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너의 세상으로
Peter Pan,
열일곱 그 무렵의 난, 꿈도 많고 웃음도 많은 영락없는 사춘기에 당도한 여고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비극은 너무 쉽고도, 빠르게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행복과 웃음으로 보내던 난, 내 자신을 급작스레 짓눌러 오는 그 무게를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낯선 이의 어두운 손길에 나의 몸은 더럽혀졌고, 나는 끝내 그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열여덟 지금의 난, 꿈도 웃음도 모두 잃은 채 하루하루 의미없는 나날들을 무채색의 삶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이들이 내게 더럽다는 이유로 등을 돌릴 것 같아 헤아릴 수 없이 두려워졌다. 그런 두려움은 날 마음대로 휘둘러, 하루도 빠짐없이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다니던 학교를 이틀에 한번 꼴로 다니다 급기야는 한달에 한번 꼴로 다니게 되었다. 우려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결국 난 자퇴서를 낸 채 옛 교실에 나의 꿈과 웃음, 그리고 그 모든 희망적인 것들을 쌓아놓은 채로 떠났다.
돌아온 집에는, 전처럼 날 반겨주는 부모님의 따뜻한 말도 없었고, 고된 하루의 보상인 양, 날 안아주던 부모님 품의 온기도 없었다. 다만 두분 다 장기 해외출장을 나가신다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메모장 하나만이 외로이 붙어있었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흔들, 대다가 떨어질 듯 위태로이 꺾여지는 메모장의 모습에 왠지모를 웃음이 났다. 마치 이상황에서의 내 모습같아서. 그런 메모장을 힘을 줘 떼어버린 후, 방 안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일까? 그 누군가의 인생에, 내가 필요할까? 그런 나의 의식 깊은 곳에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공허했다. 아니, 아니야. 그 대답이 마치 내게 확신을 준 양, 나는 갑자기 무언가 할 일이 생긴마냥 집 밖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제멋대로 날 이끌었다. 제멋대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가장 꼭대기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제멋대로 내려버렸고, 제멋대로 옥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발걸음 마저도 제멋대로 뛰어내리지는 못하더라. 난간 위에 위태로이 서서 고민했다. 이게 맞는걸까.? 그러다 내 안의 목소리가 대답해왔다. 포기하자. 그 네글자가 머리를 제멋대로 휘젓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림과 동시에 나의 몸은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내삶의 끝, 이렇게.
떨어지는 순간 각오한 강한 충격이 꽤 오랜시간동안 느껴지지 않아 슬쩍 눈을 떴다. 눈을 뜬 나의 시야에는, 가히 놀랄만한 광경이 들어차 있었다. 내 시야에 담긴, 날 제 두 팔로 조심스레 안아올린채 가만히 날 내려다보고 있는....
"피터팬?"
내가 말하고도 놀라,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창피하게. 피터팬이 뭐야 피터팬이. 하지만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의 외모는 피터팬을 연상시키고도 남았다. 푸르스름한 머리색과 주근깨 가득한 얼굴, 장난스럽게 째진 눈매와 서글서글한 웃음. 영락없는 소년 피터팬의 모습이었다. "피터팬?" 그는 나의 말을 장난스레 따라했다. 그리곤 깔깔 웃어댔다.
"피터팬, 음...피터팬. 맞지? 맞아. 나이를 안먹으니까 맞네, 피터팬."
그의 말에 벙찐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게 느껴졌다. 꿈이야, 꿈. 이건 꿈이다.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래, 꿈이지 그럼. 그게 뭐야. 피터팬은 무....피터팬??!! 내 혼자만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제의 그 피터팬은 내 침대로 날아왔다.
"휴, 깨어났네."
다행이라는 듯 제 이마를 지분거리는 그의 모습에 다시한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날 눈치챈건지, 내 몸을 재빠르게 감싸안는 그의 행동에 간신히 실눈을 뜨고 물었다. "누구...세요?" 나의 물음에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는 대답했다. "이름 권순영. 나이는 몰라, 너랑 동갑일것 같은데?" 그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체가 뭐라는..., 나의 심각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 사람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괴물도 아니잖아?"
"안 물어."
그래. 그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괴물은 아니잖아. 그 생각으로 아득해지던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렇게, 나와 피터팬 소년의 동거가 시작됬다.
우리의 하루일과는 간단했다. 아침에 순영이 날 깨우면, 난 순영을 위한 아침상을 차렸고, 순영과의 아침식사 후엔 함께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산책을 다녔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은 후엔, 난 순영과 끊임없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이 되면 순영의 품에 안겨 그를 위한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그는 그 중에서도 피터팬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다며, 어른이 절대 되지 않겠다 다짐하는 순영은, 내겐 퍽 어린아이 같아보여 귀여웠다.순영을 만나고 난 후의 난, 예전의 무채색의 삶에서 하나하나 잊어버린 색들을 찾아가며 다시 나의 삶을 새로이 색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예전처럼 많이 웃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인생에 권순영이 들어온 것 뿐이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순영과 내가 평소의 생활패턴과 다르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고, 그와 내가 새로운 곳에 간 것도 아니었다. 조용히 그날의 순영을 위한 책을 선반에서 고르고 있을 때, 순영은 문득 나의 뒤에 서서 물어왔다.
"그날, 왜 죽으려 했어?"
의 물음에 책을 훑던 나의 손가락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리곤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제벗대로 달달 떨리는 손가락에 놀라 멈추려 했지만, 그 떨림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에 놀란 순영은 내게로 달려와선 뒤에서 나의 등허리께를 꼭 끌어안았다. 내게로 전해져오는 순영의 체온이 뜨거웠다. 그 데일듯한 뜨거움 속에서 가만히 안정을 찾아갔다.
"미안, 미안. 말 안해도 되."
순영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 애처로운 눈을 하며 내게 사과를 해왔다. 그런 순영에게 괜찮다고 웃어보이며, 힘겹게 떨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순영은 날 제 품에 꼭가두었다. 나의 머리 위로 그는 눈물을 한방울씩 떨궈냈다.
"항상, 네 곁에 있을께. 너의 모든 상처들까지도 사랑해. 이젠, 아프지 마."
그 마지막 눈물겨운 한마디를 남기고 난 다음날, 침대 위 나의 옆자리에 그는 없었다. 마치 그와의 모든 추억이 거짓말인 양,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순영이 야속했다. 너무 미웠다. 순영의 마지막 한마디-아프지 마,-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보란듯이 잘살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순영이 떠난 뒤 처음 두달은 마음고생에 방안에만 틀어박혀있기만을 반복했다. 수많은 시간동안 그를 잊어보려, 마치 없는 사람인 양 행동해 보려고 했지만, 그는 마치 내 머릿속과 추억 곳곳에 찍힌 낙인처럼 내 기억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결국 난, 순영의 자리를 남겨둔 채, 그를 기다리는 삶을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꼭 당신을 찾아내 다시 돌아오게 만드리라. 그런 나의 다짐은 날 더욱 노력하게 만들었고, 어느새 나는 다시 나의 그리운 학교 앞에 서있었다. 처음 입학할 때의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교실에선,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 둥 요란을 떨며 날 반겨왔고, 그에 나도 점점 적응이 되어, 다시금 웃음을 되찾았다. 다만 가끔 찾아오는 권순영의 기억이 이마저도 앗아가긴 했지만. 결국 나의 삶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고, 권순영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벚꽃잎이 많이 떨어졌다. 등교길에 어깨와 머리에 내려앉는 꽃잎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교실에 들어섰다. 나의 비어있던 옆자리엔, 그가 앉아있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모조리 다 삼킨 채로. 그가, 앉아있었다.
권순영이.
믿을 수 없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선 권순영의 팔을 붙잡았다. "권순영?" 나의 물음에 그의 고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권순영 맞긴한데, 누구세요.
그 생소한 말투와 목소리에 억장이 무너졌다. 권순영, 권순영 그가 날 모른다. 그의 따가운 눈초리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미안, 아는 앤줄 알았네. 친구들에게 물어온 결과, 그는 장기결석생이라고 했다. 지난 여름 쯤 등교길에 우연히 일어난 불운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는 오랜시간 입원을 해야 했고, 오늘이 그의 퇴원 후 첫 등교라고 했다. 이런식으로 내 삶에 다시 불쑥 나타나버린 그가 가슴이 사무치도록 미웠다. 이렇게 날 힘들게 할거였으면, 못 알아볼거였으면, 애초에 정을 주지 말지. 아프지 말라고 하지 말지. 내가 사랑하게 만들지 말지.
나의 삶에 새로 나타난 순영과의 불편한 첫 만남 후로, 자리가 붙어있는 탓에 그래도 우린 꽤 친해졌고, 어느덧 이동수업도 같이 가는 사이가 되었다. 항상 그를 그리워하던 나로써는, 이마저도 반가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학교가 끝마칠 무렵이던 어느날, 권순영은 찾는 책이 있다며 같이 도서관에 가달라며 내게 부탁했다.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어, 나는 그에 알았다며 흔쾌히 그를 따라나섰다. 순영이 책을 찾는데 삼매경이던 와중 가만히 책등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문득 그와 밤에 읽을 책을 고르던 날들이 떠올랐다. 가슴이 아리도록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날들이.
"찾았다."
순영의 그말과 동시에 순영이 들고있는 책을 보러 그의 쪽으로 향했다. 책 표지 한가운데에 이름이 써있었다. 피터팬 이야기. 그에 마치 뭔가에 치인듯, 놀라 그를 쳐다봤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온 세상 천지에 순영과 나만 남겨진 것만 같은, 그런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너...," 내말을 자르고 순영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이 책 읽을 때 마다 피터팬이 너무 이해가 안가더라. 네버랜드로 가면, 웬디가 없잖아, 안그래? 피터팬은 웬디를 사랑하는데, 웬디가 없는 네버랜드가 무슨 소용이야? 그럴바엔, 난 나이를 먹고 말겠다. 웬디가 없으면 다 무의미하잖아, 안그래?"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술을 축이곤, 내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다리를 굽혀 내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너와 함께 걷는 시간이라면 난 나이를 먹고 말래. 너와 함께 맞는 하루하루가 나에겐 행복인걸."
그가 천천히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나의 입술을 응시해왔다. 그의 입술이 점점 나의 입술로 다가왔다. 입술 사이, 20cm.
"너와 함께하는 황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가 내게 입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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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
안녕안녕!! 만개에요!!!! 으아아악!!!! 독자님 우리 꽃님들!!!!!! 너무너무 보고싶어 죽는줄 알아써여..ㅠㅠㅠ 제가 여러분께 예고해드린 바와 다르게 이렇게나 일찍오게 된 이유는!!!!! 오늘까지 학교에서 이틀을 꼬박 밤새운 결과!!! 포상휴가를 받았습니다!! 낼 학교나오지 말래요!!!!! 꺄!!!! 그래서 오늘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켜서 글 올려요!!!! 소리벗고 팬티질러!!!! 사실 오늘 개인의 연애사를 올릴까, 많이 고민을 해봤는데, 아직 다음 글이 살짝 정리가 덜 되어서 다시 정리를 하고! 완전히 여러분을 위해 다시 부지런히 글을 올릴 수 있는 때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곧 올리게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구 우리 꽃님들..이게 뭡니까... 또 초록글...ㅠㅠ 이번 승관이 편을 다들 엄청엄청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기뻐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77ㅑ 이번에 개인의 연애사 7편 대신 올린 스핀오프 순영이 편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그런 글입니다! 뭔가 자유로운 소년느낌을 내보려고 노력했어요! 개구장이 피터팬 같지만 또 마음은 여린..ㅎ소재와 사진 제공해준 독방 칠봉이 너무너무 고마워요! 순영이는 항상 움짤이 참.. 제맘에 들게 나오는 멤버에요!! 글 분위기에 맞는 사진이 많아서 너무너무 감사한 정도...,, 아 그리구 댓글에 독방에서 추천받았다는 내용이 있어서 오랜만에 독방에 들어가서 찾아봤는데...왠열....너무너무 고마워요 댓글 남길테니까 꼭 봐줘요!! 이벤트는 제가 곧 개인의 연애사 7편을 올림과 동시에 마칠 생각입니다! 아직 마치지 않았으니 많은 참여들 부탁드려요!!! 그럼, 이번글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구 다들 좋은 하루되세요 꽃님들! 항상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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