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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훈] 너를 듣고 下
![[EXO/세훈] 너를 듣고 下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b/a/9ba20265d815e643001fd0aba5443cac.jpg)
모두의 예상대로, 징어는 세훈이 만들어준 노래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다. 이미 훨씬 전에 솔로 활동이 끝났지만, 곧 있을 콘서트 준비에, 곧 나와야하는 소속사 신인가수 음반 프로듀싱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징어 덕에 두 사람은 매일 이동중에 전화만 하며 못 만난지도 2주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지는 벌써 네 계절을 돌아, 처음 만난 가을이 되었다.
아,
첫 1위를 했던 날, 징어는 대기실에서 징어의 무대를 보러 온 세훈에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했다. 데뷔 5년차, 곡도 써야하는데 이젠 연애 좀 하라며 연애를 권장하는 팬들에 힘입어 종종 sns를 통해 티를 냈지만, 왜 때문인지 고백을 안하는 세훈에 징어는 정말이지 딱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번주부터 1위 후보 올라가는거죠?
맞아요. 지금 완전 떨려.
에이. 다른 대기실에서 들으면 욕하겠네. 어깨에 힘 딱 줘요. 오세훈이 좋아하는 가순데 이렇게 주눅들면 쓰나.
세훈씨 안 잊어버렸죠? 나 1위하면 우리 말 놓기로 한거.
멋지게 일등하고 와요. 그럼 징어야 축하해, 해줄테니까.
1위를 예상하고 징어의 무대를 보러 함께 온 멤버들은 대기실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세훈을 보고 언니들이 눈치가 없었다며, 매니저들을 데리고 저마다 아는 동료들을 찾아 떠났고, 세훈과 징어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서로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딱 붙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징어씨, 대기할게요.
하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고, 맨 마지막 순서였던 징어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활동 2주차지만, 사정상 세훈이 처음으로 징어의 무대를 직접 보는 날이라 그런지 징어는 평소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긴 장 풀 고 잘 해 요
무대 아래서 입을 벙긋거리는 세훈에게 살풋 웃어준 뒤, 징어는 무대에서 그 어느날보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흘끗 바라본 무대 아래에는 세훈이 저를 사랑스럽다는듯이 쳐다보고 있어서 하필이면 타이밍을 놓칠뻔도 하였지만, 징어는 예감이 좋았다. 오늘, 일등하려나봐.
이번주 1위는요, 축하합니다, 오징어씨!
mc가 징어의 1위 사실을 알렸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멤버들은 꽃다발을 전해주러 달려왔으며, 징어는 수상소감을 위해 마이크를 전해받았다.
음, 우선 존경하는 부모님 감사드리고, 사장님이랑 회사식구들 감사하구요, 여기까지 이렇게 와 준 멤버 언니들 너무 감사하고, 팬분들 늘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야, 누구나 다 하는 1위 수상 고정 멘트가 아닌가.
그리고 좋은곡 써주신 작곡가 오세훈씨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랑 만날래요?
무대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보던 세훈의 놀란 표정을 징어는 똑똑히 봤다. 징어와 눈이 마주치고 아닌척 하던 세훈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 당황하고 있었다. 오늘 징어가 1위를 할거고, 마지막 존댓말을 하며 대기실에서 딱 고백하려고 했는데. 징어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대기실에 내려 온 징어는 오징어, 축하해, 하며 약속했던 바와 같이 징어를 맞았지만, 아까의 고백에 부끄러운 것인지 징어는 세훈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 원래 오늘 고백할려고 했는데, 내 눈 좀 봐봐, 징어야.
세훈에게서 듣는 반말이, 지금 이 순간 더 설레게 느껴지는 징어였다. 얼굴이 자꾸 빨개지는데 저를 쳐다보라고 재촉하는 세훈에, 게다가 오늘 고백하려고 했다니.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나 고민했지만, 곧 제 볼을 잡고 눈을 맞춰오는 세훈에, 온전히 그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해요. 처음엔 그냥 팬으로서 좋아했는데, 이젠 오징어씨가 여자로 좋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나랑 만날래요?
징어 말투를 따라하며 장난스럽게, 하지만 누구보다 진실하게 도로 징어에게 고백하는 세훈에, 두 사람은 만나기 시작했다.
급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여유가 좀 생긴 징어는 2주만에 세훈과의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그래봐야 어두운 한강 둔치에 운동을 핑계삼아 만나는것 뿐이었지만, 1년을 봐도 질리지 않는 연인을 보는것은 징어에게 설레는 순간이었다.
세훈 역시 징어와 처음 작업을 한 이후로, 아직 작곡가로 데뷔한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여러 히트곡을 써내며 천재 작곡가 소리를 듣고 있는터라 여기저기 들어오는 곡 의뢰에 정신없이 바빴다. 징어와 약속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좀 잘나간다고 녹음시간에 지각이나 하는 가수에게는 엄청난 타박을 하면서도, 징어에게는 미안해. 자기야. 금방 갈게ㅠㅠㅠ 하며 애교섞인 문자를 보내기에 바빴다.
좀 늦을지도 모른다는 세훈의 문자에 먼저 도착한 징어는 강변을 걸었다. 간간히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저를 알아보는 팬들에게는 데이트해요 데이트, 하며 자랑을 하고서는 저 혼자 괜히 부끄러워지는 징어였다. 핸드폰 속에 세훈이 쓴 곡들이 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켜놓고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다. 가장 최근에 세훈이 쓴 곡은, 오직 너, 라는 곡이었다.
오직 너? 제목 오글거려.
이거 오징어 너 들으라고 쓴건데. 제목 봐. 오직너. 오징어.
장난하냐? 끼워맞추지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징어는 그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세훈의 말대로라면 제 이름을 딴 제목을 가진 노래였고, 이젠 나의 전부가 된 너와 결혼하고 싶다는 내용의 가사를 가진 노래였기 때문이다.
결혼이라. 징어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이었지만 데뷔 6년차가 된 지금, 벌써 서른하나가 된 팀의 리더 태연이 얼마전 결혼을 했고, 징어 저도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아예 안 해본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부담스러운게 맞았다. 게다가 세훈의 마음을 알수가 없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벌써 팀에 유부녀도 있는 마당에, 세훈이 결혼하자고 하면 고민하다가 흔쾌히 오케이 할지도 모르는 징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제 왼쪽에 서서, 오른쪽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가져가 제 오른쪽 귀에 꽂는 세훈을 징어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세훈이랑, 결혼을 하면.
노래 좋네. 무슨 노래야?
일순간 징어의 표정이 굳어졌다. 세훈의 귀에 이상이 있는걸 알았지만, 처음엔 그저 남의 말을 잘 못듣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세훈의 오른쪽 귀에 문제가 있다는걸 눈치챈 징어였다. 처음 만난날, 세훈의 오른쪽 귀에 징어가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하며 속삭였을때부터 지금까지, 세훈의 귀는 점점 멀어가고 있었다.
니 노래잖아. 왜 귀 안들리는거 말 안했어?
세훈은 처음 징어가 고백한 날보다 더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더 당황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모르는줄 알았는데, 몰랐어야만 했는데. 1년을 만나면서 징어가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더 부끄러워지는 세훈이었다.
사실 세훈은 군대에 갔을때 훈련을 받던 도중 동료의 실수로 터진 수류탄 파편이 귀에 박혀 그 때부터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가사 제대를 해야 했으나 전산상의 문제로 바로 제대하지 못하고, 자대에서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겨우 수술만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2주후, 세훈이 있는 자대에는 군인들이 그렇게나 열광한다는 걸그룹을 볼 기회가 생겼다. 큰 노래소리를 듣게 되면 귀에 무리가 갈 것이고, 더 나빠지게 둘 수 없는 세훈은 그저 동료들이 모두 나가고 텅 빈 건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훈은 홀로 우울해졌다. 작곡가를 꿈꾸던 세훈에게 한 쪽 귀가 먼다는것은, 꿈을 포기해야하는 최악의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계단을 탕탕 올라오는 소리에 놀라서 쳐다봤을 때, 그 곳엔 스물하나의 징어가 서 있었다.
아, 저기. 혹시 오세훈 상병님?
인기있는 걸그룹 멤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다는게 신기한 세훈이었다. 그제서야 세훈은, 입원해 있을때 징어가 디제이로 있는 라디오에 제 사연을 보낸 일이 생각났다. 다시 자대로 복귀해야해서 방송을 듣지는 못했지만, 징어는 세훈을 보러 자대로 오겠다고 했다고 했다. 세훈이 징어의 팬이 된 건, 이 날 부터였다.
징어는 그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세훈이라는 것은 오늘에서야 알았고, 강변에서 나지막하게 세훈에게 말했다.
세훈아. 보청기 사줄게 장가올래?
장난스레 웃어넘기는 말로 지나갔지만,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온 징어의 콘서트 준비로, 두 사람은 또 2주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훈은 징어를 숙소로 바래다주고 저도 분주하게 발길을 돌렸다.
태연이 임신을 하기도 했고, 올해 초반까지 활동한게 징어뿐인 이유로, 이번 콘서트는 징어의 솔로 콘서트로 결정이 났다. 솔로 콘서트가 처음은 아니지만, 날로 갈수록 욕심이 많아지는 징어는 정말 죽지않을만큼 열심히 준비를 했다. 벌써 3일간의 콘서트 중에 이틀이 지나고, 3년같았던 콘서트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세훈도, 징어의 부모님도 다 콘서트를 보러 오시는 날이기도 했다.
후. 3일째 똑같은걸 하는데 날마다 다르네요. 근데 벌써 마지막 순서예요.
3일간의 콘서트 중에 제일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들떠보였고, 더 아쉬워보였다.
마지막 곡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오직 너 들려드릴게요.
징어는 의자에 앉아 간주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20초가 지나고 나와야 할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징어가 두리번 거리는 순간, 콘서트가 열리는 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징어야. 잘 들려? 나 세훈이.
나 세훈이, 하는, 세훈 답지 않은 수줍은 목소리였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세훈을 찾으려던 징어는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 그저 세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알다시피 나는 오른쪽귀가 안들리지만, 그래도 내가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건 다 네 덕인지도 몰라. 아니다. 다 네 덕이지. 그리고 내가 지금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할 수 있었던것도 네 앨범에 내 곡이 들어가서고. 요즘 내가 행복하게 사는것도, 다 알고보면 네 덕이지.
징어야.
보청기는 나중에 할아버지 되면 그 때 사주고
지금은 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제서야 징어는, 왜 공식 팬카페에 얼마전부터 접속할 수 없었는지 이유를 알것같았다. 왜 접근권한이 없냐는 징어의 말에 그저, 언니가 너무 활동을 안해서 그래요, 하던 팬카페 회장인 아이가 스탠딩석에서 징어를 보며 윙크를 찡긋 했다. 공카에서 이벤트 준비라. 스케일이 꽤 큰 이벤트였다.
나랑 결혼할래?
세훈의 말에 맞춰, 징어 앞에 있는 수 많은 팬들은 Marry me? 하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눈물이 터져나오는데, 얄궂은 세훈이 그제서야 노래 반주를 틀어주는거였다. 노래는 해야겠는데 눈물은 나고. 결국 무대로 징어를 달래러 나온 세훈에, 징어는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노래는 온전히 팬들의 몫이 되었다. 남자한테 관심 없는줄 알고 갓 스무살이 됐을때부터 지켜보던 징어가 프러포즈 받는 순간에, 6년 넘게 지켜온 팬들도 울컥하는지 그저 세훈에게 잘해줘라 하며 고함을 쳤다.
그 날,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 제목이, 너를 듣고. 였다고 했다.
너를 듣고, 나는 기적처럼, 다시 꿈을 꿔.
내가 일부러 너 단콘하라고 임신도 노린거야.
하는 태연에 말에, 주위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으며, 그 사이에서 세훈과 징어는 둘만 존재하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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