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거 누구야?"
"야 대박 대박. ㅇㅇㅇ. 너네 오빠 아니야?"
응...? 강의가 끝나고 여느 때처럼 친구들이랑 함께 캠퍼스를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휘휘 돌리는데 나보다 먼저 소란의 이유를 발견한 정수정이 나를 쿡쿡 찔렀다. 야 저거 희수 오빠 아님? 응? 구희수요? 저기 저 삐까뻔쩍한 차 옆에 수트 빼입고 서 있는 사람이 우리 집 대표 찌질이 구희수라고요? 눈을 다시 슥슥 비벼봐도 여전히 내 앞에 서 있는 건 답답하게시리 위 아래로 블랙 수트를 쫙 빼 입은 훤칠한 기럭지의 남정네 한 명일 뿐.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집구석에 박혀서 티셔츠에 팬티 한 장 입고 TV로 새끈한 여자 아이돌 무대 보고 킬킬 웃는 구희수가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려는데 정수정이 다시 내 팔을 잡아 끈다.
"야. 우리 쪽으로 오는데? 희수 오빠 맞네!"
"뭐야. 어떻게 알아?"
"이년아. 나 고딩때 저 오빠 좋아했었잖아."
아 맞다. 그러고보니, 나랑 정수정이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구희수가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우리 집에 왔던 정수정이 오빠랑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 오빠. 여기 내 친구 수정이."
"아...안녕하세요."
"수정이? 이름 되게 예쁘다."
정수정은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우리 집으로 하교를 하기 시작했다. 야 우리 집이 니네 독서실이냐. 하며 짜증을 내던 변백현마저 눈빛으로 제압해버린 우리의 정일찐 님은 유독 희수 오빠 앞에서만 소녀감성 충만한 핑크빛으로 양볼을 물들인 채 우물쭈물대곤 했었다.
"야. 너 희수 오빠 좋아하냐?"
"어!? 무, 무슨 소리야! 내가 그, 그 오빠를 왜 좋아하냐! 어?"
"아님 말고. 맞으면 도와주려고 했지."
슬쩍 던진 미끼에, 금방 입질이 왔다. 정말? 진짜 도와줄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희수 오빠는 웃을 때 살짝 바보 같은 게 매력이라느니, 그 날카로운 턱선에 베여버리고 싶다느니 조잘조잘 털어놓던 정수정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비밀리에 진행되던 '구희수 꼬시기 프로젝트'는 희수 오빠가 집에 완벽한 에스라인을 소유한 여자친구를 데려오면서 불과 일주일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었다. 결국 에스라인녀에 굴복하고 만 우리 불쌍한 수정이. 내가 나중에 오빠 팬티 입은 거나 한 장 찍어서 보내줄게, 했던 기억이 어슴프레 날 무렵.
"ㅇㅇ아. 가자."
시, 시발. 방금 구희수가 저를 성까지 떼서 버리고 ㅇㅇ아, 라고 부른 게 맞나요? 온 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어. 수정이랑 같이 있었네?"
"아, 안녕하세요 오빠."
"수정이 되게 예뻐졌네."
"이제 안 통하거든요 오빠?"
팩 쏘아붙이는 정수정의 말에 아 드디어 정일진과 구일진의 포스 배틀을 볼 수 있는 건가? 기대감에 차 있는데, 이내 호탕하게 웃는 구희수. 아니, 시발. 이...이 사람 왜 이래요? 어디서 자상한 척이세요? 새 옷을 입더니 아주 새 사람이 되버린 건가? 어디 떠돌아다니던 영혼이 진짜 구희수를 납치해놓고 몸 속으로 들어간 거 아닐까? 경계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구희수를 바라보고 있자, 이내 가자며 손목을 잡아 끈다. 어, 어딜 가!
"오늘 엄마 생신 선물 사러 가기로 했잖아. 까먹었냐?"
"아, 헐!!"
그제서야 어젯 밤,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생신 파티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담당을 나누던 것이 떠올랐다. 아, 샹. 맞다 내가 구희수랑 같이 선물 담당이었지. 나년 도대체 왜 까먹은 거지? 아, 난 죽었다. 하, 하하. 정수정. 나 먼저 간다! 거의 연행되듯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구희수의 얼굴이 싹 바꼈다. 아, 존나 기다리게 하네. 일찍 일찍 안 나오냐? 그래. 이 까칠한 구희수 어디 갔나 했다!!! 여기 그대로 있었구만. 풋풋한 스물 한 살 여대생들 앞이라서 존나 이미지 관리 하고 있었던 거구만. 내 이럴 줄 알았어. 속으로 혀를 쯧즛 차며 오빠를 쳐다봤다. 오늘 출근 안 한댔는데 수트 빼입고 온 거 하며, 멀쩡한 지 차 내버려두고 아빠 차 끌고 온 것 까지 참 가지가지 하세요. 아놔.
"아빠 차는 대체 왜 끌고 옴?"
"풋풋한 이쁜이들 좀 꼬시려고 왔는데, 너같은 애들밖에 없냐 왜."
"늙은 주제에 밝히지 좀 말아줄래?"
백화점에 도착해서야 우리의 투닥거림은 멈췄다. 일단 엄마 생신선물 고를 때까지만 휴전...일 줄 알았던 내가 병신이지. 쥬얼리샵에 도착해서도 이게 낫네, 저게 낫네 싸우는 통에 도저히 결론을 못 내고 있을 때 쯤이었다.
"어, ㅇㅇㅇ?"
누구야, 시발. 감히 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우리의 전쟁을 방해하다니! 샹! 최대한 짜증스런 얼굴로 고개를 돌렸는데, 오...마이.
"ㅇㅇㅇ 맞네! 야, 반갑다. 잘 지냈어?"
그러니까, 시발. 지금 환하게 웃으며 왼쪽 팔에 여자를 끼고 내게 감히 아는 체 한 이 새끼로 말하자면, 아주 개새끼다. 그것도 굉장히 무지막지한. 아무리 내 연애에 대한 간섭이 심했던 오빠들이었지만, 미꾸라지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몰래 내 살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옆 남고에 다니던 이 덩치만 큰 개새끼가 얻어 걸렸었다. 반반한 얼굴에 훤칠한 기럭지. 게다가 이 개새끼는 아주 전략적으로 나에게 은근한 관심을 표현했었다. '옆 남고 훈남 오빠가 너 소개시켜달래.' 라는 류의 말들이 간간이 들려왔고, 당시 뼛속까지 순수했던 나는 그 말에 훌러덩 넘어가 덥썩! 하고 개새끼의 덫에 걸려 버렸다. 한 달 간은 좋았다. 알콩달콩한 데이트도 하고, 가끔 같이 하교도 하고, 오빠들 눈을 피해다니는 게 오히려 좀 더 스릴 있었달까. 그런데, 문제는 정확히 우리가 100일째 되던 날 발생했다. 친구들과 선약이 있다며 미안하다기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쓸쓸히 100일을 보내게 된 나는 저녁 무렵 정수정의 분노에 찬 전화를 받았다. 시발, 니 남친 지금 노래방에 여자 끼고 있다. 핀트가 툭 하고 끊어진 나는 당장 정수정과 함께 그 노래방으로 향했고, 현장 급습 후 개새끼의 정강이를 아주 쎄에게 걷어차는 것으로 내 첫 사랑에 종지부를 찍었었다.
밖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기분 더럽게 끝나버린 첫사랑이 꽤나 씁쓸해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울었더랬다. 열 두명의 남자들과 함께 커서 그런지 유난히 자존심이 쎄던 나라서, 오빠들에게도 아무 말 없이 방에서 혼자 울고 있었는데, 마침 과일을 갖다주러 들어온 구희수가 딱! 그 장면을 목격해버린 거였다. 뭐야, 너 우냐? 며 당황스러워하던 구희수에게 결국 모든 걸 털어놨었고, 아무래도 이 얘기를 루한 오빠나 민석 오빠에게 했다가는 나는 물론 그 개새끼의 목숨이 진심으로 위험해질 거라는 판단 하에 우리 둘 만의 비밀로 가져가기로 했었더랬지. 그런데, 하필 오늘, 하필 여기서, 하필 구희수랑 같이 그 구남친과 구남친의 현여친을 아주 쌍으로 마주쳐버린 거였다. 그러니까, 아주 제대로 시발이다, 시발.
"어...하, 하하. 잘 지냈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가며 웃었지만 한 번 구겨진 마음은 다시 펴질 생각이 없었다. 느물대며 웃고 있는 개새끼의 얼굴도 짜증 났고, 그 옆에서 껌딱지마냥 팔에 달라붙어 있는 현여친도 짜증 났고. 그 자리에 계속 있어봤자 괜히 기분만 나빠질 것 같아, 오빠를 끌고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역시나. 나를 그냥 보내 줄 인간이 아니지. 개새끼가 선제빵을 날렸다.
"옆에는 애인? 와, ㅇㅇ이 능력 많이 좋아졌네?"
시이발. 니 새끼가 지금 나한테 할 소리가 그거 뿐이니? 노래방에서 정강이 대신 싸다구를 한 열 대 쯤 때렸다면 지금 이렇게 기분이 더럽진 않았을까. 비꼬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팍 상해 안 좋은 소리가 나가려는 찰나, 희수 오빠가 나보다 빨랐다.
"네. ㅇㅇ이 애인되는 사람인데요. 그 쪽은 누구시죠?"
아나, 이 사람아. 이런 드립을 칠거면 미리 눈치라도 좀 주면 좋잖아. 벙 쪄서 오빠를 쳐다보고만 있는데, 어느새 내 어깨에 둘러진 오빠의 팔 덕분에 우리는 아주 대놓고 우리 커플이에요~ 하는 포스를 폴폴 풍기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시부럴. 김종인이랑도 한 거 구희수랑 못 할 건 없지. 이를 악 물고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으로 개새끼를 쳐다봤다.
"오빠, 나 고등학교 때 친구야."
"아 그러세요? ㅇㅇ이 친구 분이시면 제가 그냥 보내드릴 수 없죠.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죠?"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눈치 백 단 구희수는 이미 제 눈 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를 파악한 이후였다. 미안해, 개새끼야. 이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까 100일 날 그렇게 뻔뻔스레 얼굴 들고 노래방을 가지 말았어야지. 지 잘생긴 걸 뻔히 아는 구희수가 짓는 영업용 미소를 쳐다보며 나는 속으로 개새끼의 명복을 빌었다. 얼떨결에 네 명이서 함께 백화점 정문으로 내려왔고, 지상 주차장에서 구희수가 차키를 꺼냈다. 멀리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쌍수 들고 우리를 환영하는 벤츠 한 대가 보였고, 구남친의 얼굴이 파직 구겨졌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아빠 차를 끌고 올 기특한 생각을 한 희수 오빠에게 속으로 뽀뽀를 날려줬다. 풋풋한 이쁜이들이야 내가 얼마든지 소개시켜줄게, 오빠.
"차 가지고 오셨어요?"
"아...저희는 집이 가까워서, 뭐."
"그러시면 같이 타고 가시죠."
구차한 변명에 여자의 미간에 빠직, 주름이 하나 생겼다. 니들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네요.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시발. 내가 그렇게 데리고 가달라고 노래를 불러도 절대 안 데리고 오더니. 하나뿐인 여동생 울던 게 어지간히 속상하긴 했구나 싶어 조용히 오빠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러자 귓가에 가까워진 숨소리! 저거 그 때 그 개새끼 맞냐?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알겠다며 레스토랑 문을 여는 오빠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씩 나왔지만, 나는 구남친과 그 현여친의 꽁냥질을 보면서 위장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앞에 놓인 양파스프만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구남친, 그러니까, 개새끼가 먼저 잽을 날렸다.
"ㅇㅇ이, 너 아직도 많이 먹는 건 여전하네? 고등학생 때도 남자인 나보다 많이 먹더니."
"그게 ㅇㅇ이 매력이죠. 먹을 때 얼마나 귀여운데. 근데 ㅇㅇ이 되게 잘 아는 척 하시네. 뭐, 예전에 사귀기라도 했어요?"
"아, 하하...네, 아. 잠시였죠. 청춘이었으니까...하하."
"아, 모토가 그런 건가봐요. 연애에 사랑은 없고, 그냥 엔조이?"
개새끼의 옆에 앉은 여자의 미간에 빠직, 주름이 하나 더 새겨졌다.
"아 그러면, 100일 날 다른 여자랑 바람났다는 개새끼가 그 쪽?"
"...예? 저기, 아니...그, 무슨 오해가..."
"옆에 여자 분. 몇 일이나 되셨어요? 100일 다가오면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 개자식아!"
하나 둘씩 여자의 미간에 새겨지던 주름이 한도를 초과했다 싶을 때 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여자가 가방으로 개새끼의 따귀를 한 대 후려치고는 레스토랑 밖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한 대 칠래? 희수 오빠의 말에, 강냉이 원 투 펀치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싸다구로 갈겨진 개새끼의 볼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게 안쓰러워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개새끼는 억울한 얼굴로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문 밖으로 나선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지영아!!!!! 그제서야 웃음이 비실비실 터져나왔다. 아놔, 진짜 웃겨 죽겠네. 표정 진짜. 16년 묵은 똥이 마침내 나온 것 마냥 속이 시원해졌다. 오빠랑 둘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쳐다보며 끅끅, 참던 웃음을 터뜨렸다.
푸핳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한 레스토랑 안에서 저마다 뭔가를 썰거나 포크로 찍던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이 우리에게 고정됐지만, 뭐 그런 것 쯤이야. 웨이터가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움찔거리며 다가와 우리를 불렀을 때에야 우리는 겨우 웃음을 멈췄다.
"근데 오빠"
"엉"
"...우리 엄마 선물 안 샀다"
결국 백화점 문 닫기 10분 전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골라 잡은 건 둘 만의 비밀.
♥~내 사랑들~♥
홍홍내가지금부터랩을한다 / 두비두바 / 향기 / 홍홍 / 하마 / 비타민 / 쟈나 / 똥백현 / 젤리 / 망고 / 니니 / 정은지 / 핑꾸색 / 홍차 / 펭귄 / 눈누난나
/ 태긔 /플랑크톤 회장 / 됴륵 / 호현 / 영찡 / 옌니 / 봄빛 / 비타오백 / 우럭아우럭 / 미역 / 루루 / 카스텔 / 둉글둉글 / 햄버거 / 라인 / 텐더/ 성탄절
/ 콩콩 / 미미 / 코코팜 / 펑키첸첸 / 짱구짱아 / 조무래기 /
[암호닉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혹시 빠졌으면 실수니까 말씀해주세요!]
★~쓸데없는 작가의 말~★
오늘은 뭔가..느낌이 좀..다른 듯한..뭔가 글이 좀 많고..짤이 좀 없는 듯한..그게..아마 기분탓일걸요^-^..?
사실 짤 있는게 모티에서 보기 힘들다는 말도 있고, 그러다보니 내용이 부족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서요ㅠㅠ 글을 좀 늘리고 짤을 좀 줄이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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