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 아이유
1. 박지성
삼, 이, 일, 땡-. 여김없이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 소리. 엄마와 아이의 교감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하루에 몇십번씩 반복하는 일상에 익숙해져서라고 해야하나.
머릿 속에선 이만 일어나 아이를 살피라고 아우성인데 야속하게도 눈꺼풀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축 쳐진 손을 들어 눈가를 비볐다.
아이 울음소리에 뒤척이던 오빠가 다시 고요한 꿈에 빠져들었다. 잠을 깬답시고 벽에 기대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다 아이가 계속 울어대는 통에 걸음을 옮겼다.
안방에 붙어있는 작은 방, 옷방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나는 다른 용도로 하루종일 여기서 생활하고 있었다.
왜? 이 공주님 때문에-. 요즘 밤낮없이 울어제끼는 아이 덕에 미칠 판이었다. 물론 박지성 주니어는 열바퀴 돌고도 환영이었다. 하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우리 딸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유아용 침대에 누운 아이를 안아들었다. 옆 안락의자에 털썩 소리나게 주저앉아 토닥토닥.
"엄마 좀 자자, 응-?"
몸이 둘이라도 모자랐다. 아침에 일어나 오빠 출근 준비를 돕고 바늘이 돋힌 입에 겨우 밥알을 넘겼다. 깬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재울새면 한가득 쌓인 빨래더미.
그리고 한숨 돌릴 새면 바닥에 보이는 먼지. 그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면 어느 덧 해는 저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새벽의 사투-.
그래도 손을 허공에 뻗으며 옹알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볼 새면 단연 행복했고 예뻤다. 오빠가 훈련갈 때는 완전히 지옥이었지만.
"안 자?"
"어-? 오빠 가서 자요."
눈에 잠이 가득한 오빠가 작은 하품과 함께 다가와 옆에 앉았다. 오빠도 내색은 없지만 요즘 힘들어 미칠거다 아마.
오빠가 손에 안긴 아이를 멍하니 내려보았다. 어떻게 보면 닮고, 어떻게 보면 안 닮았어. 꾸벅꾸벅 젖혀지는 고개, 저리는 팔.
그런 내게 오빠가 무심코 손을 뻗어 아이를 받아들었다. 가늘게 숱많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기던 오빠가 똘망한 아이의 눈을 맞추며 웃었다.
"애 떨어지겠다, 내가 재울게."
"됐어요, 잠 깼어. 빨리 자요."
"...우리 딸, 너보다 나 좋아할거다."
툭 뱉는 오빠 말에 부정할 길이 없다. 사실인 걸 어떡해. 도대체 어째야 밤낮없이 하루종일 안겨있던 엄마보다 저녁에 들어와 얼굴만 비추다 가는 아빠가 더 좋은거지?
쩝, 내 품에서 똘망이며 칭얼거리던 눈이 오빠 품에 안겨 몇번 어르자 살랑살랑 졸리게 감겼다.
"완전 사기야, 이거."
"뭐가?"
"어떻게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할 수 있어요?"
"아빠잖아, 나한테 질투해?"
"질투는-. 10달 꽁꽁 품고있다 죽는다고 낳았는데, 밥 주는 것도 나잖아요."
"그러게-."
"섭섭해, 엄마는 미치게 하면서 아빠한테는 껌뻑 죽는 거 봐."
"엄마 닮아서 그러지, 뭐."
"네?"
"너도 나한테 껌뻑 죽잖아."
무릎에 얹혀진 담요를 걷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져나오는 작은 웃음과 한숨. 이것또한 부정할 길이 없다, 사실인 걸 어떡해-.
2. 기성용
꺄르르, 잘도 웃는 아이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방긋한 내 목소리가 섞여 기분좋게 흘러 나왔다. 작은 아이의 발에 신겨진 신발이 왜 이렇게 앙증 맞은지.
그와 어울리는 가디건을 입혀주고 아이를 안아들었다. 기분이 좋은지 생글거리는 아이에 나도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방에서 나오는 오빠가 보였다.
축구복 대신 오랜만에 입은 정장이 불편했는지 이리저리 어색하게 만져보인다. 오빠의 비뚤어진 넥타이가 보여 아이를 모담요 위로 내려놓았다. 잠깐만-.
"괜찮아?"
"최고-."
"아, 결혼식 몇시랬지?"
"1시."
넥타이를 풀러 다시 매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누워서 방긋 웃는 아이에게 집중된 그의 시선.
일부러 목을 콱 조이자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쓴다. 손가락을 넣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르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연애 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빠가 되도 오빠는 변하는 게 없다.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아.
"정신 어디다 두고 다니냐-."
"어? 아 맞다."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건네는 오빠에게 멋쩍게 웃어보이며 받아들었다. 오빠가 애 키워봐, 정신 하나도 없어.
변명아닌 변명으로 대꾸하고 핸드백을 들며 구두에 발을 구겨넣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안아드는 오빠를 바라보다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풍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이 남자, 그리고 우리의 아이-. 그 모습에 소리없이 슬쩍 미소 짓자 오빠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던 오빠가 의아스럽게 물었다.
"뭐가."
"응?"
"뭐가 그렇게 좋아."
"아니, 그냥."
싱거운 듯이 고개를 돌리던 오빠가 현관문 입구에 걸린 아이 가방을 들었다. 건네주는 손길에 받아 안을 살피다 아차하며 신발을 벗었다.
아이는 금새 눈을 감았는지 칭얼거리는 소리가 줄었다. 문에 기대 지루한 손길로 아이를 토닥이는 오빠를 내다보다 물었다.
"오빠, 오늘 애기 우유 몇 시에 먹였어?"
"한 아홉시?"
젖병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오빠는 작은 한숨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턱끝으로 가리키며 아이를 다시 붙들어 안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구두를 고쳐신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오빠는 내가 비틀거리자 냉큼 팔을 붙잡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지."
"...흐..."
"딸 둘을 키우는 기분이야, 어떻게 애기보다 네가 불안하냐."
"뭐가-."
"이래서 어떻게 엄마가 됐을까."
"......"
"도대체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네."
조심스럽게 아이를 건네고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는 오빠를 뒤따랐다. 푹 잠든 아이가 혹여 깰까 조심스럽게 문을 닫아주는 오빠가 귀여워 살풋 웃었다.
운전하는 오빠 뒤에서 잠결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다 백미러로 고개를 돌려 불렀다.
"왜, 깼어?"
"아직, 일어나야 돼. 밤에 안 자면 나만 골치썩어."
"...그래도 순한 편이지. 또래에 비해."
"끝까지 딸 편이네, 그렇게 이뻐?"
"당연하지-."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툭 대답하는 오빠를 뒤로 창가에 머리를 툭 기댔다. 어째서 내가 내 배 아파 낳은 딸한테 질투하는 신세가 된건지.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고쳐안았다. 그래, 나도 예뻐죽겠는데 하물며 오빠는 어떨꺼야.
그래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다. 삐죽 내민 입술을 백미러로 훑던 오빠가 조용히 낮은 웃음을 흘렸다.
"웃지마."
"...안 웃어."
"미워."
"...왜-."
"내가 어쩌다 딸한테 질투하는 신세가 됐을까."
손을 뻗어 머리를 헝크는 오빠의 손을 장난 반, 진신 반으로 살짝 쳐내자 오빠가 비죽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또 이렇게 넘어가려 그래, 장난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섭섭해 나한테는 요즘 신경도 안 쓰고, 짜증이나 내고.
"질투하지마."
"...안해."
"공주한테는 미안한데."
"......"
"네가 첫번째야."
3. 박주영
허공에 붕 뜨는 느낌에 아리는 눈을 떴다. 아, 인공눈물이 어딨더라-. 그리고 나를 안아든 사람이 오빠라는 걸 알고는 손을 뻗어 목을 감았다.
목께에 닿는 뜨거움에 그제서야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마주친 오빠는 말없이 볼께에 작은 바람을 불었다.
진한 치약향이 코 안으로 은은하게 퍼졌다. 일교차 탓에 잔기침을 해대더니 결국엔 감기에 걸려 밤새 열이 오른 아이 때문에 제대로 눈을 감지도 못했다.
아직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 앞에 서있는 오빠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일찍 퇴근한 것 같았다. 계속 괜찮냐고 전화하더니 결국에는 와버렸네.
"눈 좀 붙여라."
"괜찮아."
"빨리."
"나 괜찮아, 오빠."
그의 눈 앞에 단호하게 두어번 되새기자 오빠는 결국 졌다는 듯 진웃음과 함께 나를 가죽 쇼파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오빠와의 결혼 생활 중 터득한 나름의 비법이 여럿이었다. 물론 단호하게 선 긋는 이 방법도 그 중의 하나였고.
"애기는."
"괜찮아, 열도 안 오르고, 잔기침도 안 하고."
"전화는 왜 안 받는데, 놀라서 왔다-."
"아기방에 있었어, 못 들었다."
쇼파 아래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는 오빠에게 팔을 뻗었다. 어린아이마냥 품을 파고들어 안겨오는데 벅찰 정도였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정리해주자 손을 잡아채던 오빠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얼굴 못 쓰겠네."
"...피곤해서."
"이러다 네가 죽겠다."
뜨끈한 오빠의 손이 얼굴에 닿자 불에 덴 듯 화끈해졌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적응하기 어렵다. 붉어진 얼굴에 소리없이 웃던 오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스러운 손길이 허리춤을 파고 들어오며 꾹꾹 눌렀다. 원체 허리가 안 좋을 걸 아는지라 척추께를 문지르는 오빠의 손이 바빠졌다.
"밥은."
"모유는 좀 넘기는데, 분유는-."
"아가 말고 너-."
아아 대충 먹었어, 나라고 잘 넘어가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께로 올라온 그의 손을 소리나게 쳐내자 낮게 웃는 진동이 느껴졌다.
얇은 원피스를 사이에 두고 그의 올굳은 팔과 여린 허리가 마주했다. 움찔하는 오빠의 팔을 잡아 풀어내는 사이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두어번 칭얼거리며 옆에 없는 엄마를 찾더니 결국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탓에 오빠도, 나도 놀라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쳐라. 뚝-."
"......"
"...니 엄마 죽겠다."
히끅대며 울어대던 아이에게 오빠는 손을 뻗어 가볍게 안았다. 괜찮다, 엄마 아빠 여깄다. 달래던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노곤하다.
방울방울 맺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안쓰러운지 오빠가 손수건을 들어 눈가를 쓸었다. 그제서야 풀린 다리로 주저앉다시피 기댄 내가 보인건지 오빠는 눈길을 주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자지러지게 운 거. 악을 쓰며 울어대는 아이에 놀라 무엇이 잘못된건지 뭐가 불편한지 확인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주춤하고 있었다.
내가 놀라 가만 멈추는 사이 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아이를 안아들었고, 아이는 놀랍게도 그런 아빠 품 안에서 눈물을 그쳐가고 있었다.
"OO아."
"...오빠."
"니 놀란 거 안다, 나도 놀랐으니까."
"......"
"근데 우리 공주, 좀 있으면 뛰어다니다 무릎 깨지고 이마 깨져서 올껀데-."
"......"
"이도 빠질거고, 너 닮아서 감기도 자주 걸릴꺼다, 아마."
"......"
그렇게 한참을 뜸 들이던 오빠는 내게 대뜸 아이를 안겨주었다. 부은 눈을 비비는 아이의 손을 떼어내며 후우 찬바람을 불어주자 그제서야 문지르는 게 덜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오빠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그 일을, 나는 오빠가 있기에 지켜가고 있었다.