노리고 말한게 분명했다.진짜 도움 안 되는 새끼. 가까이에 있던 저에게까지 들린 김태형의 비웃음도 비웃음이었지만,거짓말을 하면서도 미트볼을 포기 하지 못한 제 자신이 미웠다. 아 거의 다 왔는데 진짜, 김탄소. 미트볼이라는 고비를 넘기지를 못하고..
고개를 다시금파묻으며 꿍얼거리는 제가 웃겼던건지 김태형은 아까보다 크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제 머리를 헝클여왔다. 제 머리 만지는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잘 알면서 헝클여오는 김태형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아 김태형, 지금 뭐하는..!”
고개를 돌리자 예상했다는 듯 저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는 김태형과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지민이가 보였다. 아, 나 또 낚였구나.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제 얼굴을 보고 빵 터진 김태형은 다시금 웃음을 흘리다 이내 제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가자, 지민아.”
“아픈 애를데리고 어딜가.”
“맞아, 나 누워있을..”
“아플 땐밥을 먹어야 하는거야, 밥탱아.”
“...”
“그러니까얌전히 오빠만 따라와라, 밥 거르면 몸에 더 안 좋아.”
알았나, 가스나야.
투박하지만조심스레 저와 지민이를 끌고 가는 태형이의 손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김태형을 내가 어떻게 이겨. 하지만 여전히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와 서로 마주한 손은 자꾸만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김탄소”
“어엉?”
“어엉이 뭐냐, 가시나가.”
“야,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들인다는 말도 모르냐?”
양 볼 한가득 미트볼을 밀어넣은 채 밥을 먹고 있어서인지 발음이 뭉개지는 제 모습이 웃겼던 모양인지 김태형은 이제 아예 대놓고 팔을 괴며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탄소, 너 미트볼 안 먹으러 왔으면 어쩔뻔 했냐?”
“몰라.”
“안 먹겠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런 사람없어요.”
까칠하긴. 괴고 있던 팔을 내려 미트볼을 집는 태형의표정은 정 없는 말투라며 구박하는 어조와는 달리 밝아보였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던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반대로 김태형이 쳐져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저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중재를 하며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는듯한 박지민도 이내 평소와 비슷한 말투와 분위기로 돌아온 기운에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깨작거리던 젓가락 질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난스레 밥을 먹는 두 거지들을 보니 어쩐지 아까보다 속이 나아진 것 같,
“그래서,”
나아진 것같다는 기분이
“아까 왜그랬냐.”
들 뻔 했다.
“혹시 그날?”
김태형 이새끼가 진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남자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을 거치며 달려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걸쳐 앉았다. 나뭇잎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만들어 놓은 선선한그늘 아래 앉아 있으니 더위가 조금은 사그라 드는 기분이다. 차갑다 못해 살짝 저릿한 느낌이 드는 손을 펼치니어느새 살짝 녹아내린 빠삐코로 인해 축축한 물기가 묻어났다. 아무렇지 않게 축축하게 젖은 손을 김태형의 와이셔츠에 닦아내며 쭉 눌러내니 달달한 초코향이 밀려온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워서 머리가 띵 해지는 것도 같았지만 맛있으니까 됐지, 뭐.
“그래서 결론이뭔데.”
“엉?”
“다 먹고말해라, 이 가시나야.드럽게 진짜.”
믁그 있는드 느그 믈 그릇즈느.
뭐라고?
먹고 있는데 니가 말 걸었잖아, 개새끼야!!!
입 안에 아이스크림을 머금기가 무섭게 말을 걸어오는 김태형의 거지 같은 타이밍에 모두 같이 박수, 짝짝짝. 그리고 김태형의 등짝도 짝짝짝. 옛날에는 저보다 작아서 때리기도 미안했는데 이제는 키하고 덩치만 커져서 제일 때리기가 만만해졌다. 어휴, 우리 태형이 누나 손길이 그리웠구나. 그럼 진작말하지.
아 시발, 왜 때리는데!
내가 누누히말했지, 밥 먹을 땐개도 안 건드린다고.
아 그럼 빨리 말해주던가.
뭘 또 말해줘
뭐해줄거냐고, 고맙다고 말할거라며.”
아, 맞다. 이런 제 반응을 예상했다는듯 영구 박 터지는 소리를 내는 제게 김태형은 아프지 않게 꿀밤을 먹였다. 하여튼 니 기억력 알아줘야 해. 딱히 김태형에게 들을 말은 아니었지만 제 손에 쥐어진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 여기에 온 이유를 잊어버린 제가 지금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아직 달콤한 향이 감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걸 바로 꿀 먹은 벙어리라고 하는건가.
그러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왜 여기 왔는지부터설명을 해보자면 아까 밥을 먹던 급식소로 돌아가게 된다. 미트볼의 은총으로 분위기는 다시 평소와 다를 바없는 화기애애하게 돌아가는 급행열차에 탑승했다. 그런데 그런 핸들을 꺾어 유턴을 해버린 김태형으로 인해 열차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아침버스와 함께 부딪혔고 이내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은 나는 화장실로 곧장 뛰어갔다. 그런 내 모습에 더 사색이 된 김태형과 박지민은 우왕좌왕 거리며 대충 뒤처리를 한 후 이내 내 뒤를 밟았다.
“야, 김탄소. 너 왜 그래. 진짜 심하게 아픈거냐?”
“아 그러게, 김태형 내가 탄소 두고 오자고 했잖아!”
“그야 밥먹으면 다 나을 줄 알았지!!”
시발새끼들아, 입 좀 다물어라..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붙잡으며 낮게 경고를 읊조리자 그제서야 조용해진 두 사람은 한참을 화장실 앞에서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댔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기에 망정이었지 여자 화장실까지 뛰쳐 들어오려는 두 사람을 막느라 내가 개가 될 뻔 했다. 아니, 아무튼 이게 문제가 아니고.
겨우 화장실에서기어 나온 나를 안절부절 못하며 반기는 것은 박지민이었다. 김태형은. 하고 작게 물으니 매점에 갔단다. 또 가서 매점을 털어올 생각을 하니 이젠 머리도 같이 울릴 지경이었지만 말을 덧붙일수록 피곤해질건 결국 나일걸 알기에 그냥 순순히 지민이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 거리며 한아름 무언가를 안아 들고 온 김태형에게 받아들은 포도맛 웰치스를 크게 들이키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버스비가 없었단 말이야?”
“응.”
한동안 말이없던 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옆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듯 초조하게 앉아 있던 네 개의 눈동자가 내 얼굴에 꽂혔다.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침부터 떠오르는 그 얼굴의 잔상이 더 강렬해서 이내 하던 말을 이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누가 나 대신 돈을 내줬는데.”
“응.”
“누군지 몰라.”
“..으응?”
“누군지 모르겠다고.”
근데 그 사람이자꾸 생각나는데 그럴 때마다 속이 울렁거려.
차마 마지막 문장은 내뱉지 못한 채 제 손에 축축하게 잡히는 웰치스 캔을 들어 한 입에 털어넣어 버렸다. 톡톡 튀는 탄산이 입 안 가득 머무르다 삼켜졌지만 어쩐지 답답한 속은 터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말해보라고 해서 막상 꺼내놓긴 했는데 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던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숙인 채 힐끔힐끔 김태형과 박지민 눈치만 봤다. 뭐라고 해야.. 아!
“아 왜 때려!”
한참을 숙이고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어서인지 뒷목이 약간 뻐근했지만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김태형의 손은 이미 내 이마를 가볍게 밀쳐낸 후였다. 이 샛기가 진짜..? 이마와 목을 동시에 짚고 째려보는 내가 한심했던건지 아니면 방금 제가 들은 말이 어이가 없었던건지, 김태형의 표정은 꽤나 과관이었다.
“너 진짜 바보지.”
“아 또 왜멀쩡한 사람 바보 취급인데.”
“니가 바보같은 짓만 하니까 그렇지, 이 밥탱아.”
“내가 왜뭘!”
한심한 표정으로보는 것도 모자라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이젠 밥탱이란다. 아니 이 새끼가 진짜 오늘 나랑 싸우자는건가? 생각할수록 짜증이 밀려왔지만김태형 어깨 너머로 보이는 지민이의 얼굴을 보며 참기로 했다. 김태형, 넌 지민이한테 평생 감사하며 살아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김태형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생각을 해봐라, 같은 버스 탔다며.”
“엉.”
“게다가 우리학교 옆에 있는 남고 다닌다며.”
“엉.”
“그럼 내일 또 그 시간에 버스타면 만나겠지, 밥탱아.”
“내일 또볼거라는 보장이 어딨는데.”
“니가 평소에 타던 시간에 없었다며, 그럼 맨날 그 시간에 탄다는 얘기겠지.”
아, 헐. 완전 신빙성 있잖아? 여태 짓고 있던 경계심 많던 표정은 지워버린 채 영구박 터지는 소리를내며 감탄사를 자아해 내는 내 모습이 웃겼던건지 박지민은 이내 참고 있던 웃음을 작게 터트렸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던 김태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지어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조금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낑낑대던 고민을 풀어준 장본인들이니 내가 보살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겨우 그거 때문에 하루종일 그러고 있었던거냐?”
“어?”
“겨우 그거 때문에 하루종일 축 처져 있었던거냐고.”
“아니, 뭐 딱히 그런건 아닌데.”
“그럼 됐어.”
“엉?”
“그럼 됐다고.”
야 이제 해결됐으니까, 수업이나 들으러가자.
그동안 고민했던것들을 단순하고 간단명료하게 해결 지은 김태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뜩 헝클여놓더니 이내 매점에서 이것저것 담아온 검은 봉지를 들고는 유유히 일어나 자리를 떴다. 머리 쓰다듬는거 싫다니까 진짜, 인상을 팍 쓰며 김태형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박지민이 어깨동무를 해온다. 갑자기 쏠리는 중심에 휘청이는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박지민은 이내 내 얼굴을 마주하더니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탄소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꼭 우리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우울해있으니까 우리 둘도 같이 쳐지잖아.
알겠지? 약속한거다?
딱히 우울한건아니었는데, 라고 덧붙이려다가 더 설명을 하면 귀찮아지겠다는 생각과 함께 금방이라도 저를 바라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 것만 같은 박지민의 미소가 너무 화사해서 자연스레 입을 다물었다.알겠어. 하고 작게 내뱉자 박지민은 그제서야 만족한건지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실으며 김태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늘에는 햇살이 작열하고 학고에는 어느덧 수업 시작이 십 분전임을 알리는 예비 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인상을 찌푸렸을 그 시간이 오늘은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김태형과 박지민의 미소는 머리 맡에서 빛나는 햇빛보다도 눈부셨다.
한참을 머리를굴리다 생각해 낸 방법은 그 아이의 가방 주머니 속에 몰래 막대사탕을 넣어두기로 한 것이었다. 민윤기가 언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찾게 된다고 한들 제가 줬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조금씩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딸기 우유맛사탕?”
“응.”
“아니 그많고 많은 맛들 중에 왜 그거야.”
맛있잖아.
이걸 진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까. 남자애들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김태형과 박지민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에게 사주는 거냐며 설레발을 치길래 됐다며 자리를 박차고일어났다. 그나마 주위에 있는 남자취급을 해줘도 이 모양이다. 딸기우유는 무슨 딸기 우유야, 하여튼 골라도 지들 같은 것만 골라요.
“야, 김탄소!! 알겠지? 딸기 우유맛이다!! 스트로베리 밀크!!”
어디서 개가 짖나, 왜 이리 시끄러워.
그래서 니 손에 있는건 뭐냐?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김태형!!
제 뒤에서딸기 우유맛 사탕을 줄기차게 외쳐대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세뇌된 것인지 마음대로 사오겠다는 패기 넘치는 다짐과는 다르게 제 손에 들린 사탕은 우습게도 딸기 우유맛 사탕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헤집고 도착한 매점에서 줄기차게 기다리다가 막상 계산대 앞에 서니까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딸기 우유에 본능적으로 짚은 탓이었다. 진짜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우리 탄소, 우리 오빠 말이 그렇게 신경 쓰였구나? 그냥 말을.. 악! 어딜 차!!"
조용히 해라, 진짜.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라고 했거늘, 아까부터 계속 깐족거리는 김태형의 정강이를 차주니 이젠 아프다고 난리다. 저놈의 입을 진짜 어떻게 하면 좋지? 절로 지끈거리는 머리에 바닥을 구르며 난리를 치는 김태형을 두고 뒤를 돌려는데,
“건투를 빈다!!”
누구 싸우러가냐 미친놈아..? 괜히옆에 위치한 학생과 학주가 들을까 조심스레 막대사탕을 손가락 가운데에 끼워 김태형에게 치켜세우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내가 저 새끼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지. 탈모 오면 김태형한테 청구한다 진짜.머리가 헝클어지는게 싫어 평소에 머리에 손도 못 대게 하는 내가 머리를 헤집고 있으니 걱정이 된 듯 옆에 있던 지민이가 어깨동무를 하며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탄소야, 무시해. 쟤 저러는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뭐.”
그러니까 떨지말고 잘 전해주고 와, 알겠지? 누구랑은 다르게 해사한 미소를 보이며 내가 헝클여놓은 머리를 정리해주더니 어깨를 가볍게두드려주었다.
힝, 지민아. 역시 너 밖에 없어.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나는 의도치 않게 민윤기의 마니또를 자처하게 되었다. 계획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첫번째,민윤기가 매번 앉는 지정석의 뒷자리에 앉는다. 두번째, 민윤기의 가방 옆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사탕을 집어넣는다.
“뭐야, 생각보다 간단하잖아?”
어떻게 하면 민윤기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대신 전해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던 시간과 달리 꽤나 명쾌하고 마음에 드는 답안이 나왔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가져온 필통 속 샤프가 무색할 만큼 간결하게 에이포 용지를 채운 단 두 줄에 나는 절로 코웃음을 쳤다.
“하, 내가 이걸 못하면 김태형한테 절을 한다,절을 해.”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들은 수월하게 풀릴거라고생각했었다.
“이제 자야지.”
딱 이 때까지만해도 말이다.
“…”
“…"
저 버스기사아저씨, 혹시 방금 지나온단지는 이 버스에서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야 잘 누웠다고 소문이 날까요? 제가 아무래도 김태형에게 절을 해야할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으며 나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늘 나가던 시간에 맞춰 호기롭게 버스를 탄 후 자연스럽게 그의 뒷 자석에 앉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첫번째 계획을 성공했다며좋아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사탕을 넣으려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손을 뻗으려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지퍼가 아니라 그냥 넣으면 된다는 것이었는데 눈조차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탕을 넣는 일이 쉬울리가 없었다. 미쳤지, 김탄소. 그러게 무슨 사탕이야, 사탕은.. 사탕 사탕 누가 말했나,사랑꾼 김탄소가 말했지..
사람들이 많으면 조금 소란스럽고 혼잡한 틈을 타서 자연스럽게 넣을 틈이라도 생길텐데 아침 일찍 출발을 해서인지 들리는 소리라고는 이번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녹음된여자 목소리와 간간히 흘러나오는 아침 라디오,그리고 가열차게 돌아가는 엔진 소리뿐만이 가득했다. 어떡하지만 정확히39번정도 되뇌였을 때,
“이번 정거장은시계탑, 시계탑 입니다.내리시는 승객분께서는..”
야속한 정거장을 알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망했다, 이번 정거장만 지나면 민윤기가 내리는 정거장인데 내 손에는 사탕이 아직 그대로 들려 있었고 민윤기의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진짜 어떡하지, 아부지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엉엉.
“이번 정류장은 세현 고등학교..”
그런데 답을 알려달라는 아버지는 회사를 가고 없으시고 내게 남은 건 이제 곧 녹아내릴 듯한, 아니 어쩌면 녹다 못해 포장지에 달라붙어 버렸을 막대사탕 뿐이었다. 그래, 인생 도 아니면 모라고 한번에 끝내자.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나는 살며시 (버스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옆에서 누군가가 봤다면 절도범이라며 잡혀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민윤기의 주머니를 왼손으로 살짝 벌려 그 안에 가볍게 사탕을 넣었다.그동안의 망설임이 무색할 만큼 깔끔한 성공이었다.
삐익-
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사탕을 넣자마자 소름돋게도 민윤기는 하차를 알리는 버튼을 눌렀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는 문 쪽으로 향했다.휴, 다행이다. 김탄소, 너 18년 인생 동안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오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 물론 김태형을 만난 것부터가 실패이긴 하지만 민윤기를 만났으니까 괜찮다.
평소에는 사람에치여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었지만 민윤기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일찍 타고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사람들에 밀려 내리는게 아니라 정류장을 확인하며 내리게 되었다. 민윤기가 내리고 나면 늘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기 때문에 나는 서서히 가까워져 보이는 민윤기 학교에 메고 있던 가방을 다시 메고는 앞자리로 이동했다.
정확히는 이동하고있었다. 하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던 버스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급 브레이크를 밟았고 이에 대응하지 못한 내 몸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렸다. 아, 사탕을 넘겼더니 이젠 다른 게 문제구나. 여기서넘어지면 엄청 다치겠지, 병원비 엄청 나가겠지..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어떠한 대처를 해야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기는듯한 기분을 받으며 속수무책으로 앞으로 끌려갔다. 아 부딪히면 엄청 아프겠..
폭-
“..어?”
원래 넘어질때 이렇게 안 아팠던가? 크게 넘어지다 못해 구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폭신한 감촉에 한번, 생각보다까만 시야에 두 번,
“조심해야지.”
예상치 못한 민윤기의 등장에 세 번 놀랐다. 그, 그러니까 이게 무, 무슨 아니 이게 뭐,뭐야. 뭔데, 뭔데 이거?! 급정거와 함께 정신머리는 날려버린건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보니 제 팔은 민윤기의 손에 단단히 잡혀있었고 나는의도치 않게 민윤기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 당긴 힘이 버스가 아니라 민윤기였다..이겁니까 지금..?
푸흡-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서있는 내 표정이 우스웠던건지 아니면 매번 제 뒤에 앉던 애가 추한 꼴을 보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윤기는 작게 웃음을 내뱉었고 이내 나를 처음 봤던 그 앞자리에 앉혀주며 말했다.
“이럴 땐,”
“..”
“고맙다고하는거야.”
“..”
“세번째에는기억할 수 있지?”
내일 또 보자.
저를 보며 가볍게 인사한 민윤기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가벼운 바람소리와 함께 열리는 버스 문을 통해 내리고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떴다. 다시금 문이 닫히고 바람이 제가 있는 곳까지 불어와 다리를 간지럽혔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멈출 때까지도 나는 민윤기가 앉혀 놓은 자세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질 못했다. 열린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인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따스했다. 봄인 것 같았다.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진심을 담아 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는 조금 되었는데 이렇게 글잡에서 선보이는 글은 처음 써봐서 긴장도 많이 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 것 같아요. 어느정도 써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열심히 써보긴 했는데 마음에 드시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만나 뵙게 될 날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는 더 예쁜 윤기와 함께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제가 처음이라 복붙 과정 중에 실수가 생겼습니다ㅜㅜ 삭제를 하지 않고 수정을 하다보니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 전에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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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응사 칠봉이파가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